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림, 수박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는 죽기 일주일 전 먹음직스러운 수박을 화폭 가득히 그렸다. 본인의 제사상을 차린 것일까? 그의 작품에 고통과 죽음이 늘 따라다니다 보니 이제는 수박을 보아도 “봉헌화인가?” 짐작해 보게 된다. 이 그림은 늘 말썽이던 오른쪽 다리를 결국 절단한 직후에 탄생했다. 다리뿐 아니라 온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마지막에는 아편과 술 없이는 견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였으므로 아마도 죽음을 결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삶에게, 그리고 팬들에게 작별 선물로 수박을 그려준 것으로 보인다.
중앙에 배치된 통 수박을 중심으로 반 잘린 것, 한 조각 잘려 나간 것 등 여러 단계의 ‘잘림’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육신이 조각조각 잘려나간 단계를 보여준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리고 가장 그림 하단 앞쪽의 붉은 과육에 “인생 만세(Viva la Vida)”라고 크게 썼다. 고통으로 거의 소진된 육체와 달리, 화면 속 수박은 단물이 뚝뚝 흐르는 생의 과일이다. 이 역설이야말로 프리다 칼로의 존재의 농도, 그의 세계를 단 한 장면에 압축해 보여준다.
프리다 칼로의 극적인 삶
프리다 칼로의 극적인 삶과 작품은 널리 알려졌으므로 자세한 소개는 피하려 한다. 여섯 살 때 소 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진 것도 모자라 18세에 끔찍한 버스 사고로 온몸이 문자 그대로 부서지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평생 이어진 통증과 수술, 반복된 유산과 장애의 경험은 자주 ‘고통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로 요약된다. “죽어가며 살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고통의 신음으로만 채워지진 않았다. 파란 벽으로 둘러싸인 카사 아줄(Casa Azul)의 아름다운 집과 정원, 열대의 식물, 돌기둥과 토기, 원숭이, 개와 새들로 풍성한 생명의 공간, 자신의 소우주가 있었다. 프리다는 아버지가 지은 이 집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을 여기서 보냈다. 그 소우주 한가운데서 프리다는 아름답게 치장한 채 병상과 이젤을 오가며, 자신의 몸과 감성을 끝없이 그림으로 변환했다.
육신의 고통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바람둥이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프리다에게 마음의 고통을 수없이 보탰다. 오죽하면 “디에고는 나를 매일매일 죽인다”고 했을까. 프리다와 디에고의 복잡한 관계는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사랑, 집착, 배신, 질투와 동지애가 끝없이 순환하는 복잡한 궤적을 그렸고, 그 감정의 진폭이 프리다의 작품 곳곳에 스며들었다.
1949년에 그린 ‘디에고와 나’라는 그림에서 프리다는 딱 한 번 눈물을 보였다. 육신의 고통은 꼿꼿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대했으나 디에고가 주는 정신적 상처에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 것이다. 프리다의 이마에 새겨진 디에고의 초상은 그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이런 집착과 애증의 관계를 떠나 두 사람은 멕시코 혁명을 공유했다. 이 동지애 또한 끊을 수 없는 강한 연결고리인 듯하다. 프리다는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혁명 이후의 멕시카니다드(Mexicanidad) 시대를 살아간 정치적 존재이기도 했다. 공산당에 가입해 반파시즘과 반제국주의에 열성으로 동조했고 디에고와 함께 노동자와 농민, 토착 문화를 중시하는 좌파적미학을 공유했다. 레프 트로츠키를 비롯한 망명 혁명가, 예술가, 지식인이 드나들던 집 안에서, 정치와 사적인 삶, 예술과 이념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았다.
* 환경과조경 457호(2026년 5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 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