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종이를 안 쓰면 누가 쓸까요.” 존재하지 않는 제지 회사에 면접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만수가 써낸 문장이다. 제법 매력적인 문구는 어째서 시대에 맞지 않게 채용 공고를 종이 신문 광고란에만 올렸는지, 어째서 번거롭게 자필로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우편으로 제출해야 하는지를 납득시킨다. 갑작스러운 해고로 취직이 시급한 비자발적 실업자들은 이러한 채용 방식이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는 방편인 줄도 모르고, 이 가짜 회사의 진심에 감탄하며 지원서를 발송한다.
만수는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며 방해가 되는 경쟁자들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모두가 제지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종이밥을 먹은 기술자들이기에 자연스럽게 종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스크린에 담긴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제지 회사만을 고집하는 사람을 비출 때는 답답함과 한심함에 한숨을 참다가, 손에 감기는 특수지의 질감에 대해 행복한 얼굴로 말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는 싱숭생숭해졌다. 나는 그 종이를 기반 삼아 매달 잡지를 펴내는 에디터니까. 종이 시장은 축소될 것이고 종이 책과 종이 잡지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때때로 영화 한복판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레드페퍼 페이퍼―만수가 만든 가짜 회사― 지원자들의 면면을 살피다보면 마음이 더욱 참담해진다. 그들은 꼭 평행우주 속의 만수들 같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의 세계관을 여기에도 적용한다면, 분명 만수의 다중 우주에는 구범모와 고시조와 최선출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 다른 성장 배경에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해온 만수들 같다. 그래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살해 장면들은 꼭 스스로를 잘라내는 것처럼 보인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양심을,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치관을, 또 인간성을 절단해낸다. 처음만 힘들다는 상투적 표현처럼 살인 계획은 점점 치밀해지고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서 느껴지던 망설임도 사라져간다. 앞선 사람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신의 목숨 또한 앗아야 한다는 궤변을 덧붙인다. 행동에 거침이 없고 대담하다.
그렇게 만수는 경쟁자를 없앨 뿐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구직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 모든 계획을 완수한 그는 자신감에 찬 태도로 면접을 본다. 영화 초반의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르다. 물음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고 다리를 떠는 초조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 호쾌하고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취업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잘라서 버리고 온 그가 꼭 만수의 온실 속 철사로 온몸이 칭칭 감긴 분재 같다. 내 눈엔 만수가 포기한 것이 너무 많아 반 토막이 된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당신을 통째로 버리고 오라고 하면 기꺼이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기세다.
잘라내고 짓밟고 일어서 쟁취한 행복은 얼마나 유효할까. 공장 기기 총괄자가 된 만수는 오히려 AI로 자동화된 기기가 매끄럽게 움직이는 걸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흔히 말하는 회사의 톱니바퀴도 되지 못한, 오히려 그 사이에 끼여 자칫 생산성을 낮추게 만들 위험 요소 같이 느껴진다. 딸의 첼로 연주를 듣던 미리(만수의 아내)의 얼굴,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들과 나란히 서서 만수를 배웅하던 미리의 표정이 어땠는지 회상하게 된다.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은 아무렇게나 툭 튀어나오는 표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띄어쓰기 원칙을 무시하고 제목을 붙여 적었다고 한다. 소리 내 읽어보면 허겁지겁 변명하는 듯한 기분이 된다. 왜 나만 이런 수치심을 느껴야 하지? 결정을 내리고 모가지를 썩둑 자른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억울해졌다가 금세 부끄러워진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을까. 글자 사이사이에 있었지만 사라진 그 숨 쉴 틈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말로 향할 수 있었던 선택지였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