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월간 에코스케이프

월간 에코스케이프
[기웃거리는 편집자] 인간적 풍경을 위한 오리지널리티
  • 환경과조경 2026년 4월호

대학생 시절, 영화감독을 꿈꿀 만큼 영화를 참 좋아했다. 현실과 재능의 벽 때문에 꿈을 포기했지만, 당시 영화는 내게 소소한 낙이었다. 특히 알바를 마치고 근처 영화관에서 심야 영화를 보는 게 루틴 중 하나였다. 한두 명밖에 없는 조용한 상영관에서 온전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SF, 로맨틱 코미디, 다큐멘터리 등 온갖 장르의 영화를 봤다. 다만 괴수 영화는 도저히 정이 가지 않더라. 신체의 일부가 요상하게 비틀린 형태의 생명체가 인간을 추격하거나, 피를 물처럼 마시는 등 불완전한 존재의 비정상적인 행위가 주는 공포 때문에 영화의 서사에 좀처럼 몰입을 하지 못했다.

 

괴수 영화를 평생 안 보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한 인터뷰 때문에 마음이 변했다. 괴수 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이하 기예르모)는 괴수를 다루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에 더 눈이 간다”는 말과 함께 현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완벽하지 않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투영한 존재로서 괴수를 바라본다고 했다.(각주 1) 불완전한 괴물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함을 조명하는 그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인 주제에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 단순히 징그럽다는 이유로 존재의 가치에 대해 온전히 들여다보지 않고, 피상적으로 접근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래서 영화 ‘프랑켄슈타인’(2025)에 괜히 눈길이갔다. 이미 여러 창작물에서 숱하게 다뤘던 이 괴물을 그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궁금했다. 영화는 괴짜인 천재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하빅터)이 전쟁 후 방치된 시체를 가지고 불멸의 생명체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빅터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괴물을 증오하며 서서히 괴물처럼 변해간다. 반대로 괴물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전반부는 프랑켄슈타인의 시선으로, 후반부는 그가 만든 괴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교차되는 시선을 통해 ‘괴물로 타락한 인간’과 ‘인간이 되려는 괴물’의 아이러니한 대비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불완전한 존재들을 통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진정한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빅터는 아버지의 몰인정, 주류 학자들의 냉소와 모멸,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이 남긴 상처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사회적 인정과 관심을 갈급하며 괴물을 만들었지만, 끝내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괴물은 빅터 때문에 인간을 증오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인 맹인 할아버지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며 인간의 삶과 세상을 배운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괴물은 빅터를 용서한다. 빅터 역시 잘못을 뉘우치며 괴물을 아들로 인정하며 삶을 마감한다. 이를 통해 용서의 가치를 강조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이번 호에서는 21세기에 등장한 괴물 ‘인공지능’을 특집으로 다뤘다. AI를 향한 시선은 양가적이다. 노동의 종말과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공포와 인류의 새로운 진보를 가져다 줄 방주라는 시각이 공존한다. 특집의 필자들도 이점을 주목하며, AI 자체의 문제보다는 이를 다루는 인간의 태도와 판단력을 강조한다. 특히 설계의 핵심은 결과물의 형상이 아니라 질문을 설정하는 능력에 있고(32쪽), 설계 교육에서는 단순히 설계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인공지능을 설계 사고를 확장하는 파트너로 이해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41쪽). 

 

AI와의 공존이 불가피한 이 시대에 조경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는 “영화의 관점이 명확하고 개인적일수록 그 영화의 예술성이 높아진다”라고 했다.(각주 2) 이처럼 누구나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고유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가 인공지능 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조경가의 덕목이 된다면 어떨까. 설령 그것이 불완전할지라도, AI가 구현할 수 없는 인간적인 풍경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빅터와 괴물이 용서를 통해 인간적인 해피엔딩을 마주한 것처럼.


**각주 정리

1. 이해리, “‘판의 미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왜 크리처에 집중하나 “우리 삶은 고통””, 「맥스무비」 2025년 09월 22일.

2. 로랑 티라르, 『거장의 노트를 훔치다』, 나비장책,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