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월간 에코스케이프

월간 에코스케이프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
  • 환경과조경 2025년 5월호

얇은 겉옷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꺼내야 한다. 잠깐 멈칫하면 성큼 여름이 다가와 걸치지 못하게 될 테니까. 언제 봄이 시작되나 싶더니 벚꽃은 이미 다 졌고 해가 무섭도록 따뜻해지고 있다. 피크닉을 즐기기 좋은 날씨와 딱 어울리는 새 연재가 시작되어 그런지, 평소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놀림이 가볍다.

 

대중에게 공원만큼 이해하기 쉽고 친근하며 누구에게나 열린 넉넉한 규모의 조경 공간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새로운 공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 조경 설계 전문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원을 설계한 조경가의 철학과 담론을 비롯해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열심히 담아 왔다. 하지만 이따금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공원을 잘 소개하고 다루는 방법이 정말 이것뿐일까.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결국 완성된 공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조경은 잘 모르지만 정원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고민은 더 짙어졌다. 그러다 문득 그런 문장에 가닿았다. 공원의 일상성은 누구나 다 알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소홀히 여겨왔던 게 아닐까.

 

새 연재의 실마리를 던진 건 금민수 기자의 ‘최초의 공원’이었다. “공원은 시퀀스를 만들어내며, 시퀀스는 이용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다. 옴스테드가 유년 시절 보았던 목가적 풍경이 센트럴파크 설계의 단초가 됐던 것처럼 조경가에게 자신이 기억하는 최초의 공원(혹은 최초의 설계작)에 대한 추억, 혹은 공원에 대한 관점의 변화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받아본다. 연령과 관점이 서로 다른 필자를 통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공원의 변화를 살펴보며, 세대별로 공원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올릴 숏폼 영상을 함께 만든다는 원대한 포부가 곁들어진 기획에 편집부 모두 박수를 쳤다. 하지만 이어진 토론에서 쉽지 않은 글감을 다루는 만큼 다양한 필자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오히려 조경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기획으로 바꾸면, 우리가 들여다보지 못한 공원의 일상성을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하지만 ‘최초의 공원’ 역시 언젠가 빛을 보기 위해 금민수 기자의 기획 폴더 속에서 새 버전으로 거듭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발전되고 완성된 기획이 이수민 기자의 ‘슬기로운 공원 생활’이다. “당신에게 공원은 어떤 존재인가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공간, 일과 중 잠시 머리를 비워내는 공간, 출퇴근길로 매일 지나가는 공간, 약속 장소가 되는 공간, 영감을 얻는 공간, 돗자리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공간, 연인과 손잡고 데이트하는 공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운동하는 공간. 좋아하는 공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세요. 공원을 자주 찾는 이유, 공원에서 받은 위로와 영감, 공원 속 숨은 아지트 같은 공간, 공원의 독특한 역사, 공원과 함께했던 추억 등 어떤 이야기든 좋습니다. 공원과 함께한 추억을 들려주세요. 독자들이 공원의 새로운 쓰임새와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층 더 말랑말랑해진 기획 의도를 통해 ‘슬기로운 공원 생활’은 일상 속 공원의 쓰임과 필요성을 통해 현대 도시에서 공원의 의미를 느슨하게 탐구해볼 예정이다. 공원을 방문하는 데 특별한 자격이 필요 없는 만큼 좀 더 다채로운 필자를 지면에 초대할 예정이다.

 

사실 『환경과조경』은 이미 공원의 일상성을 주목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2015년 10월호 특집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가 바로 그것. 신기하게도 특집을 여는 글에 나의 고민과 비슷한 문장이 있었다. “그동안 너무 조경의 대상지로만 공원을 바라보았다는 자책까지 나오진 않았지만, 공원의 일상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 거창하게 공원의 의미나 역할 따위에 집중하기보다는 각자의 주관적이고 특수한 공원 이야기를 끄집어내 보기로 했습니다.” 이 특집이 단거리 달리기였다면 ‘슬기로운 공원 생활’은 아주 긴 마라톤이 될 것이다. 이왕이면 끝을 알 수 없는 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여러분에게도 당신의 공원이 어디인지 묻고 싶다. 이건 소심한 선전 포고이자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공원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인 만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필자가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