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선정 이후 빈번하게 발생하는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선안에 대한 존중과 절차 간소화
보통 1~2년 정도에 걸쳐 실시설계를 오래 진행하다 보니 발주처 담당자, 설계 담당자가 바뀌게 되면서 설계 방향이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고 섬세한, 때로는 모호한 설계 목표’가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경우가 많고 비전문가의 요구에 길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단순함은 강력하다. 따라서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좋은 변화는 당선작을 유지하기 위해 도와주고 존중해주는 발주처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심사위원이나 학계, 업계에 있는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목소리를 내 준 덕분이다. 김기천
설계 변경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는 안을, 문제가 있는 심사위원들이, 문제가 있는 과정을 통해 뽑는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경우라면 설계 변경을 해서라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전제를 달아보자. 불필요한 설계 변경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다. 심의 절차의 간소화, 제대로 된 심사위원의 구성,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의 정치적 의도 개입 최소화, 민원에 휘둘리지 않을 담당자의 행정력. 사실 필요한 것은 너무나 많은데 그중에도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공모 당선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 김영민
설계공모의 당선작을 우리 사회의 공공재라고 생각하며 존중하는 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발주처가 임의로 설계안을 변경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당선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강제적인 구속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실제 준공안이 당선안과 다를 경우 설계공모 참여자들의 소송 등으로 큰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김이식
설계공모 이후의 잦은 설계 변경은 대부분 기획의 불명확성, 심사의 비현실성, 그리고 후속 협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결국 공모 기획 단계의 정교함과 실현 가능성 중심의 심사를 통해 당선작이 지닌 본래의 개념과 품질을 유지한 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백종현
설계 변경은 대부분 당선안의 취지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거나, 발주처의 요구가 늦게 개입될 때 발생한다. 특히나 발주처의 뒤늦은 요구사항은 부족한 시설 충족에서 시작해 발주처의 압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산에 맞는 현실성 있는 창의적 디자인을 제안했다면, 발주처는 그 의도를 신뢰하여 지켜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후 설계 과정에서도 심사위원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등의 책임 있는 구조나 기획자가 끝까지 참여자로서 기억되는 방식 또한 필요하다. 설계자는 ‘유연하되 단호한’ 태도로 원안의 본질을 지키는 투지의 과정을 겪고 버텨야 한다. 서미경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제도 마련이나 행정 절차의 개선보다 창의적인 작업에 대한 존중과 이를 만들어내는 설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설계 결과물은 단순한 산출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고민과 노력, 가치가 축적된 결과다. 이 과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힌다면 당선안을 쉽게 변경하자는 요구 자체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설계자를 ‘용역자’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자문 회의나 심의에서도 설계자의 이름은 사라지고 발주 기관과의 갑을 관계 속에 용역사로만 대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작고 일상적인 현실부터 변화해 나가야 한다. 설계자의 작업을 하나의 창작 행위로 보고 존중하는 분위기,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 전체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질 때 설계 변경에 대한 요구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조용준
명확한 설계 지침의 필요성
설계 변경 최소화를 위해 필요한 기반은 공모 대상지에 대한 이해가 높은 기획자의 공모 의도가 명쾌하게 반영된 설계 지침이다. 기본적으로 시민의 안전, 공공의 이익 등과 관련된 사항이 아니라면 당선안에 대한 설계 변경이 불가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기획자는 설계 지침을 명확하게 작성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당선작 선정 이후 계약 진행 시 설계 지침을 법적 계약 서류로 인정함으로써 지침 작성의 중요성을 높이고 설계 지침을 ‘복사 붙여넣기’ 하는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 이따금 심사위원조차 공모를 주최한 행정가의 의도를 이해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한다. 공모 의도를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심사를 진행하니 공모가 목표했던 바와 많은 부분이 상충되는 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제안입찰의 경우 더한 상황이 일어난다. 업체 선정에만 몰두한 심사가 끝나면 발주처에 의한 무분별한 설계 변경이 시작된다. 심지어 설계 지침에 “참여자에 의해 제한된 설계안은 이후 발주처와 협의 과정을 통해 변경 가능하다”는 문구가 명확하게 적혀 있다. 설계공모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품을 발굴하는 설계공모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제안입찰은 이제 사라져야 할 방식이다. 김호윤
설계공모 심사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우리가 당신의 설계안이 좋아서 뽑은 것이 아닙니다. 본 용역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해 보여서 뽑은 겁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이 말의 숨은 의도는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설계안이 실제로 구현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발주처의 생각, 심사위원의 기대, 현장의 여건 등과 간극이 크니 결국은 많은 설계 변경이나 사실상 새 설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처음 제안한 설계안이 그대로 구현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장의 조건이나 발주처의 운영 목적에 따라 일정 부분 변경이 발생하는 것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각자의 입장과 현실이 있으니 일정 부분 조정은 불가피하다. 다만 빈번한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설계 지침서와 과업요청서를 얼마나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작성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공모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설계 지침과 과업요청서는 일종의 바이블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내용을 담아 설계해야 하는지가 담겨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고 구현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공모에서 가져온 듯한, 어디에나 통용되는 지침서와 요청서의 반복을 마주할 때가 많다. 모호한 형식적인 문서는 결국 설계자의 오해와 발주처의 재해석을 불러오고, 그 차이가 설계 변경으로 이어지게 된다. 송민원
설계 변경은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당선 후 시작되는 실무적인 영역에서의 의견들이 설계안을 뒤흔든다. 법적 문제, 기술적 문제, 정책적 문제 등 다양한 분야와 공종에서 의견들이 몰려든다. 때문에 설계 변경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결국 지켜야 하는 설계안의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허들을 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공종 간에 이슈가 많은 프로젝트는 더욱 불가피하다. 설계 지침서 작성 시 여러 공종 간의 살아 있는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해서 꼼꼼하게 작성하는 단계가 그래서 더 필요하다. 발주처는 설계 변경 사유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데이터로 저장해서 향후 프로젝트에 보다 많은 경험치를 담은 설계 지침에 대한 작성 지침을 만들 필요가 있다. 양태진
제도적 장치 마련
당선안 선정과 동시에 해체되는 공모 운영위원회가 아닌 프로젝트 설계 과정과 시공 과정까지 개입해서 이끌어가는 기획위원회가 필요하다. 당선 이후 설계자와 발주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견을 설계자의 관점에서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설계자는 힘이 없다. 발주처의 설계 변경 관행과 이른바 갑질으로부터 설계자를 보호하고 끌어가는 조직이 필요하다.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 공공 조경가가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다. 박승진
공모 초기 단계에서의 명확한 목표 설정과 당선안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당선작과 준공안을 비교·공개해 임의 변경을 예방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당선작 선정 이후 전문가위원회 운영, 설계 변경 시 공식 절차와 검증 체계 마련, 변경 내역 및 사유 공개가 필요하다. 이하나
설계 변경에 따른 보상
많이 개선되고 있으나 설계 변경은 아직도 설계공모의 큰 문제점 중 하나다. 설계공모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으로 선정된 안이 발주처 한두 사람의 사견으로 인해 디자인의 후퇴가 이루어지고 발주 시기의 지연으로 잦은 토지이용계획의 변경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당선된 설계사무소에 막대한 에너지 소모와 금전적 손실을 끼치고 있다. 다른 분야는 5% 이내의 경미한 설계 변경을 제외하고는 설계 변경에 따른 변경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 조경 분야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설계 변경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설계사의 문제가 아닌 발주처의 요청에 의해 변경할 시에는 무조건 설계 변경비 청구가 필요하다. 오화식
설계 변경에는 반드시 별도의 금전적 보상이 따라야 한다. 설계공모는 단지 ‘설계권’을 부여하는 절차가 아니라, 설계자의 고유한 해석과 제안이 담긴 ‘당선안 자체’를 계약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구조여야 한다. 당선안이 아닌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설계권과 무관하게 당선안 그 자체에 대해 별도로 책정된 보상액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비용 문제가 아니라 설계공모의 신뢰와 제안자의 권리를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변경을 사후에 정당화하기보다 애초에 변경은 비용과 책임을 수반하는 예외적 절차임을 제도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해인
기술 심사의 강화
당선 이후 설계 변경이 일어나는 이유는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공모 시 설계자의 과욕에 의한 ‘현실적’ 변경, 둘째 발주처의 욕심에 의한 ‘의도적’ 변경, 셋째 설계공모 운영진의 욕심에 의한 변경이다. 기본적으로 공모 당선안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맞지만, 모든 설계안이 그렇듯 완벽한 설계안은 없을 뿐만 아니라 설계라는 것 자체가 다양한 의견의 조율 과정이기 때문에,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인은 어떻게든 건강한 의견 조율 과정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 한 가지인 ‘설계공모 운영진의 욕심’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으로 설계공모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공모 당선작은 다른 목적에 휩쓸려 변경될 확률이 높다.
만약 현재의 설계공모 심사 과정을 통해 설계 변경을 최소화할 현실적 설계안을 선정하고자 한다면, 기술 심사를 좀 더 강화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일반적인 공모 심사는 기술 심사와 본 심사 두 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기술 심사는 대부분 설계 지침서에 나오는 제출물의 규격, 표기 누락 등 도판이나 보고서의 지침 위반 감점 사항들을 사전에 체크하는 과정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만약 기술 심사가 이름처럼 공사비의 적정성과 시공성 관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로 심사를 진행하고 본 심사 결과와 합산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도출하면 계획성과 시공성이 함께 균형 잡힌 작품을 선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주처는 충분하고 철저한 사전 검토와 공모 준비를 통해 충실한 지침서를 만들고 이런 내용이 심사위원들에게 잘 전달되어 심사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현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