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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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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스케이프] 니키 드 생팔, 타로 정원에서
  • 고정희
  • 환경과조경 2026년 7월호

나의 바보 행진

타로 정원은 원래 채석장이 있던 곳이었으므로, 돌을 깎아내린 절벽과 제법 넓은 터가 중앙의 풍경을 차지했다. 절벽에 기대어 대여사제상이 큰 입을 벌리고 있고 그 입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아래 연못에서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핵심 풍경이다. 이 중앙 광장을 제외하고는 올리브나무가 우점하는 짙은 숲이 언덕을 덮었고 그 사이사이에 형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굽이도는 좁은 산책로를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면 형상이 하나씩 나타난다. 마침내 꼭대기에 올라 광대를 발견했는데 뭔가 좀 이상했다. 온몸에 뱀이 감겨 있고 두 눈은 뻥 뚫린 검은 구멍뿐이다. 오싹했다. 보통 광대 카드와는 전혀 달랐다. 팻말을 보니 광대가 아니라 오라클(신탁)이라고 쓰여 있었다. 등에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입구가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신탁을 받으라는 의미인 듯했으나 기꺼이 포기했다.

 

전체를 다 돌고 난 뒤에도 별 감흥은 없었다.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오색 조각 타일을 입힌 거대한 형상들에 대한 저항감 탓인 듯했다. 오감을 자극하는 건 사실이지만 감성에 울림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니키의 의도처럼 씻김굿을 한 뒤처럼 개운해지지도 않았다. 내 목적은 타로의 서사를 어떻게 풀었는지 살피는 거였고 스물두 개 형상의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내 딴에는 정원의 모든 형상을 빠짐없이 다 보고 사진도 다 찍은 것 같았는데, 결국 광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광대로 착각했던 오라클에 붙은 건 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O라는 기호였다. 숫자 0은 어디에 있을까? 길을 되짚어 내려오면서 다시 확인을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서사를 풀어낸 방식도 숲속에 형상들을 배열한 것에 불과하여 다소 실망이었다. 물론 형상 하나하나는 매우 인상 깊었고 특히 숲속에 깊이 감춰 둔 죽음, 악마, 세상 등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 형상들을 탐험하는 것만으로 영적 깨달음이 온다? 수긍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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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제와 운명의 수레바퀴 Ⓒwikimedia/DustyLosAngeles CC BY-SA 4.0

 

 

집으로 가는 길

숙소로 돌아갈 걱정이 앞섰다.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니 버스는 역시 명목상으로만 존재했다.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직원이 전화통에 매달려 이리저리 전화해 보더니 지금 올 수 있는 택시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 자기가 내 숙소가 있는 동네에 사니 퇴근길에 데려다 주겠단다. 언제나 길은 있는 법이다. 다만 그 직원의 퇴근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No problem(문제없지)!” 야외 카페에 자리 잡고 아페롤 스프리츠를 한 잔 시켰다. 그리고 배낭에서 니키의 전기를 꺼내 타로 정원 조성하던 때의 이야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타로 정원은 니키가 1955년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을 방문하면서 품게 된 오랜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의 주선으로 토스카나에 있는 약 2헥타르 규모의 채석장 부지를 쓸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갔다. 이 무렵 니키는 파트너 장 팅겔리(Jean Tinguely)를 비롯해 여러 기술 협력자와 함께 거대한 조형물을 수차례 완성한 뒤였으므로 기술적 해법을 새로 찾을 필요는 없었다. 니키가 형상들을 스케치한 뒤 작은 모형을 만들면, 장 팅겔리와 여러 협력자가 이를 뻥 튀겨 키운 듯한 철근 구조체를 만들었다. 그 뼈대 위에 철망을 치고 콘크리트를 부은 다음 니키와 수많은 협력자가 거울, 유리, 세라믹 타일을 표면에 부착했다. 특히 세라믹은 조각상의 복잡한 곡면에 맞춰 현장에 설치된 가마에서 특수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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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형상을 한 태양 카드가 둥근 게이트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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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바보로 착각 당한 오라클(신탁) Ⓒ고정희

 

 

* 환경과조경459(2026년 7월호수록본 일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 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