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숲에 직접 관리하는 정원을 만든 뒤로 한 달에 두세 번은 그곳을 찾았다. 군마상을 지나 정원으로 가려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서울숲 한가운데의 잔디밭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잔디밭의 사계를 경험했다.
일 년에 한두 번 풀을 베며 관리하는 잔디밭은 족제비쑥, 마디풀처럼 답압에 길든 식물들이 점유한다. 마디풀은 봄부터 가을까지 깨알 같은 꽃을 피우는데 둥지를 갓 벗어난 어린 새들도 찾기 쉬운 먹이다. 용감한 새들은 사람이 가까이 있어도 부지런히 마디풀 주변을 오가며 배를 채운다. 족제비쑥은 차로 즐겨 마시는 캐모마일과 친척이다. 5월 초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만개한 날 비가 오면 잔디밭을 캐모마일 향으로 뒤덮는다. 그 향기가 이 볼품없는 꽃에서 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소풍을 즐기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동안에도 이곳의 생물들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낸다. 인간과 비인간이 각자의 자유로운 의지로 함께하는 세계. 이곳은 교란과 이기 속에서도 공존이 가능하다는 증거다.
이따금 오가는 행사 차량으로 미세하게 움푹 팬 곳이나 배수로 주변에는 빗물이 오래 머물러 봄이 더 빨리 찾아온다. 이곳에는 쌍떡잎식물들이 번성해 잔디가 우점종이 된 다른 곳과 확연히 다른 질감을 드러낸다. 고인 물은 겨울에 쉽게 얼어 눈이 오는 날에는 오묘한 무늬를 남긴다. 계절을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행동은 이 초지에 흥미로운 볼거리를 더한다. 질감, 색상, 서식처를 고려해 배치된 식물이 계절을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누군가의 활동을 통해 관리되는 곳이 정원이라면, 이곳도 충분히 정원이라 부를 수 있다. 무수한 발길로 답압을 더하는 사람, 미세한 지형을 만드는 행사 차량, 유기물을 더하는 강아지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이 이곳의 정원사다. 이 중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오랜 시간을 통해 이곳은 정원이 되었다. 인간이 홀로 단숨에 지어 정원이라 부르는 다른 곳들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이 아름답다.
우리 곁에는 이처럼 아직 정원이라 불리지 못한 이름 없는 곳들이 남아 있다. 조경가는 더 많은 이름 없는 정원을 찾아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전하고 싶다. 당신 또한 한눈에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과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신영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건축학부 조경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조경설계사무소 초신성의 소장이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 것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