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는 배고픈 새들에게 논밭은 마음씨 좋은 할머니 같다. 이 강가에 있던 논밭 역시 농부들이 잊은 나락을 주름 같은 두둑과 고랑 사이에 숨겼다가 새들에게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농부와 새를 먹여 살리던 논밭은 구두 공장과 경마장으로, 다시 카페거리와 공원으로 바뀌었다. 논밭이 사라진 도시에서 새들은 무엇으로 겨울을 날까.
참느릅나무는 혹독한 도시 환경에서도 잘 견딘다고 알려져 있어 공원이나 하천변에 종종 식재되어 왔다. 여름 끝 무렵 작은 꽃이 피는데 가지마다 촘촘히 맺히는 열매는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열매들이 대부분 떨어진 겨울에 되새, 밀화부리 등 많은 새에게 소중한 양식이 된다. 열매는 넉넉하니까, 새들에게 대부분을 내어주더라도 참느릅나무는 자식 농사를 걱정하진 않는 듯하다. 새들이 남긴 몇 알의 열매는 바람에 실려 빈 땅을 찾아가 삶을 이어갈 것이다.
서울숲에는 여러 그루의 참느릅나무가 자란다. 그걸 아는지, 겨울이면 많은 되새가 이곳에 모인다. 백 마리가 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수십 마리씩 이룬 무리가 참느릅나무에 모여 열매를 먹을 때면 나무 아래로 싸락눈 같은 부스러기가 내린다. 겨울 공원에 열리는 작은 잔치. 논밭은 사라지고 없지만, 누군가 도시 어느 곳에서 끼니를 굶은 새들에게 밥상을 차리고 있다.
신영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건축학부 조경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조경설계사무소 초신성의 소장이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 것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