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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글을 써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듭니다
  • 환경과조경 2025년 12월호

토끼풀, 입안에서 세 글자를 굴리면 풀밭 한복판에 누운 기분이 든다. 손끝에 닿는 잎의 촉감은 야들야들하다. 콩과 여러해살이풀인 토끼풀에 대한 감상이다. 반면 2024년 4월 30일 창간한 청소년 언론 「토끼풀」은 단단하다. 「토끼풀」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6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32명이 만드는 종이 신문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학급 신문을 떠올리기 쉽지만 전혀 아니다. 이들은 말한다. “「토끼풀」은 우리의 신문을 만듭니다. 청소년을 대변합니다. 청소년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합니다. 글을 써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듭니다. 우리의 비전은 학교 안에서의 활동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무한한 열정으로 우리의 영향력을 넓혀 나갑니다. …… 보도할 것은 과감히 보도합니다. 글의 힘은 강력합니다.” 입안에서 글자들이 각이 진주사위처럼 굴러다닌다. 눈으로 읽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힘 있는 목소리가 울린다.

 

말뿐이 아니다. 「토끼풀」은 실천한다. 기사로 글의힘을 보여준다. 청소년의 부족한 수면 시간, 학생회 문제, 특수교육 대상 학생 괴롭힘, 학교 급식실 노동 환경, 자율성이 없는 동아리, 대선후보 청소년 공약 등 청소년의 권리와 관련된 기사를 보도해왔다.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문제를 말하며, 폐지 반대 시위와 서명 운동을 조명 중이다.

 

제호가 왜 ‘토끼풀’일까. 청명한 느낌 때문에? 행복과 행운이라는 의미 때문에? 유치한 추 론은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토끼풀은 게임 ‘젤다의 전설: 눈물의 왕국’ 속 ‘토끼풀 신문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나 또한 해본 게임인데 얼마 못 가 관뒀다. 3D 게임이 멀미를 유발하는 줄 몰랐다). 편집장 세나가 운영하는 ‘토끼풀 신문사’는 게임 속 세계 ‘하이랄’의 유일무이한 언론사다. 마왕으로 인해 무질서해진 왕국에서 취재를 멈추지 않고 지역 마구간을 거점 삼아 신문을 배포한다. 기사들을 읽으면 퀘스트 수행에 필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좇는 토끼풀은 하이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마리를 계속해서 던진다. 은평구의 「토끼풀」과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활자에 질려가는 나에게까지 「토끼풀」의 소식이 닿은 건, 10월의 일이다. 2025년 10월 16일, 「토끼풀」은 제17호 신문의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굵고 큰 글씨가 백지 한중간을 차지했다. “은평구 학생 언론 토끼풀은 최근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 그간 기사 내용이나 취재에 외압을 받아왔던 학생들이, 8월 28일 300부가량의 신문과 기자 모집 포스터를 압수당하며 사건이 벌어진 것. 「토끼풀」은 백지 발행과 성명 발표를 통해 편집권 침해와 언론 탄압을 강력히 규탄했다. 다행히도 이 소식이 SNS를 타고 번졌다. 메이저 언론사에서 사건을 다루며 일이 커지자 해당 중학교의 교장은 사과와 무단으로 수거해간 신문을 되돌려줄 것을 약속했다.

 

종종 「토끼풀」을 읽으며, 어느 순간부터 비슷하게 느껴졌던 단어들의 뜻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는다. 꼼꼼함과 조심스러움, 명료화와 단순화 같은 단어들의 미묘한 차이들 말이다. 최근, 2024년 한 중학교에서 토끼풀 동아리를 담당했던 교사가 글을 보내왔다. “오랜만에 토끼풀 사이트를 들어가 누가 글을 보냈나 살펴봤는데, …… 그 속에 정작 너희와 이 사태와 가장 맞닿아 있는 교사들의 글은 많지 않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나는 많은 선생님들이 너희를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데, 왜 너희에게 큰 보탬이 될 글 한 줄 보내기를 주저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그건 바로 교사인 나조차도 이 지긋지긋한 학교에서 위태롭게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야.”(각주 1)

 

수많은 글 중 유독 이 문단에 시선을 길게 두고 있던 게 좀 부끄러웠다. 시간이 참 빠르다. 매년 그러했듯 연말을 장식하는 시상 소식을 실었고, 조경 비평상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다. 늘 이즈음이면 내년에는 각 상의 취지를 다시 생각하며 더 나은 선정 방식을 고민하고, 조경비평상의 목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모집의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을 한다. 반성은 참 쉽다. 해가 갈수록 더 쉬워진다. 토끼풀의 기사와 행보에 호응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을 “어른보다 낫다”고 한다. 보다라는 비교급 조사가 참 어울리지 않는 곳에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은 늘 청소년답게 훌륭하다.

 

**각주 정리

1. 이청아, “내가 아끼는 토끼풀들에게”, 「토끼풀」 2025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