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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에디토리얼] 여섯 조경가의 정원을 엿보다
  • 환경과조경 2025년 9월호

가끔 공립 도서관 같은 곳에서 시민 대상 강연을 할 기회가 있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겸 강의 시작하자마자 질문을 먼저 받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거의 똑같은 질문이 매번 나온다. “교수님 집에는 어떤 정원이 있나요?” 아마 조경학과 교수라면 근사한 정원을 직접 만들고 가꾸며 살 거라고 짐작하는 것 같다. “어쩌죠, 저, 정원 없어요. 아파트에 삽니다.” 내 대답에 청중들은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 학과 교수 일곱 명 모두 정원 없는 집에 살아요”라고 한마디 덧붙이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화자와 청자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모두 정원을 꿈꾸지만 거의 모든 이의 삶에 정원이 없는 도시의 삶. 결코 역설이 아니다. 희망과 상실, 동경과 결핍은 정원의 본질이다.

 

어떤 특집은 기획에만 몇 달이 걸린다. 계획을 다 끝낸 뒤 접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호 특집 ‘조경가의 정원’의 주제를 정하고 얼개를 잡는 편집부 회의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가 ‘정원도시’를 외치며 도시 정책의 전면에 정원을 내거는 시대, 웬만한 도시는 전부 정원박람회를 개최하고 ‘국가정원’이라는 유례없는 제도에 목을 매는 시대, 조경가보다 정원‘작가’라는 거북한 명칭이 더 잘 먹히는 시대. 과연 조경가들은 어떤 정원을 꾸리며 살고 있을까. 이번 특집은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의뢰인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 공간에 얽힌 그들의 정원 실천을 엿보고자 했다.

 

예상보다 필자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우리 학과 교수들만 정원 없는 집에 사는 게 아니었다. 남의 집 정원 설계는 많이 하지만 자기 거처에 정원을 마련하고 사는 조경가는 드물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세대와 성향의 조경가 여섯 명을 섭외했다.

 

박윤주(스튜디오 천변만화)의 ‘대도시의 실험장, 빨간기와 정원’은 서울 연희동의 아주 작은 삼각형 마당이다. 소유가 아닌 관계를 실험하는 경계 없는 정원에 도시의 다양한 사람과 비인간 존재들이 얽히고 흩어진다. 이 정원은 한 개인의 안온한 휴식처가 아니다. 우연과 불확실성을 끌어안는 도시 풍경의 축소판이다. 

 

김진환(랩디에이치 서울)의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원’은 집 옥상 한켠의 작은 공간에 우유 상자 플랜터들을 쌓아 만든 즉흥의 정원이다. 값싼 재료와 씨앗이 일상에 스며든다. 무심함과 기다림이야말로 정원 돌봄의 본질임을 알려준다. 의도적으로 뭉툭한 디자인을 선택한 그의 태도가 오히려 감각적이다.

 

이홍선(팩토리 엘)의 ‘소소한 나의 쉼터’는 손주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근교에 마련한 주택과 정원이다. 뒷산과 연결된 풍경 속에 건축과 조경이 어우러진 이 공간은 특별함을 내세우는 정원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위한 무대다. 김영준(게이트준)의 ‘마음껏 만든 정원’은 지극히 사적인 정원이야말로 조경가 개인의 고집과 취향을 온전히 펼칠 드문 기회임을 보여준다. 부모를 위해 집과 정원을 직접 지으면서 그는 사회적 통념을 거스르고 자신이 선택한 나무를 마음껏 심는다.

 

주신하(서울여자대학교)는 서울 부암동 단독주택의 작은 마당에서 ‘정원이 만든 작은 변화’들을 경험하며 산다. 정원은 그에게 식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열어주었고, 계절과 날씨를 신체로 느끼는 감각을 회복시켜주었다. 부지런한 노동과 느슨한 여유의 원천인 정원이 그의 일상을 바꿔놓았다. 김훈연(사람과나무 디자인연구소)의 정원은 ‘정원과 공존을 꿈꾸는 조경가의 실험장’이다. 그는 제주 중산간의 집에서 ‘최소의 정원’을 실천하며 정원과 생태, 사람과 시간의 관계를 되묻는다. 기존 식생을 살리고 최소한의 관리로 유지되는 이 정원은 생활과 생태가 맞닿은 열린 과정의 가치를 보여준다.

 

여섯 조경가의 정원 원고를 모아놓고 보니, 이번 지면은 가장 평범하고 솔직한 ‘현대 정원론’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들의 정원은 일상과 단단히 연결되지 못한 채 부풀려져 소비되고 있는 최근의 ‘정원 열풍’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들의 정원은 직업적 실험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피로한 일상을 위로하는 안식처이자 자신의 취향이 짙게 밴 밀실이다. 크기와 맥락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의 정원하기(gardening)는 도시의 삶을 가꾸고 돌보며 변주한다. 때로는 즉흥적이고, 때로는 고집스럽고, 때로는 느리고 소소하지만, 정원 실천은 결국 정원을 통해 자기 삶을 번역하려는 몸짓이다.


최영준(서울대 교수)이 기획하고 얼라이브어스(강한솔, 김태경), 안마당더랩(오현주, 이범수), 디자인 스튜디오 도감(최웅재), 조제(조용준),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원종호, 정욱주), 랩디에이치(최영준), 오픈니스 스튜디오(최재혁)가 참여한 조경가 그룹전 ‘연두빛 사람들(Verdant Collectives)’ 소식을 ‘뷰’ 지면에 싣는다. 지난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3전시실에서 개최된 이 전시는, 동시대 한국 조경의 지향과 실천장을 입체적으로 담아내 전문가 사회뿐 아니라 대중의 주목을 모았다. 한국 조경의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다양한 형식의 전시와 비평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