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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메덩골 한국정원
Korean Gardens in Les Jardins de Médongaule
  • 조경디자인 린
  • 환경과조경 202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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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설계한다는 것


정원을 설계한다는 것은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형이 품어온 시간, 흙의 결, 물길의 기억,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물러온 사람들의 흔적을 읽어내는 일이다. 처음 이 땅을 걸었을 때, 이 정원은 조형이나 프로그램을 먼저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땅과 설계자가 오랜 대화를 나누며 생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첫 만남에서 오너는 “10년을 준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단순한 의지를 넘어 한국 정원의 잃어버린 정신을 복원하고자 하는 긴 시간의 누적으로 읽혔다. 메덩골의 한국정원은 그 오랜 열망 위에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정신을 함께 심어가는 정원 실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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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 흐름 위에서

정원의 이야기를 짓다


메덩골의 땅은 낮은 구릉과 습지, 나대지가 뒤섞인 형태로, 뚜렷한 골짜기나 정원의 골격을 곧바로 읽어내기 어려운 장소였다. 그러나 초기 설계를 맡았던 안계동 대표(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가 지형 속 희미한 수분 흐름을 포착해내며 ‘메덩내’로 이어지는 골짜기 축을 설정한 것이 이 정원의 첫 질서가 되었다. 자연이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던 흐름을 지형이 간직하고 있던 미세한 단서로부터 읽어낸 발견이었다. 이 축은 메덩골 한국정원 전체의 배치를 이끄는 결정적인 기준선이 되었다.

 

또한 정원을 관통하는 세 줄기, 즉 ‘민초들의 삶’, ‘선비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서사는 이 정원의 오너가 오랜 시간 고심해 마련한 주제의 골격이었다. 나는 설계자이자 시공자로서 그 서사 위에 공간의 구조와 경험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일을 맡았다. 이 땅은 과거의 흔적보다 미래의 정원이 어떻게 구성될지를 묻는 땅이었고, 오너가 제시한 이야기와 안계동 대표가 발견한 흐름은 정원을 구체화할 방향과 논리를 제공했다. 그래서 이 땅을 접한 나의 초기 질문은 “무엇을 드러낼까?”가 아니라 “이 땅에 그 흐름과 서사가 놓일 자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였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골짜기가 아니라 초기 설계자가 새로 그은 질서, 오랜 흔적이 아니라 새롭게 부여된 서사가 먼저 존재했고, 나는 그 둘을 정원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메덩골의 대지는 ‘읽어내는 대상’이기보다 발견된 흐름 위에 새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빈 그릇 같은 존재였다. 자연의 질서를 재현하기보다 그 질서가 잠재적으로 품고 있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형상화하는 일, 이것이 메덩골 한국정원 조성의 핵심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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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원 중심부의 남도돌담길과 파청헌, 고샅, 청유원, 재예당마당

 

 

세 갈래

서사의 구조화


메덩골 한국정원의 전체 마스터플랜은 한국인의 정서와 미학을 세 갈래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첫째 서사인 ‘민초들의 삶’은 한국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집단적 기억을 풍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이었다. 언덕 양쪽에 진달래, 살구, 개복숭아가 차례로 피어나도록 식재 시퀀스를 설계한 것은, 국민 동요 ‘고향의 봄’이라는 온 국민이 한 번쯤 불러 보았고 가슴에 박제된 정서를 공간적 경험으로 되살리기 위함이었다. 단순한 식재를 넘어 한국인의 DNA 속에 잠재된 감각을 깨우는 장치였다. 현장에서 나온 자연석을 사용해 쌓은 ‘남도돌담길’ 역시 풍경 장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되살리는 과정이었다. 영화 ‘서편제’에서 청산도 돌담길을 따라 인물들이 내려오던 장면은, 삶의 비애와 아름다움이 동시에 흐르는 풍경이었다. 그 기억은 이곳에서 ‘농부가 쌓은 것 같은’ 돌담을 요청하게 만든 감각의 근원이 되었다. 돌담은 여러 차례 허물고 다시 쌓아야 했다. 민초들의 생활의 기저가 되는 밭과 논의 풍경이 정원이 되는, 기술보다 삶의 감각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돌담길 옆의 ‘빨래터’는 사라진 생활 문화를 복원해 공동체의 숨결을 정원 속에 다시 놓는 장치가 되었다.

 

둘째 서사인 ‘선비의 풍류’는 멋이 아니라 태도였다. 자연과 합일하려는 삶의 방식이며, 비움으로 충만함을 만드는 미학이다. 한옥, 담장, 연못의 시공은 강회, 황토, 목재, 자연석만을 사용하는 전통 공법으로 진행되었다. 시멘트를 쓰지 않는 원칙은 더 많은 시간과 손길을 요구했지만, 그만큼 세월의 질감을 정원에 심어주었다. 함소연(우주의 모든 생물이 소생한다)은 유상곡수의 전통을 담아낸 강진의 백운동 원림의 연못에서 차용해 파청헌(푸르름을 잡는 집)과 함께 확장한 공간이고, 청유원(선비의 맑은 정신과 그윽한 정취가 있는 정원)은 계절마다 꽃과 기화요초가 열리는 선비의 정원을 재해석한 장소다. 고샅은 메덩골의 설계 태도를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곳의 소나무는 길과 담장을 계획할 때 장애물이 아니라 먼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주체로 의미를 부여한다. 담장은 나무의 생육을 존중하며 선형을 비켜 흐르게 했고, 그 과정은 자연을 우선하고 담장과 길이 그 흐름을 따르는 전통적 고샅의 한국적 공간성을 되살린 선택이었다. 물고기 바위(원주암)와 마당을 바라보는 방향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예술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예술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재예당이라 이름 붙였다. 그 마당 중앙의 원주암은 비어 있는 공간이 어떻게 충만함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치다. 한국정원 내 모든 한식 문의 이름과 정자의 주련은 조선 초 태조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향토 풍류 시인 운곡 원천석(1330~미상)의 시에서 가져왔다. 한편, 프랑스 정원가 기욤 고스 드 고르(Guillaume Gosse de Gorre)가 설계한 무영원은 한국정원의 미래를 탐구하는 실험적 공간으로, 한국적 정서와 현대 조경이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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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돌담길 영화 ‘서편제’에서 영감을 받아 민초들의 생활의 기저가 되는 밭과 논의 풍경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셋째 서사인 ‘한국인의 정신’은 정원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 경주 소나무 숲의 질서를 모델로 한 ‘경주 솔밭’, 선비의 기개를 바위로 번역한 ‘유생돌정원’, 병산서원의 공간 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선곡서원’, 그리고 모든 서사를 고요히 수렴하는 ‘경외암(산길에서도 벗어나 있는 암자)’에 이르는 시퀀스는 한국정원의 본질을 가장 농밀하게 드러낸다.

 

소나무 숲을 조성할 때 필자는 사전에 직접 경주 삼릉과 흥덕왕릉의 숲을 다시 찾아가 기울기와 간격, 어긋남의 감각을 몸으로 기억했다. 자연스러움은 계산이 아니라 감각의 기억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경외암으로 향하는 길은 정원의 절정이자 퇴장으로, 침묵 속에서 정원은 비로소 사유의 공간으로 완성된다. 이곳의 식재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감각을 고조시키기 위해 식재 간격을 점진적으로 좁히고, 작은 언덕과 굽은 길을 통해 공간의 깊이를 형성하며, 동시에 자연 배수가 이루어지도록 조성했다. 한편, 고로쇠나무 숲의 하부 식재는 이 장소에서 자생해 온 식물을 중심으로 구성해, 인위적 연출보다 본래의 원시림에 가까운 풍경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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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동요가 그리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심긴 풍경을 연출한 정원이다.

 

 

현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정원,

흐름과 머묾의 조화

 

메덩골의 시공 과정은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장인적 실험의 연속이었다. 300년가량 된 번개 맞은 회화나무를 200톤 크레인으로 직립 운반해 마을 어귀에 심는 과정, 400m에 이르는 메덩내 자연석 축조, 수차례 해체와 재시공을 반복한 돌담, 기욤과 함께 진행한 무영원의 실험적 정원, 고로쇠나무 숲의 생태 기반 조성, 물길의 미세 레벨 조정 등은 설계자의 도면 위에서만 완성되지 않았다. 정원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땅과 장인과 설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유기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메덩골 정원은 다시 한번 증명한다. 현장의 시행착오와 장인의 감각, 땅이 던지는 작은 신호들이 모두 정원을 형성한 중요한 요소였다.

 

메덩골 한국정원에서는 완공이 끝이 아니다. 정원은 사람의 발걸음이 닿고, 계절의 빛이 스며들고, 프로그램에 의해 공간을 사용하며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봄의 개복숭아 터널, 여름의 짙은 녹음의 숲, 가을의 단풍 시퀀스, 겨울의 침묵과 설경은 이 정원이 사계절을 통해 끊임없이 표정을 바꾸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겨울은 메덩골 정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시기다. “정원의 겨울은 사라지는 계절이 아니라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말처럼 잎이 사라진 자리에서 돌, 선, 지형의 본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원은 흐르면서 머무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바람과 물, 꽃과 잎은 흐르지만 고목과 바위, 그늘은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그들 몸에 쌓는다. 이 둘이 서로를 비출 때 정원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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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청헌과 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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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샅 소나무를 피해 조성된 길과 담장이 자연에 대한 메덩골의 태도를 보여준다.

 

 

한국정원의

내일을 위해

 

메덩골 한국정원을 만들며 다시 배웠다. 정원은 나무와 돌을 놓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 장소의 자연과 인간의 서사를 엮어 새로운 풍경의 질서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공간 조성이 아니라 문화적 해석과 미래 상상력이 필요한 창작 행위였다. 메덩골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한국정원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정원은 더 이상 전통의 재현에 머물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공간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현대적 삶의 방식 속에서 다시 정의해야 한다. 메덩골에서 시도한 ‘민초들의 삶’, ‘선비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세 줄기는 과거의 미학을 재조립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 정원 문화를 미래로 확장시키기 위한 새로운 틀이었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자리한 정서적 기반을 존중하되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쓰는 일, 그것이 앞으로의 한국정원이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한다.

 

정원은 시대가 변할수록 더욱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가 되고 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자연을 회복하는 장치이자, 세대와 문화를 잇는 매개이며, 기후 변화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메덩골 한국정원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정원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제안이자 첫 문장이 되고자 한다. 정원은 늘 곁에 있는 자연이고 흐르면서 머무는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그 삶의 풍경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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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예당에서 바라본 마당 한가운데의 원주암

 

 

이재연 인터뷰


지금,

다시 놓는 한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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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오

 

 

메덩골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규모에 놀랐다. 정원보다는 마을의 일부를 조성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정원과 정원을 잇는 길과 서낭당이 인상 깊었다. 독립된 정원이 아닌,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듯 흐르는 일련의 정원을 설계한 의도가 있나.

이재연(이하 생략) 메덩골 한국정원(이하 메덩골)을 처음부터 명소가 모인 정원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조가 되었으면 했다. 길과 서낭당, 각각의 정원을 독립된 공간으로 보지 않고 시간의 흐름처럼 이어지는 장면들로 생각했다. 메덩골은 한 장면씩 소비되는 정원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지나며 기억을 조금씩 쌓는 정원에 가깝다.

 

오너가 제시한 주요 키워드가 민초들의 삶, 선비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다.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를 담아야 하는 주제라 그런지 설계에서 스토리텔링 요소를 다수 발견했다. 동요 ‘고향의 봄’과 영화 ‘서편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공간들도 흥미로웠다. 평소에도 영화나 책 등 다른 매체의 영향을 받아 설계하는 걸 즐기는가.

누구나 여행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시각적 충격을 받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둘 쯤 만나지 않나. 조경가라는 직업 특성상 일상에서 늘 관찰을 하고,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인 장면을 맞닥뜨리면 그때 느낀 감정이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 적합한 이야기를 발굴했다기보다 현장을 마주했을 때 내 안에 있었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다.

 

서편제의 특정 장면은 숨 막히는 정서적 충격을 안겼었는데, 짧은 순간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과 정서의 결이 참 인상 깊었다. 동요 ‘고향의 봄’은 오너가 요구한 ‘가장 한국적인 무엇을 표현하는 정원’이라는 요구에 잘 부합한다고 느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불러봤을 노래이니 노랫말이 그리는 풍경 속을 거닐며 각자 어린 시절을 추억할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구조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한 결과물인데, 이러한 계획을 오너가 흡족해하며 승인했을 때 참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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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돌담길 디테일 스케치

 

 

남도돌담길을 걸으며 돌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돌과 돌 사이, 접착제 역할을 할 시멘트가 없는 것을 보며 들어간 공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점차 돌 쌓는 장인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시공했는가.

남도돌담길은 기술이 아닌 태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봐야 하는 담이다. 영화 ‘서편제’ 속 청산도 돌담을 떠올려보자. 충분히 아름다운 그 돌담을 과연 육지에서 온 돌 장인이 쌓았을까? 짐작컨대 밭에서 자꾸 돌이 나오니, 그 돌을 모아 바람과 짐승을 막을 겸 쌓아 만든 게 그 돌담일 것이다. 남도돌담길 역시 현장에서 땅을 개간하며 나온 돌을 모아 쌓은 것이다. 시멘트 같은 접착제를 사용해 빠르게 완성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시공자들에게 청산도의 농부들이 돌을 쌓았을 마음으로 쌓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돌을 쌓아온 장인들이었지만 돌담을 몇 번이나 허물고 다시 쌓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노고가 들었지만 그 방법이 남도돌담길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남도돌담길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작물이 자라는 밭의 풍경이다. 노랗게 물든 청보리, 하얀 솜을 틔우는 목화, 붉은 열매를 맺는 고추들이 계절마다 다른 색의 꽃을 피우는 정원과 닮아 보였다. 어떤 기준으로 밭작물 정원수를 선정하고 식재했는지, 식재 계획은 어떻게 완성했는지 궁금하다.

남도돌담길의 작물 정원은 한국정원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누가 밭을 정원이라 생각하겠나. 이 정원은 민초, 즉 평민들의 정원에 대한 고민이 담긴 공간이다. 일반 민초들의 삶을 표현하는 정원은 전통 정원이나 고문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사료를 바탕으로 전통 정원을 재해석하기보다는 당시 평민들의 삶의 모습을 하나의 정원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게 오너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 하지만 밭의 풍경을 정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색다른 장치가 필요했다. 시골이라 표현해도 무방한 이곳에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온 관람객에게 도로 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밭을 정원이라며 내놓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쉽게 보지 못 하는 작물, 작물이지만 잎의 색상이나 열매의 형태가 아름다운 것들을 골랐다. 논이 아닌 땅에서 청보리가 자란다는 사실을 이 작업을 하며 처음 알았다. 그렇게 돌담 사이사이 특별한 작물 정원을 조성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원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달라지길 바랐다. 벼, 청보리, 목화, 가지, 고추, 겨자, 부추, 토란 같은 작물은 그 변화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밭작물은 계절이 정원에 남기는 삶의 흔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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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병루에서 바라본 경주솔밭과 유생돌정원

 

 

홈페이지에서 “메덩골정원은 철학자 니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6만 평 규모의 세계 최대 인문학 정원입니다”라는 소개 글을 보며, 오너가 정원과 철학에 대한 조예가 깊구나 하고 짐작했다. 그만큼 조경가에게 요구한 과제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오너와 처음 만났을 때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메덩골에는 한국정원과 현대정원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둘 중 하나를 설계해야 한다면 어떤 정원을 택하고 싶은가요?” “한국정원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간 어떤 한국정원을 설계해왔나요?” “신입사원 시절에 모 기업의 영빈관과 희원…….”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채 맺지 못했는데 오너가 말을 가르고 들어왔다. “지금 말씀한 정원들은 대부분 전통 정원에 가깝네요. 전 그보다는 한국인의 정서와 정신을 담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요. 궁궐 정원과도 다릅니다. 너무 화려한 정원도 지양합니다.”

 

오너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국정원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독학으로 정원을 공부하며 해외 곳곳의 유명 정원과 국내 사찰, 전통 정원, 관광지를 다녔고, 그 과정에서 한국정원 조성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후세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세계적 수준의 한국적 정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앞으로의 설계와 시공이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너가 요구한 사항 중 하나는 한국정원 초입에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그 무엇이 담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누구나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심긴 정원, ‘고향의 봄’이다. 오너와 정서적 교감을 바탕으로 소통하며 일을 진행했다.

 

한국정원은 특정 정원술로 설계된 공간보다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녹아든 공간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만들어진 다소 소박한 정원이 자칫 설계되지 않은 공간으로 느껴지기 쉽다. 집 곁에 두고 즐기는 실용적 정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메덩골은 방문객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곳인데 이러한 복합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다행히 오너가 꽃과 식물로 치장한 화려한 정원을 지양했고, 덕분에 한국정원 그 자체를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성을 충분히 담은 정원이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그 자체로 관람객을 만족시키고 충분한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자신도 있었다. 특히 전통이라는 틀에 갇혀 민속촌 같은 공간을 만드는 걸 경계했다. 전통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성을 담을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그래서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이라는 주제를 도출하고, 성리학, 불교, 유교 사상, 최부잣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정원 구조를 만들었다. 또 하나의 원칙은 되도록 한국 토종 식물을 심는 것이었다.

 

프랑스 조경가 기욤 고스 드 고르(이하 기욤)가 설계한 무영원, 계절마다 화려한 꽃이 피어나는 청유원을 제외한 공간에는 대부분 토종 식물을 심어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도록 했다. 기욤은 한국정원 전체가 아닌 무영원이라는 한 장소에 대한 기본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메덩골 한국정원이 워낙 넓은 범위를 포괄하다 보니 누가, 무엇을 설계했는지 혼동하는 경우가 잦다. 승효상 건축가는 선곡서원과 경외암의 건축 설계를 맡았으며, 두 곳의 외부 공간은 조경디자인 린이 설계했다. 칠레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는 현대정원 내 레스토랑과 일부 건축적 구조물 설계에 참여했다. 메덩골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이지만, 한국정원은 조경디자인 린이 현장에 처음부터 머물며 전반적인 사항과 모든 현장 여건에 따라 직접 대응해 설계와 시공을 이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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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 가는 길

 

곳곳에 놓인 거대한 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끼가 낀 거대한 바위가 범상치 않아 보여 오너의 수집품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있었다. 한국정원에 바위를 녹여내는 작업은 어떠했나.

돌의 배치 장소는 기본계획을 통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황이었다. 나는 메덩골의 돌 구성 디자인을 총괄한 이시희 대표(정우조경)와 돌의 정확한 방향과 위치를 협의했다. 한국정원의 원칙 중 하나가 ‘원래 있었던 것처럼’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한국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참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마치 선조들이 풍광이 좋은 곳에 풍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자나 누각을 만들고 미음완보로 정원을 즐겼듯이 말이다. 메덩골을 통해 이시희 대표를 만난 게 참 행운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었다. 덕분에 돌을 놓고 원래 있던 자연처럼 식재를 할 수 있었다. 관람객에게 이 정원들이 정말 원래 있던 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거냐는 질문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재예당마당에 홀로 놓인 바위가 돌이라는 자연 소재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면, 여러 바위를 모아 배치한 유생돌정원은 자연의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유생돌정원은 바위를 정원의 주인공으로 삼는 색다른 방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본래 유생돌정원에는 논과 밭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정원이 조성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렬한 경주솔밭과 건축물 사이에 들어설 정원으로 존재감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도돌담길에 이미 작물 정원이 있기에 방문객들이 비슷비슷한 풍경이 이어진다고 느낄 수 있겠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색다른 정원을 고민하던 중 오너가 제안한 것이 유생돌정원이다. 정원을 자세히 살피면 가운데 큰 바위가 하나 있고, 그 바위를 위시해서 돌들이 주변을 두르고 있는 형국이다. 유생돌정원 앞에 승효상 건축가가 류성룡을 기리는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즉 한가운데 가장 큰 바위가 류성룡을, 그 주변에 선 바위들이 류성룡을 따르는 유생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자칫 거칠게 느껴지거나 한국성에서 과도하게 벗어난 정원이 되지 않을지 걱정하기도 했는데, 조성된 뒤 경주솔밭과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보니 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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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나무 숲

 

 

한국정원의 특징 중 하나가 차경이다. 개인적으로 메덩골의 장점 중 하나는 정원 바깥의 수려한 주변 환경을 안으로 끌어들인 점이라 생각한다. 차경을 위해 취한 전략이 있나.

특별히 차경을 연출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원의 경계를 어디까지 숨길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담이나 식재로 시선을 막기보다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관람객이 저기는 본래 자연이었던 곳이고 여기부터는 새로 만든 것이구나 하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게 자연성을 더 부각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메덩내가 인공 계곡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기도 했고,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한 강의에서 “정원을 만들 때는 자연을 가져다 놓는다는 생각으로 만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메덩내 주변의 식재가 계획에 의한 것인지 자연을 그대로 끌어들인 것인지 궁금하다.

메덩내는 그 길이가 400m에 이르는 계곡이다. 자연석만 25톤 덤프트럭 300~400대에 실을 정도의 물량을 사용한 대공사였다. 돌 배치는 물론 식재 모두 철저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돌이 놓인 자연스러움을 고민하고, 또 거꾸로 돌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도 했다. 나무가 너무 크면 돌을 가리고, 너무 작거나 색이 강하면 자연스러움을 해친다. 큰 나무는 기울어진 각도, 꽃, 단풍을 고려해 심었다. 관목은 키와 폭, 잎의 질감과 색감, 생태 특성, 계절별 변화를 생각하며 배치했다. 전체 수종의 90퍼센트 이상을 한국 토종 식물로 구성해 한국의 자연 풍경을 만들었다. 시간이 쌓이며 이 정원이 완성될 거라 믿는다. 

 

수수한 빨래터인 메덩내는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용반연으로 이어진다. 같은 물줄기를 공유하지만, 두 장소의 분위기가 사뭇 다른 것이 신기하다. 의도한 바가 있나.

메덩내는 기억 속 동네 빨래터처럼 편안하고 일상적인 물가의 풍경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반면 용반연은 보길도의 세연정처럼 기존의 물을 일부 가두고 의미를 더한, 조금은 장식적이면서도 사유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정했다.

 

고로쇠나무 숲과 암자 가는 길을 보며, 본래의 땅이 어땠을지 상상해봤다. 어쩌면 빈 땅에 숲을 만드는 일과 길을 만드는 일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을 위한 정원의 흐름은 결국 길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너와 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한국 사람의 기억 속 길은 대체로 좁고 구불거리며 끝이 쉽게 드러나지 않고,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담겨 있다. 이에 주목해 작은 굽이와 언덕으로 공간을 깊게 만들었다. 결국 길의 밀도를 높이면 숲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년에 딱 한 번 메덩골을 방문해야 한다면 추천하고 싶은 시기는 언제인가.

굳이 한 시기를 꼽자면 가을, 특히 10월 말을 추천한다. 단풍나무뿐 아니라 복자기, 붉나무, 고로쇠나무, 화살나무, 팥배나무를 함께 식재해 색감의 여러 층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시기다. 그때의 메덩골이 가장 풍부한 표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메덩골의 겨울 모습도 참 아름답다. 대상지가 강원도 산골처럼 기온이 낮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눈이 없는 메덩골에서는 정원의 속살을 샅샅이 볼 수 있지만, 눈이 쌓인 설경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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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질문을 하기 위해 달려온 것 같다. 이재연에게 한국정원이란 무엇인가.

앞서 밝혔듯, 메덩골의 한국정원은 전통 정원을 새롭게 해석한 결과가 아니다. 오너와 함께 이곳을 ‘메덩골 전통 정원’이 아닌 ‘메덩골 한국정원’이라고 명명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대화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어쩌면 여러 이유로 시도하지 못한 한국정원의 또 다른 실험을 계속해야 하고, 전통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것 또한 옛것이 된다. 전통을 부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이 시간 위에 한국정원을 어떤 모습으로 다시 놓을 수 있을지를 계속 묻고 있다. 메덩골 한국정원은 그러한 고민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본 정원이다. 지금 한창 메덩골 현대정원의 시공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정원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정원이니, 현대정원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디자인 팽선민



글 이재연 조경디자인 린 대표


조경 총괄 조경디자인 린

조경 기본설계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조경 기본 및 실시설계 조경디자인 린

조경 시공 조경디자인 린

한옥 설계 조선건축사사무소

한옥 시공 휘성전통건축

서원 설계 이로재

서원 시공 씨엔오건설

규모

대지: 199,800㎡

한국정원: 29,560㎡

현대정원: 34,660㎡

주차장, 진입정원, 비지터센터: 67,640㎡

기타: 67,940㎡

완공 2025. 9.

사진 메덩골정원


조경디자인 린은 대상지에 남아 있는 시간의 층위와 장소의 기억을 읽어내는 설계를 지향한다. 땅에 스며든 자연, 전통, 문화의 가치를 현대적 조경 언어로 해석하며, 한국정원의 정신과 태도를 오늘의 공간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절제된 형식 속에서 오래 머무는 풍경을 만드는 것을 설계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재연은 정원의 공간성과 시공의 밀도를 함께 고민해온 조경가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조경설계 서안에서 17년간 근무하며 국내외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년 조경디자인 린(주)을 설립한 이후 설계와 정원 공사를 병행하며 설계자의 의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중요하게 다뤄왔다. 직접 설계한 공간만 시공한다는 원칙 아래, 정원을 결과가 아닌 시간과 태도의 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