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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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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원 생활] 공원 안에서 사는 경험
  • 박민규
  • 환경과조경 202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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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면 절반씩 가득 찬 자연이 보인다.

 

 

달라진 삶의 높이

창문 너머 보이는 절반의 꽉 찬 나무들의 초록과 그 나머지의 푸르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새삼 외국이란 걸 느끼게 한다. 이런 풍경이 낯선 것은 삶의 대부분을 아파트에서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나만의 공원은 아니지만, 다소 사적인 공원을 갖게 된 것은 삶을 낯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살던 공원 안의 기숙사는 방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임의로 방을 배정받는 기숙사의 특성상 발코니, 그것도 공원을 정면으로 마주한 개인 방을 배정받은 것은 그저 운이었다. 한국에서는 다소 높은 층에 살았으니 땅보다는 하늘에 가까운 삶이었다. 반대로 이 곳은 땅과 하늘 중간 어디쯤의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남쪽의 다소 사적인 공원

공원이 사적이라니 사유지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적인 공원이라는 표현과는 다르게 파리 국제 대학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의 공원(이하 시테)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다만 저녁 시간까지 개방하는 다른 공원들과 달리 이곳은 공원뿐 아니라 국제 기숙사가 함께 있기 때문에 24시간 개방된다.

 

공원을 둘러보기에 앞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곳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5년 세계 평화와 국제적 연대 형성이라는 취지로 다양한 분야의 학생과 지식인을 위한 만남의 장소로 활용됐다. 프랑스 학생뿐 아니라 유학생들의 교류와 주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정신을 공간적으로 실현했다. 그러므로 이곳은 파리의 어느 곳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원이자 거주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뒤로하고 공원을 거닐다 보면 다양한 나라의 기숙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이정표처럼 기숙사가 길을 안내하는 것 같다. 이곳에 있는 기숙사들은 제각기 특징적 형태와 나라를 대표하는 색과 재료를 통해 스스로를 뽐낸다. 각 국가가 자국 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짓게 되는 방식이니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각 나라의 기숙사를 둘러보면서 걷다 보면 작은 잔디밭 앞의 내가 머무는 한국관을 만난다. 기숙사 앞의 아담한 자연 덕분에 가끔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곤 한다.

 

이럴 때마다 공원은 또 다른 거실이 된다. 공원을 방의 연장이라고 생각해도 과장이 아니다. 여름이든 비 오는 날이든 창문을 활짝 열어 놓는 습관이 생겼는데, 공기 정화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공기보다는 공원의 공기를 더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다. 개방된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자연스레 오늘 날씨는 어떤지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습관도 생겼다. 파리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운 탓도 있겠지만, 휴대폰에서 날씨를 확인하는 것보다 하늘을 보는 게 조금씩 익숙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화된 삶은 방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건물 밖으로 연장된다.

 

하늘을 보는 시간만큼 땅을 밟는 시간도 늘어났다. 아스팔트나 흙을 깔아놓은 길이 버젓이 존재하지만, 나는 잔디 위로 걷는다. 물론 다듬어진 길이 좀 더 돌아가는 길이라 빨리 가려는 의도를 숨길 순 없지만 푹신한 느낌과 밟을 때마다 올라오는 흙 내음 때문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지 공원을 걷다 보면 설계된 길 옆에 좁은 샛길이 같이 자리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잔디를 밟아 생긴 이 길은 딱 사람 한 명이 걸을 만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그 의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약간의 우회를 견디지 못한 흔적일 테지만, 이 또한 땅을 밟았던 흔적이니 나와 같은 누군가를 만난 듯한 느낌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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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의해 생긴 샛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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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렸을 때처럼 잔디밭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은 정말 오랜만이다.

 

환경과조경 449(2025년 9월호수록본 일부

 

박민규는 파리벨빌 국립고등건축학교(ENSA Paris-Belleville)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과 로랑 데루 아키텍트(Laurent Deroo architecte)에서 실무를 경험했으며, 파리에서 공간 및 오브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베르사유 국립고등건축학교에서 건축사(HMONP)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