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도, 그에 따른 문제의식도 새롭지 않은 시대다. 참신한 학술적 논의에서 심각하고 급박한 문제로, 그리고 많은 현대 조경 프로젝트의 대전제로 발전한 이 문명적 이기의 결과는 수십 년간 과학자와 설계가들 모두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1980년대 기후 변화가 범지구적 위기로 다가오기 훨씬 전부터 환경과 오염을 다루어 온 조경은 기후 변화와 그 부작용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분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경과 정치라는 장벽에 막혀 기후 변화에 대한 전력을 다하는 데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는 점은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이를 전제로 경관을 가꾸기 위해 사고의 전복, 관점의 변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런 차원에서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이하 하버드 GSD)의 전시 ‘산수 설계자: 기후 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Designers of Mountain and Water: Alternative Landscapes for a Changing Climate)’와 연계 행사는 사각을 주목해 관점의 전환을 불러들이는 전략·전술적 기회다. 이 기회를 만들어내는 주요 개념은 동양 자연 철학의 정수인 ‘산수(山水)’인데, 이번 전시는 ‘산수’를 초월적 개념으로 다룸으로써 아시아 대륙의 다양성을 펼쳐내는 한편 아시아의 현시대 조경 작품을 통해 우리가 기후 변화를 대하는 관점의 근본적 재구성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58개 프로젝트, 13개 생태 지역
전시와 연계 행사를 기획하고 이끈 김정윤 교수(하버드 대학교 GSD, 오피스박김 대표)는 아시아에서 설계하고 조성하고 있는 조경 프로젝트를 종합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과정이자 방법으로서 이를 소개하기 위한 개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한다. 아시아의 현대 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윤 교수는 “설계가가 부지, 즉 산과 물에 어떤 반응을 할 때, 이 반응이 물질화된 것을 조경으로 보고자 한다”며 아시아 각 국가의 정치, 경제적 근대화와 더불어 성장한 조경의 맥락을 벗어나 현재의 아시아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으로 ‘산수’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시 기획의 시작점으로서 “하나의 지구 생태권 프레임워크(One Earth Bioregions Framework)”에서 참고한 ‘생태권(bioregion)’ 개념을 적용해 185개 생태권 중 ‘아시아’로 알고 있는 지역의 프로젝트를 탐구하는데, 이 비-역사적 관점은 아시아를 국경과 정치적 잣대로 구분하는 것 대신 문명의 역사와 문화에 더해 지리학, 지질학, 기후, 생태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이때 문화적 공통성의 기준점이 되는 지표는 ‘쌀’이다. 이를 바탕으로 작물로서 쌀을 재배하는 13개의 생태권에 위치한 현대 조경 프로젝트 58개 프로젝트를 전시하게 됐다.
이 전시 기획의 기능은 명확하다. 생태권이라는 기준 은 국가 간 경계가 만들어내는 신화적 구분을 없애고 생태적 얽힘을 강조하는 한편, 국가로 얽매인 땅덩어 리를 풀어내고 그 속의 생태적 다양성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두 개의 다른 생태권에 속한다. 러시아와 만주 일대에서 한반도를 따라 내려오는 태백산맥은 만주리아-우수리 혼성림과 목초 스텝 지대(Manchuria-Ussuri Mixed Forests & Meadow Steppes, PA46 생태권)에 속하는 반면, 나머지 지역은 한반도 혼성림(Korean Peninsula Mixed Forests, PA48 생태권)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반도 혼성림을 대표하는 사례로 소개된 사유원, 대구 수성못 수상공연장,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양화 한강공원 역시 한국의 사례가 아닌 해당 생태권 에 속한 도시에 있는 사례로 소개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아닌, 한반도 혼성림이라는 생태권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태권을 기준으로 재구성된 아시아는 조금 생 소하다. 재구성된 생태권으로 맵핑되어 벽에 표현된 지 형 단면도는 5㎞ 간격을 두고 1:5,000,000 스케일로 10배 수직 과장 처리되었으며, 국가 간 경계가 모두 삭제된 채 전시에 포함된 프로젝트가 위치한 도시가 점 적으로 표시되었을 뿐이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이 탈정보성 지형도는 혹자를 지리적 혼란으로 밀어 넣은 후 새로운 아시아의 모습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겸재 정선의 예술적 정신을 보여주는 영상 작품 2점 도 함께 전시되어 예술을 통해 인간의 시점에서 자연 을 이해하는 기전으로서 전승된 ‘산수’ 개념을 드러내 기도 하는 등, 보다 통합적인 차원에서 ‘산수’의 철학을 살펴보고 현대적 지평을 아낌없이 그려냈다는 데 전시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학술과 설계의 교차점에서 산과 물의 소리를 듣기
연계 행사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는 산수를 다루고 연구하는 중국,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호주와 미국의 조경 설계가와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 였다. 전체 프로그램 기획자인 김정윤 교수, 하버드대학교 인류학 석좌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 소장인 니콜 라스 하크니스Nicholas Harkness와 카오 야이 아트 포 레스트(Khao Yai Art Forest)의 마리사 치아라바농(Marisa Chearavanont)은 조경을 이해하기 위한 산수에 관한 견해를 공유했으며, 이튿날에는 13명의 전문가와 4명의 사회자가 산수를 중심으로 다차원적 논의를 이어 나갔다. 주제에 관한 통합적인 관점을 공유한 첫 번째 세션인 ‘자연의 문화들(Cultures of Nature)’에 이어 두 번 째 세션인 ‘산수의 작업(The Work of Mountain and Water)’ 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조경을 이해하기 위 한 밑거름을, 세 번째인 ‘지속가능성의 미학(Aesthetics of Sustainability)’은 지속가능성이 조경의 필수 조건이자 기 본적인 소양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문화적 주체로서 조경이 추구하고 계속해서 수행해야 할 경험과 미학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마지막 세션인 ‘산수를 넘어(Beyond Sansu, Sansui, Shanshui)’에서는 문화적 공통성을 지닌 한국, 중국, 일본의 조경설계 실무자들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을 공유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공동 기획자인 니콜라스 하크니스는 자신의 인류학적 연구와 조경의 공통점으로서 무리한 변화를 피하고 있는 그대로와 변화 가능한 것 사이를 조율하는 태도를 꼽았다. 그는 조경이 형태와 내용만큼이나 맥락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 변화하는 지구를 기준으로 변화와 역동을 설계의 한 축으로 삼는다는 점, 극한의 조건을 설계로 조정하는 기술이라는 점, 기후 위기에서 더욱 중요성이 커진다는 점을 설명하며 조경이 지닌 문화적 깊이가 주요한 가치로 등장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의 ‘산수’적 태도
키노트 스피커인 태국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와 방콕 쿤스트할(Bangkok Kunsthalle)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마 리사 치아라바농은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의 사례를 통해 산, 물, 인간의 초월적 조우가 예술의 표현적이고 회복적인 잠재력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공유했다. 특히 어렸을 적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산수의 관점에서 경관이란 생명이 피어나는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하며 살아 있는 경관이자 숲으로서 예술 경관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는 황폐화된 120에이커의 공간을 실제 예술 작업을 통해 복원한 공간으로, 경관을 설계하는 대신 경관과 인간을 화해시키고 조화시키는 방식을 전략적으로 택했다. 무엇보다 이곳의 예술 작품은 ‘설치’가 아닌 ‘조성’되는 것이자 ‘자라나는’ 것이라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 예시로 일본 작가 후지코 나카 야(Fujiko Nakaya)의 작품, ‘안개의 숲(Fog Forest)’을 들 수 있 다. 약 1년 반에 걸쳐 지형을 살피고 안개의 흐름을 관 찰하며 조심스럽게 조성된 이 작품은 타피오카 재배지 를 자연 복원시키며 시간을 통해 경관을 조성한 사례로, ‘산수’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산수화’로 변모시킨다. 마지막으로 치아라바농 회장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카오 야이 아트 포레스트의 산수관을 전한다. 1. 산은 어디 있는가? 당신의 설계에 균형을 가져오는 것 은 무엇인가. 2. 물은 어디 있는가. 변화하는 기술, 인공 지능의 시대에 당신은 흐름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3.안개는 어디 있는가. 주어진 경관에서 보이지 않는 것, 겸손함과 공감, 상상력과 같은 것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산과 물의 설계가들에게 바치는 찬가
이번 전시에서 ‘산수’란 경관을 이루는 기초 요소이자 조경 분야의 오랜 과제이자 창의적인 대안을 발현시키 는 도전적 임계점으로 작동했다. 또한 앞서 김정윤 교수는 전시 설명에서 ‘산수’가 오피스박김의 프로젝트에서 설계 전략으로 발휘되었음을 설명하며 아시아의 경관과 조경 실무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프레임워크로서 ‘산수’의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산수’적 관점은 지구와 인간을 연결하는 초월적 작업의 시작점인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와 맥락을 갖추게 된 ‘산수’적 관점과 이를 바탕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동서양의 조경가와 연구자들에 한껏 기대가 차오른다.
신명진은 뉴욕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경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친 도시 연구자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최근 옴스테드의 기록을 담은 편역서 『공원의 탄생』을 썼으며, 갤러리와 미술관을 오가며 온갖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jin.everywhe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