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월간 환경과조경

월간 환경과조경
[기웃거리는 편집자] 공원의 자리
  • 환경과조경 2025년 8월호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 옆에서 곤히 자는 아내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방에서 나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직장으로 걸어서 출근하고, 일과를 시작하기 전 노트에 시를 적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산책 후엔 단골 바에 들러서 주인장과 수다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까무룩 잠든다. 이렇게 다소 건강한 루틴을 실천하는 사람은 대체 누굴까.

 

그의 이름은 패터슨.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이다. 영화 제목만 들으면 유럽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위대한 인물의 삶의 궤적을 쫓는 전기 영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소시민인 패터슨이 살아가는 일상을 비추는 소박한 영화다. 다소 지난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그의 본캐는 시내버스 기사, 부캐는 시인이다. 매일 같이 시를 쓰는 그는 지루할 틈이 없다. 아내와 나누는 대화, 매일 점심을 먹으며 감상하는 폭포,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승객들의 잡담 등 시시콜콜한 그의 일상은 그에게 시상이 된다. 일상이 곧 시고, 시가 곧 일상인 워라밸(?) 없는 시인의 삶이라고 할까.

 

패터슨이 일상의 언어를 시로 직조하듯 무수한 산책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채집하고 기록한 이도 있다. 바로 『산책의 언어』(2022)의 저자 우숙영이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자연과 계절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산책의 매력에 빠지게 됐지만, 아름답다, 파랗다 같이 단순한 어휘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자신의 가난한 언어를 반성하게 됐다. 그날 이후 하늘, 물, 식물 날씨 등 다양한 자연과 자연 현상을 부르는 이름과 행동, 표현을 차근차근 수집해 만든 산책 낱말 도감이 바로 『산책의 언어』다. 이 책은 날씨, 식물 등 산책과 관련된 주제의 의성어와 의태어, 우리말 등 다소 낯설지만 유의미한 다양한 단어들과 그 의미를 소개하고, 그 단어를 발견한 일화나 단상을 곁들인다. 가령 비색, 비취색 등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바다색을 비교하는 전시 프로젝트를 위해서 150개의 장소에서 1만여 장의 사진을 찍은 일, 돌옷을 입은 돌과 다보록다보록하게 모인 양치식물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곶자왈 풍경 등을 설명하며 단어의 쓰임새를 보여준다.

 

일상과 산책을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두 사람을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공원은 어떤 언어로 바라봐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망설이다 우연히 유튜브 채널 하나를 발견하게 됐는데, 바로 ‘공원읽기’다. 이 채널은 조경가 권정삼이 근린공원, 공개공지, 대형 공원 등 다양한 공원을 산책하며 영상 PD와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를 브이로그로 담아낸다. 현란한 자막과 요란한 노래, 이상한 농담으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유튜브 영상 문법에서 벗어나 조경가가 바라본 공원의 세계와 조경의 언어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특히 다소 무거운 내용이 되거나 일방적 지식의 향연이 될 수 있는 강연 형식이 아니라 좋았다. 오고가는 소박한 대화 속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분하는 방법, 동선 구조와 식재의 특징, 시설의 디자인 디테일 등 가벼운 산책처럼 가볍게 알아두면 좋은 조경의 언어를 쉽고 명확하게 전달한다. 때론 산책 관련 책을 추천하거나, 풍경 자체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대화 없이 공원의 일상적 풍경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반복과 변주를 적절히 오가는 하나의 잡지처럼.

 

앞서 살펴본 인물들처럼 일상이 곧 시가 되는 삶을 살 자신은 없고, 산책의 언어를 정밀하게 채집하지도 못하며, 담백하고 명징하게 조경의 언어를 풀어낼 재간도 없다. 다만 공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해 나의 언어로 답을 하자면 공원이 하나의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 잠시나마 소낙비를 피할 수 있는 자리,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내줄 수 있는 자리, 속상한 일을 시원하게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자리, 가벼운 농담을 나누며 맘껏 웃을 수 있는 자리, 지끈거리는 발목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는 자리. 환대란 자리를 주는 행위(각주 1)라고 했는데, 궁극적으로 공원이 환대의 자리가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작은 소망의 언어를 담아 그곳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각주 2) 


**각주 정리

1.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2. 봉주연의 시 ‘사랑하는 조용한 나의 자리’를 오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