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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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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좋아하는 마음을 카피하다
  • 환경과조경 2026년 2월호

새해 다짐 중 하나는 책더미 청산이다. 화분 보관용 바퀴 달린 원목 트레이는 주인을 잘못 만나 화분 대신 무거운 책더미를 받치고 있다. 친구에게 빌린 논픽션. 펀딩 후 받은 인터뷰집. 출판사 응모 이벤트에서 받은 신간.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책. 도서관에 아직 반납하지 못한 책. 트레이 위에는 다양한 크기와 장르, 사연이 있는 책들이 얼기설기 쌓여 있다. 이 더미를 정리하기 전까지 단 한 권도 더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그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 책은 바로 『일본 광고 카피 도감』(2026)이다. 광고, 카피, 도감. 얼핏 딱딱한 주제라고 생각해서 별 흥미가 없었지만, 한 줄의 띠지 카피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업이라면, 두 번도 당할 수 있다.” 아름다운 영업. 이질적인 단어 조합이 마음의 문에 노크를 했다. 동시에 아름다운 영업의 정체가 궁금했다. 카피만큼 표지도 매력적이었다. 모호한 표정과 우수에 찬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인물 사진. 저자의 프로필 사진은 아니었다. 저 너머를 응시하는 인물을 통해 카피를 향한 저자의 시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도감은 자본주의의 시라고 불리는 광고 카피를 수집한 책이다. 저자인 오하림은 TBWA 코리아, 무신사 등에서 활동했던 카피라이터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며 수집한 일본 광고 카피를 책으로 엮었다. 특히 예리한 통찰과 메시지가 담긴 카피의 맥락과 메시지, 문장의 구조와 리듬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공부를 위한 목적으로 카피 수집을 시작했지만, 점차 카피를 수집하는 과정이 회복의 시간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진부한 나열이 전부인 도감이 아니라 진열장에 모은 애장품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수집한 카피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단순히 기능과 목적에 충실한 카피에 주목하지 않는다. 매출 달성을 위한 한 줄이 아니라 마치 소비자의 일상으로 들어가 대화를 걸듯 편안하게 말을 건네는 카피를 수집했다. 가령 간장의 신선함, 새로운 용기 출시 등 제품의 기능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아닌 “기쁜 일이 생기면, 얼굴보다 식탁에 먼저 드러난다”는 간장 회사의 카피를 통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가 바꾸는 ‘삶의 풍경’에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노력을 응시하는 카피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철도 회사 ‘JR큐슈’의 카피다.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 이 문장은 기차를 단순히 사람과 물건을 옮기는 운송 수단으로 보지 않고, 기차에 탑승한 이유와 마음을 직시하며 큰 울림을 준다. 덧붙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JR큐슈 노선 직원들에게 작은 보람을 선사한다. 안전한 승차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운반하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걸 상기시킨다. 카피의 배경 사진도 의도적으로 밝고 화사한 이미지 대신 짙은 어둠 속을 힘차게 달리는 기차를 선택했다고 한다. 마치 기차에 담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은유하듯. 선정한 카피도 좋았지만 가독성 좋은 문장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금세 다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반신반의했던 띠지 카피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업이라면 두 번, 아니 백번이라도 당하고 싶다. 카피의 세계를 엿보며 영업과 카피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기능과 목적에 가장 충실한 영업과 카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저자는 숱한 카피를 통해 표면과 현상 너머의 세계와 풍경을 읽으며 평범한 단어가 만드는 비범한 진동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좋은 카피를 만나며 배웠다. 정말 좋은 카피는 편견을 허물게 한다는 걸.

 

그래서 책더미 청산을 포기했다. 저자가 좋은 카피를 수집했던 것처럼 좋은 책을 수집한 책더미를 계속 만들고 싶다. 아름다운 영업에 호되게(?) 당해 너무 예찬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부제처럼 마음을 카피하고 싶다. 그가 카피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카피를 수집했던 것처럼, 나도 책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수집하고 싶다. 나아가 무엇이든 좋아하는 마음을 예찬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실천에 앞서 책더미를 받치는 트레이에게 미리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