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영 소질이 없어서, 흥미가 별로 없다. 다만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리며 인간의 한계를 도전하는 러너들의 서사는 참 매력적이었다. 에티오피아 선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는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교통사고 때문에 하반신 마비가 왔지만, 절망하지 않고 다른 스포츠 분야에 도전했다. 그는 “다리로는 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두 팔이 있다”라고 말하며 장애인 양궁 선수로 활약하고, 휠체어 눈썰매 크로스컨트리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는 비킬라의 활약을 기점으로 장거리 달리기 분야에서 세계 신기록 보유자를 다수 배출하는 육상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렇다면 에티오피아는 어떻게 최정상 선수를 배출할 수 있었을까. 순전히 선수의 천부적 재능이나 흑인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마라토너 출신 인류학자 마이클 크롤리(Michael Crawley)는 『달리기 인류』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달리기 문화를 면밀히 담아냈다. 저자는 과학과 기술적 담론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대신 열다섯 달 동안 에티오피아 선수 훈련에 직접 참가해 코치, 매니저 등 다양한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훈련 체계와 문화, 달리기를 대하는 선수들의 태도를 조명했다.
특히 훈련 원칙과 방식, 장소가 독특했다. 달리기는 개인적 기량이 중요한 스포츠지만, 그들은 매번 같이 달리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훈련을 추구했다. 선수들은 반듯한 트랙 대신 하이에나가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숲과 언덕, 아스팔트 도로, 해발 3,000m의 고산지대를 누볐다. 코치 지도 아래 지면의 상태, 고도와 기후, 강도와 시간 등을 고려한 체계적 훈련을 받았다. 다른 선수들의 발에 맞춰 리듬과 보폭, 호흡을 조절하며 오랜 시간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룹의 선두 주자는 수신호를 통해 주변의 장애물을 다른 선수에게 전달했다. 지형을 예측할 수 없는 숲길을 지그재그로 누비며 부상 위험을 줄였다. 이처럼 훈련 과정 중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각자 터득한 창의적 훈련법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했다.
작가는 성공적 신화 대신 평범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현실에 주목했다. 1초 차이로 수십 억의 상금을 얻기도 하지만 잃을 수도 있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는 진입조차 쉽지 않았다. 가족의 지원, 시간과 에너지, 매니저와 소속팀이 없다면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워낙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가 많아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건 소수에 불과했다. 무허가 에이전트들이 선수를 속여서 상금을 가로채는 경우도 발생했다. 힘든 훈련과 여건 속에서 같이 꿈을 키웠지만, 트랙을 떠나기도 했다. 작가와 함께 훈련했던 아베레 선수는 달리기를 포기하고 호주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현실과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함께 달리는 훈련 중 개인적 욕심으로 전체 페이스를 깨뜨리는 걸 경계했고, 함께 달리는 동료와 같이 발전하는 걸 소중히 여겼다. 인내와 끈기, 시간과 노력이 많이 요구되는 과정 속에서 각자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지만, 결과 앞에서는 늘 겸허했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해도 좌절하지 않았다. 미처 성취하지 못한 목표를 도전해야 할 한계점으로 생각하고, 다음 훈련과 대회를 계획하며 의지를 다졌다.
목표에 매몰되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그들의 달리기 자체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메달처럼 보였다. 이러한 달리기를 저자는 행로(wayfaring)로 정의했다. 이는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가 주창한 개념으로, 움직임 자체를 중시하고 환경과 더욱 관계 맺으며 ‘행위 속에서 깨닫는 앎’을 형성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들은 달리기를 통해 단순히 목표 달성보다는 진정한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 그 목적은 아마도 삶과 환경, 인간과의 조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조응을 가까이서 지켜본 저자의 삶도 달라졌다. 본국으로 귀국 후 달리기에 몰입하며 새로운 삶의 기쁨을 얻은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달리기가 나의 삶이 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