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3일, 보라매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제2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시상식이 개최됐다. 이번 공모 주제는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Form follows what)?’다. 배정한 교수(서울대학교, 한국조경학회 회장)는 이 도전적 질문은 “조경 설계에서 형태(와 그것의 생성)를 조경 이론과 실천의 토론 거리로 복원시킨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주제 해석을 돕고자 한국조경학회는 3월 14일,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해, 조경 디자인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요소인 형태 생성의 접근법과 담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공모에는 126개 작품이 접수됐다. 주제 정합성, 창의성, 논리성, 완성도 등을 심사해 본상 수상작 7작품과 장려상 및 입선 수상작 15작품이 선정됐다. 심사위원장인 박명권 대표(그룹한어소시에이트, 한국조경가협회 회장)는“특히 대상작은 오염된 공간을 단순히 제거의 대상이 아닌 도시와 시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출발점으로 제시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같은 공간에서 제22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전시회의 개막식이 열렸다. 전시는 보라매공원 관리사무소의 1층 중정과 2층 로비 공간을 활용해 연출됐다. 실외와 실내가 만나는 이 전시 공간에서 작품뿐 아니라 보라매공원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2층 로비에서 상영되는 작품 설명 영상, 실내 공간에서 열리는 한국조경가협회 기성작가전이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전시는 10월 2일까지 진행됐다. 공모전 주제와 심사 총평을 수록하고, 대상부터 동상까지의 수상작을 소개한다.
주제: 형태는 무엇을 따르는가
모든 디자인은 근본적으로 형태를 만들어내며, 그 형태가 탄생한 이유와 근거에 대한 고민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근대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명제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건축과 디자인 분야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넘어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려는 시도 또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경은 과연 형태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
근대 이전의 정원 형태가 종교적, 정치적 의미에 의해 도출되었다면, 19세기 중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조경을 공원으로 대표되는 공공 영역의 예술로 다루기 시작한 이래로 조경가는 도시 조건과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실용적 형태를 탐구해 왔다. 20세기 후반 생태적 가치가 부상하면서 자연의 프로세스를 활용한 지속가능한 경관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로 생성된 가시적인 형태가 SNS 친화적인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조경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조경 디자인에서의 형태 만들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안한다. 지금 여기에서, 조경은 어떤 형태적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가? 그러한 형태는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해 생성될 수 있는가? 조경의 현재와 미래를 열어갈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초대한다.
심사 총평
조경의 역사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이집트의 장제신전, 바빌론의 공중정원 등 고대의 정원들은 신을 위한 공간이거나 자연을 동경하며 만든 정원이었다. 중세시대에는 수도원과 성을 중심으로 종교 의식을 위한 정원으로 발전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본주의 철학이 발달하면서 엄격한 고전적 비례와 축을 중심으로 원근법을 활용한 부호들의 호화스러운 정원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대표되는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절대왕권의 상징으로서 평면 기하학식 형태의 정원이 탄생했다. 오늘날까지 정원의 대표적인 모델이 된 18세기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자연주의, 그리고 산업혁명과 민주주의의 발달로 탄생한 계몽주의 사상과 낭만주의 철학의 발전과 더불어 태어났다.
근대 이전의 정원 형태가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의미에 의해 도출됐다면, 19세기 중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조경을 공원으로 대표되는 공공 영역의 예술로 다루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 이안 맥하그는 장식적인 조경 디자인 전통에 반하여 조경 설계에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과정적 시스템을 확립시켰다. 이후 조경이 생태학적 계획·이론을 근간으로 한 과학적인 접근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반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인 환경 결정론을 벗어나 보다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예술에 가까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부류가 생겨났다. 최근에는 조경 디자인이 도시 조건과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실용적 형태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점차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번 공모는 조경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형태’에 대한 프로세스와 방법에 주목하고, 학생들의 진지한 탐구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며 진행됐다. 다소 모호하고 광범위한 공모 주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조경학회는 주제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학생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모를 통해 참가자들은 주제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되는 공간의 형태에 대해 다양한 대안과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쏟아냈다. 여느 해 못지않게 많은 126개의 작품이 출품됐고, 깊이 있는 심사가 진행됐다.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운영위원회의 주관으로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가협회 등 관련 단체가 추천한 7인의 심사위원이 엄격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 기준은 공모전 주제와의 정합성, 대상지 분석 및 해석의 충실성, 개념의 창의성, 설계 과정의 논리성, 개념과 결과물(평면, 이미지 등)의 연관성, 설계 매체의 창의성과 표현의 완성도 등이며,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거쳤다. 마감 시간 위반, 제출물 미비, 소속이나 이름 기재 등 공모 지침 위반 사항을 검토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자유 토론이 진행됐고,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게 대상이 선정됐다.
대상작 ‘소일 인 모션(Soil in Motion)’은 한때 미군 골프장으로 사용됐으나 현재는 중금속 및 유류 오염이 남아 있는 채 도심 속에 방치된 ‘성남 GC’를 대상지로 발굴했다. 기술적 조치만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도시적 신뢰와 생태 흐름의 단절이라는 복합적 문제를 해소하고, 정화의 과정을 시각화함으로써 시민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적 회복을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오염을 단순히 제거의 대상이 아닌, 도시 회복을 위한 출발점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제기하고 정화의 흐름을 도시적·지형적 흐름으로 전환하는 데 주목한 전략이 공모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금상작 ‘발현: 자라섬의 잠재된 형태를 일깨우다’는 집중 호우와 소양강댐 방류 시 침수 위험에 빠지는 자라섬을 다뤘다. 북한강 본류와의 흐름 연결과 수리 에너지 분산을 통해 재해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만들어 생태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지속가능한 이용과 관광 가치를 아우르는 복합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계획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은상작 ‘침묵의 땅, 살아나는 기억: 경산 코발트 광산 메모리얼 조성’의 대상지인 경산 코발트 광산은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대표적 광물 수탈지로, 6.25 전쟁 중 대규모 민간인이 희생된 아픔의 공간이다. ‘인지하다-기억하다-마주하다’라는 세 단계의 설계 전략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리고 역사적 교훈을 전달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시켜나가는 경험적 추모의 여정을 구성했다. 공간의 형태를 상징적이고 밀도 있게 구성한 전략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다른 은상작 ‘정원장庭園葬’은 산 지형 봉분식 공동묘지를 새로운 장사 방식인 정원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제시했다. 미래지향적 장사 문화로, 전통 묘지를 공원적 가치와 자연과 인간이 융합된 상징성을 지닌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키는 아이디어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동상작 ‘임브레이스 더 타이드(Embrace the Tide): 흐름을 받아들인 산업유산’은 용도 폐기되어 형태만 남아 있는 산업유산인 조선내화 벽돌공장 부지를 다뤘다. 공장의 제조 공정 과정과 흐름을 기록하면서 자연의 흐름을 수용하는 새로운 보존 형태를 제안한 점이 훌륭했다. 동상작 ‘어반 체인(Urban Chain): 다층적 링이 엮어 내는 흐름, 도시와 캠퍼스를 잇다’는 지상 철도와 차량기지 등으로 단절된 대상지 일원을 지하화나 이전 중심 해결 방식이 아닌 공존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차량 기지 상부 공간을 오픈 캠퍼스로 전환하고 도시와 대학, 지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복합 문화 공원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동상작 ‘들안의 예술길’은 들안로를 활성화해 들안예술마을의 중심축으로 작동하게 했다. 나아가 수성못과 신천 등 인근의 주요 거점까지 들안예술마을을 확장시키는 디자인 전략이 호평을 받았다.
공모전을 준비하며 학생들은 팀원들과 수없이 많은 토론과 협의를 이뤄내는 어려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학생들에게는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아쉽게도 수상을 하지 못한 많은 학생에게도 격려를 전한다. 비록 낙선의 고배가 달게 느껴지진 않겠지만, 앞으로 펼쳐질 무수히 많은 도전 앞에서 이번 공모에서 동료와 함께한 경험들이 그 빛을 발휘할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지난한 과정을 이겨낸 여러분 모두가 진정한 우승자다.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박명권 심사위원장,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
* 환경과조경 450호(2025년 10월호) 수록본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