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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아름다움이 태어난 배경과 의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위대하다
  • 환경과조경 2026년 6월호

오월 말부터 유월 초까지, 잠시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목적지는 스페인의 바로셀로나. 점심 메뉴를 미리 정하는 것도 버거워하는 터라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걱정이었는데, 여행 일정표는 무조건 엑셀로 짜는 친구 덕분에 해결해나가는 중이다. 여러 목적지 중 ‘카탈루냐 음악당’은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살피게 된 곳이다. 가우디의 스승인 건축가 유이스 도메넥 이 몬타네르(Lluis Domenech i Montaner)가 만든 음악당 건물이 아름다워서 눈이 갔다. 건물만 구경하기엔 아쉬워서 플라 멩코 공연도 예매했다.

 

신선했던 건 이 음악당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라는 점이었다. 20세기 초 카탈루냐 민족주의와 모더니즘 예술이 융합해 빚어낸 건물에서 지금도 매일같이 공연이 열린다. 누구나 기둥을 두른 화려한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돔형 천장과 곡선 장식에 둘러싸여 무대를 즐길 수 있다. 과거 이곳이 어떻게 쓰였는지 설명하는 안내판을 둘 필요도 없다. 이로써 카탈루냐 음악당은 “한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의 문화적 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예술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모델”이 된다. “건물은 아름답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태어난 배경과 의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위대하다.”(각주 1)

 

‘보호각’이라는 존재의 정확한 명칭을 잠실역사공원 인터뷰를 진행하며 처음 배웠다. 문화재로 지정된 불상이나 비석 등을 두르고 있던 전각 형태의 건물이 역사적 사료에 입각해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인터뷰 중 서영애 소장이 보여준 보호각 사례 중, 내 여행지이기도 한 스페인의 몰리네테 유적 보호각(Molinete Archaeological Site Shelter)이 궁금해졌다(29쪽). 스페인 카트타헤나(Cartagena)의 몰리네테 공원에 설치된 이 보호각은 고대 로마 도시에서 중심지 역할을 해 온 쿠리아(curia)의 유적을 보호한다. 건물이 밀집한 도시와 야트막한 산 사이에 놓인 보호각은 그야말로 ‘덮개’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산자락이 그리는 선을 고려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언덕 같은 형태다.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모양이 커다랗고 가벼운 종이를 섬세하게 접어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감상이 확 달라진다. 유적이 지면 레벨보다 낮은 곳에 있어, 보호각의 지붕이 지면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높이에 위치한다. 지상의 보행로를 따라 거닐면, 보호각의 지붕과 더불어 그 아래 유적이 모습이 슬며시 엿보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멀리서는 지면에서 둥실 떠올라 자리 잡은 것처럼 느껴지는 보호각을 바로 옆에서 보면 역동적인 각도로 배치된 면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인공 지형처럼 읽게 된다. 보호각의 기둥은 유적 보호를 위해 최소한으로 설치됐다. 바닥으로부터 8m 높이의 공간은 쿠리아의 공간적 윤곽을 다양한 차원에서 재현한다. 구멍을 뚫어 투과성을 갖게 한 강판과 폴리카보네이트 시트로 만든 지붕은 유적 바닥에 햇빛을 끌어들인다. 이로써 보호각은 투명성, 시각적 연결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사라진 공간을 암시하는 캐노피 역할을 하게 된다.

 

인상 깊었던 건 이 보호각 설계의 핵심이 “고대 구조물과 현대 건축을 서로 구별되지만 하나의 유

기체로 융합”시키는 것이라는 아만-카노바스-마루리(Amann-Canovas-Maruri)의 설명이었다. 보호각은 “고대 유적에 대한 존중 위에서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현대적 건축 개입으로 기능한다. 그 결과는 성공적인 혼성(hybridization)이다. 이 보호각은 고대 유적에 의해 정당성을 얻은 현대 건축이며, 현대 건축과 함께 대담하고 긍정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유적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기억과 문화적 맥락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각주 2)

 

유적이 허물어져 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긍정한다면, 그 와중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엄격한 보존’에서 벗어나고 있다면, 결국 중요한 건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확장하고 이어나가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일 테다. 전통을 어설프게 모방한 울타리와 전각, 갑갑한 유리관 속에 갇힌 문화유산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와 현대와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각주 정리

1. 이상훈, “음악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 카탈루냐 음악당”, 「부산일보」 2025년 12월 4일.

2. eumiesawards.com/heritageobject/el-molinetearchaeological-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