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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스러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무의 이주
  • 환경과조경 202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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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면 처리를 위한 좌대에는 두꺼운 무쇠 철판이 사용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와 철판이 한 몸으로 풍화된다. 준공한 지 12년이 지난 올해 초봄, 철판의 녹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봄을 알리는 신초들이 뻗어 나오고 있다. 단단한 철판은 부식되고, 부드러운 가지는 생육하고 번성한다.

 

빗물은 작은 골을 따라 아래쪽 연못으로 모인다. 물이 부족하니 잘 모아야 한다. 나무와 풀은 물이 곧 생명이다. 주변에 큰 나무나 지형이 없기에 햇빛은 충분하다. 바람도 잘 통한다. 북쪽이 높으니 삭풍을 막아 줄 수 있어서 좋다. 메마른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쉽지 않다. 나이 어린 나무도 그럴 것인데, 백 년이 족히 넘은 나무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식이라고 말하면 왠지 어설프다. 이사라고 하자니, 겨우 홀몸을 단출히 옮겨온 상황이라 애잔하다. 여럿이 같이 왔으니 이주라고 해도 되겠다. 아무튼 이 나무들은 이런저런 사정을 안고 군위 사유원 땅에 모였다. 이십 년 가까이 됐다.


작은 골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안착한 나무들은 나름 제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을 피할 수 있어서, 급격히 불어난 빗물에 쓸려가지 않는 위치에 있어서, 새 정착지는 괜찮은 곳이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나무들은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이 참 많았다고. 늙은 몸을 제발 이리저리 더 끌고 다니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몇 해 동안 자리 잡은 그 자리에 그냥 두기로. 나무들이 좋아했다. 그래도 한마디 보탠다. 흙에 쓸려갈지도 몰라, 단단한 기단이 필요해, 요즘 날씨가 심상찮다고, 폭우에 휩쓸리는 것은 최악이 라고. 불룩하고 기울어진 경사면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무가 단단히 제 자리를 잡은 지 열두 해가 지났다. 철은 부식되고 녹이 슨다. 긴 세월을 견디려면 그만큼 두꺼워야 한다. 시간은 단단한 표면마저 갉아먹고 흔적을 남긴다. 나무는 굵어지고, 가지는 무성해진다. 누군가는 매해 잎을 다듬고 열매를 따겠지만, 그때 그 잎, 그때 그 열 매는 아니다. 서서히 변하는 것은 오래 바라봐야 알 수 있다. 

 

철판의 녹이 짙어지고 두꺼워졌다. 멈추지는 않았다. 나무의 나이에 비해 열두 해는 아무것도 아니다. 빗물은 여전히 단단한 철벽을 타고 넘어, 연못으로 흘러든다


박승진은 경관, 도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스튜디오 loci 대표소장이다.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를 거쳐 한국 1세대 조경설계사무소인 서안에서 설계 실무를 했다. 2007년 현재의 사무실을 열어 풀무원 물의 정원, 남해 사우스케이프오너스클럽, 강릉 시마크호텔, 아모레퍼시픽의 기술연구원 및 오산 뷰티캠퍼스,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과 통의동 브릭웰 정원, 대구 미래농원(mrnw), 오목공원(리노베이션) 등을 설계했다. 2018년에 10년의 작업 기록집 『도큐멘테이션』, 2021년에 글모음집 『텍스트_북』을 독립출판물로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