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잡지를 펼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백종현을 지면에 처음 초대했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과조경』의 인기 연재였던 ‘그들이 설계하는 법’ 필자 중 한 명이었고,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을 주제로 세 편의 글을 썼다. 당시 난 어떤 조경가가 어떤 활동을 펼치는지 눈귀가 어두운 초짜 에디터였다. 새로운 필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편집회의에서 오가는 대화에 필사적으로 귀 기울였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독특, 새로운 길, 신선, 남들은 안 하는 일 같은 단어가 가득했었다. 도착한 원고에도 독특한 작업과 생각이 빼곡해서 신기했었다. 백종현은 여전히 새로운 일을 벌인다. ‘따로 또 같이’ 특집(2018년 5월호)에 소개한 자연감각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뿐 아니라 더욱 성장시키기도 했다. 자연감각 브랜드십 속에서는 조경설계사무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인터뷰 속 대화는 대부분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는 백종현의 성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떠올리며 그가 대화에 열을 올리던 순간이 있었다. 라츠+파트너에서 일했던 시절을 말할 때였다. 3개월간의 짧은 그 시간 동안 접한 색다른 업무 환경, 다채로운 문화의 깊이가 궁금해졌다. 더불어 그가 “어떤 디자인 오피스: HEA”(2023년 4월호)에서 왜 ‘머물고 싶은 오피스’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회의실 맞은편에 놓인 일명 ‘H바’를 봤다. 우드톤 라운지가 계절에 맞게 와인과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된 모습이 한층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연한 순간들
-수상 축하드립니다. 소식 들었을 때 어땠나요?
“기대를 안 하고 있던 터라 기쁨보다 놀람을 먼저 느꼈어요. 내가 ‘젊은’ 조경가가 맞나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고요. 감회가 깊었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어요.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
-본인이 젊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1981년 1월생이니, 만 45세 이하라는 조건에는 부합하는데 좀 경계에서 있는 기분이에요.”
-어떤 질문으로 인터뷰를 열까 자료를 조사하던 중에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어요. 대학생 특강에서 한 말씀인데 “부모님의 반대로 원하지 않던 과에 지원하게 됐고, 재미가 없어서 자퇴도 생각해봤다. 상담도 받으면서 혼자 고민하다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는데, 유일하게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 조경이었다”고요.
“고등학교 수업 중 미술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미술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샌 적도 많았고, 그 열정을 본 미술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미대 진학을 권유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미대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어요. 미대라 하면 동양화 같은 순수미술만을 전공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3학년이 되고 나서 디자인과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미대에 가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더니, 제가 당연히 공대에 진학할 거라 예상했던 부모님이 크게 반대했습니다.
형 역시 우선 공대에 진학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이 좋으면 복수 전공이나 전과, 편입 같은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절 설득했죠. 결국 미대 진학은 포기했습니다. 미대가 아니더라도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 뭘까 고민하던 차에 발견한 게 건축과였습니다. 수능을 치른 후 지원한 곳이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와 다른 대학의 건축과 두 곳이었어요.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차에 잘못된 정보를 듣게 됐어요. 서울대학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에 입학하면 도시공학, 토목공학, 자원 공학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중 토목공학이 건축과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서울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토목공학과 건축은 전혀 달랐을 텐데요. 공부가 쉽지 않았겠어요.
“토목 수업에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학점이 엉망인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4학년이 되어서 자퇴를 고민하기에 이르렀으니까요. 주변에서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깝지 않냐고 다들 말렸죠. 이대로 사회에 나가 취직할 자신이 없어서 막막한 와중에, 무작정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찾았던 게 조경 소묘 수업이었어요. 당시 수원캠퍼스에 수업을 들으러 다녔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박준서 소장님(디자인 엘)의 조경 수업을 들었는데 조경 공부를 더 해볼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그 다음 학기에 정욱주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학창 시절 내내 느껴본 적 없는 흥미로움에 복수전공을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복수전공을 시작한 덕분에 대학을 6년 다녔죠.”
-4학년 때 복수전공을 시작한 것 치곤 빠른 졸업 아닌가요. 엄청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바쁘긴 했지만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조경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틈틈이 학점이 낮은 수업 재수강을 했죠. 사실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수업이 모두 재미없었던 건 아니에요. 안건혁 교수님이 지도하신 도시설계, 도시계획 수업을 즐겁게 들었거든요. 안 교수님이 대학원 진학을 권유할 정도였죠. 그때 접했던 정보를 모두 지식으로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제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 건 확실합니다. 제때 졸업하기 위해 바쁘게 학교를 다니다보니 2년 정도는 학교에서 거의 숙직하다시피 지냈어요. 잠옷 같은 옷을 입고 교내를 돌아다니다가 임승빈 교수님에게 혼났던 기억이 나네요.”
-하버드 GSD를 졸업한 분이니 막연하게 모범생 스타일일거라 짐작했는데 놀라워요.
“하버드 GSD에 입학한 사람 중 제가 평균 학점이 제일 낮지 않을까 싶어요. 학업에는 소홀했었지만 그 와중에도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열정은 컸어요. 방학이면 SA 서울건축학교 워크숍과 같은 건축 워크숍에 꾸준히 참여했거든요. 돌이켜보니 대학 시절에 조경, 도시, 건축을 전부 접하게 된 셈입니다.”
-제3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서 ‘포텐셜 랜드-스케이프(Potential Land-Scape)(백종현, 황효동, 이제원, 이대연)’로 대상을 수상했어요. 조경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공모전이라, 수상이 조경 설계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굳히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잖아요.
“조경을 전공하면 졸업작품을 환경조경대전 출품을 전제로 만드는 게 당연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바쁜 졸업 학기를 보냈어요. 사실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운 좋게 오피스박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도 얻었거든요. 뒤늦게 복수전공으로 조경을 선택한지라 전 과에서 이방인 같은 존재였어요.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보니 팀을 이루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졸업작품을 하게 됐는데, 그중에는 이미 회계사 자격증을 따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도 있었죠. 어쩌다보니 제가 팀장 같은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제 열의만큼 따라와 주지 않는 동기들에게 때때로 화를 내기도 했는데, 그래도 즐거웠고 결과마저 좋아서 기분 좋아지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대상을 받은 뒤에는 유학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졌고요.”
-2018년에 진행한 대학생 대상 강연에서는 이런 말씀을 했어요. “우연한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주변에 있는 우연한 순간들에 귀를 기울여라.” 경험에 기반을 둔 말이라 짐작했는데 맞나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고 인생이잖아요. 제 인생이 우연한 순간들에 의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졸업 학기 시절, 오피스박김이 한국 오피스를 열 준비를 하며 학교에서 채용 리쿠르팅을 진행했어요.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지원해 면접을 봤고 합격했어요. 인턴 생활이 끝난 뒤 3개월 정도 직원으로 일도 했죠.
하버드 GSD로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제게 추천서를 써주신 분이, 오피스박김의 공동대표이자 현재 하버드 GSD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정윤 교수님이었어요. 유학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지쳐서 한 학기 휴학을 하고 무작정 유럽의 여러 조경설계사무소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는데, 독일의 라츠+파트너(Latz+Partner)에서 오퍼가 왔어요. 그곳에서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며 유럽 생활을 경험했죠. 다시 하버드로 복학한 뒤, 방학을 맞아 귀국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비행기 표까지 끊어놓은 상황이었는데 학생 비자에 문제가 생겨서 한국에 들어가지 못할 상황이 됐어요. 막막해하던 중에 지도교수였던 하버드 GSD의 니얼 커크우드(Niall Kirkwood) 교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연구원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죠. 매 순간이 우연이었고, 이런 우연이 겹쳐져 지금의 제가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유학의 의지가 굳건했던 걸로 보이는데 이유가 있나요?
“크게 두 가지 이유였어요. 첫째로, 복수전공을 통해 조경을 배웠고 졸업작품으로 공모전 대상 수상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사회로 나가 회사에서 일하기엔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둘째로 새로운 환경이 절실했어요. 그때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아 집에서 나와 생활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던 때였어요. 대상을 받아 기쁘지만 연락을 끊은 부모님에게 그 소식을 알릴 수 없었고, 유학 준비와 인턴 생활로 너무 바빠 기쁨과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매일매일 무언가를 해내기에 급급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번아웃이 왔던 거죠.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학생이 감당하기에 유학 자금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맞아요. 보통 유학을 준비하면 여러 대학에 지원서를 넣기 마련인데, 지원서 접수 비용이 아까워서 유펜(Upenn)과 하버드 딱 두 곳에만 지원했었습니다. 다행히 두 곳 다 합격을 했는데, 그제야 유학 자금이라는 문제가 큰 벽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결국엔 집에 들어가 하버드 GSD 합격 소식을 전하며 지원을 해주십사 읍소를 했죠. 당돌하게 혹 미래 제 결혼을 지원할 마음이 있다면 그 비용을 지금 유학을 떠나는 데 투자해 달라고 말하기까지 했어요. 덕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부모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고요.”
-그렇게 쟁취해낸 유학 생활은 즐거웠나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오피스박김에서 인턴과 직장 생활을 잠깐 한 덕분에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피스박김에서 하버드 GSD를 졸업한 사람들이 어떻게 프랙티스를 하는지 미리 알 수 있었죠. 유학 생활 동안에는 새로운 지식도 많이 축적했지만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환경과 시스템,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접한 경험이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정착
-라츠+파트너는 독일의 조경설계사무소잖아요. 업무 환경과 스타일이 어떻던가요.
“3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인데 지금도 너무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라츠+파트너의 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아요. 제게 여러 방면으로 의미를 남겼어요. 인턴 생활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여름 방학을 활용해 마샤 슈워츠(Martha Schwartz) 사무실 인턴 을 했었는데, 업무도 바꾸고 야근도 빈번했어요. 한국의 조경설계사무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라츠+파트너는 달랐어요. 뮌헨 공항 옆 프라이징(Freising)이라는 도시에 회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설립자인 피터 라츠(Peter Latz)가 강의를 하는 뮌헨 대학 프라이징 캠퍼스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가끔 점심을 뮌헨 대학 캠퍼스에서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어요. 오후 네 시 정도면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티타임을 즐기며 간식을 먹었죠. 야근은 드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됐어요. 독일 특유의 업무 시스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절대로 시간을 넘겨 일하지 않아요. 이를 위해서 일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려고 힘쓰죠. 아카이빙 시스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피터 라츠가 해온 방대한 프로젝트의 자료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자료를 찾고자 마음먹으면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었죠. 사무실도 아름다웠습니다. 단독주택 같은 건물 두 채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 구조였는데, 한 채는 피터 라츠의 집이었고 다른 한 채는 사무실이었죠.”
-직주근접 그 자체네요.
“아들인 틸먼 라츠(Tilman Latz)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중정과 건물 후면에 피터 라츠가 직접 만들고 관리하는 정원이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회사 구성원도 독특했어요. 퇴근하고 나면 5부 리그 축구선수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마음이 맞는 직원끼리 레슬링과 오케스트라를 함께 보기도 했고요. 문화의 깊이가 굉장히 깊다고 느꼈습니다. 한 사무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취향이 다양하고, 한 사람 안에도 복잡다단한 취향이 공존하는 걸 목격하며 흥미로운 날들을 보냈습니다.”
-미국에서 이코이드(Ecoid) 코퍼레이션을 설립했죠. 해외에서의 창업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나요.
“하버드대학교 연구원으로 일하는 도중 방문 교수로 온 김용규 대표(일송환경복원)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김용규 대표가 새로운 녹화 시스 템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저뿐 아니라 일종의 지도 교수 역할을 해주고 있던 니얼 커크우드 교수까지 뜻이 맞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하게 됐고, 이를 기반으로 설립한 게 이코이드입니다. 저와 김용규 대표가 공동 설립자였는데, 사실 김용규 대표님이 투자를 해주신 거죠.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옥상 녹화와 벽면 녹화에 적용할 수 있는 그린 모듈 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자 킥 스타터라는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캐나다국제정원박람회에 초청받아 제품을 응용한 정원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소장님에게 처음 연락드린 때가 생각나요. ‘그들이 설계하는 법’ 청탁 때문이었어요. 편집회의에서 “설계뿐 아니라 독특한 작업을 해내고 있 는 조경가”라는 설명을 들었던 터라 어떤 글이 도착할지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대만큼이나 흥미로운 원고가 도착했었는데, 그중 일부 를 발췌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조경가가 아니며 설계 를 하고 있지도 않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사업자등록증에서 조경이나 설계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소장’보다는 ‘대표’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때 나는 설 계 행위를 하고 있는 조경가가 아니다……연재를 하겠다고 답한 이유는 첫째로 내가 하는 일이 분명 내가 배우고 경험한 ‘설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것이 ‘조경가’가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런 나의 생각과 생각의 과정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에 나 스 스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나와 독자 여러분이 만나는 ‘그들이 설계하는 법’에서 조경가이자 조경가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조경가’와 ‘설계’, 그리고 ‘설계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나아가 ‘조경’과 ‘설계’라는 키워드를 매개로 서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각주 1)” 이때의 마음가짐은 지금도 여전한가요.
“덕분에 오래된 글을 다시 읽어봤어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찾아보자면 예전보다 저를 조경가라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조경가의 역할과 범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전 학창시절에 배운 이론과 인턴 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경을 전공한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시도한 것 뿐이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도 분명 있 을 거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지금이 아니면 이 일을 못할 거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결과와 상관없이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물론 그렇게 실패를 오래, 많이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실패라 함은 이코이드 코퍼레이션에서 출발해 세계수프로젝트를 거쳐 HEA 설립에 이르는 과정을 뜻하는 걸까요. 단순히 사명을 바꾼 게 아 니라 그 알맹이도 달라졌을 거고요.
“이코이드는 셀라, 셀로 등 그린 모듈 시스템의 연구 개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을 목표로 했던 회사입니다. 성공적이진 않 았습니다. 결국 시장에 시스템을 선보이는 데 실패했으니까요. 한국으로 귀국하며 세계수프로젝트를 독립적으로 설립하게 됐습니다. 세계수프로젝트는 셀로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과 함께 옥상을 활용한 공유 정원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성장하고자 했던 스타트업이에요. 프로젝트의 우수함을 인정받아서 정부 지원도 받았고, 상도 탔지만 실제로 시 장에서 작동하는 비즈니스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또 한 번의 실 패를 경험한 셈이죠. 그리고 2018년 김대희 대표, 오상진 부사장과 함 께 지금의 HEA를 공동설립했습니다. HEA는 조경설계사무소입니다. 조경 설계를 훌륭하게 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 현재 25명의 조경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조경가 백종현, CEO 백종현
-홈페이지를 둘러봤는데, 설계 스펙트럼이 참 넓더라고요. 작은 정원부 터 대규모 공원 조성, 설계공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백종현의 주요 설계 영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HEA에 입사지원서를 낸 많은 사람이 지원 동기란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이는 HEA가 다양한 스케일,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를 해내고 있다는 방증이죠. HEA와 자연감각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종류의 조경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집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360도 솔루션이랄까요. 일을 가려서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의 일을 발견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하며 스펙트럼을 넓혀 나갔죠.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포기하기보다는 자연감각 브랜드십을 활용하거나 다른 회사와 협업하면서 해결해 나갔습니다. 백종현의 주요 설계 영역이라면, 우선 아파트 조경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김대희 대표가 그 분야의 역량이 뛰어나기도 하고요. 전 주로 공공적 성격을 띠는 프로젝트나 도전할 만한 과제가 있는 민간 영역의 일에 흥미를 느낍니다. 설계공모의 PM도 자주 맡습니다.”
-25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HEA에서 백종현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HEA에는 총 네 개의 소(所)와 실시설계를 돕는 경영지원본부가 있어요. 각 소의 소장과 부소장이 프로젝트를 이끌고요. 회사 규모가 작지 않다 보니 제가 모든 프로젝트를 컨트롤할 수는 없어요. 하고 싶어도 불가능 한 구조입니다. 각 소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리더십을 존중하되 제가 관여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는 PM을 맡아 진행하기도 하고요. HEA와 자연감각을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 고민하는 대표의 역할 또한 제 모습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계속 고민해야 해요. 질적 성장이든 양적 성장이든, 성장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성장을 할 것인지,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길을 찾는 것 또한 제 주된 업무입니다.”
-조경 설계에 대한 백종현의 철학을 “감각의 확장”으로 정의내리고, 감각, 가치, 영향, 연합, 확장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더해주었어요. 설 계 방식이라기보다 설계를 대하는 태도와 지향하는 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백종현의 프로젝트에서는 형태적 공통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계를 하는 방법은 너무 많고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그 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중요한 건 어떤 방향으로 나아 갈 것인지, 어떤 태도로 설계를 바라볼 것인지, 조경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은지,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생산해낼지입니다. 그 때문에 HEA의 프로젝트에서 특유의 색채 가 느껴지지 않는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형태에 하나의 답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도와 메시지가 명확하다면 이를 나타내는 선은 수만 개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시그니처를 갖게 되면 자율성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기에 지양하기도 하고요.”
-리서치를 치열하게 하는 유형, 벼락 맞은 것처럼 영감을 받아 설계안을 그리는 유형, 동료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유형 중 자신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고르라면요.
“모두 다 백종현의 일부이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 다를 뿐이에요. 굳이 정의하자면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유형입니다. 즉 빠르게 결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씁니다. 이 빠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매번 달라져요. 치열한 리서치가 기반이 될 때도 있고, 직관일 때도 있고, 대상지를 보고 느낀 첫인상 하나로 풀어나가기도 하죠. 조경가일 뿐 아니라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이기에 더욱 특정 방식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25명의 디자이너와 함께하면서 그들에게 하나의 설계 방식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구성원들의 다양한 역량을 우리의 역량으로 치환하고 시너지를 내는 데 더욱 신경 쓰고 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백종현 대표의 비즈니스 방식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호전적 태도가 돋보인다는 평도 있었고요. 동의하나요.
“비즈니스 방식이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호전 적 태도가 지속가능한 사무소 운영을 위한 도전적인 면모라는 말이라 면 동의합니다.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여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회사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도 중요하니까요. 이러한 노력과 고민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례로 최소 85점 이상의 설계를 늘 해내기 위해서는 어떤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지 고뇌했습니다. 프로젝트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경우, 설계자도 속상하지만 클라이언트와 그 장소를 사용하는 사람도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어요. 그중 하나가 근무하며 만족할 수 있는 회사, 다닐만하다고 느끼는 회사를 만드는 일일 겁니다. 회사는 직장인이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입니다. 단순히 일만하는 곳이 아니죠.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생각을 나누고 상대의 장점을 배우기도 하는 곳이에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문화데이 같 은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복지에 힘쓰고 있어요. 구성원이 행복하고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회사가 좋은 설계를 도출하는 데 분명 영향을 미칠 거라 믿습니다. 성장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많이 하지만 의미가 없는 실패는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특히 2024년부터는 자연감각 브랜드십을 공유하는 회사들이 성장했고 구성원이 부쩍 늘었 어요. 새로운 일들을 계속 기획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HEA의 대표로서 준공한 첫 작품이 조치원문화정원이죠. ‘세종문화정 원 조치원정수장 설계공모’에 당선된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아 진행했죠. 백종현의 프로젝트 중 디테일이 가장 돋보인다고 느꼈어요.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가 굉장히 섬세하고 꼼꼼한 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그 영향이 제게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화건설에서 일하고 있는 이수 소장이 당시 HEA 소속이었어요. 그가 조경설계 서안에서 일하며 습득한 세심한 감각이 조치원문화정원의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디테일을 꼼꼼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대단 했어요. 소규모였던 HEA가 입지를 다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분 인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합니다.”
-글빛누리공원과 대유평공원은 대규모의 공원이에요. 규모 차이 때문 이겠지만 조치원문화정원과 비교하면 시원시원한 터치가 눈에 띄고, 파 빌리온, 회랑 등 건축물을 공원에 도입하려 한 시도가 보여요.
“글빛누리공원은 HEA를 설립한 뒤 처음으로 진행한 공원 프로젝트였습니다. 준공까지 주어진 기간이 너무 촉박해서 초기 설계안이 그대로 구현된 경우죠. 그에 반해 대유평공원은 최장 기간 진행한 프로젝트였 습니다. 두 단계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설계안이 수차례 바뀌어서 꽤나 고생했습니다. 공원에 건축 구조물을 넣으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공원에 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는 요소거든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되도록 기성 제품을 쓰지 않으려 합니다. 조경 프로젝트이지만 필요한 경우 발주처에 건축사무소를 초대해 건축 구조물을 넣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변수가 많은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때문에 공공 프로젝트를 기피하는 사람도 있고요.
“대유평공원은 공공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해서 더 고생했습니다. 공원 부지 주변 맥락이 굉장히 복잡해요. 교회, 학교,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와 기존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 먹자골목까지. 공원에 대한 요구가 너무 다양했죠. 하루만에 4천 개 가량의 민원이 제기되기도 하고, 대유평공원 조성 담당 공무원의 전화기가 불이 나도록 울려댔다고 하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수원에 가 회의를 진행했고, 토목 등 유관 분야가 다 같이 모여 진행하는 회의도 수차례 진행됐어요. 이런 상황이 2년 정도 반복되니 지치더라고요. 하지만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왜 힘든 상황이 벌어지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거든요. 노하우 덕분에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난관에 부딪쳐도 훨씬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만 힘든 건 아니잖아요.
“제주 스타빌도 쉽진 않았습니다. 운영 중인 리조트를 리뉴얼하는 프로 젝트였는데, 겨울에 잠깐 휴장한 사이에 공사를 진행해야 했어요. 겨울 시공도 어려운데 설계 마감에 주어진 시간 자체가 부족했어요. 프로젝트를 수주해 작업을 시작한 시점이 초가을이었거든요. 발주처의 의사결 정 프로세스 자체도 까다로웠고요.”
-빌라쥬 드 아난티도 제주 스타빌과 같은 리조트 공간이죠. 공간 성격 은 비슷한데 형태적으로는 반대에요. 빌라쥬 드 아난티가 화려함의 극치라면 제주 스타빌은 절제된 조경으로 느껴집니다.
“제주 스타빌은 리뉴얼 작업이었기에 작업 포커스 자체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었어요. 발주처가 요청한 바는 스타빌이 제시하는 콘셉트에 부합하는 공간으로의 변화였습니다. 기존 공간이 콘셉트를 소화하지 못한 채 좀 동 동 떨어져 있었거든요. 인위적인 선을 추가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자연적 요소에 집중하며 콘셉트 강화를 위한 절 제를 했던 프로젝트입니다. 스타빌이 위치한 곳이 해발 600m의 고지였기 때문에 식생이 단순하기도 합니다. 바람도 험하게 부는 곳이라 화려 한 식재나 독특한 구조물로 경관을 연출하는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반면 아난티는 호화로운 성격의 리조트입니다. 스타빌이 주변 자연이 자아내는 묵직하고 험블(humble)한 느낌을 부지 내로 끌어들였다면, 아닌티는 부산 기장의 자연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관광‧휴양 리조트를 지향합니다. 켄민성진(SKM 아키텍츠)이 설계한 아이 코닉한 건축물이 주는 느낌도 강해서 그에 맞춰 재미난 공간을 떠올리게 됐어요. 스타빌이 하나의 큰 흐름이 있는 공간이라면, 아난티는 여러 콘셉트의 공간이 모여 있는 리조트 단지죠.”
-과도하게 콘셉츄얼한 공간을 장식적 조경이라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잖아요.
“핀터레스트나 AI를 사용해 레퍼런스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 가 왔어요. 그만큼 발주처도 원하는 공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습니다. 조경은 서비스업이잖아요. 고객의 니즈가 분명하다면, 이를 해소해주고 좋은 공간으로 풀어내는 게 조경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적절한 스케일과 세심하고 감각적인 설계로 잘 풀어내면 좋은 결과물이 도출되고 유효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경가마다 과하다, 휑하다, 적당하다의 기준이 다를 뿐이죠.”
-홈페이지에 기록된 빼곡한 프로젝트 목록에 설계공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요. 지치진 않나요.
“2024년에는 설계공모에 꽤 많이 참여했는데 2025년엔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어요. 설계공모에 공격적으로 참여하는 다른 사무소와 비교하면 HEA가 많이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래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지치지 않는 선에서 많이 참여하려 합니다.”
-당선과 2등 중 하나를 고른다면.
“물론 당선이 좋죠. 근데 사실 2등도 많이 합니다. 떨어지더라도 낙담하 거나 아쉬워하지 않으려 합니다. 원래 지나간 일을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따로 또 같이, 다채로운 활동을 위하여
-따로 또 같이 활동을 이어나가는 게 참 쉽지 않은데, ‘자연감각’은 꾸 준히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어요. 2017년 백종현, 김대희, 최재혁의 협업으로 시작됐던 자연감각(각주 2)이 어느덧 HEA, 오픈니스 스튜디오, 건국조경, 식물감각이 함께하는 73인의 조경 그룹으로 성장했어요. 현재 자연 감각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요.
“심플합니다. 따로 또 같이. 각 회사의 독립적 활동을 충분히 존중하고 응원하고 지원합니다. 필요한 경우 서로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여건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연합해 일하기도 하고요. 2024년 연말에는 자연감각 구성원 모두가 모인 통합 워크숍을 열기도 했어요.”
-HEA의 백종현과 자연감각의 백종현은 같나요?
“사람에게는 다양한 자아가 있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자연감각의 백종현은 HEA의 백종현보다 더 소통에 힘쓰는 것 같아요. HEA는 ‘소’라는 형태의 팀이 있고 운영 체제도 잘 갖추어져 있어요. 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잘 운영된다는 믿음도 있고요. 반면 자연감각의 경우, 여러 회사가 하나의 브랜드를 공유하는 형태입니다. 협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는 안부도 묻고 정보도 주고받고 서로 교류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특별한 일 없이도 가끔 만나 함께 맛있는 걸 먹기도 하고요. 이런 노력이 없으면 유지가 힘들죠. 서로 유대 관계가 있어야 자연감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재미있어지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코디네이션과 소통자의 역할에 더 신경 쓰는 편입니다.”
-“자연감각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조경’ 을 하되 ‘조경’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시도와 새로운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었죠. 조경이라는 틀을 넘어 확장과 변화를 시도하는 조경가가 부쩍 늘어나고 있어요. 그 가능성을 어떻게 점치고 있는지, 또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조경이라는 틀을 넘어 확장과 변주를 시도하는 조경가가 늘어나고 있 다는 건 너무 반가운 소식입니다. 조경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아주 다양하잖아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조경가가 많을수록 조경의 기회와 지평은 더 넓어질 겁니다. 제가 개척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분야 개척에 성공하면 제가 뒤따라갈 수도 있겠죠. 최근 자연감각의 새로운 시도 중 손꼽을 만한 건 식물감각의 탄생이라 생각합니다. 설립한 지는 꽤 되었는데 2024년부터 활동이 활발해졌고 구성원도 늘었어요. 식물감각은 조경설계사무소인 HEA와 시공 회사인 건국조경, 초화를 유통하고 납품하는 농업법인 자연하다가 함께 만든 회사입니다. 조경 설계 회사도 아니고 초화 유통 회사도 아니고 정원 시공 회사도 아니지만, 조경 설계도 하고 초화 유통도 하고 정원 시공도 합니다. 새로운 시도였는데 꽤 잘 풀렸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고 있어 2026년에 본격적인 확장을 꾀해볼까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이처럼 자연감각 브랜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제가 하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초청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죠. 출강과 특강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고요.
“학생들 만나는 걸 좋아해요.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에너지를 얻는 경우도 많아요. 강의 준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제 생각을 정리하고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초청교수의 경우, 학생들을 만나는 기쁨 때문에 수락하기도 했지만 싱가포르로 HEA와 자연감각의 영역을 넓혀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도도 있었어요. 하지만 쉽지 않겠더라고요.”
-최근에는 어떤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나요?
“HEA는 공공 프로젝트와 민간 프로젝트의 비율을 5:5 정도로 유지하 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공공 프로젝트로는 지난 10월 말 남산 하늘숲길 이 개장했는데, 시민들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평이 꽤 좋아서 뿌듯해요. 남산 야외 식물원 일부를 리모델링해 한국숲 정원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한창 시공 중이고 2026년 중 개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 프로젝트도 여럿 진행하고 있는데, 그중 용산 공공공지 프로젝트를 주목하고 있어요. 좋은 장소를 만들겠다는 발주처의 명확한 의지로부터 출발한 프로젝트라 기대가 큽니다. 또 남해 사우스케이프에 새로운 빌라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설립자가 예술에 조예가 아주 깊어서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실 소장님의 ‘그들이 연재하는 법’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 질문을 마지막 질문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었습니다. 연재 마지막 회의 마지막 문단을 질문으로 꽉 채우셨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과 조경가가 생각하는 자연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연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재인가? 조경 설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조경 스타트업이 있다면 어떠한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가? 조경 회사의 혁신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딱 한 가지 자연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조경가로서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각주 3)” 이 글과 관계하는 ‘그들’과 공유하고 싶은 질문들의 목록이었죠. 답을 찾으셨나요?
“답을 찾기 위해 던졌던 질문들은 아니었어요. 질문이 아니라 일종의 선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대가 정의했던 조경가라는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한 조경가의 몸부림이라 볼 수 있죠. 전 생각의 크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훌륭한 사람을 보며 어떻게 저 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하며 감탄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제가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지, 어떤 상상까지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때의 질문들은 제 생각의 크기를 키우고 싶어서, 더 성장하고 싶어서, 더 현명해지고 싶어서, 더 지혜롭고 싶어서 던졌던 것들입니다. 답을 찾는 것보다 질문의 개수를 더 늘려 가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질문을 늘리는 과정과 질문을 만들어가 는 실천이 쌓여 결국 답이 되지 않을까요.”
**각주정리
1. 백종현,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환경과조경』 2017년 4월호, p.90.
2. “자연감각”, 『환경과조경』 2018년 5월호, pp.28~31.
3. 백종현, “자연과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균형 3”, 『환경과조경』 2017년 6월호, p.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