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은 무엇을 다뤄왔는가
어떤 지역이나 공간을 제일 잘 알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가령, 서울대입구역을 잘 파악하는 것이 과제라고 해보자.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관련 자료를 풍부하게 찾아서 읽는 것일 테다. 특히 요즘은 지형부터 인구, 주위 가로수의 배치까지 인터넷에서 찾지 못할 자료가 없다. 직접 가지 않고도 온라인 지도의 도로뷰를 통해 대략의 ‘답사’도 다녀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직접 가서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이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어떤 곳에 모여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다양한 지점을, 다양한 시간대에 방문할수록 더욱 좋고 말이다.
조경인에게 이런 조사와 답사의 과정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설계, 연구, 창작 등 각자의 방식을 통해 도시와 공간을 다루는 우리는, 이런 조사와 답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내고 경험한다. 이 작업들은 ‘사이트 분석’이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불리며, 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관습적으로 거치는 단순한 초기 단계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거의 모든 작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같은 공간도 각자의 관점과 렌즈로 다양하게 읽어내고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도시와 공간을 바꾸거나 이에 개입하기 전의 분석 과정은 단순히 많은 정보와 자료를 모으는 것을 넘어, 현장을 스스로의 방식대로 감각하고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작업이다.
가장 기초적인 방식의 사이트 분석이 어떠한지 떠올려보자. 학부 스튜디오 수업에서 1, 2주차에 차근차근 했던 분석 말이다. 대상지가 정해지고 나면 가장 우선적으로 입지, 지형, 조망, 용도 지역, 도로, 대중교통, 지가, 거주 인구 및 분포, 시간대별 유동 인구, 생활권과 상권, 주위 건물 및 산업 시설과 문화 시설, 녹지와 가로수 분포, 역사에 대한 정보를 모을 것이다. 이렇게 대략적인 윤곽을 잡고 난 뒤, 대상지를 직접 방문해 그중에서도 더 눈에 들어오는 요소나 기능, 장소, 분위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 정보들을 잘 정리해서 맵핑하고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해 발표하고 나면 분석의 단계는 일단 마무리된다. 우리는 수업과 현장에서 이런 분석과 공유의 과정을 거치며 공간을 읽고 표현하는 방식을 익혀 왔다. 즉 개인마다 도출하는 결과는 다르더라도, 도시와 공간에서 다루는 요소들과 이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전형이 있는 것이다.
이 전형적인 조경은 인간의 언어로 쓰여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 사고 체계에서 도시는 인간이 이동하는 동선, 인간의 눈에 미적인 경관, 인간이 활용하는 토지와 건물로 구성된다. 이 연재는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이 체계에서 도시의 비인간은 어떻게 포착되어 왔나?”
조경과 비인간 생물들
도시는 흔히 인간이 모여 살며 만든 가장 인간적인 곳, 반대로 말하자면 가장 자연과 반대되는 곳 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간이 아닌 많은 생물이 이 땅에서 살고 있었고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익숙한 비둘기나 길고양이부터, 벌, 모기, 파리, 길가의 화 초와 곰팡이까지, 우리는 매일 도시에서 인간 아닌 것들과 마주치고 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기 도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인간의 것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 비인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 의 공간을 만들며 성장하고 이동하고 생장하고 소멸한다.
도시가 얼마나 비인간(non-human) 생물들로 넘쳐나는지 짚어내지 않더라도, 조경은 항상 비인간 과 관계 맺어왔다. 너무 당연하게도 말이다. 다양한 수목과 화초를 중심 소재로 활용했고, 잡초와 해충 등 특정 비인간은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공원의 일환으로 조성된 덤불숲을 따라 새들이 이 동했고, 공사를 위해 흙을 옮기며 그 속의 수많은 미생물도 함께 옮겨졌다. ‘북미 조경의 아버지’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의 경관 연출과 잔디 관리를 위해 양떼를 풀어두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수많은 질문이 다시 따른다. 조경은 언제나 비인간 생물들을 다뤄왔지만, 우리는 이들 을 어떻게 생각하고 감각했는가? 식물을 얼마나 생명체로, 하나의 주체처럼 생각했는가? 정원과 공원, 도시를 이용하는 인간 아닌 생물들을 생각했는가?
나무는 수종과 수량으로, 잔디는 면적으로, 생태는 지표로 자연스럽게 환산해 표기하는 지금. 이 연재는 그 익숙한 환산 방식 바깥에서 도시와 조경 속 비인간 존재들을 다시 포착하려는 시도다. 반대로, 비인간에 대한 주목을 통해 도시와 공간, 조경을 다시 읽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비인간을 중심에 놓는 조경의 시도들
사실, 이런 시도는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비인간을 통해 조경을 새롭게 실천하고 읽으려는 움직 임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설계 영역에서 비인간 생물의 행위성에 주목하는 프로젝트 실천들이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를 들자면, 스케이프(SCAPE) 스튜디오는 뉴욕의 해수면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굴, 홍합, 해초를 활용한 구조체인 오이스터텍처(oyster-tecture)를 제시한다. 이 설계에서 굴, 홍합, 해초는 단순한 형태적 요소가 아니다. 이들은 자연적 여과 작용을 통해 해안선 침식을 늦추고 항구의 물을 정화하는 핵심적 행위자로 위치한다.
독일 조경가 토마스 하우크(Thomas E. Hauck)와 생물학자 볼프강 바이서(Wolfgang Weisser)는 ‘동물 친화적 설계AAD(Animal-Aided Design)’라는 개념을 함께 제시하며 대상지의 주요 동물의 필요를 고려한 공존적 설계를 도입한다. 가령, 독일 뮌헨의 브란츠트라세(Brantstrasse) 프로젝트에서는 유럽 고슴도치, 유라시아 청딱따구리, 유럽집박쥐와 집참새의 생애 주기에 따른 공간적 필요를 반영해 주거 단지 곳곳에 작은 구조물을 추가로 마련했다. 이외에도 비인간을 주요 이용자로 상정하거나, 이들과 인간의 공존을 고려한 설계 프로젝트들이 다수 존재한다.(각주 1)
이런 실천의 흐름을 보다 이론적인 관점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조경학과가 발행하는 저널 『LA+』의 14호 ‘크리처creature(생명체)’는 비인간 종을 클라이언트로 삼 는 가상의 공모 형식을 빌려 그 수상작을 소개한다. 투구게와 인간이 동등한 계약 당사자로 등장 하는 설계(각주 2) 와 미국뱀장어의 허드슨 강 이동 경로를 복구하는 설계(각주 3) 등 다양한 종의 필요를 인간 의 언어와 디자인으로 풀어낸 설계 작품이 실려 있다(『환경과조경』 2021년 2월호 참고). 이 공모는 인간이 아닌 생물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 삶을 개선하는 장소나 시스템을 설계하도록 요청했다는 점에서, 비인간을 조경 프로젝트의 주체로 전환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각 프로젝트의 소개와 함께 조경에서 비인간 생물을 포괄해야 하는 사회적 맥락을 다룬 글을 나란히 실었다는 점에서, 실천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논의를 함께 다루려는 기획이기도 하다.
『LA+』가 실천과 이론을 동시에 다루려 했다면, 케반 클로스터윌(Kevan Klosterwill)은 논문을 통해 좀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경과 동물의 관계를 추적한다. 전통적인 영국식 정원의 경관까지 거 슬러 올라가며, 그는 경관‧조경과 관련된 과거 문헌에서 어떤 종이 언급되는지, 이들이 어떤 사회 적‧공간적 맥락과 연결되는지 탐구한다. 역사적 전통부터 현대의 실천까지 동물이 계속해서 조 경과 연관되어 등장했음을 제시하면서, 동물을 단순한 설계 요소나 보전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에 함의된 철학적 논의까지 확장하는 현대 조경 이론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각주 4)
이처럼 조경 안에서 비인간을 다시 보려는 시도들은 실천과 이론 양쪽에서 조금씩 축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 질문은 조경만의 것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지리학과 인문학 전반에서도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사유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려는 보다 광범위한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인간-너머의(more-than-human) 지리학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균류와 미생물, 기후와 물질까지도 도시와 사회 를 구성하는 공동 제작자로 간주하며 이들과 인간의 관계망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에서 중요한 배경이 되는 것이 바로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고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를 포괄하는 ‘인 류세(Anthropocene)’ 개념이다.(각주 5) 인류세는 단순히 인간이 지구 환경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지질학 적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를 끊임없이 변형시켜온 얽힘의 역사를 가리키며, 역설적으로 인간 중심적 사유 자체를 되묻게 만드는 개념이기도 하다. 도시는 그 얽힘이 가장 밀 도 높게 응축된 장소다.
조경 내에서도 이런 더 큰 흐름의 맥락에서 조경, 도시, 설계에 대해 논하는 저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안 맥하그(Ian McHarg)의 저서 『디자인 위드 네이처(Design with Nature)』 출간 50주년을 기념해 2019년 출판된 『디자인 위드 네이처 나우(Design with Nature Now)』는 생물 다양성과 다종, 멸종 위기 를 주제로 한 챕터들을 포함하며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각주 6) 2023년 출판된 『랜드스케이프 프로젝트(The Landscape Project)』에서 리처드 웰러(Richard Weller)는 ‘동물(animals)’이라는 챕터를 통해 인 류세와 인간 예외주의, 동물을 둘러싼 인류학과 지리학, 문학과 예술의 논의를 폭넓게 소개한다.(각주 7) 이어서 그는 앞서 언급한 클로스터윌의 논문과 『LA+』의 공모전을 함께 엮으며 설계와 동물의 관계를 분류해 제시하면서, 인류세와 생물 다양성 위기 앞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처럼 비인간을 사유의 중심에 놓으려는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조경 안팎에서 꾸준히 축적되어왔고, 앞으로도 더 필요하다. 다만 이 연재가 주목하는 것은 조경 담론 내부의 목소리만 이 아니다. 도시와 공간 전체를 비인간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는 연습, 그 출발점을 찾는 것이 이 연재의 지향점이다.
그러기 위해: 도시를 읽고 감각하는 방법
그 연습의 출발점은 도시를 읽고 감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경이 도시를 인간의 도면과 지표로 환산해왔다면, 비인간의 시선으로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다. 망원경으로, 카메라로, 호미로, 걸어서, 문헌을 뒤져가며. 도시의 보행로, 공원, 하 천, 캠퍼스, 다리는 비인간에게 거주지이자 이동 경로이자 때로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그것을 읽 어내는 일은, 익숙한 도시를 전혀 다른 눈으로 다시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연재는 비인간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보지만, 비인간 그 자체보다는 새로운 감각 의 도구인 ‘방법’과 이를 통해 새롭게 본 도시의 ‘장소’에 주목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도시의 비인간을 만나온 설계가, 연구자, 활동가, 탐조인, 농부, 시민의 시선에서 도시의 구체적인 장소들을 소개하고, 그 장소를 그렇게 감각하고 읽어내는 방식을 소개한다.
이렇게 기존의 공식과 수사로 재현되지 못한 도시의 모습을 포착하고,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독해하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새로운 글을 하나씩 읽어가며 도시에서 활동하는 조경가와 실천가, 그리고 도시를 살아가는 독자들이 익숙하다고 믿어온 장소들을 다시 관찰하고 읽어낼 수 있도록 이 연재 프로젝트가 이를 위한 감각을 하나씩 깨우는 작은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각주정리
1. MoMA, Built Ecologies: Architecture and Environment (video series), 2022~2024; Camilla Ghisleni, “Architecture as Collaboration Between Human and Non-Human Species”, ArchDaily , January 12, 2023; Olivia Poston, “Architecture Beyond Humanity: Designing for Non- Human Species”, ArchDaily , September 1, 2024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
2. Tatum Hands and Richard Weller eds., LA+ Ceature ,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Stuart Weitzman
School of Design, 2021, pp.26~31.
3. 위의 책, pp.44~49.
4. Kevan Klosterwill, “The Shifting Position of Animals in Landscape Theory”, Landscape Journal 38(1/2), 2020, pp.129~146.
5. 인류세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대 초 제안한 개념으로, 인간의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지질 학적 수준의 변화를 초래한 새로운 지질 시대를 가리킨다. 지질학계에서의 공식 지질 시대로 결정하는 것은 부결됐지만, 자연과학 을 넘어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 인간과 비인간·환경·행성의 관계를 재사유하는 개념적 틀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6. Ursula Heise, “Mapping Urban Nature and Multispecies Storyworlds” and Nina-Marie Lister, “Design on the Edge”, Design with Nature Now , Cambridge: Lincoln Institute of Land Policy, 2019.
7. Richard J. Weller, “Animals”, The Landscape Project , San Francisco: Applied Research & Design, 2023.
조담빈은 도시에 쌓인 겹을 읽어내는 데 관심이 많은 연구자다. 조경과 환경사, 사회학의 경계에서 도시 개발사와 비인간을 둘러싼 맥락, 권력, 서사를 들여다본다. 도시 개발의 역사에 주목해오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집 밖의 크고 작은 존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조지아공과 대학 과학기술사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