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지능과 도시설계의 미래
5억4천만 년 전, 지구의 바다에는 수백 미터 아래까지 빛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빛을 인지할 정교한 눈이 존재하지 않던 생태계에 이 세상은 암흑과 다름없었다. 그러다 삼엽충을 비롯한 초기 생물이 시각을 획득하면서 생물종이 급증하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일어났다. 시각은 빛을 수용하는 기관을 넘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다음 행동을 끌어내는 진화의 강력한 방아쇠였다. 이렇듯 시각을 통한 공간 인지는, 무려 5억 년에 걸친 생명체 진화가 빚어낸 생존의 도구다.
페이페이 리(Fei-Fei Li) 스탠퍼드대학교 교수는 이처럼 생태계에서 일어난 지각~행동~진화의 루프를 AI 발전에 포개어 설명한다. 우리는 지금 대규모 언어 모델이 촉발한 ‘디지털 캄브리아기’ 초입에 서 있다. 그러나 진정한 AI의 다음 단계는 언어라는 1차원적 체계를 넘어 3차원의 물리적 현실을 일관된 세계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즉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을 확보할 때 비로소 열린다.
공간지능과 관련한 AI 기술의 미래는 ‘보는 것(seeing)’과 ‘믿고 행동하는 것(believing & doing)’의 결합이다. 즉, 지각, 추론, 행동, 미시 조정, 피드백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지능 세계가 열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AI가 시각적 인지를 바탕으로 물리적 환경의 구조를 파악하고, 미세 센서 및 로보틱스 등 피지컬 AI와 결합하여 직접 현실 세계를 조작하게 된다.
이러한 AI 기반 공간지능의 부상은 도시, 조경, 공간 설계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다. 말 한마디와 일상의 사진 한 장을 탐색 가능한 공간으로 변환하거나, 대화 기반 명령으로 실내외 환경과 자연의 입체적 레이아웃을 수천 장 생성해 내는 기술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다섯 시간 완성, 가상 도시 시뮬레이터
최근 구글 딥마인드의 엔지니어 마이클 창(Michael Chang)이 개발한 도시 형태 생성기 ‘스프롤(Sprawl)’은 이러한 변화의 한 모습이다. 먼저 AI가 땅을 읽고 고도와 수계를 생성하고, 수변 근처 평평한 지대에 생활의 거점을 배치한다. 각 거점으로부터 다양한 유형의 가상 에이전트들이 뻗어나간다. 이들은 직진성, 방향 전환, 수계 회피, 충돌 감지 같은 행동 규칙에 따라 이동하며, 그 경로가 도로나 보행로가 된다. 강을 건너야 할 구간에 교량을 짓고, 폐쇄된 블록은 가로를 내어 격자형 시가지로 바꾼다. 마지막으로 교통 시뮬레이션이 돌아간다. 실제 차량 통행량이 지나치게 높은 경로는 자연스럽게 간선도로로 진화한다. 여기에 제미나이가 허브의 규모, 고도, 방위 정보를 바탕으로 동네와 단지의 이름, 다리 이름까지 지어낸다. 이를 통해 하나의 새로운 도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에서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제작 과정이다. 마이클 창은 이 생성기를 소파에 앉아 주말 단 너덧 시간 만에 완성했다. AI 스튜디오와 제미나이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즉 프롬프트와 대화로 코드를 짜는 방식이 없었다면 몇 달이 걸렸을 작업이다. 전문 도시계획 소프트웨어 도움 없이도, 지형·도로망·교통·지명이 통합된 도시 형태 생성기가 브라우저에서 실시간으로 구동된다. 도시의 형성 원리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도구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선언이다.
* 환경과조경 456호(2026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김세훈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와 공간을 연구하고 있다. 형태, 디자인, 정책, 경제, 상권과 사람들의 관점에서 도시를 탐구하는 학자로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미국 하버드 GSD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스타그램 ‘도시관측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설계연구실(Urban Studies and Design Lab)을 공동 운영하며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 관측소』(책 사람집, 2025),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한숲, 2017)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