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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기름 사막 위 아이들의 섬] 경계 위의 교실
  • 환경과조경 202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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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린, 배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대량유입 보호시설은 교육 서비스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운영해야 한다. 교육 시간은 최소 5시간이며, 가능할 경우 6시간으로 한다.”(「난민재정착국 대량유입 보호시설 운영 과업지시서」 중)

 

“교육 부서는 이주 청소년이 자신의 여정을 성찰하고 배움을 통해 치유와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각 학생의 개인적·문화적 고유성을 존중하여, 보호 종료 후 미국 학교와 지역 사회 속에서도 자신이 존중 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한다.”(「이주 청소년 보호소 교육부서 헌장」 중)

 

2022년 6월, 내가 일하던 청소년 보호소는 긴급수용시설(Emergency Intake Shelter)에서 대량유입보호시설(Influx Care Facility)로 승격됐다. 이에 따라 아이들에게 산발적으로 제공되던 교육 서비스를 정립하고 확장할 발판이 마련됐다. 이주 청소년이라는 특수성에 맞춰 교육대학원 V 교수가 개발한 보호소의 교육 과정은 네 가지 목표를 세웠다. 이주 과정 중 상처받은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을 것. 배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길러줄 것.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워줄 것. 그리고 보호 종료 후 지역 사회에서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런 교육 철학을 건축적으로 옮겨낸다면 어떤 풍경을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벽화였다. 여전히 아이들은 길게 줄을 서서 이동했고, 캠퍼스는 비슷한 건물이 반복되며 길을 잃기 쉬웠다. 첫 번째 벽화1가 시설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벽화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랐다. 기획 과정에서 첫 번째로 주목한 건 단위였다. 중남미 출신 아이들 대부분은 미터법에 익숙했고, 그중 일부는 스페인식 바라vara라는 단위법에 익숙했다. 미국의 피트와 인치에 익숙해지는 것을 돕기 위해 아이들이 가장 많이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한 약 60미터 길이의 단층 기숙사 건물을 측량 도구로 사용했다. 다양한 사물과 생물의 길이를 미터, 피트, 바라로 표기해서 자연스럽게 여러 단위에 익숙해지게 하고 싶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키가 컸던 로버트 워들로(2.72미터= 8피트 11인치=3.2바라), 기록된 가장 큰 흰긴수염고래의 길이(33.5미터=110피트=27.8바라), 과테말라 티칼 피라미드의 높이(45미터=148피트=37.35바라), 보잉 737-300의 날개 길이(60.96미터=200피트=50.59바라), 마지막으로 세이바 나무의 높이까지(73.15미터=240피트=60.71바라). 아이들에게 익숙한 것들과 낯선 것들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다. 한쪽 끝에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저 끝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 걸었을까? 시간은 얼마나 걸렸게?” 이런 초안을 바탕으로 돌볼 아이가 없는 돌봄 직원들(플로터)과 남아있는 페인트로 건물 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보호소는 대대적인 확장 중이었다. 기존 텐트를 허물고 주변 부지를 사들여 조립식 건물과 축구장, 식당 등을 신축하고 있었다. 내게는 교실로 사용하게 될 건물을 ‘밝은 색’으로 칠하려 하니 색상을 지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보호소에서 밝은 색이란 채도가 높은 원색이었기 때문에 덜컥 건물을 원색으로 칠할까봐 겁이 났다. 무미건조한 황색의 건물만큼이나 피하고 싶은 것이 새빨간 혹은 샛노란 건물이었다. 아이들에게 너무 강한 자극이 될지 모르니 조금 더 차분한 톤의 색상을 사용하기를 제안했다. 또한 각 건물에 알파벳을 부여하고, 그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식물을 건물의 이름처럼 벽화로 그릴 것을 제안했다. 우선 중남미에서 흔한 바질(Albahaca), 부겐빌레아(Bougainvillea), 치필린(Chipilín)(Crotalaria longirostrata ), 민들레(Diente de leon), 유칼립투스(Eucalipto), 양귀비꽃(Flor de amapola), 제라늄(Geranio), 위사체(Huizache), 이페(Ipé)(Handroanthus spp.)를 골랐다. 치필린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에서 타말레나 수프에 넣어 먹는 잎채소라서 아이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메마른 땅에서도 노란 꽃을 피우는 위사체와 중남미 거리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이페는 회복력과 생명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선정했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상명하복으로 통제되는 청소년 보호소에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첫 번째 벽화는 플로터들이 해고되거나 돌볼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제안은 나름 긍정적 반응을 얻어서 최종 결정권자에게 올라갔지만, “밝은 색은 명령이지 제안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뒤 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직원들은 조립식 건물 전체를 오렌지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칠했다. 황량한 사막에 새빨간 건물은 기괴한 놀이동산의 잔재 같았다. 말단 직원의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결정권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 더운 텍사스에 붉은 계열로만 건물을 칠하는 것도, 숙의 없이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도 비윤리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미적 기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임에 도 불구하고, 모두가 유일하게 동의했던 것은 도서관이었다. 아이들은 간담회에서나 직원들을 통해서 자주 더 많은 책을 달라고 요구했다. 성경부터 자동차 정비, 인체 해부, 축구, 만화, 목공, 요리, 네일 아트, 영어 사전, 미국 역사 등 다양한 관심사가 엿보이는 책 목록이 올라왔다. 그 목록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아이다운 천진난만함,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도서관 공간을 설계하거나 개선할 예산은 없었지만 어렵사리 책을 구입할 수는 있었다. 공립학교 사서로 일했던 A와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정

하고, 분류할지 논의했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인 만큼 도서관 장서 목록도 특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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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단위를 활용한 벽화 디자인

 

여정. 아름다운 것. 만화. 자연. 신비한 이야 기. 일과 꿈. 미국……. 이런 분류를 제안하며 아 이들이 자신의 여정을 책 속 주인공에게서 볼 수 있기를, 아름다운 것으로 치유 받기를, 신비한 이야기를 통해 잠시 현실을 잊기를, 누군가의 꿈과 일을 보고 배울 수 있기를, 미국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사서 A는 분류가 불 분명하다며 처음엔 반대했지만, 내가 타협할 의사가 없다고 하자 크게 한번 웃더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책 분류표를 만들고, 책을 주문하고, 빈 교실을 도서관 삼아 가구와 기존 도서를 재배치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도서관에 오거나 책을 빌릴 수는 없었지만, 정규 교육 시간으로 할당해서 아이들이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2022년 12월 처음 300여 권의 책이 들어왔던 날, 아이들이 좋아할 생각을 하니 들 던 마음이 기억난다. 내가 보호소에 처음 방문한 지 딱 일 년이 된 때였다. 


하지만 며칠 뒤 나는 해고되었다. 계약상 보장된 원격근무를 이제는 하게 해달라고 요청한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명분은 내가 지난 5년 동안 해외에서 거주한 기간이 일 년이 넘기 때문에 2단계 신원 보증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는 것. 인사과에 출입증을 반납하고 보안 요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나오니, 끝이었다. 배신감, 허탈함, 해방감이 교차했다. 


한 달 뒤인 2023년 1월, 친구가 도서관 문을 열었다며 수고했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들 이 좋아한다고.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2023년 3월, 청소년 보호소 전체가 문을 닫았다. 소수의 관리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해고되었다. 2024년 11월, 반이민을 주장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민세관단속국은 이제 미국 내 작업장이나 공항, 상점을 돌아다니며 미국 에 불법 체류 중이라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고, 추방한다. 


늘 보호소를 떠난 아이들이 잘 지내길 바라지만, 좋은 소식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트레일러에 숨어 국경을 이동하다가 더위에 사망한 아이들부터 미국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다치는 아이들까지. 이제는 나와 무관 하지 않아져버린 그들의 안녕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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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부여한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식물을 활용한 벽화 디자인

 

에필로그. 설계의 자리

“(이 작업은) 건축 디자인이 구금 산업 복합체를 은폐하는 매우 문제적인 케이스다. 아동 구금 시 설을 디자인 세탁하는 것이 ―특히 ‘비착취적인 작업’인 듯 위장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학술지 익명 평가 중)


학술지 게재를 거절하며 보내온 단 두 문장의 평가는 오랜 시간 나를 괴롭게 했다. 내가 그 시설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본질적인 문제(미동반 아동의 구금)를 흐리게 하고 있지는 않았나? 그렇다면 아예 이런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 하지만 비윤리적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면 그 진흙탕에 함께 빠지지 않고서 가능하기나 한가? 나는 손쉽게 선악을 구분 짓고 발 빼기보다 스스로 그 복잡성 속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라 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언젠가 익숙한 눈매와 한국 이 름을 가진 아이를 보호소에서 만났을 때, 무심 코 한국어로 “네가 왜 여기 있어?”라고 물었다. 다행히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순간 불법 이민은 나와 무관하다고 여겨왔던 내 무의식 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지 오래 후회했다. 이런 후회는 보호소를 떠난 이후에도 “내가 설계를 더 잘 했더라면, 사람들을 더 설득했더라면, 아이들에게 나은 환경을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엔 한없이 부족한 ‘최선’이지만 아이들은 기꺼이 받아주었다. 엉성한 도서관에 기뻐했고, 작은 그늘에서도 상담을 받았고, 벽화를 그리는 나와 직원들을 응원해주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가라오케 나이트’라며 신나게 노래하던 때, 한 아이가 다가와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아이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몰라 왜 우냐고 물었더니, 소원이 한 국인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나를 보니 비로소 멀리 온 것이 실감이 난다며 울다가 웃었다. 그와 함께 나도 울고 웃었다. 


타인의 고통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바탕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미약한 노력이 ―책 한 권이, 작은 그늘이, 스쳐가는 벽화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타인의 삶에 작은 빛이 될 수 있다고 다만 믿겠다. 

 

**각주 정리

1. “용병, 선교사, 배드 버니”, 『환경과조경』 2025년 8월호, pp.102~109 참조.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로 일하며 좋은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