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확률적 정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비효율적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당위성 부여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설계 도구의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뇌와 손 사이의 위계를 재편한다. 이제 디자인은 개인의 직관이라는 블랙박스에서 벗어나, 알고리즘과의 공진화 프로세스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 디자인이 폐쇄적인 창작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생성형 AI와 알고리즘이 결합된 개방적이고 가변적인 프로세스가 되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설계 솔루션이 등장하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디자인 취업 시장의 필수 역량으로 언급되는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이를 새로운 디자인 도구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변화
디자인 프로세스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탐색적 생성’의 보편화에서 발견된다. 이는 1960년대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제시한 ‘아키텍처 머신(Architecture Machine)’ 이론, 즉 기계가 인간의 파트너로서 함께 설계하고 진화한다는 개념의 현대적 실현과 맞닿아 있다. 현재 AI 디자이너는 AI가 제안하는 방대한 가능성의 스펙트럼 속에서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선별자이자 큐레이터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조경처럼 물리적 공간과 생태적 복잡성을 다루는 분야에서 AI는 기후 데이터, 지형적 제약, 사용자 패턴을 실시간으로 연산해 설계의 타당성을 즉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제 디자인은 정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가변적인 데이터를 입력하여 최적의 상태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기하학적 형태의 변주에 집중했다면, AI 시대의 그것은 생태적 변수와 인간의 행태 데이터까지 실시간으로 통합하는 살아 있는 시스템 설계로 진화하고 있다.
실무 측면에서 활용되는 각 도구의 특성이 다르다. 미드저니(Midjourney)와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 어도비의 파이어플라이(Firefly)는 찰나의 영감을 시각화하는 디지털 브레인스토밍의 영역을 담당한다. 반면 테스트핏(TestFit)이나 오토데스크 스페이스메이커(Spacemaker)는 복잡한 법규와 환경 시뮬레이션을 정교하게 조율하며 설계의 기술적 타당성을 담보한다. 라이노의 그래스호퍼(Grasshopper)를 사용하여 3D의 복잡한 비정형 패턴을 효율적으로 생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구들은 완벽한 결과를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초기 단계의 반복적인 단순 작업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며, 디자이너가 더 고차원적인 전략 수립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디자인과 건축 환경 분야에서 이러한 기술과 데이터 활용의 방향성은 현재와 같은 생성형 AI툴의 확산 이전에도 있었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지형과 유동 인구에 최적화된 곡선미를 구현해 왔으며, 패션 산업에서는 소비자의 취향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재고를 최소화하는 수요 기반 디자인을 선보인다. 조경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디자이너의 경험과 직관에 더해 수십 년간의 기후 변화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 100년 후에도 자생 가능한 숲과 정원의 모델을 제안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 환경과조경 456호(2026년 4월호) 수록본 일부
주다영은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국민대학교 AI디자인학과 교수다. 대한UX전문가협회 회장, 한국감성과학회 및 한국HCI학회 부회장, 한국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산업통상부, BMW, 삼성 등의 기술 자문과 산학 과제를 수행했다. 생성형 AI 콘텐츠, 로보틱스, 자율주행차 등 AI와 디지털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며 82건의 특허와 표준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