River Lily
겨울로 가는 가을의 끝, 한때 아름답던 화단의 식물들의 지친 몸이 안쓰러워 보이는 시기에 유독 밝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당연한 계절을 망각하고 들뜨게 만드는 식물이 있다. 남아프리카 이국 중에서도 이국인 곳이 고향인 이 식물을 보면서 다문화 사회로 가는 우리의 현상을 까닭 없이 연상하게 된다. 올 겨울은 모든 사람에게 훈훈한 계절이 되기를…….
물범부채가 주로 자생하는 지역은 여름에 고온다습하며 겨울에 춥고 건조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동부의 둔치나 하천변의 둑 또는 벼랑 등이다. 남아프리카의 지형은 주로 산악지대가 많고 기복이 심하며 계곡의 토양은 비록 박토이기는 해도 구근성이나 괴근성 식물들이 자라기에 이상적인 적지이다. 강수량은 해안에 가까울수록 많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적어진다. 해발고도가 높아 겨울이 제법 추운 지역에 자생하는 식물들 중에는 물범부채(Hesperantha coccinea)나 송엽국(Delosperma cooperi)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적응이 가능한 종류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범부채는 겨울이 건조하고 여름엔 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아름다운 정원 소재로 볕이 잘 드는 하천이나 연못 등 습기가 많은 물가나 둑 등에 이용하기에 적당한 매우 훌륭한 지피식물 소재이다. 물을 좋아하는 구근성 숙근초인 물범부채가 잘 활착하여 왕성하게 자라면 작은 군락이 되어 꽃이 무리 지어 피게 된다. 꽃은 보통 밝은 적색이지만 품종에 따라 흰색, 연분홍, 진분홍 등 여러가지이며,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무리 지어 피어나 아름답다.
글라디올러스와 유사하지만 다소 작고 보다 섬세하다. 양지에서 잘 자라지만 음지에서도 비교적 잘 견디는 편이다. 습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배수가 불량해 지면 세력이 현저히 약해지고 심지어 고사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대략 40여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품종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피기 시작해서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 낸다. 계절의 막바지에 가까워질수록 당연히 추레해지는 잎줄기에 마지막 한 송이까지 정열적으로 피워내는 모습이 절절하다.
특성
붓꽃과에 속하는 Hesperantha속 식물들은 남아프리카에 60여종이 분포한다. 속명인 Hesperantha는 그리스어원에서 유래하였으며 저녁(evening)을 뜻하는 'hesperos'와 꽃(flower)을 의미하는 'anthos'의 합성어이다. 속명과 같은 의미로 대표적 영명 또한 'Evening Flower'인 물범부채속(Hesperantha) 식물들은 글라디올러스와 유사하지만 비교적 소형인 구근성 지피식물들로 구근에서 자라는 잎 줄기가 곧추 자라고, 그 줄기의 끝에 발달하는 수상화서에 별 모양의 아름다운 꽃 들이 달린다. 일부 종들은 향이 강하며, 다수의 종들이 늦은 저녁까지 개화가 지연되다가 꽃이 피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속명과 영명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재배가 용이하지만 대부분 내한성이 약한 것이 아쉬운 점인데, Hesperantha속 식물들 중에서 내한성이 가장 강하고 다양한 생육환경에 잘 적응하여 흔히 재배되는 물범부채(Hesperantha coccinea, 또는 Schizostylis coccinea)는 우리나라의 중북부 내륙의 추운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Schizostylis coccinea로 알려져 왔으나 이명으로 처리되었지만 아직도 혼용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Hesperantha coccinea가 정확한 학명이다.
아프리카 남단의 짐바브웨와 남아프리카 동부의 여름에 우기가 형성되는 넓은 지역에 분포하며, 주로 하천이나 강변의 습기가 충만한 물가와 둑에 자생한다. 물을 좋아해서 붙인 'River Lily'가 물범부채의 대표적 영명이며, 국명도 외관이 범부채나 애기범부채에 가까우면서 물가에서 자란다는 의미로 '물범부채'라 부르고 있다. 구근이라기보다는 지하경으로 자라는 물범부채는 기본 화색이 빨강색이고 물에 가까운 곳에서 대부분 발견되었기에 'Scarlet River Lily' 라고도 부르며, 종소명인 coccinea도 빨강색을 뜻한다. 한편에서는 붓꽃을 닮은 붉은 꽃이라는 의미의 'Crimson Flag'으로 부르기도 한다.
숙근성 지피식물로 구근 또는 지하경에서 곧추 자라 60cm 정도에 달하고, 길고 좁은 부드러운 칼날 형태의 잎은 길이 40cm에 폭이 1cm 정도이다. 좁은 부챗살 모양으로 잎들이 모여 자란 줄기 끝에 길게 발달하는 화서를 따라 붉은색 꽃들이 순차적으로 피어난다. 품종에 따라 흰색, 연분홍, 분홍, 진분홍, 적색, 암적색 등으로 피는 꽃은 길이가 3∼4cm 정도이다. 꽃잎은 6장으로 갈라진 별 모양이며, 하나의 꽃대에 대략 6∼12개의 꽃들이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피고 진다.
재배
물범부채는 꽃이 아름다운 매력적인 조경소재로서 볕이 잘 드는 양지의 유기물이 풍부하고 배수가 양호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고 연못가와 같은 항상 습기가 충분히 있는 곳에 심는 것이 바람직하다. 심지어 화분이나 플랜터 같은 용기에 심어 용기의 토양 표면이 잠기는 선까지 물속에 가라앉혀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통기가 불량한 점질토에서는 제대로 자라기 어렵고 겨울에 과습하면 고사하기 쉬우므로 마사나 굵은 모래를 넣어 개량해 주어야 한다.
식재시 간격은 15cm 정도가 적당하며, 식재 초기에는 다소 생장과 증식이 더딘듯하지만 일단 식재지에 잘 활착하여 적응하면 해가 갈수록 포기가 벌어 작은 군락을 이루며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게 된다. 군락을 이루며 잘 활착한 포기에서 곧추 자라는 다수의 줄기를 따라 꽃들이 무리를 지어 이어 피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게 된다. 주로 습기가 충분한 곳에서 잘 자라며, 지나치게 메마르지만 않다면 다소 건조한 곳에서도 생육이 가능하지만 잎이 마르거나 늘어지는 등 외관이 보기 흉해지고 개화가 불량해지므로 자주 관수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묵은 포기는 주기적으로 유기질 또는 무기질 비료를 공급해 주거나 지나치게 빽빽하게 자란 포기는 분주를 하고 토양을 개량한 후 되심어 활력을 증진시켜 주도록 한다.
남아프리카의 자생지에서는 선형의 글라디올러스를 닮은 잎들이 상록으로 연중 유지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남부의 따뜻한 지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상부가 마른 상태로 월동을 하게 된다. 지나치게 추운 중북부 내륙에서는 월동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며 동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부직포, 보온담요나 낙엽 등과 같은 피복재로 멀칭을 해서 월동을 하도록 한다. 식재 후 우드칩 또는 콩자갈 등으로 멀칭을 해주는 것이 보습 및 보온 효과 등이 있어 원활한 생육에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