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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코스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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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공원 생활] 마을 공원이 주는 기쁨
  • 이소영
  • 환경과조경 202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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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접 신도시와 구도심 사이, 왕숙천변에 자리한 장현공원 일대 풍경

 

 

공원에서의 일상

경기도 남양주시 왕숙천변에 작업실이 있다. 이곳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식물 세밀화 일을 시작한 첫 직장인 국립수목원이 자리한 곳이다. 사람들은 서울이 아닌 외곽에 있는 것이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냐 묻지만,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 광릉숲이 가까워 내가 좋아하는 식물을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고, 이동이 필요할 땐 언제든 차로 이동하면 되고,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도 꽤 괜찮은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의 일상을 만족스러워하는 데엔 무엇보다 작업실 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공원의 역할이 크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좋아하는 카페와 로컬 푸드 마트에 가고 공원에서 강아지와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매일이 내게 마음의 안정을 준다. 그러나 공원이 이토록 소중하다는 걸, 현대인에게 공원이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공원이 조성된 지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나무와 사라진 나무

지금의 작업실에 온 지 10여 년이 됐다. 10년 전 작업실 주변 풍경은 지금과 매우 달랐다. 10년 전에는 작업실 뒤편에 청경채를 재배하는 대형 비닐 하우스 농장이 있고 그 옆에 물류센터와 자동차 정비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과 산책로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식간에 비닐하우스와 물류센터는 철거되고 공사가 시작됐다. 잔디밭이 깔리고 시설물이 들어오고 화단에 나무가 심겼다. 어느새 이전의 투박한 모습은 상상할 수 없는 깨끗하고 단정한 공원이 완성됐다.

 

이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나는 기쁘기보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공원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나무들이 베어졌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은 더 먼 외곽으로 이주해야 했다. 식물이 사는 땅을 만들기 위해 원래 있던 식물들을 죽인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도 모순되게 느껴졌다. 우리가 새롭고 깨끗하고 특별한 것을 원할 때 오래되고 익숙한 존재는 희생되거나 우리 눈에 들지 않는 먼 곳으로 내쫓긴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던 날이었다.

 

물론 공원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결코 베이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도 있다. 공원 입구에 자리한 수고 15m가량의 오리나무와 공원 담벼락에 붙어자라는 복사나무가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공원의 대표 상징물은 공원을 조성하며 심은 나무들과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시설물이 아니라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오리나무라는 사실이다.

 

봄이면 종종 공원의 구석에서 노란 청경채 꽃이 핀다. 사람들은 이 꽃이 공원에 새로 식재한 유채의 것인 줄 알지만, 사실 이들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에 있던 비닐하우스의 청경채 꽃이다. 청경채는 여전히 살아남아 이 땅의 과거를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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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공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원 입구의 오리나무 공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

 

광장으로서의 공원

장현공원은 경기도 포천시에서 흐르는 왕숙천변을 따라 진접 신도시와 구도심을 연결하는 1.2㎞ 둘레길로 이루어져 있다. 공원 이름은 마을 명칭 ‘장현리’에서 땄다. 공원에는 어린이 공원, 경관 광장, 농구장, 테니스장과 같은 체육 시설과 황톳길, 장미 정원과 수국 정원 등이 있다. 조성한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지라 요즘도 매일 화단에 식물을 심고 시설물을 추가하는 중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마을 사람들은 공원에서 산책하고, 운동하고, 휴식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만남을 갖는다. 봄과 가을에는 매주 주말마다 음식, 공연, 축제를 연다. 아마도 우리 마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바로 이 공원이 아닐까 싶다. 

 

공원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운동 공간, 휴식을 취하는 휴게 공간, 오락 공간, 교육 공간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장현공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소통케 하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장현공원은 위치적으로 오래전부터 이곳에 쭉 살아온 사람들이 있는 구도심과 새로이 이주해온 사람들이 사는 신도시의 중심에 있다. 당연하게도 구도심에는 장노년층이 주로 거주하고, 신도시에는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가족, 근처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등 청년층이 많다. 공원은 구도심의 장노년층과 신도시의 청년층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한다. 공원의 운동 기구를 다루지 못해 헤매는 어르신 곁에서 청년이 기구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놀러나온 강아지와 어린이를 보며 어르신들은 웃음을 짓는다.

 

지난 봄, 강아지와 산책하던 중 공원에 군락으로 자라 피어난 조개나물 꽃을 발견했다. 주변에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던 내게 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옛날엔 이 꽃을 따서 꿀 빨아 먹었어요. 이 풀 이름이 뭐예요?” “이거 조개나물이에요.” 나는 말했다. 어르신은 당신이 아는 조개나물은 따로 있다며 핸드폰 사진첩 속 조개풀 사진을 내게 보여주셨다. 짧은 대화 후 우리는 헤어졌다. 어르신 덕분에 조개나물이 꿀을 생산하는 밀월 식물이라는 걸 확인했고, 조개풀의 지방명 중에 조개나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모른다. 그저 서로를 마을 사람이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공원에서의 만남과 대화에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의 직업이 무엇이든, 돈이 많든 적든, 권력이 있든 없든, ‘마을 주민’이라는 공통점 아래 공원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공원이란 공간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또 덜 외롭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원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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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산뽕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일 년간 공원의 산뽕나무를 관찰해 그림을 그렸다

 

공원의 식물들

장현공원에는 왕숙천변에서 자연스레 번식한 식물과 공원을 조성하며 새로 심은 식물이 어울려 자란다. 봄이면 왕벚나무와 이팝나무, 칠엽수에 꽃이 피고 그 아래에선 자연스레 번성한 토끼풀과 붉은토끼풀, 수레국화, 조개나물 등이 꽃밭을 이룬다. 여름에는 배롱나무 꽃이 피고, 산뽕나무 열매가 열리고, 천변에서 번식해 온 자주개자리와 메꽃이 화단에 가득하다. 가을에는 계수나무 잎에서 향이 나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겨울에는 향나무, 서양측백나무, 주목, 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 침엽수 잎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모습이 장관이다. 사실 공원 화단에 식재된 수종만 보면 여느 중북부 도시공원과 다를 바 없지만, 왕숙천변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자생 식물들이 공원 풍경의 기반을 이루어 오래된 듯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공간을 지배한다.

 

올해는 장미 정원이 새로 조성됐다. 20여 품종의 장미가 식재됐는데 아직 이 땅에 적응되지 않았을 법한데도 5월부터 가지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오늘 강아지와 산책하며 장미 정원을 지나는데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장미 보러 딴 데 안 가도 되겠다!” 이렇듯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오늘도 장현공원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소영은 식물세밀화가이자 원예학 연구자다. 국내외 식물 연구 기관과 협업해 식물 세밀화를 그린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소영의 식물라디오’를 진행하며, 「서울신문」에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식물에 관한 오해』, 『식물의 책』, 『식물과 나』, 『식물 산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