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기와 정원은 서울 연희동의 작은 숙소 ‘빨간기와’의 마당에 자리한 15㎡ 남짓한 공간이다. 2023년 말, 처음 이곳을 계획할 땐 경험 삼아 풀이나 조금 심어볼 요량이었다. 어쩌다 보니 연희로 이사까지 왔고, 지금은 매일 정원을 드나들며 때때로 이곳에서 릴스를 찍기도 한다.
빨간기와 정원은 관목 1본, 초화류 47본이 살고 있는 작은 땅이지만, 두 명의 ‘낯선 이’가 ‘우연히’ 만나 만든 곳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대도시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 빨간기와의 운영자 주은을 만나게 된 건 몇 가닥의 선이 얽히면서였다. 함께 장애학을 공부하고 있는 석운동의 공간 디자이너 지원이 이끄는 세미나에서 ‘약수터’라는 공유 오피스의 운영자 민지를 만났고, 민지와 친해지고 싶어 약수터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에 갔더니, 그 모임을 기획한 주은이 있었다.
집 가는 길이 같았던 주은과 경복궁역까지 함께 걸었고, 그 5분 동안 주은이 연희동에 숙소이자 작업실로 쓸 작은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그곳에 삼각형의 작은 마당이 있어 어떻게 쓰면 좋을지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대뜸 “거기 꽃 좀 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빨간기와 정원이 시작되었다.
눈치 챘겠지만, 사실 빨간기와 정원은 조경가 박윤주 개인 소유의 정원이 아니다. 월세를 내고 있는 것은 주은이고, 대문을 떼어냈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택가에 있으니 집 앞에서 담배를 피다가 슥 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예쁜 옷을 입고 연희동 데이트를 하던 연인이 잠시 들어와 사진을 찍고 가기도 한다. 손님이 머무는 숙소의 정원이기에, 얼마 전에는 박윤주 개인의 정원이었다면 개의치 않았을 벌집을 정리하기도 했다.
나는 이곳을 식물들이 중심이 되어 관계를 조직해 가는 느슨한 형태의 코리빙 하우스로 보고 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이라이트에 coliver(거주자), visitor(방문자), neighbor(이웃)라는 카테고리로 이곳에 얽혀 있는 이들을 기록해온 것도 그런 관점에서 정원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정원의 운영자이면서 동시에 잠시 머물다 가는 방문자 중 하나다.
빨간기와 정원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곳을 박윤주라는 조경가 개인이 꿈꿨던 소망이 담긴 장소로 만든다. 이곳에서는 도시의 다른 공공 공간들처럼 다양한 욕망이 드러나고 어지럽게 뒤섞인다. 우리는 이 순간들을 포착하고 더 많은 이를 이곳으로 불러 모아 이미 얽힌 실을 더욱 복잡하게 헝클어뜨리려 한다. 이런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조경가를 기른 땅은 옛 마산시와 마전리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자라 그것을 재현하는 걸 꿈꾸며 조경을 시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연에 대한 결핍으로 이 일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마산 중에서도 매립으로 채워진 지역인 신마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후자에 속한다. 유년 시절을 보낸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기 전, 그곳에는 마산만이 있었다.
마산만의 매립은 크게 두 시기에 걸쳐 진행되었다. 먼저, 근대 개항기이자 일제강점기였던 1899년부터 1945년 사이, 마산만 남단에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연안을 따라 투기 목적의 매립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후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마산에 한일합섬과 한국철강 등 대형 산업체가 들어서고 마산수출자유지역이 개발되면서 또 한 번의 대규모 매립이 이루어졌다. 이 두 시기를 거치며 마산만은 절반 이상 매립되었다. 오염물 관리나 수질 정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마산만으로 유입되는 오폐수의 양은 급격히 증가했다. 좁고 긴 지형으로 해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매립으로 자정 기능마저 상실한 마산만은 오염에 더욱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1976년 가포해수욕장이 폐쇄되었고, 1979년 어패류 채취가 금지되었다.
2000년대는 연안오염총량관리제도가 시행되고 봉암갯벌 매립이 취소되는 등, 1970년대부터 제기되었던 마산만 환경 악화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진행된 시기다. 하지만 역사는 선형으로 흐르지 않는 법이어서, 같은 시기에 마산해양신도시라는 64만 2,167㎡ 규모의 인공섬이 건설되기도 했다. 나는 창밖으로 이 섬이 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었다.
악취 때문에 바다 쪽으로 가지 않았던 기억, 태풍 매미로 많은 것이 떠내려간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시에서 또 다른 대규모 매립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어렴풋한 감각이 있었다. 결국 석사 논문을 핑계 삼아 12명의 사람들과 만나 마산만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 무역 지역에서 일한 사람, 오수 처리 시설을 관리해온 사람, 홍합 양식을 하는 사람, 마산만 앞 아파트에서 살았던 사람, 마산만을 연구하는 사람 등 마산만과 저마다 다른 관계를 가진 이들이었다. 작은 인터뷰 안에서도 공적인 의견과 사적인 의견이 뒤섞여 새어 나왔다. 우리가 욕심을 내는 일에 좀 더 익숙했더라면, 이런 욕심들이 서로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신마산에서 몇 개의 산을 넘어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마전리가 나온다. 얕은 바다와 논밭이 뒤섞인 풍경 속에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써내려온 길고 긴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엄마와 아빠는 각각 거제도와 마전리에서 마산으로 유학 와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자식을 길렀다. 퇴직이 가까워졌을 때, 두 사람은 마전리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마전의 땅에서 나오는 것들은 또 다른 연결선을 그렸다. 어떤 선은 블루베리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꽤나 선명한 형태를 띠고 있었고, 어떤 선은 블루베리밭 구석에 심은 꽃의 씨앗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희미한 형태였다. 시간을 넘나드는 연결도 있었다. 10살 무렵 식목일 행사에서 받아온 무궁화가 밭에서 자라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마산을 떠난 나를 기억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할머니가 뿌려 두었던 하늘마 씨앗이 자라나 식탁에 올라오기도 했다. 마산에서 내가 기른 것이 어떤 바람이라면, 마전리는 그 바람이 어떤 형태로 피어날 수 있는지를 슬며시 보여줬다. 나는 마전과 마산에서 모은 실들을 붉은 캐리어에 담아 서울에 왔다. 그리하여 땅에서 자라는 것들과 교류하며 만드는 일종의 관계 실험장, 빨간기와 정원이 탄생했다.
빨간기와 정원에서 진행한 첫 관계 실험은 계약의 부재로부터 탄생했다. 계약이 없었기 때문에 주은과 나 사이에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라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친구를 돕는 것이라 하기엔 우리의 사이는 조금 멀었다. 주은과 나는 미팅이랍시고 모여서 자주 다른 얘기를 했다. 두 시간 정도 사는 얘기를 하다가, 한 시간 정도는 안산이나 홍제천을 걸었고, 헤어지기 30분 전에야 부랴부랴 프로젝트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결과물도 기한도 없었다.
느리게, 잡초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과 고물古物을 좋아하는 주은의 마음이 만나고, 사람들이 정원에 와 소원을 빌고 가기를 바라는 주은의 바람과 공공 녹지에 대한 다양한 욕심을 모을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나의 바람이 만났다. 마당에 풀 좀 심자는 당초의 계획은 그 과정을 담은 레터를 쓰고, ‘다른 종種과 만나는 밤’이라는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후원자를 ‘연구 참여자’라 부르는 텀블벅을 진행하고, 오픈데이를 계획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여전히 문 안의 것들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글로 쓰인 세상 바깥의 것들과 맞닥뜨렸다. 우선,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땅 밑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빨간기와 정원 또한 매립지 위에 지어진 건물이었던 것이다. 당초 내가 꿈꿨던 것은 콘크리트 바닥을 깨고 우리 집에 심은 나무와 옆집의 살구나무가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만나는 장면이었다. 책을 읽으며 구상한 이 시나리오는 홍제천 지류가 흐르는 소리 앞에서 빠르게 무색해졌다. 사실 구조적 문제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콘크리트를 깨는 공사를 했을 때 빨간기와 정원 지하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우리가 웃으며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결국 콘크리트 바닥을 그대로 두고 화단을 쌓아올리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을 때, 뜻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음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다 어느 가을 오후, 빨간기와 정원의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날아다니는 존재들을 마주했다. 그 작은 땅에 쌍살벌이 오고, 호박벌이 오고, 풍뎅이가 오고, 달팽이가 오고, 지렁이가 오고, 꽃등에가 오고, 이름 모를 거미와 나비가 오고, 비둘기가 온다. 예상치 못했던 손님들이 정원에 와 먹고, 쉬고, 집을 짓고, 자고,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내 아쉬움에 자연의 특정 순간을 붙잡고 이상화하려는 오만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빨간기와 정원은 내게 ‘땅은 늘 말하고 있으며, 나의 조경은, 그를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일종의 번역 작업임’을 알게 해주었다.
기술자가 발로 툭 치자 우리가 애써 쌓아올린 화단이 우르르 무너져버렸던 일이라든지, 배수판이 도무지 가위로는 잘리지 않아 동네를 배회하고 있으니 자동차 정비소 사장님이 “조카-!” 하며 불러서는 대신 잘라줬다는 것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는 만나서 전하기로 하고 글을 줄여야겠다. 빨간기와 정원은 회색 도시의 작은 보물섬이 아니라, 그 도시를 자양분 삼아 피어난 산물이다. 빨간기와 정원의 풍경에는 공사 중인 건물, 쓰레기 수거차의 경보음, 고양이의 울음, 스스로 먹이를 찾아 당당한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비둘기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사인이 어지러이 섞여 있다. 우리는 이 시끄러운 도시를 더욱 시끄럽게 만들고자 한다.
박윤주는 수면과 지표면 아래, 표정 뒤의 것들을 읽어내고 그 속에 있는 다채로운 욕망을 드러내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HLD에서 디자이너로 3년간 일했고, 올해 8월 스튜디오 천변만화에 합류했다. 느리게 장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무장애 숲길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직접 만든 빵을 잘랐을 때와 한강수영장에서 지는 하늘을 바라본 때다. 빨간기와 정원에 오기 전 연락을 주면 차를 내려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