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인공인 영국의 시인, 소설가며 단 하나의 정원을 만들어 영원히 이름을 남긴 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 1892~1962, 이하 비타)와 더불어, 그녀의 남편 해럴드 니콜슨(Harold Nicolson)(1886~1968)을 특별 손님으로 초대한다. 해럴드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우먼스케이프’에 등장할 자격이 있다. 우선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Sissinghurst Castle Garden), 영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럽게 유명한 이 정원이 비타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부부의 공동 작품이었다. 그리고 해럴드는 이미 백 년 전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불렀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느 결혼 생활의 초상』에 세히 소개되었는데 이 책을 읽은 사람 빼고는 해럴드를 잘 모른다.(각주 1)그 때문에 오늘 조명을 받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비타
비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영락없는 미소년이다. 그래서인지 이미 여학교 시절부터 동성의 구애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가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의 아들 나이절(Nigel Nicolson)이 1973년 세상에 폭로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 결혼 생활의 초상』이라는 책이 바로 그에 관한 얘기다.
비타가 평생 사랑한 여인들이 몇 명 있었지만, 그중에서 버지니아 울프와의 깊은 사랑과 우정은 『올랜도』라는 명작 소설을 탄생시켰다. 주인공 올랜도의 모델이 바로 비타였다. 최고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태어난 귀족 청년이 중간에 여성으로 변해서 20세기까지 수백 년을 산다는 이야기다. 비타의 복잡한 정체성을 잘 알고 있는 버지니아가 친구에게 근사한 대체의 삶을 선물한 것이다. 그 보답으로 비타는 수년 뒤 『가족사(Family History)』라는 소설을 써서 버지니아를 최고의 어머니로 묘사했다. 스스로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을 것이라 여겨 아이를 포기한 버지니아 울프를 이렇게 위로한 것이다.
비타는 소설 속의 올랜도처럼 튜더 가문에 뿌리를 둔 귀족의 자제였다. 캔트 지방의 놀(Knole)이라는 거대한 성과 드넓은 영지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시, 산문, 극본 등을 매일 썼다고 한다. 이 습관을 평생 유지했다. 정말 하루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모두 31권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주로 역사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었지만 출발은 시였다. 문학상도 많이 받았다. 특히 캔트 지방의 땅과 풍경에 대한 애정이 지극해서 ‘땅(The Land)’이라는 책 한 권 분량의 장시를 썼는데 그녀의 작품 중 최고의 명작으로 평가된다.
38세에 폐허가 된 성, 시싱허스트와 그에 속한 넓은 땅을 사서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가문의 성과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던 비타에겐 캔트 지방에 비록 폐허일지라도 성과 정원을 갖는 일은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의 소설이 연달아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세가 많이 들어왔는데 그 돈을 몽땅 폐허에 쏟아 넣었다.
2년 뒤에 어느 정도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 집수리가 끝나자 바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이후 비타는 시싱허스트의 붙박이가 되어 오전에는 쌍둥이 탑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오후에는 정원을 가꾸며 무한한 행복감 속에 살았다. 그리고 바로 그 탑의 서재에서 1962년 70세로 눈을 감았다.
**각주 정리
1. Nigel Nicolson, Portrait of a Marriage , Weidenfeld & Nicolson, 1973. 아쉽게도 한국어판은 출판되지 않은 것 같다.
* 환경과조경 448호(2025년 8월호) 수록본 일부
고정희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느 순간 그 정원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년의 경험이 인연이 되었는지 조경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식물, 세상의 은밀한 지배자』, 『신의 정원, 나의 천국』, 『고정희의 바로크 정원 이야기』, 『고정희의 독일 정원 이야기』, 『100장면으로 읽는 조경의 역사』를 펴냈고, 칼 푀르스터와 그의 외동딸 마리안네가 쓴 책을 동시에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베를린 공과대학교 조경학과에서 20세기 유럽 조경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