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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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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큰 발의 미학: 흙과 물의 조경가 위쿵젠을 기리며
  • 환경과조경 2025년 11월호

브라질 판타나우의 하늘 아래,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9월 23일, 생태 조사와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이륙한 경비행기가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판타나우 습지에 추락했다. 조경가 위쿵젠(Yu Kongjian), 그는 죽는 순간에도 흙과 물을 연구하고 있었다. 땅이 어떻게 물을 머금고, 인간이 어떻게 대지의 품 안에서 다시 살 수 있을지 묻는 사람이었다. 평생을 ‘생태 문명’이라는 주제를 향해 달려온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한 흙으로 돌아갔다.

 

그의 이야기는 늘 흙에서 시작된다. 중국 저장성 진화의 둥위촌. 논두렁과 저수지, 도랑과 연못이 얽힌 강남의 전형적인 수향水鄕에서 1963년 태어나 자랐다. 그는 “내 고향의 흙은 늘 젖어 있었고, 내 어린 시절의 놀이터는 언제나 진흙탕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 흙 속에서 그는 자연의 리듬을 배웠다. 비가 오면 넘치고 마르면 갈라지는 물과 땅의 관계, 그것이 생명과 생활의 근본 질서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에게 하나의 신념을 남겼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생존의 지혜에서 나온다.”

 

위쿵젠의 2009년 글, “큰 발의 미학(Beautiful Big Feet)”은 그러한 믿음의 고백이다. 그는 ‘전족’과 다를 바 없는 전통 원림의 장식과 사치를 거부했고, 하이힐처럼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세운 도시의 미를 비판했다. 그는 대신 농부의 크고 거친 발, 땅을 딛고 흙과 땀에 젖어 생명을 일구는 발을 아름답다고 통찰했다. ‘큰 발의 미학’은 효율보다 지속을, 형식보다 생존을, 장식보다 생산을 향하는 조경의 미학적 지향이자 윤리적 선언이었다.

 

베이징 임업대 조경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2년 하버드 디자인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난다. 박사 논문에서 그는 ‘생태안전패턴(ESP, Ecological Security Pattern)’이라는 독창적인 조경계획 이론을 제시했다. 생태계의 구조적 안전망을 분석하고 그 위에 도시와 인프라를 배치하는 방법이었다. 그의 이론에서 경관은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라 생태 인프라이자 생존의 조건이었다. 학위를 마친 뒤 SWA에서 세계 여러 도시의 조경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늘 고향의 강과 논둑을 향해 있었다.1997년 귀국 후, 그는 베이징대학교에 부임해 조경 교육과 연구의 새 기틀을 세웠고, 이듬해에는 투런스케이프(Turenscape)를 열었다. 위쿵젠과 투런스케이프는 지금까지 중국 200여 개 도시와 미국, 러시아, 멕시코, 태국 등 10여 개 국가에서 1,0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2003년에는 베이징대 내에 조경과 건축, 도시계획을 통합한 건축조경대학을 창립했고, 조경학을 단순한 설계 기술을 넘어 국가의 생태 안전과 직결된 ‘문명적 실천’으로 확장해왔다.

 

위쿵젠이 세운 또 하나의 계획 철학은 ‘소극적 계획(Negative Planning)’이다. 도시를 계획할 때 개발 가능한 땅을 먼저 찾는 대신, 개발할 수 없는 땅—물길, 습지, 산림, 경작지—을 먼저 지키는 방식이다. 소극적 계획이라는 이름과 달리 그 속에는 적극적 윤리가 있다.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먼저 귀 기울이고 자연의 틀 안에서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획은 통제의 기술이 아니라 경청의 기술”이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 도시계획이 잃어버린 근본을 되새기게 한다.

 

위쿵젠의 계획은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중국의 전통 수리 체계를 현대 도시의 생태 인프라로 재해석했다. 논둑과 제방, 연못과 밭둑의 구조를 모듈화해 도시의 홍수 조절과 정화 시스템에 적용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펀지 시티(Sponge City)’다. 땅이 물을 흡수하고 저장해 천천히 내보내는 자연의 순환 원리를 도시 구조 속에 심은 것이다. 하천과 습지는 다시 도시의 일부가 되었고, 콘크리트 제방 대신 식생이 물을 받아들였다. 세계 조경계가 주목한 그의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물과 흙, 인간이 다시 손을 잡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위쿵젠의 작업은 곧 국가 정책이 되었다. 그는 국가 차원의 ESP 마스터플랜을 이끌었다. 생태 레드라인과 산수 복원 정책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으며, ‘아름다운 중국(Beautiful China)’ 전략의 중심 학자로 활동했다. 위쿵젠과 투런스케이프의 영향력은 중국을 넘어섰다. 그는 IUCN 글로벌 NbS 혁신센터의 디렉터를 맡아 ‘자연기반해법’의 세계적 리더로 자리했고, 투런스케이프가 설계한 여러 공간은 IUCN이 선정한 세계 10대 생태 복원 사례에 네 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위쿵젠은 권력을 지향하지 않았지만, 권력은 그의 언어와 실천을 빌렸다. 그는 도시의 수리 인프라를 바꾸었고, 국가의 계획 체계를 바꾸었으며, 조경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의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이론도, 정책도 아닌 태도다. 흙을 존중하고 물을 두려워하며 자연의 시간을 기다리는 태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위쿵젠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희망’이었다. 사고 며칠 전, 그는 판타나우 습지를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 에덴이 사라져갈 때, 인류는 어디에서 다시 생존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국가 차원의 설계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언제나 평범한 농부처럼 대지를 대했다. “왕처럼 생각하되, 농부처럼 행동하라.” 그가 즐겨 쓰던 이 문장이 그의 조경 철학 전체를 요약한다. 그가 항상 강조하던 “깊은 형태(deep form)”란 결국 그가 평생 찾아 헤맨 귀향의 다른 표현일 테다. 땅과 흙의 정의와 온기로 돌아가는 길. 그 길 위에 크고 거칠지만 아름다운 발자국이 남았다.


이 글의 많은 부분은 베이징대 건축조경대학의 위쿵젠 교수 추모사, “Designing for the Earth: The Life of Professor Kongjian Yu(1963–2025)”를 참조했다. 본지는 379호(2019년 11월호)에서 ‘투런스케이프’의 최근 작업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