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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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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사막 위 아이들의 섬] 용병, 선교사, 그리고 배드 버니
  • 강준호
  • 환경과조경 202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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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 전경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두 부류야. 용병 아니면 선교사.”

 

2022년 여름, 내가 텍사스 청소년 보호소에서 정직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용병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루 12시간씩 연속 21일을 일하며 초과 근무 수당을 쌓아 억대 연봉을 받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 실제로 많은 직원이 군인이나 경찰 출신이었다. 보호소를 운영하던 비영리 단체의 회장은 28년간 공군에서 복무한 군인이었고, 다른 간부들 중에도 국경순찰대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보호소에는 질서와 명령, 통제를 중시하는 문화가 깊게 스며 있었다. 이들은 아이들을 ‘관리 대상’으로 여겼고, 보호란 결국 확실한 통제라고 믿는 듯했다. 반면 선교사들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려 했다. 이들 중에는 아이들과 비슷한 이주 경험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이민자의 삶이 지닌 외로움과 불안을 알기에 그 무게를 함께 나누며 아이들이 낯선 땅에서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용병’과 ‘선교사’라는 분류는 이곳을 관통하는 두 가지 보호의 방식을 짚어낸다. 첫 번째는 군대식 통제다. 이 방식은 아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둔다. 다른 하나는 인도주의적 돌봄으로, 아이들이 성장을 통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한다. 이 두 방식은 긴급 수용 시설이라는 제도 안에서 충돌했고, 때로는 서로를 가장한 채 얽히기도 했다. 그러한 충돌의 풍경을 시간, 몸, 공간, 관계라는 네 가지 층위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각 층위에서 통제가 어떻게 일상과 풍경을 제한했는지, 그리고 통제와 균열 사이로 어떤 돌봄의 시도들이 스며들었는지 따라가 보겠다.

 

통제의 구조

군대식 통제의 기본은 시간표다. 매일 오후 다섯 시에 배포되는 시간표에 따라 다음날 모든 직원들과 아이들의 일정이 정해졌다. 아이들은 보통 오전 여섯 시 반부터 식사, 수업, 점심, 운동, 다시 수업을 반복했다. 중간에 콜센터에서 케이스 담당자와 원격 통화를 하거나 게임 텐트에서 한 시간 동안 놀았다.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나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숙제를 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선별된 영화를 보는 것뿐이었다. 돌봄 직원들은 아이들이 무료하면 이곳 생활이 더 괴로울 것을 걱정했고, 항상 “아이들의 주의를 돌려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여유를 주기보다는 정해진 활동으로 몰아넣었다. 시간표에 따라 많을 때는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 함께 움직였다. 일정한 간격마다 돌봄 직원이 배치되어 아이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했다. 각 직원은 항상 자신에게 배정된 아이를 시야에 두고 인원을 확인해야 했고, 그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줄 서는 일을 반복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항상 돌봄 직원의 감독을 받았다. 이렇듯 보호라는 명분 아래, 아이들은 보행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일상적 노출과 통제를 감내해야 했다.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 역시 감시를 위한 장치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끝없는 사막 위 보호소의 높은 담장은 경계를 만들고, 유일한 출입구에는 폐쇄 회로 카메라와 비무장 사설 경비가 상주하며 통행인을 확인했다. 주차장에는 국경순찰대 차량이 늘 대기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아이는 방문을 닫고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자해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이유로 교실이나 상담실 문에는 작은 유리 창이 뚫려 있었다. 숨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혼자 있을 공간과 시간을 갈망했다.

 

이런 일상적 노출과 통제는 직원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보호소 출입 시 모든 소지품을 투명한 가방에 넣고 들어가야 했다. 직원 각자의 계급은 단체 유니폼으로 드러났다. 파란색 티셔츠는 일반직, 회색은 관리직을 의미했다. 흔히 사람들은 물고기와 상어라고 불렀다. 상어가 나타나면 도망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군인과 경찰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있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임에도, 회사는 밀리터리 바지를 유니폼으로 지정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권위, 질서, 규율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입고 온 옷을 입을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보호소에서 나눠준 원색의 단체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입고 똑같은 운동화를 신었다. 공식 문서와 일상 대화 속에서 아이들은 늘 ‘미동반 아동’으로 불렸다. 마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보호자가 함께 있지 않다는 점이라는 듯이. 이 호칭은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돌봄 직원들에게 보호의 의무는 물론 통제의 정당성까지 부여한다. 이러한 호칭이 만들어내는 관계란 사람과 사람이 아닌, 익명의 역할과 역할이 마주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그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보호받는 존재’로, 직원들은 ‘관리하는 존재’로 서로를 인식했다.

 

환경과조경 448(2025년 8월호수록본 일부

 

강준호는 존재와 제도가 만든 풍경을 읽는 건축가다. UCLA에서 건축과 미술사를 복수전공한 뒤 하버드 디자인대학원(GSD)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게럿 도허티(Gareth Doherty) 교수의 비평적 조경 디자인 연구소(Critical Landscapes Design Lab)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해안 지역의 기후변화 인식을 조사했다. 현재 건축가로 일하며 좋은 풍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junho_s_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