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월간 에코스케이프

월간 에코스케이프
[우먼스케이프] 조지아 오키프, 열한 개의 하늘과 달항아리
  • 고정희
  • 환경과조경 2026년 4월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e)(1887~1986)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1993년 봄이었다. 그해 5월에 베를린 마르틴-그로피우스바우미술관에서 미국 현대 미술 전시가 열렸는데, 조지아 오키프가 그 간판 역할을 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전시회를 기억하는 것은 그때 조지아 오키프라는 화가의 이름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거리에 붙어 있던 숱한 포스터의 반을 차지했던 선홍색 양귀비 꽃, 전시회에서 거대한 캔버스에 수십 배로 확대된 투명한 선홍색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잊을 수 없는 그림이다.

 

wo2ap02.jpg
조지아 오키프 1918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사진 ⒸPublic Domain

 

 

미국 현대 미술-원죄 없는 잉태, 혹은 단성 생식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에서 살아생전 이미 전설이었고 사후에는 국가적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993년에 베를린과 런던에서 동시에 열린 전시를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 조지아 오키프

가 세상을 떠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유럽은 “모든 문화의 중심은 유럽이다. 미국의 예술은 일천하다”라는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미국 근현대 미술을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미국 미술이 유럽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현대성을 확립했음을 인정했고 그 과정을 ‘원죄 없는 잉태’ 혹은 ‘단성 생식’으로 묘사했다. 오키프를 미국적 풍경과 도시 경험에 뿌리를 둔 유기적 추상화의 선구자로 평가했다. 그의 작품집과 전기도 출판됐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유럽 여러 도시에서 조지아 오키프 회고전이 열렸으나 지금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거의 없다. 큐레이터들이 정신을 차리고 수집하려 했을 때 오키프의 작품은 너무 비쌌다. 예를 들어 201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오키프가 1932년에 그린 ‘독말풀/흰 꽃(Jimson Weed/White Flower No. 1)’이 약 5백억 원에 판매됐다. 역대 미술 시장에서 여성 작가 최고 낙찰가였다.

 

지난번 런던 여행에서 오키프의 작품을 보려다가 허탕을 쳤다. 몇 점 정도는 걸려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의 작품은 어디에도 없었다. 개인 소장은 꽤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지아 오키프에게는 아직도 “미국 화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 자신도 유럽 예술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65세에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다. 오키프의 작품 세계가 정립될 무렵인 20대에 뉴욕에서 본 로댕의 드로잉, 칸딘스키의 이론서 등이 그의 화풍을 개척하는데 힘이 되기는 했지만, 오키프의 작품은 순전히 미국의 자연과 풍경에서 ‘원죄 없는 잉태’로 탄생했다.

 

환경과조경 456(2026년 4월호수록본 일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 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