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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
    2020년 여름, 서빙고역 앞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가 열렸다. 미군 장교숙소 5단지로도 불리는 이곳은 1980년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미국 교외식 타운하우스 숙소를 건설해 미군에게 임대 운영해온 곳이다. 이후 건물 18개동 중 일부를 리모델링하여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221). 공간에 공감하기_임한솔 지난 ‘공간 공감’을 찾아 읽다가 주목한 부분이 있었다. “공간의 질이 중요하다기보다 이야깃거리를 얼마나 품고 있느냐, 공간에 대한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당신이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공간 공감, 『환경과조경』 2015년 12월호) 공간에 대한 선호가 질보다 이야깃거리와 판단의 단초에서 비롯된다면 그 이야깃거리와 단초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지역 주민이라면 일상 기억, 식물 애호가라면 식물의 생육 상태와 아름다움, 설계가라면 공간의 디테일에서 찾아낼 것이다. 말하자면 이야깃거리는 공간이 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찾아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곳을 매번 일 때문에 방문했는데 마음가짐을 달리하니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무엇보다 사람과 차가 없다는 ‘부재’가 눈에 띄었다. 쓰이지 않는 곳은 쉽게 스러지기 마련이지만 5단지는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임대 주택 단지라는 태생 때문일까. 임시 개방을 위한 관리 때문일까. ‘유보’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지 않지만 방치된 상황도 아니기에 이곳이 마치 영화 세트장이나 모델 하우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유엘씨프레스(ULC Press)는 도시 경관 연구 청년 집단이다. 도시 경관에 관한 이론과 사례, 현상과 비평의 글감을 모으고,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인식과 경험에 관한 콘텐츠를 기획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출판하고 있다. ulcpress.com
  •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저는 오즈 야스지로우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너무 심심하잖아요”라고 남자가 이야기하자 찬실은 버럭 화를 낸다. “심심한 게 뭐가 어때서요? 별거 아닌 게 제일 소중하잖아요. 보석 같은 게 영화에 다 나오잖아요. 영이 씨 눈에는 그런 게 안 보여요?” 찬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왜 찬실은 복이 많은 사람인지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알게 된다. 대화의 발단은 이렇다. 찬실은 평소 마음에 품은 연하의 남자 영과 술을 마시게 된다. 일본식 술집에 나란히 앉아 찬실은 제일 좋아하는 오즈 야스지로우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눈치 없는 영이 그 감독의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분위기를 깨 버린 것이다. 사실 상황만 보자면 찬실은 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소위 예술 영화를 찍는 감독의 프로듀서로 오랜 시간 동안 일했지만, 감독이 돌연사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는 동안 일만 열심히 했지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서울에 저런 동네가 아직도 있나 싶을 정도의 산꼭대기 단칸방으로 이사하는 날, 찬실은 “완전히 망했다”고 탄식한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친한 배우 소피가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찬실은 거절하고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런 찬실에게 어느 날 희한한 일이 생긴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서영애는 기술사사무소 이수에서 일하고,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가르치며,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에서 공부하고 있다. 영화 속 경관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역사도시경관으로 보는 서울 남산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환경과조경』에 ‘시네마 스케이프’를 연재했다. 특집호 의뢰를 받고 작년에 본 이 영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현재 넷플릭스로 볼 수 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은 일상의 보석을 캐는 일과 같다. 최근 오픈한 BoLA 홈페이지(www.bola.kr)에서 다시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 Gaepo Raemian Forest
    포레스트11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는 개포시영아파트를31동2,296세대 규모로 재건축한 단지다.주변의 녹지와 단지 외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연계해 숲세권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대상지는 대모산과 달터공원 사이에 위치하며 양재천에서 대모산을 연결하는 강남그린웨이와도 인접해 풍부한 자연을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남측 달터공원으로의 통경축을 고려한 주동 배치는 이 같은 이점을 살린 것으로,단지 중심의 보행로 양측에 비슷한 규모와 형태의 선형 공간들이 반복되는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다. ‘포레스트11’은 이러한 단지 구조가 만들어 내는 열한 개의 선형 공간에 대응하는 콘셉트다.다양한 특성을 갖는 숲을 조성해 달터공원의 숲과 연계하고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경관에 변화를 주면서 풍부한 녹음을 제공하고자 했다.더불어 물,예술,환경 기술의 개념을 숲과 결합해 숲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주민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더하는 설계 기반으로 활용했다. 자연숲과 커뮤니티숲 동과 동 사이에 조성된 열한 개의 숲에는 배롱나무,느티나무,자작나무 등 숲에 성격을 부여하는 중심 수종이 있다.경관 변화,옥외 공간의 균형,커뮤니티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해 수종을 선정했고,각 수목이 선사하는 계절감과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배식법을 찾고자 했다.큰 특징은 동의 전면과 후면에 조성한 숲의 성격을 달리했다는 점인데,한쪽은 다층 식재 구성과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자연숲’으로,다른 한쪽은 건축의 선을 따르는‘커뮤니티숲’으로 조성했다.주동을 기준으로 교차하는 두 가지 숲은 휴식과 산책 등 이용 목적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동 간 균형을 맞추면서도 접근성이 높아 일상에서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조경 설계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조경 시공 삼성물산 식재 장원조경 시설물 청우개발 놀이 시설 청우펀스테이션 위치 서울시 강남구 개포로 264 규모 2,296세대 면적 대지 면적: 98,563m2 조경 면적: 45,832m2 완공 2020. 9. 사진 우경선, 유청오 그룹한 어소시에이트는 1994년 창립 이래, 도시인에게 자연과 호흡하는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제시해 왔다. 삭막한 주거 환경의 한복판에 고향에 대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추억,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며,여유와 즐거움이 넘치는 문화 환경을 헌정한다.
    • 김기천
  • [나의 미개봉작 상영기] 철쭉과 억새 사이
    황매산 군립공원 입구 조경 계획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황매산은 영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며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합천의 대표적 관광 명소다. 이곳이 철쭉과 억새로 대표되는 독특한 경관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84년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황매산 입구부에 180헥타르에 달하는 대규모 목장을 조성해 360여 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젖소와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기고 주변의 풀을 먹는 바람에 자연스레 대규모 철쭉 군락이 형성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농가들이 낙농업을 포기하고 나간 자리에 억새가 무성히 자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기에 입구부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조경 계획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황매산이 가진 독특한 경관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보다 철쭉제 등 일회성 행사를 지원하는 이질적 요소를 조성해 오히려 원 경관을 훼손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계획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반응이 적층된 황매산의 역동적 경관을 더욱 선명히 드러낼 것, 황매산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고 원 경관을 가리지 않는 선에서 물리적 계획을 세울 것. 기본계획과 기본설계는 JWL이, 실시설계는 그람디자인이 진행했다. 공사 중 변수가 너무 많이 발생해 재설계에 준하는 공사용 샵드로잉을 매주 작성하고 이를 현장에서 시공 소장과 논의하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시켰다. 절반의 성공, 식재 설계 황매산에 올라서면 사방에 펼쳐진 억새 경관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를 입구부에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대상지에 자생하는 억새류와 수크령류, 새풀류, 파니쿰류를 띠 형식으로 병치해 방문객들에게 각 식물이 지닌 다양한 질감과 색채를 전달하고자 했다. 실제로는 의도한 바의 50% 정도만 구현되었는데, 대상지의 기후 조건과 그라스류의 생장이 갖는 관계를 깊게 분석하지 않고 미적인 부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새풀류는 생장이 더뎌 질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은 반면 압도적인 생장 속도를 보인 파니쿰류의 질감이 지배적 경관이 되어버렸다. 전반적으로 그라스 군락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공들여 설계한 지형의 아름다움이 묻힌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원종호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KnL환경디자인스튜디오에서 설계의 기본을 익혔으며, 현대건설에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시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JWL)에서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규모의 공간을만들어가고 있다. 조경가가 문화인으로 인정받는 날까지 끊임없이생각하고, 공부하고, 실험해 볼 생각이다.
  •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람들] 미완의 정원으로 대화의 씨앗을 심다
    한국에서 해외의 주민 자치 사례를 꼽을 때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일본의 자치회自治(jichikai)1다. 이 자치회는 한국의 통·리 단위 수준에서 결성되며, 원칙적으로는 정해진 구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세대로 조직되고 보통 50~200세대 사이의 규모다. 인구 고령화와 도시 집중화를 거치며 기능을 많이 잃었지만, 지진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작동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써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 약 30만 개가량 되는 자치회 중에서도 치바 현의 마쓰도 시 이와세 자치회는 조금 특별하다. 자치회 위원들이 행정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자치회관에는 보통 나이가 있는 관리인이 상주하는데, 이곳에는 젊은 학생 부부가 살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의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그룹의 구성원들이 서로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돕는 전문가)이자 동네 어린이들의 친구인 미츠나리 테라다와 그의 아내 마리아 에르밀로바다. 둘은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공부하던 5년 전부터 자치회관에서 거주하며 주민들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화상으로 커뮤니티 안에 속해서 매일 화초에 물 주듯이 공동체를 살피며 키워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현재 거주하는 이와세2는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자치회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하다. 치바 대학교 원예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 이와세 자치회의 커뮤니티 퍼실리테이터로 초대를 받았다. 당시 내 전공이 교육학이라는 걸 안 자치회장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축제 준비를 요청했다. 그렇게 2016년 2월 마리아와 함께 이와세 자치회관 2층의 관리자실에 입주했고, 무료로 거주하며 이와세 커뮤니티와 협력하고 있다.(미츠나리) 2015년 가을에 치바 대학교에서 환경계획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건너왔다. 학부에서는 생태학을 전공했는데, 그 과정에서 도시재생과 도심의 녹지 보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태학은 이론적 연구에 그치거나 실천을 하려 해도 관료적 절차에 의해 제한되는 경향이 있어 답답함을 느꼈다. 도시계획을 통한 보다 실천적인 접근법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왔고, 학교에서 미츠나리를 만났다.(마리아) 일본 자치회의 역사가 꽤 역사가 긴 것으로 알고 있다. 생성 배경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자치회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자치회는 일본의 농업 사회에 기반을 둔 개념이다. 동네 단위라는 물리적 영역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지역 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한 마을 축제를 열거나 다양한 자원봉사를 하며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가로등 관리 같은 커뮤니티 시설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도 하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방범 활동이나 재난 관리를 통해 동네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과거의 자치회는 어린이부터 부모,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져 소속감을 느낄수 있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대체로 노인 세대만 참여하는 상황이다. 젊은 세대는 자치회가 구세대 문화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치회 행사에서 여자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남자만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다양한 세대를 연결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고, 자치회에서도 젊은 세대를 다시 끌어들이고자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와세 자치회장도 이 동네가 노인 중심 공간이 되는 것을 우려해 우리가 이곳의 주민으로서 분위기를 바꿔보기를 바랐던 것 같다. 퍼실리테이터로서 세운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세대를 연결해 안전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린이 참여와 생태학적 기술을 이용해 조경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일본은 읍면동 단위에도 동사무소 대신에 협의회 성격의 주민 자치회가 결성돼 있다. 자치회는 1800년대 후반, 메이지 시대 때 행정 말단 업무를 맡아 실질적인 주민 생활, 생산 활동의 중요 기능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시 체제 강화의 도구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2. 이와세는 마쓰도 시의 통 단위에 해당하는 지역 중 하나다. 630세대가 거주하고 있지만 자치회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100세대 미만이다. 참고로 마쓰도 시에는 약 24만 세대가 거주한다. 이와세는 1970년대에 도쿄로 통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도시로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주거지가 많다. 30분이면 동네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조성빈은 유년 시절을 미국과 한국의 다양한 도시에서 보냈고,공간과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건축과 조경을 공부했다.늘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와 깊이는 부족해도 본질에 관심이 많고,관계에서든 공간에서든 진정성을 추구한다.조경설계 서안을 거쳐 조경작업소 울에서 놀이터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연금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2009년부터 옥수동 옆 약수동에서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텍스트로 만나는 조경』,『커뮤니티디자인을 하다』,『소통으로 장소만들기』,『우연한 풍경은 없다』등 다양한 집필 작업을 해왔다. 2020년에는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인 이규목 교수를 비롯해 여덟 명의 조경가의 글을 엮어『이어 쓰는 조경학개론』을 펴냈다.
  • [북 스케이프] 『친화력』과 괴테의 화학 실험 정원
    과학 기술 용어를 일상 속에서 쓰는 일은 낯설지 않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나‘회복탄력성’같은 예를 들지 않아도,당황하면 머릿속‘서버가 다운’되고,저녁이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나도‘방전’된다.디지털 세상에는 각종‘밈(meme)’이 돌아다니고,학기말이 가까워질수록‘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방은 점점 더 엉망이 된다.그리고 사람 간 성향이 잘 맞아 조화를 이루면‘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한다.마지막 예는 근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놀랍게도 이미19세기에,그것도 대문호 괴테가 소설『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7)에서 사용했다.1친화력(affinity),혹은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y)은 특정 물질끼리 강하게 결합하려는 성질을 뜻하는 화학 개념이다.괴테는 사람,특히 연인 관계에 이 개념을 도입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이 관계의 변화에서 정원과 자연은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부유한 귀족 에두아르트와 샤로테는 재혼 부부다.젊은 시절 서로에게 끌렸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다른 이와 결혼한다.그러다 둘 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우여곡절 끝에 재혼한다.동화였다면 이들은 에두아르트의 시골 장원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겠지만,애틋한 사랑도 일상에서는 담백해지기 마련이다.단조로운 시골 생활이 지루해진 에두아르트는 어려움에 처한 친구인 대위를 집에 들일 생각을 한다.샤로테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곧 기숙 학교에 있는 조카 오틸리에도 집에 들인다는 조건으로 동의한다.그런데 막상 네 사람이 함께 있게 되자 상황은 미묘하게 바뀐다. (후략) 각주 1.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친화력』은 민음사(김래현 역, 2001)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오순희 역, 2013)등에서 출간되었다.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황주영은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에서 19세기 후반 도시 공원의 모더니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파리 라빌레트 국립건축학교에서 박사후 연수를 마쳤다. 미술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문화사적 관점에서 정원과 공원, 도시를 보는 일에 관심이 많으며, 이와 관련된 강의와 집필, 번역을 한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책을 사거나 빌렸고, 그중 아주 일부를 읽었다.
  • 무한 놀이터 ‘거점형 창의어린이놀이터 조성 지명설계공모’ 당선작
    서울시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어린이공원 131개소를 대상으로 노후한 놀이 시설을 개선하는 ‘창의어린이놀이터 재조성사업(이하 창의놀이터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1년 새롭게 추진하는 ‘거점형 창의어린이놀이터 조성사업’은 지역별 소규모 시설 개선 위주로 진행되던 기존의 창의놀이터 사업을 개선 및 발전시킨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어린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대상지의 특성을 반영한 콘셉트, 규모,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 구성 등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놀이터를 만들고자, 지난 4월 28일 ‘거점형 창의어린이놀이터 조성 지명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대상지는 한강공원 광나루지구 놀이터와 주변 유휴 공간(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351-1 일대)으로 면적이 약 6천m2에 달한다. 2010년에 조성된 기존의 놀이터는 전체적으로 시설이 노후해, 사람들의 이용률이 높은 주차장, 한강드론공원, 광나루 수영장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지명초청된 김연금(조경작업소 울), 황용득(기술사사무소 동인조경마당), 이수학(아뜰리에나무)은 이곳을 숲, 모래, 물 등 주변 자연물을 활용해 지속가능하고 자유로운 창의·모험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야 했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 도시를 엮는 별자리 ‘미래서울 도시풍경’ 전
    지난 6월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갤러리 아워에서 25년 후 서울의 공간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미래서울 도시풍경’은 기후변화, 초고속정보 기반 기술 환경, 재택근무, 새로운 교통 수단 등 다가올 사회적 변화에 대응해 근미래 서울의 도시 풍경을 구상한 전시다. 급격한 성장기를 거친 서울을 되돌아보며 기존의 녹지와 가로, 크고 작은 공공 공간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재편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서울은 양적·질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도시다. 도시가 발전하는 가운데 다양한 공공 시설과 오픈스페이스가 확충됐고, 사람들의 삶의 질과 도시 공간의 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정교한 구상이 아닌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이어 붙이는 식이었기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시 안쪽까지 깊숙이 뻗어 있던 산맥과 강줄기는 밀집한 건물들의 등 뒤로 밀려났고, 공원, 주차장, 여가 시설, 복지 시설 등의 생활 기반 시설은 일부 지역에 편중됐다. 전시는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제각기 흩어진 공간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도시별자리’ 전략을 제안했다. 도심 내 활용 가치가 높은 공간을 찾고 그 가치를 밝혀 단절된 공간을 별자리처럼 잇는 개념으로, 공간 규모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동네 생활 시설이나 소규모 녹지와 공지 등을 포함하는 ‘마을별자리’, 서울 내 역세권이나 수도권 환승 거점과 같이 지역과 마을을 연결하는 ‘거점별자리’, 서울 전역에 걸친 보행 및 물길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서울별자리’다. 세 가지 개념을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서울의 도시 풍경을 시민들에게 공유하고자 했다. (후략) * 환경과조경 399호(2021년 7월호) 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뉴락
    “이게 인천까지 갈 일이냐고.” 주말 아침 1호선에 올라타며 혼자 투덜거렸다. 내가 사는 서울 북쪽 끄트머리 동네에서 인천까지는 지하철로 1시간 반. 드넓은 서해를 보러 가는 것도, 차이나타운에 놀러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쓰레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매달 나에게 할애되는 이 지면에 쓸 글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도 했지만(재주가 없다면 발품이라도 팔아야 한다), 이 기회에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조금은 특별한 쓰레기들을 말이다. 전시장1에 오브제처럼 고이 놓여 있는 쓰레기에 대한 첫인상은 뭐랄까, 어울리는 수식어는 아니지만 ‘아름답다’였다. 냄새나고 지저분한 물체가 아니라 파도와 바닷바람에 깎여 오묘한 형태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작가 장한나는 이것들에게 ‘뉴락(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돌처럼 보이지만 돌이 아니다. 암석은 물리적 혹은 화학적 작용으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뉴락은 끊임없이 부유하는 존재다. 그곳이 깊은 바다 속이든, 고래 배 속이든, 인간의 몸 속 어딘가든. 아무리 잘게 쪼개져도 사라지지는 않는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인천, 양양, 강릉, 제주, 울진 등 국내 곳곳의 해변에서 채집된 각양각색의 쓰레기들의 옛 쓰임을 추측하는 일은 놀이 같기도 했다. ‘이건 페트병이고, 이건 스펀지, 이건 스티로폼이었네, 마른 해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초록색 그물이고, 동그랗게 생긴 이건… 부표다!’ 한 때 바다 한가운데 떠 있던 부표에는 홍합과 굴, 따개비 껍질 따위가 붙어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영상에서는 새우 같은 작은 해양 생물체가 하얀 플라스틱 조각에 자꾸만 몸을 갖다 대고 있었다. 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먹이? 난생 처음으로 그 누구도 아닌 ‘쓰레기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그것들의 탄생, 도구로 사용되며 사람 손의 땀이 배어 있던 시절과 앞으로 쓰레기로서 보낼 시간, (있을지 모르겠다마는) 종래에 당도할 종착지까지. 이때만큼은 눈 앞의 쓰레기가 오래된 유물처럼 보였다. 어쩌면 폐허가 된 고대 로마의 유적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플라스티글로머리트(plastiglomerate).2 결국 최후의 증인은 이런 쓰레기들이 되지 않을까? 화석을 통해 인간이 백악기 시대를 알아낸 것처럼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몇천 혹은 몇만 년 후에, 그러니까 문서나 영상 등 인류를 말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플라스틱은 지구의 새로운 지층으로 남아 이곳에 인류가 살았음을 말해줄 것이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예술이지만 가끔은 정말 흥미롭다. 잔뜩 일그러지고 변색된 스펀지 하나가 매주 아파트 단지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재활용쓰레기들보다 더 크게 다가올 줄이야. 작가가 바란 건 쓰레기 문제에 대한 반성보다 “신기하고 아름다운데 좀 이상하다는 느낌”3이었다. 작가가 내게 남긴 여운에서 이상함을 넘어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이제 내게 쓰레기는 두려운 존재다. 1년에 20만 톤.4 그중 딱 손바닥 한 줌만큼의 쓰레기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파도에 마모되어 독특한 형태를 갖춘 녀석은 운 좋게 전시장에 놓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져나간 파편들은? 언젠가 한 인터넷 뉴스에서 봤던 한 사진이 불현 듯 떠올랐다. 내장이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버트로스의 사체가. 어느 맑은 날 미드웨이섬 위를 날다 돌연 바닥에 툭 떨어졌을 그 새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천적의 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평소와 다른 날이 있었을 것이다. 배불리 뭔가를 먹었는데 도무지 기운은 나지 않고, 숨은 조금씩 가빠지는 날들이. 한 가지 바람을 안고 전시장을 나섰다. 이런 죽음도 있고 저런 죽음도 있겠지만 적어도 마지막 순간에 내가 왜 죽는지 알면서 죽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물론 아무도 장담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각주 정리 1.‘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는 인천아트플랫폼에서 7월 25일까지 열리는 전시다. ‘뉴락’을 비롯해 비인간 존재와의 공생을 말하는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2.녹은 플라스틱과 암석, 모래 등이 섞여 만들어진 새로운유형의 지질학적 물질. 과학자들은 이 플라스틱 돌덩이가 인류세를 식별하는 지표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유지연, “돌인데 돌이 아닌…해변에 나타난 ‘뉴락’의 정체”, 「중앙일보」 2020년 12월 20일. 4.2020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간한 ‘해양 유입 하천쓰레기 관리체계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연간 약 99만 톤의 하천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그중 70%는 나무와 풀이고 플라스틱은 20% 안팎으로 추정한다. 매년 약 20만톤 정도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는 셈이다.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독자 없는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았고, 여자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으려 했기에 ‘로렐라이 언덕’ 문학회는 누구도 읽지 않는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 뮤지컬 ‘레드북’ 이야기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과학의 발전과 산업혁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번영을 누리던 시기지만, 주인공 ‘안나’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철창이 세워진 감옥 같은 곳이었다. 안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끊임없이 숙녀다움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성가시다. 관심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잘하는 일은 자신이 느끼는 바와 원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안나를 이상한 여자라고 부른다. 로렐라이 언덕만이 안나를 받아들인다. 문학회를 창립한 로렐라이는 안나에게서 반짝이는 재능을 본다. 솔직해서 흥미롭고 귀 기울이고 싶어지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 수 있는 능력. 인기 없는 잡지 『레드북』의 발행인으로서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인재였다. 에디터의 심정으로 무대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절대 놓치지 마!’ 쓰는 안나는 자유롭다. 자아를 투영한 소설 속 주인공은 정글을 탐험하고 때로는 괴도가 되고 마음껏 사랑한다. 안나는 자신이 슬퍼질 때마다 했던 야한 상상까지 모조리 소설에 담는다. 무려,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에(그냥 손, 발 따위도 말할 수 없었다)! 사회적 통념으로 정제되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는 금방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고 『레드북』은 완판된다. 하지만 ‘레드북’은 안나가 직업적 꿈을 성취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박한 내용으로 사회 분위기를 흐렸다는 이유로 『레드북』은 폐간 위기에 처하고, 안나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이 미친 소설을 썼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추방당할 상황에 놓인다. 대체 안나가 뭘 잘못했지? 철창 안에 웅크린 안나를 바라보며 함께 슬퍼하고 있을 때, 노래가 시작된다. 그순간에도 안나는 자신에 대해 말한다. 긴 시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가족에게 버림받으면서도 놓지 않았을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 그 결론이 담긴 노랫말에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는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 결국 안나는 스스로를 구한다. 바깥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 자신을 재단하지 않고, 내가 누군지 스스로 묻고 그렇게 살고자 끊임없이 말하고 쓴 결과다. 시나리오를 집필한 한정석 작가가 쓰고 싶다던 ‘인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어쩌면 나를 말하는 삶인지도 모르겠다.1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일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동반한다. 탐구하고 가정하고 그 가정을 의심하며 다시 스스로 묻고 답하기를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쓰는 일은 그 과정에서 꼬여버린 타래를 풀어 정돈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다. 물론 말을 하고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야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 때문에 부끄러울 수도 있다는 걸 안다(‘싸이월드’가 부활한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말하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세상에 아무런 의미 없는 기록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로렐라이 언덕 문학회의 다른 회원들은 어떤 소설을 썼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쑥 치민 궁금증에 휴대폰 인터넷 창을 열었다. 머릿속에서 벌써 가물가물해진 그들의 대사를 검색어로 적어 넣다가, 이렇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이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돕는 덫과 힌트가 잡지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호 특집을 매만지며 지나간 연재들을 그저 지나간 글로 두기에는 아깝다는 마음이 계속 생겼기에 더욱 그랬다. 종종 옛 연재를 읽고 좋은 문장을 이 지면에 소개해볼까. 이번 특집을 훑어보며 읽고 싶은 연재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한 가지 팁을 남기자면 환경과조경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2014년 이전에 발간된 잡지들을 무료로 볼 수 있다. 단, 가입은 필수다! 각주1.장지영, “뮤지컬 <레드북> 콤비의 온도”. 문화공간 175,2018년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