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멀리 정면 벽의 드루커 디자인 갤러리(Druker Design Gallery) 사인과 그 아래 투사된 산수 이미지가 시선을 끌며 걸음을 재촉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조선시대 회화식 지도와 겸재 정선의 산수화 이미지로 구성된 영상이 벽면 위로 떠오른다. 산수화 톤으로 정돈된 전시장 분위기에 잠기려는 순간, 움직이는 산수 이미지 좌우로 자연스레 시선이 따라간다. 좌우 벽면에는 불규칙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아시아 지도가 펼쳐진다. 먼저 한반도의 형상이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내부를 채운 선들은 해석을 요청하는 창의적 맵핑이다. 이 선들은 산과 물의 골격을 그려낸 단면도로, 5㎞ 간격으로 제작된 1대 5,000,000 축적의 단면 드로잉이며 수직 방향으로는 가시성을 위해 열 배로 과장됐다.(각주 1) 지구의 맥박을 시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재현적 지도 그리기(representational cartography)를 비평하며 모색한 대안적 추상화가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시적인 동시에 역동적인 시각적 리듬을 생성한다.
이 풍경은 단순한 지리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세계의 경계를 짓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산과 물의 선들은 경계를 만든다. 우리의 세계는 무수한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영토로서의 국가 경계와 민족과 문화 정체성이 형성하는 경계가 유사하면서 또 다르듯,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많은 경계 안에 우리가 존재한다. 이 벽면의 맵핑은 기존의 관습적 경계를 해체하고, ‘생태권(bioregion)’이라는 대안적 경계를 그려낸다. 전시의 접근 방식인 생태권은 아시아의 지리, 지질, 기후, 생태, 인간 정주, 문화의 역사를 고려한 지역 구분이다. 이러한 13개의 초국가적 영역을 기준으로 23개 조경설계사무소의 58개 프로젝트 위치가 맵핑 위에 표시되어 있고, 맵핑 사이사이에 개별 프로젝트의 도면과 사진이 벽면에 투사된다.(각주 2)
산수, 조경 문화와 실천의 매체
전시 ‘산수 설계자: 기후 변화를 맞는 대안적 랜드스케이프’와 연계한 국제 컨퍼런스는 하버드 GSD와 한국학 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산수라는 전통 문화적 개념을 현대적 조경 매체인 산과 물로 다루며, 개념의 역사와 현재 조경 프로젝트에서의 재해석, 미래의 조경 디자인을 조망한다. 전시는 드루커 디자인 갤러리에서 2026년 5월 15일까지 개최되며, 전시와 연계된 학술 컨퍼런스가 지난 2월 5일부터 6일 이틀간 같은 건물의 파이퍼 오디토리엄(Piper Auditorium)에서 열렸다.
산수는 동양의 문화에서 물리적 경관과 이를 그린 그림 모두를 말한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산수’는 산과 물이라는 뜻으로, 경치를 이르는 말, 산에서 흐르는 물을 뜻한다. 동양화에서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 즉 산수화와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조경의 물리적 대상인 산과 물에는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과 산수화라는 재현 문화가 담겨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산수는 서양의 경관(landscape) 개념과 유사하다. 서양의 경관 개념 역시 시각적 경치(scenery), 그리고 그것을 그린 풍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개념은 동서양의 조경 실천의 매체를 각각 의미한다. 전시는 산수를 아시아 조경의 오래된 문화이자 조경 실천의 매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점에서 서두에 설명한 대안적 맵핑은 전시와 컨퍼런스의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산과 물이라는 물리적 대상을 단면이라는 드로잉 매체를 통해 관찰하되,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해 재현하는 실천이 조경 실천의 본질을 내포하는 것이다. 산수의 골격은 경계로 치환되어 새로운 경관 이미지를 형성하고, 동양 산수화의 환영을 잔잔히 불러일으킨다. 전시가 한창이었던 지난 2월에 개최된 컨퍼런스는 산수라는 오래된 문화적 의미의 토대와 그것의 창조적 실천인 아시아 조경 프로젝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로 구성됐다.
* 환경과조경 456호(2026년 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Designers of Mountain and Water: Alternative Landscapes for a Changing Climate , exhibition booklet, Harvard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Design·Korea Institute, 2026, p.3.
2. 1번 책, 2026, p.3.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2020년, 안성으로 이사 와 한경국립대학교 친구들과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눈이 펑펑 내리고 무척 추웠던 컨퍼런스 기간 동안, 하버드대학교 캠퍼스는 하얀 눈으로 덮인 설원처럼, 마치 영화의 배경 같았다. 긴장한 탓에 내가 발표를 어떻게 했는지도 또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사진과 영상을 보니 그제야 그날의 기억이 꿈처럼 떠오른다. 원고를 쓰고 나니 이제야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