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초능력으로 새로운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나무 번역가가 되고 싶다. 단어와 문장의 고유한 맥락과 뉘앙스를 분석해 언어와 언어 사이의 간격을 정교하게 메우는 번역처럼 나무의 고유한 언어를 우리말로 해석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첫번째 손님은 본가의 밤나무로 하고 싶다. 어려운 시절 동고동락했던 배우를 데뷔작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감독의 심정이라고 할까.
뒷산의 밤나무는 우리집의 소중한 랜드마크였다. 한 세기 이상을 산 고령의 밤나무는 마을 입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고목이라, 밤나무 아랫집이라고 말하면 누구든 쉽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단순한 이정표를 넘어 소소한 행복을 선사했다. 흐드러지게 핀 밤꽃, 마당과 지붕에 살포시 떨어지는 밤송이, 겨울밤 군것질로 제격인 토실토실한 알밤.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우리에게 과실을 내주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밤나무 주변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나면 모든 게 잊혔다. 단순히 나무가 아니라, 말뿐인 위로 대신 처진 등을 조용히 토닥일 줄 아는 세심함을 가진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이 반목하는 이야기보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하는 이야기에 마음이 간다. 최근에 본 영화 ‘침묵의 친구’(2026)는 자연과 교감하는 세 주인공의 서사를 다룬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 식물원에 있는 1832년생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자연과 소통하며 일어나는 변화를 다룬다. 1908년 식물학부 최초의 여학생 그레테, 1972년 식물의 세계에 점점 눈을 뜨는 대학생 하네스, 2020년 은행나무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신경과학자 토니의 서사를 옴니버스 영화처럼 교차하며 감각적인 흑백과 컬러 필름, 디지털 영상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비춘다. 사진사의 조수가 된 그레테는 식물의 단면, 선 등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자연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하네스는 식물 반응 실험에서 자신이 내는 소리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드러내는 제라늄을 통해 식물도 감정이 있다는 걸 배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토니는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연구 분야 대신 식물에 관심을 가지며, 경비원밖에 없는 적막한 캠퍼스에서 직접 은행나무와 교감하는 실험을 통해 자연의 세계에 몰입한다.
세 주인공은 모두 고독한 존재들로 자연을 통해 성장해나간다. 그레테는 남자 교수와 동기들에게 성희롱과 차별을 당하고, 집주인의 오해로 인해 하숙집에서 쫓겨난다. 하네스는 시골 출신이라는 콤플렉스와 함께 대마초와 시위에 열광하는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토니는 자신의 실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비원과 사소한 갈등을 빚는다. 이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건 오직 은행나무뿐이었다. 그들은 은행나무 주변을 배회하고, 은행나무는 넉넉한 그늘로 말없이 그들을 품는다. 자연의 위로를 알게 된 그들은 자연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적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한다. 반목했던 인간과 화해를 하거나, 스스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영원한 신록을 유지할 것 같던 은행나무는 낮과 밤을 거쳐 서서히 노랗게 변해간다. 이 마지막 장면은 자연의 세계에 서서히 물들어가며 성장하는 세 주인공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호 특집은 소멸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풍경을 들여다봤다. 도면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우연과 시간이 만드는 풍경은 소멸의 시학을 보여준다. 시간 속에서 자연은 소멸의 다채로운 서사를 들려준다. 금이 가고, 나무가 죽고, 철판이 녹슬고, 새로운 풀이 자라나고, 벽이 바래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서사였다. 스러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서사의 미학이라고 할까.
특집을 통해 소멸은 서사의 ‘결말’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생명의 순환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래서 조경가가 만드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오현주 소장의 말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탄생과 소멸을 오가며 다시 쓰이는 풍경이 만들어질 것이다(25쪽). 시학이 시를 만들듯 이 풍경은 또 하나의 시가 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다시 쓰이는 시라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