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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정원은 실패를 배우는 곳
나의 정원은 지름 반 뼘, 높이 두 뼘에 살짝 못 미치는 유리 화병. 3년 전 방이 너무 건조하다는 이유로 들였던 스킨답서스가 자란다. 소박한 정원 앞의 선반은 엄마를 위한 숲이다. 다육 식물과 선인장, 미인초, 이름 모를 난이 들쑥날쑥 서 있다. 주말이면 엄마는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화분을 모조리 욕실로 옮겨 흠뻑 적신다. 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다시 끙끙거리며 해가 잘 드는 곳에 화분을 일렬로 세운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역시 게으른 나에게는 스킨답서스가 제격이구나 생각한다. 스킨답서스 돌보는 법은 간단하다. 화병에 물을 보충한다. 2주에 한 번은 화병을 닦아 물을 새로 채우고 그 김에 잔뿌리를 정리한다. 잎이 심하게 많아졌다 싶으면 마디 아래 부분을 잘라 물꽂이 해주면 끝. 병해충에 강해 걱정할 일이 없고, 가끔은 너무 잘 자라서 벅찰 정도다.
공유정원, 처음 보는 낯선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다 의문이 생겼다. 공공적 성격도 띠지만, 일정 금액을 내고 일시적으로 사유하는 정원이 겨울에도 작동할 수 있을까. 대체로 겨울의 정원은 쓸쓸하다. 봄과 여름을 채웠던 잎이 떨어지고, 땅을 덮었던 가을 낙엽마저 바람에 흩어지면 앙상한 가지와 퍼석한 흙바닥이 드러난다. 계절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지만 황량하다는 감상을 지우기 힘들다. 상록 식물을 가득 심으면 겨울 풍경은 따스해질지 모르지만, 일 년 내내 비슷비슷한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타임워크 명동 공유정원에 오른 날은 영하 10도의 한파가 닥친 날이었다. 마스크를 써도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추웠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런데 정원의 풍경은 예상처럼 추워 보이지 않았다. 갈색으로 변했지만 잎과 열매를 떨구지 않은 키 큰 그라스가 바람에 느직히 몸을 흔들고, 연녹색의 작은 식물이 낮게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하나의 식물이 일정 영역을 차지하도록 군식해 볼륨감을 주었는데, 수종마다 키가 다를 테니 그에 따른 리듬감이 생긴다. 플랜터는 날렵한 띠 형태다. 식물 사이에 깐 화산석과 색이 비슷해 멀리서 보면 그 존재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정원은 신기하게도 추위가 가신 이곳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인터뷰 중 최영준 소장(랩디에이치)은 금민수 기자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정원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노동이라 생각해요. 정원은 계속 손을 대야 하는 곳이에요. 관리가 생명인데, 바쁜 삶을 이어나가며 정원을 돌볼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죠.” 이곳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푸른 나의 정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진 조영민 대표(앤로지즈)의 말에는 목덜미가 빳빳하게 굳었다. “도시인에게는 접근성이 높고 몰입할 수 있는 자연이 필요해요. 최근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높죠. 하지만 자연은 가상 세계로 옮길 수 없어요. 삶에서 물리적이고 인공적인 것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질수록 자연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는 더욱 높아질 거예요. 겨울이 오면 정원의 식물이 다 죽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데 봄이 되면 거짓말처럼 싹이 돋아요. 각박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꼭 봐야 하는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은 실패를 배우는 곳이 될 수 있어요. 모든 게 끝난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아도, 삶은 계속되고, 생명은 다시 태어나요.”
실패하지 않는 나의 정원을 떠올렸다. 늘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양의 빛을 받고 비슷한 초록을 유지하는 그 정원에는 계절이 없다. 새 잎이 돋아 크게 자라는 모습은 볼 수 있지만, 꽃이 피고 지거나 낙엽을 떨구진 않는다. 한 번도 아쉬워한 적 없는 것들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 큰 정원을 꾸릴 엄두는 나지 않는다. 덧없는 상념의 끝은 결국 공원에 가닿았다. 도심 곳곳의 정원도 좋지만, 이왕이면 더 큰 자연의 변화를 맛볼 수 있는 공원이 더욱 좋은 공간이 되기를. 조영민 대표의 말이 문득 부러워졌다. “임대 시장에서 입주민을 만족시킬 어메니티를 갖춘 곳은 이미 많아요. 미국의 경우, 라운지 서비스와 더불어 정원, 조경처럼 환경 요소가 건물의 값어치를 바꾸는 요소가 되고 있어요. 건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 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도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의 선두에 잘 가꾸어진 공원이 놓여있기를, 그 방법도 모르고 막연히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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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내 집 속 작은 정원 ‘LG 틔운’
스마트 기술로 만든 식물 생활 가전
삭막한 도심 속 나만을 위한 정원, 누구나 상상해본 적 있지만 실현하기 쉽지 않은 꿈이다. 우선 정원을 꾸릴 땅, 식물을 가꾸는 데 필요한 여러 장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조건을 갖추더라도 자칫 실수하면 공들여 키운 식물이 시들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LG 전자가 신개념 식물 생활 가전 ‘LG 틔운 오브제 컬렉션’(이하 틔운)을 출시했다. 틔운은 누구나 꽃, 채소, 허브 등 다양한 식물을 손쉽게 키우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다. 초보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복잡한 식물 재배 과정 대부분을 자동화했다. 틔운 내부 선반에 씨앗 키트를 창작하고 물과 영양제를 넣은 후 문을 닫기만 하면 원하는 식물을 편리하게 키울 수 있다. LG 씽큐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면 모바일 기기를 통해 틔운에서 자라는 식물의 성장 단계와 환경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물과 영양제 보충이 필요한 시점에 알림을 받을 수도 있다.
정서적 만족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식물이 처음 싹을 틔우는 발아부터 떡잎을 맺고 성장해 나가는 모든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LG 오브제 컬렉션 색상인 네이처 그린, 네이처 베이지를 사용해 어떠한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틔운’이라는 이름은 식물과 함께 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싹을 틔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에 걸맞게 틔운 안에서 자라는 꽃의 성장 과정을 감상하거나 허브를 키워 수확해 차나 향신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직접 키워 믿을 수 있는 채소는 샐러드나 쌈채, 주스로 즐길 수 있다. 틔운에서 성장한 식물을 옮겨 사무실 책상이나 침대 협탁 등 일상 속에서 보다 가깝게 감상할 수 있는 액세서리 ‘LG 틔운 미니’를 개발해 식물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할 계획이다.
TEL.02-3777-1114WEB.www.lge.co.kr/lg-tii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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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새해를 걸으며
해피 뉴 이어. 이미 두 달 전에 정해 둔 새해 첫 호 이 지면의 제목은 ‘한국 조경 50주년, 『환경과조경』 40주년을 맞으며’였다. “한국 조경이 쉰 살을 맞는다. 2022년, 한국조경학회 설립 50주년과 『환경과조경』 창간 40주년이 겹치는 해다. 8월 말에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를 주제로 내걸고 광주에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World Congress)가 열린다. 한국 조경의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기록하는 일, 다음 50년을 예비하며 설계하는 일 모두가 중요한 2022년이다.” 이렇게 잔뜩 힘들여 한 문단 쓰고 나니 글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연말 강추위에 얼어붙은 거리를 걷다 돌아왔다. 걸으며 새해를 맞는다.
계속 붕 떠 있는 느낌, 토대가 무너진 허공에 서 있는 기분. 어디가 끝인지 모를 답답하고 막막한 코로나 시대의 긴 터널,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유도, 계기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감염된 도시의 어수선한 풍경 속을 목적 없이 걷는 취미 아닌 취미를 가지게 됐다. 몸을 일으키면 저절로 걷게 되고 그냥 걷다 보면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듯한 희망이 생긴다. 노을을 바라보며 무작정 걸으면 복잡하게 뒤엉킨 습한 생각들이 바람에 바싹 마른다. 두 발과 땅이 대화하는 느낌, 나 자신을 세상으로 여는 느낌. 이동이나 답사처럼 특별한 의도를 갖는 걷기와 달리 그냥 느릿느릿 걷다 어슬렁거리며 떠돌다 옆길로 새는, 우연에 내맡긴 걷기는 시간과 공간에 묶인 신체에 자유를 준다.
어쩌면 걷기보다 걷기에 관한 책에 더 재미를 붙인 건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이론형 인간인지라 닥치는 대로 걷기 책을 모으고 빌리고 읽었다.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같은 책에서는 여러 철학자와 문인의 산책에 얽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고통의 순간에 걷고 또 걸은 니체, 바람구두를 신고 세상을 누빈 랭보, 몽상하는 고독한 산책자 루소, 자본주의의 아케이드를 소요한 베냐민. 그들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어내려가다 보면 움츠린 몸을 일으키고 운동화 끈을 묶지 않을 수 없다.
걷기와 사유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책들을 읽다 보면 도시를 느리게 걸으며 섬세한 풍경을 누리는 것 못지않은 즐거움이 생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이나 크리스토프 라무르의 『걷기의 철학』이 경쾌한 산책이라면,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과 『길 잃기 안내서』는 긴 도보 여행이다. 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서는 거리로 뛰쳐나온 전위적 발걸음을, 토르비에른 에켈룬의 『두 발의 고독: 시간과 자연을 걷는 일에 대하여』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제 것으로 장악한 자신감을 만날 수 있다.
급기야 지난 가을학기 대학원 ‘환경미학’ 시간에는 교실을 버리고 거리로 나섰다. ‘걷기의 미학, 도시에서 길을 잃다.’ 강의계획서 첫 줄에 허세 가득한 문장을 적었다. 익숙한 도시를 낯선 시선으로 걸으면 일상의 환경에 대한 미학적 문해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수강생들을 설득했다. 시흥갯골생태공원과 배곧생명공원, 하늘공원과 메타세쿼이아길, 경의선숲길, 청계천, 후암동과 해방촌 골목길, 그리고 지도 바깥의 이름 없는 길들을 정처 없이 걸으며 두 발로 지도를 그렸다. 학기말쯤 우리는 하늘과 날씨에 대한 글을 적고 잡초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에 끌려 정지돈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당신의 것은 아닌』을 집어 들었다. “산책은 거창한 의미 이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련된 숍과 산책로가 없어도 우리는 걸을 수 있다. 돈이 없고 친구가 없고 연인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걷는 것이다. 막차가 끊긴 서울 시내를 걷고, 가끔은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도 하고, 퇴근 후에 집에 가기 싫어 정처 없이 쏘다니기도 한다.……산책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지만 멜랑콜리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오로지 걸을 때만 진정으로 쾌활해진다.” 걷기의 가장 큰 매력은 막막하고 답답할 때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걸을 수는 있다는 점 아닐까. 걸으며 새해를 연다.
2022년을 여는 이번 호는 ‘제4회 젊은 조경가’의 수상자인 조용준(CA조경 소장) 특집호다. 에세이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에 담은 그의 설계 철학, ‘여섯 가지 이야기’로 편집한 그의 작업, 남기준 편집장의 인터뷰, 진양교와 제임스 코너의 추천 에세이로 구성한 특집 지면에서 조용준의 도전과 실험을 만날 수 있다.
이번 호부터 두 편의 흥미로운 시리즈를 새로 올린다. 박희성(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이 집필을 이어갈 ‘모던스케이프’는 근대기의 그림, 엽서, 지도, 책 등 다양한 매체에서 근대 도시의 풍경을 엿보는 기획물이다. ‘어떤 디자인 오피스’는 설계 작업과 설계사무소 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는 지면인데, 첫 순서는 ‘조경하다 열음’ 편이다.
본지 창간 40주년(2022년 7월호)을 맞아 올해 ‘조경비평상’의 상금이 대폭 풍성해졌음을 꼭 확인하시기 바란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조경비평가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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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그린란드 상어의 바다
그린란드 상어가 보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수명이 수백 년이나 되는 그린란드 상어는 대부분 어렸을 때 시력을 잃는다. 기생충이 눈을 파먹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뛰어난 청각과 후각이 있어 먹잇감을 문제없이 사냥하고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바다를 유영하는 그린란드 상어에게 풍경은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어렸을 적 보았던 바닷속을 몇 백 년 동안 곱씹으며 자신만의 풍경을 만들고 있을까.
길 한복판에서 끊어지거나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점자 블록을 본다. 밝은 색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올록볼록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안내견이나 동행인이 없으면 길을 잃기 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머나먼 북극해 깊은 곳의 그린란드 상어를 떠올린다.
경험해보지 않아 상상하지 못하는 풍경, 상상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생각한다. 검고 차가운 밤하늘이 북극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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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가 조용준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 _ 조용준
여섯 가지 이야기 _ 조용준
관찰과 탐구에서 실제 세계의 확장으로 _ 남기준
쪽빛보다 푸르다 _ 진양교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세 가지 역량 _ 제임스 코너
언플래트닝 랜드스케이프(unflattening landscape)는 조용준 소장의 설계 철학을 보여주는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평평하지 않은 게 어디 땅뿐인가.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 면모를 갖고 있고, 조용준 소장 역시 그렇다. 그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산처럼 다중의 얼굴을 갖고 있고, 그를 닮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광장처럼 포용력이 있는가 하면, 활기차게 솟는 분수의 물줄기 같은 재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남기준의 인터뷰는 그 다채로운 작품이 꾸준한 관찰과 탐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호기심 많은 그는 이리저리 손을 뻗어 관찰한다. 그에게 감동을 준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그들의 설계 세계를 끈질기게 탐구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 서적, 다큐멘터리는 물론 일상의 사물까지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설계 세계를 확장하는 영감이 된다. 여섯 가지 이야기는 분절된 에피소드가 아니다. 플랫랜드에서 출발해 경계, 깊이, 표면에 이르기까지 그만의 설계 어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흐르는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특집을 닫는 두 편의 에세이에는 스승이자 동료로서 조용준의 작업을 목격해 온 이들이 발견한 그의 역량이 담겨 있다. 2021년 12월 초,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 인상 깊었다. “사무소의 대표가 아닌 소장으로서 상을 받아 그 의미가 더 뜻깊다. 좋은 설계를 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꼭 회사를 차려야 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말이 더 많은 젊은 조경가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진행 남기준, 김모아,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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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톤 뮤직 플러스 공원
Blackstone Music Plus Park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블랙스톤(Blackstone) 아파트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상하이 쉬후이(Xuhui) 구에 자리 잡고 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블랙스톤 아파트와 비좁은 골목길을 변화시키고 확장하여 음악을 주제로 한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공원을 통해 아파트의 유서 깊은 구조와 맥락을 보존하면서 참신한 디자인을 더해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고자 했다. 아파트가 가진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하나로 이어주는 오케스트라’라는 콘셉트를 도출했다. 아파트 전면부, 맞은편의 M+ 호텔과 주동 사이의 공원에 다면적 경관을 연출하기 위해 자생 식물을 활용했다. 아파트가 가진 역사와 이에 따른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이 조경을 통해 표현되도록 했다.
단순한 개조의 수준을 넘어 아파트 전면부와 외벽, 소규모 공간을 재활용하고 새롭게 꾸며 다양한 디자인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전통과 현대적 콘셉트를 결합해 만든 공공 공간으로 지역민과 방문객의 편안한 공동체 생활을 지원하고자 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아파트
1924년에 건립된 블랙스톤 아파트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바로크 양식 아파트 건물로 상하이 중심부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웅장한 규모, 우아한 디자인, 역사적 배경은 상하이의 건축적 성격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아파트 내외부의 모습은 낡아갔고, 맞은편에 있던 상하이 교향악단의 기숙사처럼 쓰이고 있었다. 현재 1층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도심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하고, 2층에서 6층까지는 주거와 사무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Lead Designers Li Zhongwei, Lin Nan, Zhu Yijia, Wu Jingyu
Design Team Wei Chun, Shen Yijun, Zhang Qiran
Construction Drawing DesignersZhou Jian(Construction drawing project management), Wu Jingyu(Stone wall design and construction administration), Xu Xuhui
Waterscape Team Sushui
Architecture Team Playze Architects
Location Shanghai, China
Area 5,000m2
Completion 2020
Photography Lu Bing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는 설계를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확산하고자 하는 조경 중심의 디자인 그룹이다. 한국, 미국, 중국 등의문화를 기반으로 정원부터 마스터플랜까지 다채로운 성격과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룬다. 201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설립되어 현재는 한국의 서울, 중국의 상하이에 오피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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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테레노 커뮤니티 정원과 교육 센터
El Terreno Urban Community Garden and Educational Center
엘 테레노(El Terreno)는 건축물에 쓰인 소재를 재활용해 만든 커뮤니티 정원 겸 교육 센터다. 대상지는 토양과 광물, 돌이 풍부한 언덕이다. 이곳을 꽃과 향기 식물, 채소를 재배하는 도시 농원이자 환경 교육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코로나19로 학교가 폐쇄되던 시기에 시작된 프로젝트이기에 인근 유치원의 원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힘썼다. 아이들이 식량 생산의 전 과정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삶에 한 단계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건축 자재를 재활용해 독특한 파빌리온을 제작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프로세스를 통해 독특한 재료와 모듈로 공간을 완성하고자 했다. 사람들이 엘 테레노에 들어설 때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썼는데, 다양성과 다원성을 추구하는 이 공간은 치유 환경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공유하려는 사람들이 머물 때 의미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다목적 파빌리온은 언덕 사이에 삽입되듯 설치되어 정원을 향해 나아가며 입구가 점진적으로 커지는 형태다. 바깥과의 경계에는 쇠막대를 구부려 만든 틀에 부지를 정지하는 과정에서 채굴한 돌을 채워 격납벽을 세웠다. 지붕은 오랜 시간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쓰인 목재 트러스를 활용해 만들었다. 지역 봉사자들이 서로 다르게 생긴 네 개의 목재 트러스 모듈을 조립해 파빌리온 지붕을 완성했다. 엄격하게 규정된 공간은 금방 낡고 뒤처지기 마련이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파빌리온을 만들고자 했다. 정체를 알 수 없고 모호한 공간, 그 의미와 목적이 사용자로 인해 결정되고 변화하는 공간을 시각화한 결과물이 이 파빌리온이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and Construction Vertebral
Sustainability Michelle Kalach
Art Director Fortuna Kalach
Structural Engineer Ricardo Gavira
Location Mexico City, Mexico
Completion 2020
Photographs Ricardo de la Concha
2016년 설립된 페르테브랄(Vertebral)은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건축 및 조경 스튜디오다. 자연이 깃든 장소와 개방된 야외 공간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숲을 도시 내부로 가져오고자 하며, 멕시코시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 장인 정신을 중요히 여기며 소소한 부분까지 디자인 역량을 투영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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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
Songpa Signature Lotte Castle
송파구 거마로와 만나는 지점, 그 중심에 위치한 광장은 사람들의 발길을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로 이끈다. 광장 안쪽에서 고개를 들면 입구가 올려다 보이는데, 계단을 따라 오르는 캐스케이드가 꼭대기의 말 조형물과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싼 소나무와 어우러져 웅장한분위기를 형성해 단지의 시작을 알린다. 단지 내부의 큰 레벨 차는 캐스케이드와 같은 수직 동선으로 활용하거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곡선 보행로를 두어 경직되지 않은 숲 경관을 연출했다.
계단을 오르면 고요한 분위기의 거울연못이 나타난다. 단지 내부로 몇 발짝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역동적인 광장과는 상반된 분위기의 공간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잔잔한 수면 뒤편으로는 구름 모양의 조형석이 서있고, 거울연못 가장자리에서 바닥을 향해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물소리가 오히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계절을 품은 길
단지를 직선으로 크게 관통하는 대로 대신 모든 공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순환 동선을 계획했다. 동선이 형성한 틀 안에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공간으로 역할하도록 했다. 주요 동선을 따라서 송파구의 특성수이자 단지 대표 수종인 소나무를 심었다. 수고가 높고 수형이 아름다운 수목을 선별해 심어 울창한 숲이 연상되도록 했다. 소나무 아래에는 다양한 초화를 심어 계절정원을 조성했다.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의 다채로운 색과 모
양이 소나무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게 한다. 자연스럽게 굽은 소나무길을 따라가다 보면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공간에 도달하게 된다. 단지 내부를 가로지르며 높고 낮은 대지를 잇는 이 길은 단지를 딱딱하게 구획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단지 외곽을 따라서는 느긋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을 조성했다. 전 단지를 순환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주요 동선 및 공간과의 연결로를 두어 드나들기 쉽도록 했다. 숲길처럼 울창한 수목 아래 다층 구조의 녹지와 육생 비오톱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뻗어나가는 산책로를 거닐며 다채로운 경관과 다양한 사람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조경설계 서안+유일종합조경
건설 롯데건설
시공 유일종합조경(식재), 경원필드(시설물)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청우펀스테이션
휴게 시설 데오스웍스
위치 서울시 송파구 거마로 56
규모 1,945세대
대지 면적 68,332.20m2
조경 면적 31,506.57m2
완공 2021. 12.
사진 롯데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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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소니 파크
여백의 공원, 도시공원을 재정의하다
1966년 긴자에 지은 지상 8층과 지하 5층의 소니 빌딩은 소니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자 판매하는 쇼룸이었다. 2013년 소니는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 빌딩을 세우기로 했다. ‘긴자 소니 파크(Ginza Sony Park, 이하 소니 파크)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헌건물을 해체하고 바로 새 건물을 세우지만, 소니는 건물을 허물고 빈 공간에 잠시 공원을 짓기로 한다. 2016년 건물을 해체하고 2018년 공원을 열었다. 건물이 사라진 긴자 스키야하시 교차로에는 면적 707m2의 지상 공원과 지하 4층 규모의 로우어 파크(Lower Park)가 생겼다. 지상에는 세계 각지의 특별한 식물이 모여 있다. 지하 1층에는 음식점이 들어섰고, 카페가 있는 지하 3층은 인근의 니시 긴자 주차장 지하 2층과 직접 연결된다. 지하 4층에는 크래프트 맥주 가게가 있고, 지하 2층은 이벤트나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쓰인다.
2018년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소니 파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도심 속 사적 공간인 소니 빌딩을 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추어 도쿄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으로 임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처음 소니 파크를 방문한 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니 빌딩 일부를 소재로 한 한정판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 뒤에도 꾸준히 찾아가 소니 워크맨 40주년 기념행사 ‘워크맨 인 더 파크(Walkman In The Park)’를 소니 워크맨을 10년 넘게 애용한 세대로서 추억에 잠겨 둘러보고, 크리스마스에는 아이와 함께 ‘에르메스 징글 게임’을 관람하기도 했다. 소니 파크는 나와 가족에게 도심 속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이후에는 직접 찾아가지 못했지만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니 파크에서 벌어지는 인터랙티브 전시와 이벤트를 확인했고 그 속에서 ‘소니다움’, 즉 예측 불가능한 혁신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자라는 보수적이면서도 럭셔리한 콘텍스트 안에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혁신적 허브로 발돋움해 다양한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소니 파크의 활기찬 모습이 큰 감명을 남겼다.
하지만 소니 파크는 기간 한정 공간이다. 2022년, 이곳은 새 빌딩을 들이기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본래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에 맞춰서 2020년까지 소니 파크를 개방할 계획이었지만 1년 연장해 2021년 9월까지 공원을 운영했다. 2024년 완성될 뉴 소니 빌딩은 어퍼 파크(Upper Park), 파크(지상 공원), 로우어 파크로 구성된다. 새로운 빌딩 역시 거리에 공공 공간을 제공하는 공원이라는 소니 파크의 콘셉트를 계승한다. 소니답고 독특하고 장난기 있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로젝트 1단계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그간 소니 파크가 도시건축적 관점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뉴 소니 빌딩은 어떤 모습으로 고객과 시민에게 다가갈지 궁금해졌다. 소니의 대표이사이자 소니 파크 프로젝트를 이끈 나가노 다이스케(Nagano Daisuke)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환경과조경405호(2022년 1월호)수록본 일부
나가노 다이스케(Nagano Daisuke)는 소니 기업의 대표이자 치프 브랜딩 오피서(CBO)다. HQ 브랜드전략부 브랜드인큐베이션그룹에서는 제네럴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다. 긴자 소니 파크 프로젝트 인솔자로서 2013년부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2018년 8월부터 2021년 9월까지 긴자 소니 파크 시즌 1을 이끌었다. 2024년에 공개 예정인 다음 시즌을 준비하며 소니 그룹의 새로운 브랜딩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이원제는 도심 속 다양한 공간과 상호 작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공간을 구성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휴먼웨어를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읽고 해석해 ‘도심에서 풍요로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이며, SPC그룹과 UDS 코리아 자문교수를 역임했다. 중앙일보 폴인에서 ‘밀레니얼의 도시’(2018) 콘퍼런스를 총괄·기획했고, 저서 및 번역서로는 『인간을 위한 도시 만들기』(2014), 『도시를 바꾸는 공간기획』(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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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디자인 오피스] 조경하다 열음
삶의 그릇을 빚는 젊은 조경가의 매니지먼트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대학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조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경 공부를 시작한 이들 중 조경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경을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전공자로서 그동안 해온 고민의 공통분모는 조경일 것이다. 그 속에서 길을 찾은 사람 혹은 찾고 있는 사람은 아직 조경 제도권에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났다. 나 또한 수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 조경이라는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연과 기회를 통해 떠올리게 된 새로운 화두가 동력이 되어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경 설계 도면만 그리는 사람이 조경가일까, 이 질문은 내게 기연(機緣)과도 같다. 답을 찾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헤맨다 해도 좋을만큼.
‘조경하다 열음’(이하 열음)을 꾸린 지 5년째다. 대학에서는 설계 중심 커리큘럼으로 조경을 배웠다. 졸업 후엔 조경설계사무소를 다니며 10년간 경력을 쌓았지만, 교육 과정이 조경의 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실무를 하다 보니 사회에는 조경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체감했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적 문제로 손을 뻗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물론 의견을 제시하거나 활동 참여가 제한되는 건 아니다. 어느 분야나 회사에 속하지 않은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접근한다면 말이다.
지역의 자원이나 문제를 발굴하더라도 조경업의 측면 그리고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는 공모에 참여하거나 설계 도면을 납품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설계를 위해 대상지를 조사하면 할수록 갑갑했다. 도면을 완성하는 일 외에도 조경학과에서 배운 역량으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눈을 감아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판을 만들기로.
조경가의 역할은 주어진 대상지에 대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디자인을 넘어 여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는 전문가, 열음이 지향하는 조경가의 모습이다.
생활밀착형 조경
코로나19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공원 녹지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생활 공간 속으로 자연을 가져올 수 있도록 도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도시를 쾌적하게 하는 대형 공원과 녹지와 더불어 일상 속 생활밀착형 공간의 쾌적성을 높여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공간에는 선과 숫자 중심의 기존 엔지니어 방식을 넘어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한 솔루션 제시가 요구된다. 석수골 마을정원 조성(2018),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동네정원 코디네이터(2019, 2021)는 시민의 욕구를 듣고 때로는 디자이너, 때로는 전략가가 되어 현장을 바탕으로 해법을 찾아본 경험이다. 열음은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간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현장 중심의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국가 정책의 변화와 시대적 수요를 조경가가 주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다양한 정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가 과제의 핵심은 지역 주민과 함께 공간을 개선하고 운영하는 것이다. 조경가는 관계를 만들고 대응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이 강하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주민 참여 공간 조성 사업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소셜 디자이너로서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가지고 지역을 변화시키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북촌 도시 재생, 여수 농촌 재생, 강화도 어촌 재생이 그 사례다.
북촌은 개발이 아닌 보존을 선택한 주민들 덕분에 600년 역사적 자산을 지키며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적 명소가 된 곳이다. 하지만 최근 무분별한 상업화로 인한 정체성 훼손, 과도한 관광객 방문으로 인한 생활 환경 침해 등의 문제가 대두됐다. 살고 싶은 마을과 머물고 싶은 동네를 위한 공존·상생의 길을 현장에 상주하며 찾고자 했다. 먼저 한옥 보존에 대한 규제로 인한 경직된 지역민의 마음을 달래고자 ‘북촌정원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부담 없이 접근하고 식물을 통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 도시재생의 포문을 열었고, 지금까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수 새뜰마을에서는 개발제한구역과 여수 국가산업단지로 인해 열악해진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잠재된 마을 자원을 발굴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봉계동 일원의 ‘주삼지구 새뜰마을사업’을 통해 지역 내 빈집 및 노후 주택을 정비하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및 복지 지원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강화도에서 진행한 ‘어촌뉴딜사업’은 주민이 주도해 해양 경관 개선 및 경제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는 프로젝트다. 곳곳에 산재된 유휴 공간과 해양 경관을 개선하며 지역 사회 구성원과 방문객을 위한 공간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우리의 역할을 찾고 비전을 제시하면서 조경가의 활동 무대를 바다로 확장하는 중이다.
조경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품질의 차별화된 조경 공간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는 고급 주택의 정원 등 사적인 공간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 상업 공간, 아파트 조경이 주로 완성도가 높은 조경 공간으로 꼽힌다. 따라서 디자인적 조형미, 고가의 자재와 식물 활용, 시공성, 식물 간의 균형과 조화로움 등은 차치하고 들어주기를 바란다.
동네에서 더 나은 조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주민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조경은 워낙 다양한 역할을 하기에 그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근간에는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연하는 편집자로서의 사명이 있다. 자연과 멀어진 사람의 일상으로 자연을 끌어와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도시의 누군가는 이러한혜택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실정이다.
정원에 공공성이 더해지면서 조경이 태동했다. 그런데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조경 공간의 품질은 더 떨어진다. 좋은 소재와 기술을 쓰고 인력을 많이 투입하면 품질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본력을 가진 클라이언트만 좋은 조경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거 귀족에게만 허락된 정원(loyal garden)과 다를 게 없다. 다수의 공공을 위한 공간일수록 좋은 품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경제 자본과 멀어지면 쾌적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제한되는 것인가.
예산 분배는 정책가의 역할이니 접어두고 조경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조경가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뛰어들어 솔루션을 제시하고 자격을 갖추어 판을 만들자는 전략을 세웠다. 많은 비용이 요구되는 디자인이나 재료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의 체감률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다. 지금까지 조경가는 주민들이 원하는 걸 듣고 설계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자체 진단과 직관에 의한 설계 결과물을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조경가는 일을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서 공간을 누리는 사람들은 주민이란 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꾸준하게 마을과 연을 맺고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이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누구나 집 앞에서 고급 정원을 향유할 수는 없겠지만, 보다 나은 공간에서 쾌적함을 누리는 일에는 공평하면서 보편적인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돈이 되는 고급형 조경이 아닌 누구나 누릴 있는 녹색 복지로서 보급형 조경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쏟아야 한다. 이게 조경의 공공성이 아닐까. 자연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면 도시에 영양 결핍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결핍은 결국 사회 문제로 이어지니 손을 놓아서는 안된다. 열음이 주목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일상에 자연을 놓아주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학교는 창의적인 인재 육성보다 효율적인 통제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주인인 학생을 위한 공간이 어디에도 없는 모순적인 구조다. 교육부도 이를 인지하고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 공간에 대한 접근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특히 운동장은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고 숲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공간인데도 대부분 방치되어 있다. ‘생태 숲 미래학교’는 경기미래교육 핵심 과제 5가지 중 하나다. 우리는 2개 학교(김포 고창초등학교, 부천 송내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에게 생태적 가치와 감수성을 일깨워주고 기후 변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외부 공간 조성이 목표였다. 그 과정을 통해 조경가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 공간 혁신을 위한 공간 전문가를 촉진자로 위촉하고 건축·도시·조경 전문가가 참여할 길을 열어놨으나 조경 분야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업적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점과 기존과 접근 방식이 다른 생소한 프로젝트인 점이 이유인 것 같다. 촉진자 선정에 참여한 40여 명의 전문가 그룹 중 조경가 그룹은 열음이 유일했다. 학교는 미래 세대가 자라는 공간이고 전국의 학교 개수를 고려하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잠재적 탄소 흡수원이자 환경 교육 거점으로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참여 계기였다. 이후 조경 분야가 참여할 길을 열어두기 위한 교두보 역할만 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였다.
학생들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선 교실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으니 쉬는 날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산과 바다와 같이 먼 곳으로 바캉스를 떠난다. 완벽한 스트레스 해소는 어려울지라도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자연을 마주하며 힐링하는 경험은 스트레스 총량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소생물 서식처 기능까지 고려한다면 사람과 야생 동물이 공존하는 지역의 생태적인 거점으로 거듭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년의 시간, 12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특히 부천 송내고등학교에서는 교내 환경 교과목 교사와 합을 맞추면서 소프트웨어와 어우러진 공간 조성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기존 환경 교육은 학교 바깥의 녹지를 간헐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정도였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학교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상의를 통해 교육 과정과 연계한 AI 교육 등의 학습 공간을 계획했다. 음악회나 독서와 같은 공간 경험을 넘어 진로 탐색과 연계할 수 있는 모델로 서 숲을 제안했다. 교직원과 학생들 모두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진행 과정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처음에는 일부 위요된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과업이었으나 또 하나의 위요 공간부터 필로티, 건물 틈새 중층, 옥상 등 내외부를 관통하는 하나의 녹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하여 추가로 예산을 받아 과업을 수행하게 됐다. 학생들과 함께 도출한 생각을 설계로 구현했지만 공사는 가격 입찰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손을 벗어나 의도가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정식 공사 감리는 아니지만 디자인 감리 제도를 통해 시공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 디테일 조정 등 여러 부분에 관여했다. 프로젝트 성과에 100%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이 빗물, 숲, 옥상, 실내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정원을 일상의 일부인 학교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조경하다 열음’의 구성원
현재 열음은 경영 관리, 설계와 엔지니어링, 공동체 등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조민영 소장이 경영 관리 총괄로 회사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고, 윤호준 소장은 설계 및 엔지니어링, 김도훈 소장이 공동체 파트 총괄이다.
엔지니어링 파트 행동대장 이병우는 온갖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식재다. 설계부터 시공, 활착 후 모니터링까지 본인 머리에서 현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걸 좋아한다. 식재와 관련된 부분에선 회사 내 ‘원 톱’이다. 이외에도 각종 설계가 실제 현장에서 구현될 수 있게끔 관리한다.
신혜지는 기획과 구상을 실시설계로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장하니는 내역을 담당하면서 다른 직원들이 의욕으로 채운 도면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데 주력한다. 김윤은 사회초년생이지만 기복이 없고 뚝심이 강해 선배들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준다. 그래픽 기술을 특화해 역량을 키우고 있다.
공동체 파트는 현재 북촌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임은경은 현장에서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리하는 소통 창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김용진은 다양한 의견을 북촌에 맞게 체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문제가 들어와도 북촌화하여 주민과 협의해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김범진은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 머물며 자리를 지켰다. 시대적 흐름이나 상황 속에서 북촌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해준다. 박지영은 센터 내 유일하게 도시 공학을 전공한 도시재생 전문가로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 수립과 사업 실행을 전담해서 진행하고 있다.
조경가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회사와 대표는 동일체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법인은 또 하나의 인격체다. 회사와 대표가 등가 관계로 매칭되는 순간 동료들이 빛을 잃을 우려가 있다. 그래서 열음에는 직급이 없다. 창립 때부터 직급 체계를 두지 않았다(물론 나이 차에 따른 구분과 예를 갖춘다). 모든 동료의 명함에는 ‘조경가’란 타이틀만 있을 뿐이다. 각 파트장들만 소장이란 직함을 달고 있을 뿐, 다른 동료들은 수평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열음의 조경가들은 대외 업무 시 회사를 대표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책임질 권한을 갖는다. 그렇다고 경력자나 소장이 자기 업무만 하면서 방치하는 건 아니다.
권한을 주되 책임을 선배들이 분담하며 업무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한다. 직원들이 연봉만으로 설계업을 영위하는 건 회사나 개인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설계는 계량이 어려운 지식 서비스 산업이므로 야근,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다 나은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그렇기에 직원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있더라도 최소한 일정 수준의 품질을 맞추기 위해 함께 스터디 하면서 해법을 마련하는 구조를 취하고 이를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열음을 배경으로 한 조경가 개인의 커리어 축적, 수익 배분, 방학 제도 운영이다.
열음은 정원박람회 작가나 공모전 등 개인 커리어를 쌓는 것도 장려하고 있다. 연봉 외에 노력하는 만큼 수익을 배분하는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회사 매출의 일정 수익금은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다. 방학은 주로 연말에 주어지며 2~3주 동안 회사와 어떤 연락도 하지 않는 휴식기를 갖게 한다. 자기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할 정도로 성장한 조경가는 각자 독자적 조직을 구축하도록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연예인의 방송 활동 외 경영 전반을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 개념을 모티브로 한다. 회사가 소화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역량은 다양한 전문가와 의 협업 관계를 통해 보완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 또한 열음의 역할이다. 조경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조경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는 회사가 되려 한다.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조경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온전하게 자기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배경이 되어주는 회사로 성장하는 것이 열음의 꿈이다. 조경 설계에 국한해 우수한 사람들을 모아놓는 게 아니라 도시, 공동체, 스마트 시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업무를 수행하는 조경 전문 소속사, 그게 바로 ‘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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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하다 열음의 대표 조경가 윤호준은 조경 설계를 기반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한다. 학부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뒤 제도권을 넘어 새로운 판을 만들자는 포부로 2017년 조민영과 함께 사무실을 열었다. 주민과 소통하고 공간의 조사, 설계, 시공뿐만 아니라 교육과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생활밀착형 조경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자연의 모습을 도시에 재현하는 편집자로서 사무실보다 현장에서 답을 찾고, 직관보다 경험, 발주처보다 주민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인다. 예비 조경가를 발굴·육성하는 매니지먼트 회사로 조경설계사무소를 키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