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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눈앞의 정원과 손안의 공원
  • 환경과조경 2026년 7월호

대형 공원으로서 서울숲

서울숲을 앞두고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순간이 있다.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컨테이너가 늘어선 거리를 지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다. 도로 너머의 공원을 바라본다. 건너편에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마른 보도 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시원한 느낌을 자아낸다. 신호가 바뀌면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선다. 발밑은 여전히 딱딱한 격자다. 그 위에 나무 그림자가 조금은 성기게 드리워져 있다.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조각상과 분수와 못을 지난다. 공원은 갈수록 우거진다. 격자가 느슨해지고 길이 흐른다. 가지와 잎이 커다란 지붕을 이루며 공간감이 깊어진다. 장면이 전환된다. 숲 가운데가 크게 비어 있다.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넓다. 그림자 안에서 햇빛을 바라본다. 멀어질수록 커지는 것과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것이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서울숲은 대형 공원이다. 35만평이라는 면적도 손꼽히는 규모지만, ‘서울’과 ‘숲’이 결합된 이름도 자못 크다. 조성 당시 유사 사례로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런던의 하이드파크가 언급됐으니, 그 이름답게 서울을 대표하는 공원이라 할 만하다. 대형 공원의 특별함은 크기에서 비롯된다. 서울숲에 가면 초원, 호수, 숲처럼 규모를 통해 재현되는 경관을 마주친다.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헤매거나 소요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도시가 크고 조밀할수록 대항 공간으로서 대형 공원의 가치는 커진다.

 

도시의 문턱에서 시작해 내부로 들어가며 자연에 가까워지는 시퀀스는 서울숲 특유의 경관 언어다. 성수동과 맞닿은 부지 동쪽에서 한강과 맞닿은 부지 서쪽으로 진입하며 정형성은 허물어지고 스케일은 커진다. 이러한 양상은 부지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통합된 경관으로 엮어내는 대형 공원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서울숲은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도시의 반대항이면서, 도시를 받아들이고 감화시키는 공원의 전범으로 자리 잡았다.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크기에서 비롯되는 서울숲의 특별함을 원천 삼아 성사됐다. 167개의 정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크기와 인위 자연의 다양성, 성수동과의 접근성이 박람회를 개최하기에 유리한 조건으로 포착된 것이다.

 

공원의 도시화

박람회 정원들은 성수동과 가까운 문화예술공원 영역에 배치됐다. 군마상에서 거울연못에 이르는 진입부부터 잔디마당과 연못이 틀을 이루는 중심부까지 곳곳에 정원이 자리 잡았다. 22만㎡ 규모의 문화예술공원 영역에 167개 정원 중 37개를 제외한 130개 정원이 약 41,500㎡ 이상의 면적으로 조성됐다.(각주 1) 수공간이나 시설 때문에 정원을 조성할 수 없는 부지들이 있음을 떠올리면 상당한 규모다. 세 자리수의 정원이 조성되며 서울숲의 경관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여러 주체가 다양한 정원을 만든 까닭에 경관이 전반적으로 복잡해졌다. 개별 정원은 각각 독립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정원들은 서로 가까이 위치하더라도 설계상 연계돼 있지 않다. 할당된 부지 안에 각자의 동선과 출입구를 설치했으며, 부지 경계 안팎에서 바라보이는 정원의 이미지가 서로 의도치 않게 겹칠 뿐이다. 공원을 걷는 이용자에게 정원은 마치 테마파크의 어트랙션처럼 이곳저곳에서 불쑥 등장한다. 이제 동선은 전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정원이 시선을 끌면 발걸음은 느려지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었다가 다시 빨라지기를 반복한다. 길의 평면 형태가 같더라도 보는 장면과 걷는 리듬은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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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주요 정원 배치도

 

박람회 정원은 사람들을 사로잡으려 한다. 클라이언트와 작가를 비롯한 정원의 설계자는 감상자를 설득하고자 한다. 다채로운 식물과 섬세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고 제작자의 메시지를 실어 보낸다. 작가라면 자기만의 관점과 언어를, 기업이라면 태도나 상품을 정원에 새긴다. 정원박람회가 공원에서 개최될 때의 괴리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박람회 정원 특유의 표현성은 공원의 소외를 동반한다. 서로 다른 신호를 발신하는 정원의 무리는 공원의 이용자로 하여금 인식의 총량을 증가시킨다. 박람회 이전의 서울숲은 경관의 단위가 비교적 컸으며 전환이 부드러웠다. 하층 식재가 부족해 생물 종 다양성이 낮고, 식생의 층위가 단순하고 패턴이 단조로운 면도 있었다.(각주 2) 개선의 여지이자 특유의 분위기였던 서울숲의 구성적 특징은 정원박람회로 인해 전경에서 배경으로 밀려난다. 대형 공원 특유의 넉넉한 공간감은 분절되고, 이를 자아내던 반복과 연속은 자기완결성을 지닌 개별 정원의 삽입으로 인해 교란된다.

 

도시에서 자연을 향해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가는 서울숲의 흐름도 다소 달라졌다. 기존의 선율이 기저에 흐르는 와중에 마디마다 새로운 선율이 들어왔다 나간다. 건축 비평가 마이클 소킨은 미국의 도시 구조를 텔레비전에 비유했다. 텔레비전의 핵심 사건은 ‘절단’이며 그 디자인 의 요지는 ‘차이를 삭제’하는 데 있다. (각주 3) 박람회 이후 보라매공원과 서울 숲에 수많은 정원이 만들어졌지만, 다 비슷하다는 감상이 등장하는 것 은 무엇을 뜻할까. 장소성을 계기로 부상한 뒤 어느새 동질화된 상권의 문화를 떠올린다면 지나칠까. 도시화의 반작용으로 탄생했던 공원의 특 질이 다수의 정원을 들여서 흐려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기존의 공원에 새로운 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박람회 이 전 서울숲에도 기업의 사회적 기여나 공공의 문화 사업을 통해 다수의 정원이 조성되었다. 공원에서 정원은 다양성을 보완하고 활기를 충전하려는 시도다.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중요한 것은 계 획이다. 공원과 정원이, 일상과 박람회가 부딪치지 않을 방법을 세심하게 고안해야 한다. 조경의 직능은 장소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 율하는 데 있고, 정원의 본질은 자연과 문화를 엮어 공생의 경관을 이루는 데 있다. 


공원 속 정원의 가능성 

정원 설계자의 입장에서 대상지가 이미 조경 공간이라는 점은 중요하다. 기존에 잘 쓰이던 공간인 데다 결과물이 앞으로 공원의 일부로 남겨 진다는 것은 대상지의 가능성이자 제약 조건이다. 설계자는 기존의 경관 구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앙리 바바의 ‘흐르는 숲아래 정원’은 이러한 긴장에 대한 가장 간명 한 응답이다. 이 정원은 말 그대로 ‘숲아래’ 위치한다. 교목이 이루는 상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하부 구조를 새롭게 구성했다. 바닥에 크고 작은 원들을 그리고 내부에 지피 식물을 채웠다. 원의 경계는 얇은 철물이다. 큰 원의 경계에는 수면의 띠를 한 켜 더해 하늘을 반사한다. 형태와 재료에서 대상지에 없던 요소를 도입했다. 이 정원의 감각은 박람회의 초청작이지만 다소 절제된 편이다. 과감한 형태를 쓰지 않기도 했지만, 기존의 경관 구조를 그대로 따른 평면적 경향이 읽힌다. 출입구가 특정되지 않아 사방에서 접근 가능하고,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관목이나 의자처럼 몸의 움직임을 적극 유도하는 요소가 없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정원들을 사유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이번 전시 정원 중에서 경관의 구조와 작품의 정체성 가운데 후자에 무게를 실은 사례는 기업정원에서 다수 보인다. 앙리 바바의 정원을 지나 펼쳐지는 잔디마당 주변으로 건설사의 기업정원이 배치됐다. 대우건설, 계룡건설, 호반건설, GS건설, IPARK현대산업개발의 정원은 고급스럽고 단정한 재료가 돋보인다. 주거 브랜드의 모델 정원으로 인식되는 만큼 완결성이 높고 앉을 공간이 많다. 해당 정원들이 넓은 공원 한가운데 나란히 바라보이는 풍경, 그리고 그 끝에서 조각난 정원이 땅을 가르며 오르내리는 모습은 이번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 중 하나다. 


정체성에 착목한 작품의 일부는 ‘서울류’라는 박람회 주제와 연계된다. 알레산드로 트리벨리의 ‘팝K 정원’과 가우리 사탐, 테제시 파틸의 ‘서울에 머물다’는 연못가에 위치한 원색 파빌리온을 통해 ‘한국’을 표현 한다. 파빌리온의 색채는 강렬하고, 형태는 가느다란 철재로 간결하게 이루어졌다. 잔디마당 한편에 위치한 조용준의 ‘머무는 선’도 주목할 만하다. 이 정원의 둘레에는 위치와 높이에 따라 경계이자 문, 창, 선반이 되는 하나의 선이 있다. 최소한의 형태로 표현된 선의 흐름은 한국적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정원으로서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고 공원을 향상하려는 의도가 뚜 렷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공원 입구의 군마상 주변에 조성된 스튜디오 천변만화, 라디오도시조경의 ‘마중정원-숲의 출발선’은 단조롭던 식재를 보완해 생태적 기능과 감각을 끌어올리고, 주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경주마의 이름과 편자, 안장과 샘을 배치했다. 장소성을 강화하면서도 진입부의 기능에 충실한 설계다. 


김단비의 ‘영감이 필요한 순간’과 송재안, 김건우의 ‘30.5m의 수평 선’은 기존의 공원 배치에 맞춰 앉을 자리를 극대화했다. 전자는 연못이 바라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기대 누울 수 있는 너른 데크를, 후자는 숲 가운데 약 30m가량 쭉 뻗은 목재 벤치를 두었다. 이러한 설계에서 정원과 공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설계의 창의성은 대상지가 백지인 것보다 적절한 조건이 주어졌을 때 더 잘 발휘된다. 공간의 배분보다 경관의 구조에 착목해 더욱 정교한 기획을 선행한다면, 기존의 박람회에서 볼 수 없었던 정원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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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천변만화, 라디오도시조경의 ‘마중정원-숲의 출발선’ 군마상 주변의 식재를 재구성하고, 역동적인 흐름을 슬며시 가로지르는 선 위에 편자를 찍는 등 경마장의 장소성을 표현했다. ⓒ임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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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의 ‘영감이 필요한 순간’ 연못이 바라보이는 나무 그늘 아래, 기대 누울 수 있는 데크를 설치해 대상지의 잠재력을 끌어냈다. ⓒ임한솔

 

바깥을 그리는 정원 

정원은 울타리에 개념적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코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정원은 골방이 되거나 야생으로 되돌아간다. 열린 정원은 새로운 재료와 동식물, 문화를 도입해 생동을 유지한다. 박람회의 차원에서도 열림의 가치는 유효하다. 어떤 정원은 기존의 정원에 대해 질문하고, 박람회보다 긴 시간과 먼 지평을 겨누며 문화를 환기한다. 


신영재, 최지은의 ‘다종적 마주앉기’는 보이지 않는 정원의 이면을 보게 한다. 인간이 있을 때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처럼, 존재하지만 포착하기 어려운 존재를 보여준다. 전정하지 않은 야생 회양목의 모습은 가만한 충격이다. 정원의 구획은 땅속에 뻗은 나무뿌리의 범위를 지면에 반영한다. 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은 작품의 보전을 전제하는 미술관처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자연을 응시하게 한다. 스튜디오 초신성이 2023년부터 조성에 참여한 서울숲 내 ‘광야숲’에 가면 그러한 태도가 지속적 유지·관리로 이어질 때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조경하다 열음의 ‘그린 펄스(Green Pulse)’는 만들어진 폐허와 같다. 산불로 검게 탄 나무가 늘어서 있고, 사이사이 미스트가 수증기를 뿜으며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오목한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고, 심은 것인지 돋아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풀들이 군데군데 자란다. 이 정원은 공원에 재현된 기후 위기 시대의 산림이다. 울타리 밖의 자연은 기후 변화와 산불 등의 이유로 훼손되고 회복한다. 이 정원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취약성과 회복력을 재현한다. ‘산불’이라는 재난의 이미지는 정원과 어울릴 법하지 않다. 그런데 이번 박람회에서 다섯 정원이 관련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각주 4) 작년에 있었던 대규모 산불의 집단 기억이 정원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라디오도시조경, 천변만화의 ‘더 라운드’는 자연에 대한 이해가 조형 으로 직결된 특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정원은 큰 동그라미 안에 작 은 동그라미들이 모여 있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큰 동그라미는 헨켈의 브랜드 색상에 따라 빨갛고 하얗게 칠한 철제 벤치에 해당한다. 흥미로운 것은 작은 동그라미들이다. 공 같기도 하고 무덤 같기도 한 흙무더기들이 각종 식물과 바위에 둘러싸여 있다. 흙무더기의 겉에는 이끼가, 위에는 작은 묘목이 자라고 있다. 이 물체의 정체는 독일식 재배 기법인 후글컬처에 있다. 후글컬처는 하부에 목재와 유기물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음으로써 토양의 비옥도와 물 머금는 능력을 높이는 재배 방식이다. 흙무더기 아래에는 서울숲 내 공사에서 발생한 통나무 조각들이 있다. 위에 덮은 흙은 답압으로 다져졌던 땅을 긁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저지대는 정원에 빗물을 모으는 웅덩이 역할을 한다. 시간이 흐르면 돋워진 지형과 파인 지형은 서로를 닮아갈 것이다. 이끼는 퍼지고 나무는 뿌리내릴 것이다. 흙무더기와 웅덩이는 물과 양분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지형이 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정원이 이리저리 울퉁불퉁 자라있을 때, 커다란 동그라미는 흐트러지는 자연의 과정과 박람회의 기억을 저장하는 매체가 된다.


눈앞과 손안 사이에서 

어떤 공원이 좋은 공원인지에 대한 수많은 생각이 있다. 박람회 전후의 서울숲 중 무엇이 더 나은지에 관해서도 수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이 취향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공원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공원은 첨예한 담론의 대상이 아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우리 에게 공원은 ‘손안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사람이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을 ‘손안의 것’과 ‘눈앞의 것’으로 나눴다. 전자는 사용하는 것이다. 쓰임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후자는 바라보는 것이다. 시선을 끌고 의식을 촉발한다. 우리에게 공원은 아름 답기보다는 편안한 곳이다. 공원의 벤치는 보는 대상이 아니라 앉는 시설이다. 하이데거는 망치의 망가짐을 통해 전자에서 후자로의 전이를 설명한다. 늘 가던 공원에 가림막이 쳐졌을 때, 늘 앉던 벤치의 다리가 부러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눈앞의 것’으로 공원과 벤치를 다시 보게 된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공원 담론을 환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박람회 이후 공원은 ‘눈앞의 정원’으로 가득하다. 그 존재는 익숙하던 공원의 경험에 균열을 일으킨다. 흙이 있던 자리에 자갈과 콘크리트 포장이, 나무 사이를 관통하던 시야에 정원 식물과 조형 요소가 자리한다. 산책하던 걸음이 감상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과연 서울숲은 좋은 공원이었는가. 박람회 이후 서울숲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다음 정원박람회와 대형 공원의 설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시간이 흘러 정원이 풍경이 되면, 서울숲에 놓인 ‘눈앞의 것’은 점차 ‘손안의 것’이 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 보자. 아름다운 공원을 그리는 데는 잠시 불편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각주 정리

1. 약 41,500㎡라는 수치는 성수역 인근 구두테마공원에 조성된 ‘기다림의 정원’과 습지생태원 영역에 조성된 ‘어반 위빙’, 그리고 서울숲 밖의 이음정원 35개를 제외한 각 정원의 면적을 합산한 결과다.

2. 김기범, “다람쥐 없고, 박새 드물고 …… 서울숲에선 사람과 동물 중 누가 우선?”, 「경향신문」 2023년 7월 3일.

3. Michael Sorkin, “Introduction: Variations on a Theme Park”, Variations on a Theme Park: The New American City and the End of Public Space , Michael Sorkin ed., New York: Hill and Wang, 1992, pp.11~15. 

4. ‘그린 펄스(Green Pulse)’외에 ‘케이 뷰티 가든 앤드 파빌리온(K-Beauty Garden & Pavilion)’, ‘도담정원’, ‘다시 태어나는 숲, 재생의 땅’, ‘K-POP 정원: 첩첩’이 산불과 천이를 다루고 있다.

 

임한솔은 서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조경과 건축을 공부한 뒤 역사건축기술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건축과 조경이 나뉘지 않았던 시절, 한국 공간 문화의 역사와 미학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얻어낸 앎을 바탕으로 지금의 공간 문화를 이롭게 하고자 한다. 단행본 『풍경과 다스림』을 썼고, 『한국 조경 50년을 읽는 열다섯 가지 시선』, 『ULC 7 비인간, 도시의 생물들』 등을 함께 썼다. 제15회 심원건축학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