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의 물살을 거슬러 스위스 알프스를 향해 오르다 보면 발원지 근처 깊은 계곡 중 하나, 발스(Vals)(Graübunden)에 이른다. 알프스 동쪽, 고립된 이 계곡을 깎아온 조각가는 빙하였다. 수십, 수백만 년 동안 계곡에서 확장과 후퇴를 반복해온 거대한 빙하는 지표를 아주 천천히 이동하며 계곡을 넓고 둥글게 깎았으며, 훗날 지질학자들이 현애 절벽, 빙퇴석, 빙하호라 이름 붙인 조각들을 남겼다.
그러다 약 2만 년 전부터 지구의 기온이 오르자 빙하는 녹기 시작했다. 빙하는 전처럼 계곡을 깎을 수 없었다. 끝내 강물이 된 빙하는 계곡 가장 아래쪽에 앉아 홀로 돌을 가지고 놀며 새로운 조각을 상상했다. 달그락 소리를 듣는 놀이. 모난 곳을 찾아 문지르는 놀이. 돌로 시를 쓰는 놀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따뜻해지는 계곡에서 강물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돌에 이끼가 자라더니 작은 동물들이 찾아왔고, 나무가 자랐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계곡을 찾은 인간들은 그가 깎은 돌을 가져다 집을 짓고 소와 염소를 키우며 생존했다. 그들은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계곡의 숲과 들판을 가꿨다. 이때까지도 조용하던 계곡은 어느 한 인간1이 발스 온천(Therme Vals)이라 불리는 건물을 지으며 큰 변화를 맞이한다. 계곡의 빛과 물과 돌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이 건축에 사람들은 경탄했고, 계곡은 영감과 평온을 찾는 이들로 붐비게 된다.
사람들이 이 걸작에 주목하는 동안에도 강물은 계곡 가장 낮은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조각에 몰두했다. 어제 아침 강가를 걷던 나는 놀이인지 시 쓰기인지 모를 조각에 열중하는 그를 보았다. 매끄럽고 납작한 돌을 모아 한 방향으로 향하게 서로 포개어 쓴 시. 지질학자는 이 모습이 나비 날개나 물고기의 비늘을 닮았다 하여 인편구조라고 불렀지만 강물은 분명 다른 제목을 붙였을 테다. 시의 제목을 묻고 싶었지만 우리의 언어는 그가 이해하기에 너무 거칠고 모나, 아무것도 물을 수 없는 나는 몇 개의 단어를 손안에서 문지르며 조용히 일렁이는 물결만 바라봤다.
**각주 정리
1.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 1943~). 스위스의 건축가.
신영재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 건축학부 조경학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조경설계사무소 초신성의 소장이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아름답고 쓸쓸한 것에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