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모순적 감정이 들게 하는 존재를 묻는다면, 동물과 아기라고 답하고 싶다. 유튜브 쇼츠에 등장하는 재롱을 한껏 피우는 강아지나 고양이, 아기들은 정말 귀엽지만, 그들과 종일 붙어 있으라고 하면 도망갈지도 모른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거나 아직 떼지 못한 존재를 제대로 돌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언어 대신 행동이나 침묵 등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면밀히 읽어내는 재주가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비언어적 존재를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고 존재의 침묵을 응시하거나 읽는 이야기를 종종 찾아본다. 최근엔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을 봤다. 이 다큐멘터리는 가리왕산 개발 과정을 다루며 숲의 소멸과 침묵을 묵묵히 응시한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왕실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울창한 원시림으로 천년의 숲으로 불린다. 2008년엔 산림 생태계 보전을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가리왕산은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가장 모순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가리왕산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장을 건설하기 위해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베었다. 전세계인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은 숲을 빼앗고, 빈자리엔 숲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애도만 남았다. 영화는 에밀레종 소리가 울려펴지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장면과 잘려나간 고목의 밑동 아래서 산신제를 올리는 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제목인 종이 울리는 순간은 ‘올림픽’이란 희극과 ‘숲의 소멸’이란 비극이 공존하는 가리왕산의 모순을 은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의 서사를 극적인 영화적 문법으로 담았다. 삵, 담비, 갈참나무, 박달나무 등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 숨 쉬던 숲과 굴삭기 등 중장비로 인해 파괴되는 숲의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특히 인부의 벌목 장면이 압권이었다. 작업용 군복을 입은 사내가 전동 톱으로 나무를 벤 후 쓰러진 나무 잔해 위를 밟으며 지나가는 모습은 섬뜩했다. 마치 전쟁 영화에서 전투 후 쓰러진 시체를 밟으며 돌아가는 군인을 연상시켰다.
단순히 개발의 비극만 다루지 않고, 올림픽 종료 후 가리왕산의 개발과 보존을 향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산림 원상 복원을 주장하는 활동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관광 개발을 말하는 지자체장, 경기장 건설 후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은 주민, 존치된 곤돌라를 타고 관광을 즐기는 관광객. 자연을 향한 숭고한 윤리 의식을 강조하는 대신, 다각적인 시선을 담았다. 나아가 가리왕산과 같은 일이 반복되는 2026 동계올림픽 개최지 밀라노 현장을 담담히 보여준다. 잘려나간 밑동이 즐비한 숲에서 죽은 나무를 애도하며 첼로를 켜는 마리오 브루넬로(Mario Brunello)의 모습은 애처로움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자연을 물려줘야 하는가.
이번호의 프로젝트는 자연을 향한 태도를 보여준다. 알리바바 시시 캠퍼스(34쪽)는 포디움 위에 세워진 공원으로 채움 대신 비움을 택했다. 건물 증축 대신 공간을 비워 자연을 초대하고, 유기적 산책로를 통해 연결성을 강화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도모했다. 신양대학교 사우스 베이 캠퍼스(48쪽)는 대상지의 구릉지와 협곡 지형을 보전해 계단식 수로를 만들고, 자생종 식재와 지역 석조물을 활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숨 쉬는 자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연 학습 공동체를 조성했다. 인재와 시민을 양성하며 사회의 기초 시스템을 만드는 학교와 회사로서 자연과 미래 도시 환경을 바라보는 그들의 태도가 읽힌다.
자연은 침묵하고, 인간은 발화한다. 발화하는 인간은 자연을 죽이고, 죽은 자연은 살아 있는 인간을 조용히 응시한다. 인간에게 자리를 내주던 가리왕산은 말이 없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도시는 소란스럽다. 도시에 자연을 초대하는 건 살아 있는 침묵을 만드는 행위다. 살아 있는 침묵을 가지지 못한 도시는 몰락을 통해 침묵을 찾는다.(각주 1)
지금 필요한 건 몰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의 침묵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부디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의 가리왕산 동식물 이름을 더 이상 죽은 자연을 향한 애도가 아닌 살아 있는 자연의 침묵을 위한 주인공으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각주 정리
1.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까치,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