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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우먼스케이프] 신사임당, 초충도 병풍에 가려진 풍경
  • 환경과조경 2025년 12월호

안견에 비견되었던 신사임당은 왜 풀벌레 화가가 되었나

풀벌레가 어쨌다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초충도를 몹시 애정한다. 그런데 그것이 신사임당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초충도가 사임당의 그림이란 확증이 없단다. 그래서 작가 확정이 유보된 상태란다. 저런, 사임당에게서 초충도를 빼면 남는 건 뭐지? 5만 원 권 지폐의 앞장? 현모양처? 그랬다면 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현모양처가 어쨌다는 게 아니다.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 얼마나 좋은가. 그것이 강요된 덕목이 아니라면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인간의 덕목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사임당의 작품 세계를 가리고 있던 초충도 병풍―사임당의 초충도는 (거의) 모두 병풍 형태로 전해진다―을 걷어 내니 ‘산수화’가 보인다. 이 무슨 횡재인가! 이제 풍경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결론부터 말하려 한다.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라고 했던가. 사임당의 생애와 작품에 관해 쓰인 그 수많은 글, 논문, 다큐멘터리에 압사할 지경이 되었을 무렵, 나는 다 떨쳐버리고 산수도 두 폭과 포도도(미술관에 가서 훔치고 싶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초충 수묵화 두 점으로 사임당의 작품 세계를 압축해 버렸다. 산수도는 바탕화면에 깔아 놓고 매일 보고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림의 7할이 물이고, 전경부터 물로 시작하기 때문에 쪽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이다.


신화가 만들어지기 전, 사임당은 진정한 문인 화가였다

신사임당은 운이 좋았다. 다른 여성들에 비해서. 1541년, 서른여덟의 나이에 강릉에서 한성으로 이주한 뒤 신사임당은 화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위층 사장파 관료들이 그녀를 안견에 버금가는 산수화가로, 호방한 포도화가로 인정했다. 사대부들이 여성의 그림을 소장하고 감상할 수 있던 상황 자체가 예외적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과연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과연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사극에서 보는 것을 너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때마침 1545년 즉위한 명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문예를 적극 활용했고, 그로 인해 사대부들 사이에 그림과 시문을 탐닉하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이 무렵 그녀에게 주어진 짧은 10년의 세월 (1541~1551) 동안, 그녀는 화가일 수 있었다.

 

사임당의 그림이 당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소세양(1486~1562)과 어숙권의 기록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소세양은 사임당의 포도와 풀벌레 그림에서 먹빛이 스며들며 살아 움직이는 기운을 보았다. 담묵과 농묵이 겹겹이 포개어 만들어내는 생동감, 그리고 선이 스스로 호흡하는 듯한 느낌. 그에게 사임당은 여성이라는 경계를 넘어, 온전히 ‘화가’였다.

 

한편, 어숙권은 사임당의 작품에서 청아한 기품과 단정한 아름다움을 읽어냈다. 그는 사임당의 글씨와 그림 속에 스며든 조용한 힘과 곧은 성정을 높이 평가했고, 그의 그림이 널리 회자된 것은 단지 기교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품격과 고요함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두 사람의 기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사임당은 이미 생전에 화가로 분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후대의 신화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동시대인들이 실제로 바라본 사임당의 정체성은 화가였다. 후세에 발목 잡힌 것은 율곡이라는 천재 아들을 둔 덕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들 덕에 사임당은 산수화가에서 풀벌레화가로, 풀벌레화가에서 현모양처로 정체성의 변화를 겪어야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송시열의 발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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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도’, 비단에 수묵, 31.5×21.7㎝, 간송미술관 소장

 

 

환경과조경 452(2025년 12월호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