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턴 생활
“안녕하세요. 국민체육진흥공단 기념사업부 기념사업팀 인턴 김수린입니다.” 스물여섯 살이 되던 해,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두고 진로와 취업 준비로 분주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목표는 단순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인 연봉을 받는 것. 매일 NCS 문제집을 풀고 스터디를 오가며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시간을 묵묵히 쌓아가던 어느 날, 국민체육진흥공단 인턴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지원서를 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원하는 취업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기대로 설레었다.
새로 산 정장을 입고 첫 출근하던 날, 국민체육진흥공단 기념사업부 기념사업팀으로 발령받았다. 근무지는 올림픽공원 안에 자리한 소마미술관이었고, 주어진 역할은 조각공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인턴으로 뽑힌 서른 명 남짓한 동기들 대부분은 서울올림픽파크텔 안에 있는 본사 건물에서 일했지만, 나를 포함한 두 명은 본사에서 도보로 15분쯤 떨어진 소마미술관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나에게는 익숙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소마미술관이지만 누군가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왜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미술관을 운영해?”라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인턴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올림픽공원의 역사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운영 시스템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석 달 동안 소마미술관에 출근하며 마주한 올림픽공원은 단순히 배경 지식을 넓히는 정도의 경험을 넘어 나에게 특별한 추억과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그 시절 그 기억을 더듬어,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과 조각공원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 속에 담긴 올림픽공원의 역사와 매력을 하나씩 꺼내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기관일지 모르지만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제법 인기 있는 직장이다.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어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고 연봉 또한 공기업 중에서는 나름 괜찮은 편에 속하니 ‘알짜배기 직장’으로 불릴 만하다. 1989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은 88 서울올림픽을 치른 뒤 남은 기금과 경기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설립된 기관이다. 지금도 올림픽경기장, 올림픽공원, 태릉선수촌 등 굵직한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올림픽공원을 두고 종종 이런 의문이 따라붙는다. “왜 올림픽 경기를 치르는 데 굳이 거대한 녹지와 미술관, 조각공원까지 함께 만들었을까?”
사실 올림픽공원이 자리한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일대는 본래 체육 시설 부지로 점 찍혀 있던 땅이다. 1968년 서울시 도시계획과가 주택 개발을 막기 위해 이곳을 ‘국립종합경기장 후보지’로 지정해 놓았는데, 그 결정이 훗날 올림픽공원 부지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초, 서울에 올림픽 유치를 계획하며 검토했던 비교 대상은 일본 도쿄올림픽(1964)과 독일 뮌헨올림픽(1972)이다. 도쿄올림픽은 국립경기장 주변에 숲과 정원, 공원 녹지 공간과 인접해 있어 자연과 공존하는 풍경을 연출했고, 뮌헨올림픽의 올림피아 공원은 경기장과 수영장, 공연장을 인공 호수와 언덕, 녹지와 함께 조성해 ‘공원 속 올림픽’이라 불렸다.
도쿄와 뮌헨 사례를 보며 서울에도 단순히 경기장만이 아니라 공원과 녹지를 통한 도시와 자연과 함께하는 이미지 연출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확산됐다. 당시 잠실에는 이미 잠실주경기장이 있었지만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었고, 서울의 자연환경과 녹지를 보여주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런 한계 때문에 방이동 일대가 새로운 올림픽 부지로 확정되어 올림픽경기장 건립과 더불어 대규모 공원을 포함한 복합적 계획이 추진됐고, 지금의 올림픽공원이 만들어지게 됐다.
올림픽공원
공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민원이 들어온다. 흥미로운 점은 올림 픽공원 안에서도 민원을 접수하는 부서가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술관 포스터가 야하다, 교체해 달라”, “조각 작품 설명문을 수정해 달라” 와 같은 일은 국민체육진흥공단 기념사업팀의 몫이지만, 나홀로나무가 있는 몽촌토성 일대에서 발생하는 민원은 서울시가 담당한다. 이는 공원 소유 구 조와도 관련 있다. 현재 올림픽공원은 서울시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나누어 소유하고 있는데, 하나의 공원 소유권이 둘로 나뉘게 된 데에는 바로 몽촌토 성의 존재가 큰 영향을 끼쳤다.
올림픽공원 부지인 방이동에는 본래 백제 초기 도읍지와 관련된 유적인 몽촌토성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 가치는 널리 알려 지지 않았다. 당시 주민들에게는 그저 ‘동네 언덕’쯤으로 불렸고, 심지어 잠실 매립 공사 때는 토성을 헐어 준설토로 쓰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전환점은 1980년대 초다. 1982년 몽촌토성이 국가 사적 제297호로 지정되면서 보존의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됐고, 이듬해인 1983년부터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본격적인 발굴 조사에 나섰다. 1984년 4월 올림픽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발굴과 공사가 동시에 진행됐고 일부 구간은 발굴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공원은 토성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완성됐다. 몽촌토성은 훼손의 위기를 넘어 공원의 핵심 역사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다. 토성을 둘러쌌던 해자는 인공 호수와 분수, 산책로로 새롭게 태어났으며 성곽 일대는 생태·역사·교육 공간으로 활용됐다. 총 1,823억 원이 투입된 공사는 1986년 5월 28일 준공됐다. 이후 소유권도 명확히 구분됐는데, 국가 문화재인 몽촌토성과 역사 보존지·생태 녹지는 서울시가 맡고, 올림픽공원과 부속 시설, 조각공원 등 올림픽 개최와 관련된 구역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유로 정리됐다.
조각공원
인턴 생활 동안 내가 올림픽공원을 가장 많이 누린 방식은 조각 작품을 보 며 산책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맡은 일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작품을 하나하나 바라보니 예상외로 즐거움이 컸다. 사람들이 생각 하는 것보다 올림픽공원에는 훨씬 많은 조각 작품이 있다. 일부 언론은 이 곳을 세계 5대 조각공원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미국의 스톰 킹 아트센터, 영국의 요크셔 조각공원,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공원, 일본 하코네 조각의 숲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한국의 올림픽공원인 셈이다.
올림픽공원은 1986년 준공 당시만 해도 경기장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조각공원으로 새롭게 재조성됐다. 이는 ‘문화올림픽’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서울올림픽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조각공원화의 목표는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전승’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는 올림픽공원을 일회성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문화와 예술의 공간으로 남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 준다.
조각 작품을 공원에 영구 설치하는 방식은 1958년 오스트리아 장크 트 마르가레텐(St. Margarethen)의 채석장에서 처음 시도됐다. 세계 각국의 조 각가들이 모여 현장에서 직접 석재를 다듬어 작품을 제작하고 완성된 작 품을 현장에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 모델은 냉전기 동서양 작가들이 만나는 국제 교류 무대로 발전했고, 멕시코올림픽(1968), 일본 오사카 만국박람회(1970) 등을 거치며 세계 각지로 확산됐다. 서울올림픽도 이 흐름을 이어 받아 1987년 여름 제1차 국제 야외 조각심포지엄을 통해 암석과 콘크리트 를 활용한 17점의 작품을 설치했다. 1988년 봄에 열린 제2차 국제 야외 조각심포지엄에서는 금속·주철·레진·목재 등을 활용한 19점의 작품을 추가했다. 같은 해 가을에 열린 국제 야외 조각초대전에는 세계 각국 작가들이 참여해 155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공원의 성격을 한층 풍부하게 만 들었다. 현재는 약 220여 점의 조각 작품이 공원에 설치되어 있으며 누구나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원이 됐다.
소마미술관
내가 근무했던 소마미술관은 2004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개관한 곳으로, 본래 명칭은 ‘서울올림픽미술관’이다. 2006년에 영문 명칭인 Seoul Olympic Museum of Art의 머리글자를 따 소마(SOMA) 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까지 스포츠와 예술의 접점을 ‘몸’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미술관에서 근무하던 인턴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바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내리고 우편물을 정리했다. 작품 공모 면접을 위해 회의실을 정리하고 작가들에게 면접 순서를 안내하고 회의록을 작성하는 일도 맡았다. 전시 홍보를 위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관리하거나 설문조사 결과를 정리하는 일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인턴 업무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조각 투어 체험학습을 예약하고 투어를 따라다니는 일이다.
소마미술관은 상반기(4~5월)와 하반기(9~10 월)에 ‘테마가 있는 조각 산책’이 라는 조각공원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소마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에서 예약하거나 대표 번호로 연락하면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소마미술관으로 걸려 오는 문의 전화를 받고 일정을 조율하는 일을 맡았다. 투어 문의는 보통 올림픽공원 주변에 있는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단체 투어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투어 당일이 되면 도슨트가 사무실로 와서 마이크를 장착하고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인솔했다. 도슨트는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들은 도슨트가 낸 퀴즈를 맞히며 뿌듯해하기도 하고 스케치북에 작품을 보고 따라 그려보기도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는 시간은 항상 즐거웠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 조경이 이렇게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취업 준비와 진로 걱정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나도 모르게 풀리는 느낌이었다. 인턴 3개월이 끝난 무렵, 최우수 인턴상을 받아 입사할 때 가산점을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조경 설계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설계를 업으로 삼는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주변 선배들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가면 삶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으니까. 공기업 인턴으로 근무하며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땡 하면 퇴근할 수 있었지만, 이것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공원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조경가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값진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언젠가 이렇게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물여섯 살 여름이 지날 무렵, 조경 설계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김수린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조경을 복수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소마미술관에서 인턴을 경험하고, 2018년 CA조경기술사사무소에 입사해 새로운 광화문광장 기본 및 실시설계, 종로구 통합청사 기본 및 실시설계, 디지코 KT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설계 실무 경험을 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