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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에디토리얼] 형태의 복권
  • 환경과조경 2025년 10월호

동시대 조경에서 ‘형태(form)’는 먼지 쌓인 창고에 가둬놓아야 할 낡은 가치로 여겨지곤 한다. 조경학과 강의실과 스튜디오에서 형태를 주제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문적인 설계공모나 프로젝트에서 형태만으로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하는 조경가는 하수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다운스뷰 공원 이후, 또는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의 우산 아래에서, 조경 이론과 실천의 주류는 ‘경관이 어떻게 보이는가’보다는 ‘경관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비중을 두어왔다. 눈에 보이는 경관의 형태보다 보이지 않는 경관의 프로세스와 작동에 주목하는 태도는, 건축의 배경이나 녹색 장식술 역할을 미덕이라 여겨온 조경의 관례를 돌파하고자 한 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경관의 작동과 프로세스, 즉 시스템에 대한 강조는 동시대 조경의 한계이기도 하다. 조경이라는 문화적 행위의 산물인 경관은 결국 형태를 통해 구현되고 경험된다. 시스템만으로는 경관의 형태가 생성되지 않는다. 작동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 조경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경관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초점을 두는 최근의 흐름은 인류세(Anthropocene)의 시대정신과 교점을 갖지만, 형태의 차원을 간과하거나 삭제한 조경 설계는 반쪽짜리 경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조경이론가 엘리자베스 마이어는 1969년 이후, 즉 맥하그의 생태계획 이후, 현대 조경이 봉착한 난맥 중 하나로 ‘비가시성(invisibility)’을 꼽는다. 형태에 대한 탐구를 뒷전으로 밀어낸 조경은 디자인을 통해 어떤 형태를 생성해야 하는지 모르게, 즉 경관을 ‘보이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보이는 경관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조경은 자연스럽다는 미명 하에 목가풍 픽처레스크에 의존하거나 대중이 선호한다는 이유로 녹색 화장의 가드닝으로 회귀하곤 했다. 경관의 형태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철 지난 형태중심주의나 장식주의와는 구별되는, 조경의 근본적인 쟁점이다.

 

2025년 제2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조경 설계에서 형태(와 그것의 생성)를 조경 이론과 실천의 토론 주제로 복권한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지금 여기, 조경은 어떠한 형태적 가능성을 탐구해야 하는가? 그러한 형태는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생성되고 발현될 수 있는가?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Form follows what)?”라는 도전적 질문에 열정적으로 응답한 126개 출품작들의 노력과 노고에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번 호 특집 지면에 홍주형‧유민우‧전아현‧김윤태(상명대학교)의 대상작을 비롯해 금상, 은상, 동상 수상작들을 심사평과 함께 싣는다.

 

지난 9월 17일, 형태와 디자인의 접면을 그 누구보다 면밀하게 탐색하고 직조해온 조경가 김용택의 부고가 갑작스레 날아들었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0년 조경설계 서안에서 실무를 시작했다. ‘희원’을 탄생시킨 주역이었던 그는 2001년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로 독립했다. 이후 24년간 그는 경관의 질서에 동화되고 장소의 맥락에 스며드는 그만의 형태 문법을 구축하며 국립수목원, 청와대 사랑채, 윤동주 문학동산, 여풍재‧경여루, 마음치유 사랑병원, 서초호텔, 호시담 카페, 평창동 주택을 비롯한 여러 주택 정원 등 많은 조경 작품을 남겼다. 김용택의 안목과 감각을 통해 구현된 공간들은 그의 온화한 성품처럼 언제나 섬세하고 따뜻했다. 더 평온한 곳에서 더 아름다운 작업 마음껏 펼치시길 기원하며, 그의 두 번째 작품집(2013~2018) 『빛을 담은 작은 정원(Garden with Light)』(픽셀하우스, 2019)의 서문 일부를 옮긴다.

 

“내가 만드는 정원에서 땅의 형상은 어릴 적 고향 집 앞산을 닮았다. 또한 넓게 펼쳐진 정원은 집 앞에 있던 논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자연과 많이 접하며 지낸 내 어린 시절이 지금의 작업으로 연결된 것 같다. 공사를 할 때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해 두고 정원을 만들지 않는다. 조경가인 나는 현장을 세밀하게 보고 어울리는 공간을 구상한다. 정원을 만들어 가면서 현장에서 느낀 새로운 비례를 찾아 시설물을 놓고 식재를 한다. …… 나는 내가 만드는 어느 정원에서든 마당을 비운다. 그리고 그곳에 집 앞과 저 멀리 원경으로 보이는 풍경을 함께 담아내는 것이 내 조경 방법이다. 비워진 마당에 빛을 담는다. 멀리 있는 풀은 빛으로 반짝이고, 가까이 있는 꽃은 잔디 또는 흙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 식물의 질감과 색감은 빛에 따라 달라진다. 그 색감을 적절히 연출하고 질감을 풍부하게 해줄 때 정원은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된다. …… 20여 년 정원을 만들어오며 설계가 점점 더 단순해지는 것 같다. 어떤 질감의 공간을 가지느냐가 중요해졌다. 특정한 질감을 만드는 것은 섬세한 디테일로 이루어진다. 작고 섬세한 디테일이 모여 큰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 분위기 있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고 나면 나는 또 다른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