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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방에는 자주 쓰지는 않지만 버릴 수는 없는 애물 단지들이 가득하다. 방문 뒤 통기타, 책꽂이 위 디지털 건반, 서랍 속 잉크와 딥펜 등등. 얼마 전 동생이 선물해준 오일 파스텔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넷에 사용법을 검색했다가 그 결과에 놀랐다. 가이드북부터 그리는 과정을 담은 영상, 서툴지만 처음 완성한 그림을 자랑하는 게시물이 가득했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취미의 대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감탄하며 한참이나 여러 웹페이지를 들락날락했다. 내가 조경 잡지의 에디터라는 말에 반가워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은 건축을 좋아한다면서 언젠간 유럽을 여행하며 사진으로만 봤던 건물들을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독특한 건물이 인스타그램의 피드에 등장하면 그곳을 찾아가 커피라도 한 잔 사서 머물며 사진을 찍는 게 취미라고 덧붙였다. 그런 일도 취미로 삼을 수 있구나 깨달았고, 조경도 취미의 영역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화분에 물을 주고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는 사이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고, 머릿속을 잠깐 채웠던 질문은 금세 휘발됐다. 조경과 취미라는 말에 떠올린 장면이 저게 전부라니. 아직도 시야가 좁디좁구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도 누가 조경과 관련된 취미 활동이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저 정도밖에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조경 역시 어떤 공간 또 공간을 이루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인데, 쉽사리 그 공간을 즐기는 일을 취미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경이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하면 흔히 풍성한 나무와 그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바람에 살랑거리는 초화 등을 연상한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픽처레스크 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액자 속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드는 이 조경 원리는 현대 조경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피터 워커는 이로 인해 조경이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조경’을 양산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보이지 않는 정원들(Invisible Gardens)』, 1996). 보이지 않는 조경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공원이 있다. 보통 공간이 커지면 그 존재감도 커지기 마련인데, 자연과 똑 닮게 만들어진 공원은 예외다. 정확히 말하면 규모가 커질수록 조경가의 손길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넉넉한 숲을 이룬 나무들은 본래 그 자리에서 자라던 것 같고, 나뭇가지 위를 오가는 동물들은 자연의 보살핌으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경은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사람들은 그 ‘자연’에 감탄한다. 적절한 자리에 주변과 어우러지도록 난 보행로나 벤치 정도를 자연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다. 자연스러움을 위해 대지가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서운하다고 토로할 수 없다. 공간에 녹아 있는 설계 의도를 읽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누군가 묻지 않아도 나서서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공원에 홀로 외로이 서서 떠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인플루언서 같은 단어는 조경과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새는 SNS 게시물의 하단을 채운 해시태그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구구절절하다고 생각했던 단어의 나열에서 조경을 발견할 때면 웃음이 샌다. 공원을, 정원을, 보이지 않는 생태적 시스템이 구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모든 사진의 태그에 조경이 등장하고, 취미는 조경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꾸 그려본다. 덧없는 상상이라고 잠깐 멈칫했을 때, 언젠가 나를 위로했던 글 한 편이 기억났다. “기대하세요. 내일의 날씨, 이따가의 점심 메뉴, 오랜만의 시내 외출, 개봉할 영화와 새로운 드라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도 다시 일어나는 힘은, 지치지 않는 기대에서 나옵니다. 오늘 점심으로 먹은 달걀 샌드위치가 형편없었대도,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 덮밥은 괜찮을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취미는 ‘기대하는 것’. 백번을 실망한대도.”1 어느덧 여름이 저물고 세 번째 계절이 다가온다. 코로나19는 사그라질 기미가 없고, 어쩐지 올해도 세워 놓은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도 또 기대하고 싶다. “기대는 한 번도 죄였던 적이 없”으니까.2 준비물 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이 취미 생활을 추천한다. 새로운 취미가 앞으로 당신이 겪을 실패와 실망들을 사소하게 느끼게 해주기를. *각주 정리 1. 허지원, “실패에 우아할 것”, 「정신의학신문」 2018년 8월 25일. 2. 같은 글
  • [PRODUCT] 데크 경사로로 놀이 경험을 극대화한 ‘원형놀이터’ 목재 데크에 다양한 놀이 시설을 접목한 조합 놀이대
    기브앤(Giveand)은 외부 환경과 삶의 변화에 대응하며 모든 세대가 쉼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조경 시설물 사무소다. 외부 여가 활동을 지원하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다채로운 운동 시설물과 휴게 시설물,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조합 놀이대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다. 새로 출시한 ‘원형놀이터’는 아이들이 장애물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놀이 경험을 할 수 있는 순환형 놀이 시설이다. 계단을 이용해야만 하는 일반적인 조합 놀이대와 달리 경사로가 있어 영유아와 장애 어린이도 즐겁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길게 뻗은 데크 경사로를 신나게 내달리기도 하고, 데크 측면에 연결된 로프, 암벽, 미끄럼틀 등을 통해 마음껏 오르내리는 활동을 즐긴다.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공간을 감싸는 구조와 따뜻한 색감의 목재가 안락함을 선사하며, 커다란 나무 위에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드우드와 철재로 곡선 형태를 살린 오두막 원형놀이터, 로비니아 목재를 사용한 숲속 원형놀이터 등 공간에 적합한 디자인으로 설계 변경이 가능하다. TEL. 031-879-9964 WEB. www.giveand.co.kr
  • 400호 발간, 새로운 다짐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 월간 『환경과조경』의 통권 400호 발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합니다. 『환경과 조경』은 오휘영 초대 발행인(전 한양대 교수)이 초창기 주축 조경인들과 뜻과 힘을 모아 1982년 7월, 계간 『조경』으로 창간되었습니다. 1985년 6월(통권 9호)에는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10호부터는 『환경 & 조경』으로 제호를 바꿨고, 1992년 1월(통권 45호)부터 『환경과조경』이라는 제호를 쓰면서 월간 잡지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뒤 2013년 7월호(통권 303호)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결호도 없이 31년간 계속 간행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사의 살아있는 역사, 조경 분야 대표 언론으로서 국내외 조경 관련 정보와 조경인들의 소통을 위한 중추 역할을 했습니다. 2013년 8월호부터 발행인을 맡은 저는 배정한 편집주간(서울대 교수)과 함께 대대적인 리뉴얼을 준비했고, 2014년 1월호(통권 309호)를 기점으로 월간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새로운 『환경과조경』은 무엇보다 조경 언론으로서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기반으로 ‘조경 문화 발전소’를 지향했습니다. 또한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라는 세 가지 비전을 좌표로 삼았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환경과조경』은 한국을 넘어 지구촌으로 그 위상을 넓히고자 영문 제호를 laK(landscape architecture Korea)로 변경하고 설계, 비평, 이론을 중심 내용으로 다루며, 동시대 조경 담론의 소통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월간 『환경과조경』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잡지협회가 주관하는 ‘우수콘텐츠잡지’에 7년 연속 선정되었고, 자매 브랜드인 도서출판 한숲과 도서출판 조경이 출간한 서적들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연속 세종도서(구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해 왔을 뿐만 아니라 조경의 새로운 영역과 쟁점을 발굴하고 그 경계를 확장해 왔습니다.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의 물결에 발맞춰 2016년 9월에는 공식 홈페이지 ‘e-환경과조경’을 리뉴얼 오픈했고, 전문적 깊이와 풍부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터넷 기반에서도 실시간 서비스를 제공하여 매체의 시간적 ‘동시화synchronization’를 이뤘습니다. 또한 조경, 건축, 도시 등 업역의 경계를 넘어 매체 접근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지식혁명시대의 에너지원인 무한한 지식의 공급처로서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특히 국내 최대 뉴스 플랫폼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포털에 조경 뉴스를 제공하고, 조경 매체로는 유일하게 국내 뉴스 소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네이버와 제휴에 성공함으로써 정부, 지자체, 공기업은 물론 국회의원실 등 입법 기관에 조경 분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환경과조경’ 뉴스는 지난해 1일 평균 방문자 수 10만 명을 돌파하고 2020년 K-WEB이 인증하는 과학환경뉴스 분야 연간 1위를 기록하며 ‘Category TOP 연간 인증’ 마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환경과조경은 2016년부터 ‘서울정원박람회’와 ‘LH가든쇼’ 등 국내 주요 정원박람회에 주관사로 참여하여 시민들의 일상적 정원 문화 확산과 정원 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과조경은 전국 조경학과 학생들의 꿈의 무대인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을 한국조경학회와 함께 주관하고 있으며, 조경 분야 발전에 공헌한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미래의 조경을 이끌어갈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해의 조경인’과 ‘젊은조경가’를 제정,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제정된 ‘올해의 조경인’에는 지금까지 총 86명이 선정되었습니다. ‘젊은 조경가’는 한국 조경의 내일을 설계할 젊은 조경가를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2018년에 새롭게 제정하여 현재 5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오늘의 한국 조경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 시대 속에서 조경의 위상과 역할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제도권의 조경은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 속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조경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조경을 정책적 어젠다로 만드는 대응이 없었고 구심점 없는 관련 단체들의 통합적 실천 부재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400호를 넘어 500호를 바라보는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역설적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조경의 미래 지향과 좌표를 설정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한국 조경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다는 사명을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통권 400호를 발간할 수 있게 된 것은 『환경과조경』을 변함없이 아끼고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한국 조경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이 매체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국 조경에 꼭 필요한 담론과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깁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토리얼] 환경과조경, 500호 시대를 향해
    400번째 『환경과조경』이다. 1982년 7월 창간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저장해왔으며, 국내외 조경 설계와 이론의 쟁점을 발굴하고 그 지평을 확장해왔다. 39년의 긴 여정, 변함없이 함께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지면 곳곳에 녹아든 여러 조경가, 필자, 편집자, 디자이너, 사진가, 번역자의 노력과 정성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올해는 다양한 기획 지면을 통해 『환경과조경』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396호(2021년 4월호)에는 그간의 표지와 책등을 한데 모아 특집 ‘표지 탐구, 책등 탐방’을 구성했다. 잡지의 얼굴 역할을 한 39년간의 표지와 책등을 넉넉한 리듬으로 훑어보면서 『환경과조경』이 그려온 지형의 주요 지점을 조감하고자 했다. 397호(5월호) 특집 ‘편집자들’에는 추억 속의 편집자 김정은, 백정희, 손석범, 양다빈, 조수연, 조한결을 초대했다. 그들은 “당신에게 『환경과조경』은 어떤 잡지였으며, 조경이란 무슨 의미였나요?”란 질문을 받고 그들이 엮었던 옛 기사와 꼭지들을 소환해 당시의 시각으로 다시 살폈다. 398호(6월호) 특집 ‘읽는 행위를 설계하는 법’에서는 『환경과조경』의 편집 디자인 변천사를 다뤘다. 40년 가까운 긴 세월, 잡지의 콘텐츠뿐 아니라 그것을 담는 형식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판형, 글꼴, 줄 간격, 글줄의 길이, 여백, 그림과 사진 배치, 머리말.꼬리말과 쪽수 위치 등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촘촘히 되돌아봤다. 399호(7월호) 지면은 추억의 연재물들로 채웠다. 지난 3월과 4월에 진행한 독자 대상 설문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재구성한 ‘연재,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꾸렸고, 열다섯 명의 필자가 기꺼이 참여해주었다. 1월(393호)부터 지난달(399호)에 걸쳐 실은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특집은 편집자 김모아, 남기준, 배정한, 윤정훈과 편집위원 박승진, 박희성, 최영준, 최혜영이 옛 『환경과조경』을 50권씩 나눠맡아 재독하고 재조명한 연속 기획물이다. 이달 400호에는 이 특집 원고 여덟 편을 다시 묶어 싣는다. 이번 호에는 『환경과조경』 400권의 목차를 모두 모았다. 『환경과조경』 39년 역사를 세로지르는 총목차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현대 조경의 궤적을 담은 아카이브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잡지 400권의 목차 모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은 마치 국어사전을 ㄱ에서 시작해 ㅎ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처럼 지루하겠지만, 마음먹고 한번 도전해보시길 권한다. 한국 조경 50년사의 큰 줄기를 따라 걷는 유장한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산책길 곳곳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보석들이 박혀 있을 것이다. 400호 교정본을 넘기다가 문득 500호가 발간될 시점이 궁금해졌다. 연필로 끄적여 따져보니, 2029년 12월이다. 400호를 낸다는 것, 그것은 멀지 않은 500호 시대를 준비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새좌표를 찾는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이번 400호 발간과 내년 7월 창간 40주년을 계기로 편집부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500호 시대의 『환경과조경』을, 2030년대 한국조경 저널리즘의 지향을 질문하고 그 답을 구해볼 작정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늘 경계해야 할 점은 『환경과조경』이 국내 유일의 조경 전문지라는 사실이다. 경쟁이 없으면 지향을 잃기 쉽다. 실험과 창의를 스스로 막거나 늦춘다. 안주하기 마련이다. 100m 달리기이든 42.195km 마라톤이든 혼자서 뛰면 자기 기록을 깨기 어렵다. 힘든 조건을 감내하며 분야 유일의 전문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는 점, 『환경과조경』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유일하다는 조건 때문에 자칫하면 『환경과조경』은 제도권 조경계만을 대변하는 유사 기관지 혹은 지향점 없이 모든 걸 쓸어 담는 백화점식 잡지로 흐르기 쉽다. 이러한 난맥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환경과조경』이 500호 시대를 향해 묻고 답할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는 한국 조경의 전문성(professionality)과 수월성(excellence)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그것은 곧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과 넓혀야 한다는 강박에 이중으로 피로한 한국 조경계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둘째는 조경 저널리즘의 역할을 기록과 비평을 넘어 이슈 생산과 소통으로 확장하는 과제다. 셋째는 젊은 세대 조경가와 미래 세대 비평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한국 조경의 2030년대를 기획하는 일이다. 세 가지 과제를 다각도로 풀어갈 도전적 노정에 독자 여러분도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박명권 발행인과 남기준 편집장을 도와 편집주간 이름표를 달고 『환경과조경』에 동승한 게 309호(2014년 1월호)부터다. 400호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독자 400명을 초대해 심포지엄과 파티를 결합한 환상의 이벤트를 열겠다는 구상이 코로나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취소가 아니라 연기라고 합리화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무한 공급 맥주와 함께 펼쳐질 신나는 향연을 약속드리며.
  • 『환경과조경』 총목차 001–400
    『환경과조경』 총목차 001–400 1982. 07. 창간에 즈음하여 오휘영 조경수상: 전통적인 환경과 오늘 박용숙 나무 그리고 인간: 만수원 김명원 정원기행: 성북동 B 화백 외 보여주고 싶은 경관: 보길도 특집: 조경이란 무엇인가 조경이라는 것 유병림 좌담: 대학의 조경 교육 그 밖의 문제점 권상준 외 5인 조경 분야로서의 사회적 인식 정충식 외 3인 조경,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조경과 도시설계, 터전을 가꾸는 두 일손 황기원 건축과 조경의 해후 윤승중 원예와 조경의 협력 염도의 명작 속에 나타나는 경관 천승세 옥외 환경 조각의 기능과 역할 엄태정 도시벽화 환경적 커뮤니케이션 김정헌 도시 환경의 발전을 위한 슈퍼그래픽 노려 해외 조경, 중동 조경 중동 조경의 진출과 그 전망 고성하 외 3인 중동 지역의 조경 심우창 중동 지역의 식물별 특성 전통 조경 양식의 탐구 한국인의 얼이 담긴 장소에 관한 고찰, 마당론 이규목 인간·자연, 교섭과 융화의 장소, 정자 정영선 우리들의 평범한 경관: 시작 사진으로 본 경관: 자연 속에 나타나는 경관 조경용 식물의 개발과 이용 정순오 1983. 02. 조경수상: 소쇄원, 그 품격 있고 남루한 이조거인? 조동화 정원기행: 제주도 동감녕리 정원 외 나무 그리고 인간: 한림농원 한태현 보여주고 싶은 경관: 충남 예산군 고택 이재근 특집: 관광지 조경 실태와 현황 관광 개발의 허실과 과제 김사헌 수도권 국민 관광 개발의 방향 이장춘 관광지 조경의 실태와 개선방향 이영희 국립공원 종합개발계획 우리들의 평범한 경관: 제주도 사진으로 본 경관: 자연 속에 나타나는 경관 강운구 세계의 조경: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파리 이대우 나무시장의 실태: 조경 산업의 증가와 조경 수목 재배 붐 라성숙 세계 조경가 시리즈: 밀러의 작품 세계 프로젝트: 서울대공원 조경 / 금호도 개발 기본계획 주거 환경과 실내 조경 조성열 실내원예 송순이 전통 조경양식의 탐구 윤국병 환경과 조각 유근준 옥외 공간속에서의 조각 최민 조경용 식물의 개발과 이용 정순오 1983. 06. 조경칼럼: 양적인 팽창보다 질적인 성장을 정영선 정원기행: 삼선동 우씨 정원 외 특집: 올림픽을 위한 조경 동경올림픽, 뮌헨올림픽, 몬트리올올림픽, LA올림픽 올림픽과 달라질 환경, 달라져야 할 디자인 황기원 ’88서울올림픽 준비 상황 류동주 좌담: 올림픽을 전후한 서울의 도시 구조 개편 강병기 외 5인 특별기획: 우리들의 도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나? 사진에 나타나는 도시 경관 정동석 도시 환경–대단히 둔감한 서울 시민 홍사중 회색화된 도시, 그 위협으로부터 해방 안봉원 우리는 싫건 좋건 간에 시각 환경의 홍수 속에서 헤매고 있다 이대일 도시화에 따른 환경 녹지 문제 김장수 나무 그리고 인간: 나무할아버지 김이만 명화로 본 경관: 몽유도원도 원동석 ’83프로젝트: 춘천호반 관광지 개발계획 보여주고 싶은 경관: 성낙원을 찾아서 박문호 전통 조경양식의 탐구: 한국담장의 문양 임영주 세계 조경가 시리즈: 버얼 막스의 작품 세계 이춘홍 스스로 꾸미는 가든아이디어: 여름철의 수경 (이하 후략) *환경과조경400호(2021년 8월호)수록본 일부
  • [CODA] 그 편지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중에서 올해 초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어였던 고정희 대표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3.SPACE MAGAZINE: 꼭 하고 싶은데 질문을 안 해서 못한 말이 있으면 지금 해 달라. / 남기준: 대중적인 종이 잡지들도 휴간과 폐간의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경 전문 잡지인 『환경과조경』이 올해 8월에 통권 400호를 맞이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 호 한 호 어렵게 펴내고 있다. 2013년에 환경과조경에 다시 복귀하면서 “한국 조경 분야에 월간 『환경과조경』 같은 전문 잡지가 하나쯤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후원하시는 마음으로 정기구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몇 번이고 썼다가 지운 적이 있다. 내게는 호소력 있는 글을 쓰는 재능이 없구나, 라고 한탄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독자가 구독하고 싶은 잡지를 만드는 게 우선이지 따위의 원론적인 다짐을 하기도 했다. / 3.SPACE MAGAZINE: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위의 그 편지를 썼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쓰면 안 될까? / 남기준: 그 편지는 올해 400호를 맞아서 한번 써보려 한다(https://plants-ingarden- history.com). 인터뷰를 했던 때가 1월인데 7개월 동안 ‘그 편지’를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400호 마감일이 다가왔다. 그 사이에 400호를 돌아보는 여러 특집과 연속 기획이 진행되었고, 1월에는 처음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던 『가든 플랜트 콤비네이션』(이병철 지음)이 출간되었다. 2월에는 『기억의 장소,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상석 지음),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성종상 엮음), 『그리는, 조경』(이명준 지음), 『꽃보다 꽃나무, 조경수에 반하다』(강철기 지음) 등 한 달에 네 권의 단행본을 펴냈다. 뜻하지 않게 마감이 겹친 탓이지만, 동시에 네 권을 펴낸 적은 처음이었다. 이번 달에는 비매품 책자 두 권도 마무리된다. 그 와중에 작년 봄부터 진행했던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5월로 연기되어 개최되었고, 제3회 LH가든쇼 운영관리 용역 제안서를 제출해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2월부터는 내년 8월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되는 제58차세계조경가대회 사무국을 맡게 되어, 로고 디자인부터 메인 포스터 디자인, 개소식 행사, 홈페이지 구축, 홍보 영상 제작, 학생 서포터즈 운영, 공공기관 협의 등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부터 주최·주관에 참여하고 있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3월에 ‘건강 도시와 조경’을 주제로 공고되었고 다음 달에 작품 접수가 진행된다. e-환경과조경은 어제도 오늘도 매일 9건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고, 400호를 기념하여 진행한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이란 설문조사와 한국 조경 50년을 기념하는 ‘한국 현대 조경 대표작’ 설문조사도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편지’는 마무리하지 못했다. 400호를 맞아 축하광고를 여러 단체, 기관, 업체, 학교 등에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200여 곳에서 축하 인사와 함께 광고를 해주셨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임에도 염치없는 부탁을 드린 까닭은 예전에 비해 일은 대폭 늘었지만 잡지사의 경영 상태는 여전히 빨간불이기 때문이다. 일을 많이 할수록 빨간불이 더 크고 선명해지는 경우도 있고, 거의 수익이 나지 않는 일들도 적지 않다.리뉴얼을 단행한 2014년 이후의 누적 적자는 차마 밝히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한 수치다. 물론 광고와 구독이 꾸준히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다. 잡지사나 출판사도 하나의 기업일 뿐이니까. 그래서 ‘그 편지’를 쓰지 못했다. 물론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문사든 잡지사든 출판사든 종이 매체의 어려움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새로 창간하는 독립 잡지가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리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의 폐간 소식이 더 크고 아프게 다가온다. 모색하고 변화를 꾀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지 못한 채, 결국 ‘그 편지’ 대신 400호 축하광고를 부탁드리며, 이런 인사말을 준비했다. “1982년 창간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서도 단 한 권의 결호도 없이 무사히 통권 400호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한국 조경’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번쯤 일간지면의 뉴스를 통해 접하셨겠지만, 종이 매체의 어려움은 비단 『환경과조경』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핀터레스트만 검색해도 잡지가 제공하는 정보보다 더 유용한 이미지를 손쉽게 취득할 수 있습니다.이처럼 종이 매체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잡지가 먼저 한국 조경 분야에 꼭 필요한 담론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다만 정보의 홍수 시대에, 약간은 긴 호흡으로 “한국 조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고, 새로운 조경 문화를 설계하는” 종이 잡지가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권 400호’라는 의미 있는 결실을 앞둔 지금,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무엇보다 『환경과조경』에 보내주신 많은 분들의 성원과 격려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한국 조경 발전을 위해 전문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늘 항상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그 편지’라는 파일명을 붙여 놓은 한글문서를 열어놓고 딜리트와 백스페이스 키를 부지런히 누르다가, 더 이상 삭제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면 책을 읽었다. 그러다 ‘가망 없는 일이었으나 단념할 수도 없었다’는 대목을 만났다. 이제 401호를 준비한다. ‘그 편지’는 잠시 외장하드에 넣어두고, 우선 400호를 축하해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떠올리며, 단념하지 않고!
  • [에디토리얼] 그때 그 지면을 추억하며
    짙은 한여름 냄새로 후끈한 7월, 『환경과조경』은 400호 맞이 특집으로 추억의 연재물들을 소환한다. 지난 3월과 4월에 걸쳐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다시 읽고 싶은 연재는?’의 결과에 편집부의 기획을 보태 옛 연재 여덟 꼭지를 다시 지면에 올린다. 리부트(reboot), 리메이크(remake), 오마주(hommage, 세 갈래로 변주되는 형식을 취했다. 리부트. 예비 조경가들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던 인기 꼭지 ‘그들이 설계하는 법’(2014년 1월호~2018년 12월호)에 최윤석(그람디자인)과 강한솔+김태경+오승환(얼라이브어스)을 초대해 다음 여정을 향한 시동을 다시 건다. ‘또 다른 그들이 설계하는 법’인 셈이다. 2014년 잡지 리뉴얼과 함께 공들여 기획한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5년간의 긴 항해를 이어가며 동시대 한국 조경가 스무 명(팀)의 작업 과정과 성과를 선보이고 그 이면의 생각을 독자들과 나눴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은 조경가 스스로 설계 사유를 정리하는 기회이자 동료 조경가와 학생들에게 토론의 소재를 펼치는 계기였으며, 한국 현대 조경의 한 시절을 담는 생생한 아카이브이기도 했다. 리메이크. 열독률 높았던 연재 글들의 필자를 다시 초대해 미처 못 마친 이야기, 그간의 변화,새로운 물음과 답을 청취한다. 김아연(서울시립대)과 정욱주(서울대)가 번갈아 가며 조경설계 과정의 열두 개 열쇳말을 풀어갔던 연재 ‘스튜디오 101, 설계를 묻다’(2009년 1월호~2010년 3월)는, 설계 스튜디오에서 머리를 싸매며 밤을 밝히던 학생들에게 등대 역할을 했다. 십 년을 훌쩍 넘겨 다시 만난 그들은 대담 형식으로 구성한 이번 리메이크 버전에서 설계 스튜디오 안팎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개념 상실하기, 말로 때우기, 분석만 하기, 맥락 무시하기, 그림 안 그리기, 그림만 그리기, 베끼기, 꿈꾸기, 유치해지기, 저항하기, 남에게 미루기, 딴짓하기.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다른 정반대의 가치들, 정正이 아닌 반反의 설계를 모색한 ‘스튜디오 201, 설계를 다시 생각하다’(2014년 1월호~2015년 1월호)의 김영민(서울시립대)은 이번에는 ‘지향하기’를 제시한다. “함께 지향하고, 따로 지향하라.” 그가 말하는 좋은 조경설계의 필요조건이다.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이 복잡한 난제에 도전하며 한국 도시설계의 이론적 경계를 확장한 ‘그들이 꿈꾼 도시, 우리가 사는 도시’(2015년 1월호~12월호)의 김세훈(서울대)은, 연재의 막을 내린 지 5년 반이 지난 지금도 같은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2021년 여름, 그는 “좋은 도시란 다양한 변화에 활짝 열려 있는 도시”라고 말한다. 그러한 도시는 “과거에 개발이 완료되어 구조와 외관, 즉 겉면은 바삭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충분히 말랑말랑해 지금보다 좋아질 여지가 큰 ‘겉바속촉’의 도시”다. 여러 도시의 재생과 문화적 풍경을 탐색한 연재 ‘떠도는 시선들, 큐레이터 뷰’(2016년 1월호~2017년 1월호)의 심소미(독립 큐레이터)는, 이번 리메이크 글에서 팬데믹 이후의 도시 공간과 문화·예술의 지형 변화를 포착한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 공간에서 비제도권 예술가, 문화 활동가, 여러 시민 주체가 익명의 거리 예술가로 등장하면서 연대하는 흐름을 목격할 수 있다. 315호부터 374호까지 60회를 이어간 ‘시네마 스케이프’(2014년 7월호~2019년 6월호)는 그 어느 지면보다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은 인기 꼭지였다. 2년 만에 다시 초대된 서영애(이수, 보라)는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긴밀히 접속하는 소박한 공간들의 의미를 짚는다. 오마주. 옛 연재 글의 주제와 형식을 다른 필자의 시각으로 전개한다. 김영표(대구대)의 ‘스케치업으로 하는 3D 조경설계’(2005년 2월호~6월호)를 비롯해 컴퓨터 조경설계와 관련된 여러 연재물을 오마주하며 나성진(서브디비전)과 조용준(CA조경)은 계속 진화하고 있는 설계 매체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나성진의 “그래스호퍼로 하는 조경설계”와 조용준의 “곡선으로 하는 조경설계”는 재현의 도구를 넘어 생성의 매체로 작동하고 있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김아연, 김용택, 박승진, 이홍선, 정욱주, 다섯 명의 조경가가 매달 답사와 토론을 통해 들려주던 ‘공간 공감’(2014년 1월호~2016년 12월호)을 이번에는 한 독립 잡지의 젊은 편집자들이 맡았다. 도시 경관과 지역 사회의 다채로운 현상과 사례를 이론과 비평의 틀로 포착하는 『ULC』의 박영석, 신명진, 임한솔이 용산공원 부분개방 부지의 장소성과 공간감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다. 40년 가까운 긴 시간, 399권의 『환경과조경』에는 많은 필자의 연재 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연재 글쓰기는 스스로 ‘글 감옥’에 갇히는 일이고 피 말리는 마감의 늪으로 자신을 내모는 일이다. 필자들의 분투와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통권 400호 발간을 맞아 매달 50권씩 『환경과조경』을 다시 읽는 연속 기획, 이번 달이 마지막 차례다. 윤정훈 기자가 2013년 5월호(301호)부터 2017년 6월호(350호)를, 최영준 편집위원이 2017년 7월호(351호)부터 2021년 7월호(399호)를 리뷰한다. 다음 달, 드디어 400호가 나온다.
  • [풍경 감각] 한때 나무가 있던 자리
    대학교 정문 앞 광장은 원래 작은 숲이었다.군대에 다녀오니 가장 큰 나무 세 그루만 띄엄띄엄 남은 채 광장이 되어 있었다.학기가 지날수록 나무들의 잎은 적어졌고 줄기에 박힌 주사는 많아졌다.생태연구실 사람들은 공사 과정에서 뿌리가 많이 상했고 급격히 변한 환경에 오래된 나무가 적응하지 못해 죽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새로 생긴 광장이 좋기도 했다.정문을 가로막는 어두운 숲과 달리 탁 트여 시원해보였기 때문이다.깔끔하게 포장된 광장엔 때때로 알록달록한 축제 부스가 들어섰다.학생들은 기타와 젬베를 연주하곤 했다. (후략) 조현진은 조경학을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다. 2017년과 2018년 서울정원박람회, 국립수목원 연구 간행물 『고택과 어우러진 삶이 담긴 정원』, 정동극장 공연 ‘궁:장녹수전’ 등의 일러스트를 작업했고, 식물학 그림책 『식물 문답』을 출판했다. 홍릉 근처 작은 방에서 식물을 키우고 그림을 그린다. [email protected]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어떤 잡지의 존재감
    “‘400호 돌아보기’란 숙제를 끌어안고 시작된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일단 나눴다. 그래서 8과 50이란 숫자를 얻었고, 나누기를 먼저 주장한 탓에 첫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 나는 역으로 편집부 막내인 윤정훈 기자를 적극 추천했지만, 편집주간이 나를 지목하자 윤기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던 것 같다.”(남기준, “4.12m 이어달리기”, 2021년 1월호) 부하 직원을 꿰뚫어 보는 상사의 눈이 이렇게나 무섭다. 400호 돌아보기 순서를 정한 때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해 초. 편집부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 너머의 내 표정이 어떻게 읽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나는 웃고 있었다. 천연스러운 눈에 그렇지 못한 입꼬리. 그래도 스타트는 편집장이 끊어야 하지 않냐는 편집주간의 말은 대학 시절 과제 제출 기한을 연장해주는 교수님의 은혜로운 선언처럼 들렸다(할렐루야). 단지 순서가 미뤄져 기쁜 건 아니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1980년대의 잡지를 리뷰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막막했으니까. 그리하여 돌아본 호수는 301호부터 350호까지(2013년 4월호~2017년 6월호). 공교롭게도 이 시기의 나는 한창 퀭한 눈으로 설계실을 드나들던 조경학과 대학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나마(?) 조경에 가장 관심이 많던 때였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 2학년 1학기. 지방으로 가는 첫 답사였다. 학교 정문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정원박람회는 낯선 말이었다. 국내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이자 ‘국가정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때문이었을까? 수도권에서 거리가 상당함에도 사람들이 바 글바글했다. 조경 내부적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판단했는지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그해 『환경과조경』에 줄기차게 등장했다. 그야말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모든 것을 다뤘다. 세 달(300호~302호)에 걸쳐 박람회장 실시설계안을 소개했고, 별도의 특집을 꾸려 301호(2013년 5월호)와 302호(2013년 6월호)에 나눠 수록했다. (보는 사람은 영 부담스럽지만) 조충훈 순천시장이 단독으로 302호 표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4월 초부터 기자들은 현장을 찾아 다양한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정원 조성에 참여한 조경가는 물론이고 시공을 담당한 조경 회사 직원, 박람회 조직위원회 소속 화훼관리팀장까지, 다양한 역할에 고루 주목했다(‘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시공일지’라는 꼭지가 있을 정도다). 박람회장의 메인 공간을 설계한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 인터뷰가 눈에 띄었다. 그 나선형의 언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순천호수정원’에 대해서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좀 생뚱맞다고 생각한 순간 방문객들이 빙글빙글 돌며 언덕을 올라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즐기고 있었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잠깐 생각했던 것 같 다. 다가오는 202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다시 열린다. 10년 만에 찾는 박람회장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잡지가 예뻐졌다 “예쁘면 다야.” 괜히 발끈(?)하게 되는 말이지만, 어떨 땐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전공 수업 시간, 한 친구가 발표를 하다 교수님에게 파워포인트 디자인도 설계의 일부라며 한 소리를 들었다. 디자인이라는 게 타고난 감각이 따라야 하는 법이라, 조경학과에서 이 ‘감’이 없는 학생들은 상당히 애를 먹기도 했다.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대학 4년 동안 얻는 건 PPT 만드는 스킬이라고 할 정도로 디자인은 힘이 셌다. 청중의 시선을 잡아끌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더욱 근사하게 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덤으로 교수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고). 책도 그렇다. 2012년도에 조경학과에 첫발을 들였지만 『환경과조경』을 제대로 펼쳐본 건 잡지가 예뻐졌을 때부터다. 2014년 1월호(309호)부터 판형, 서체, 콘텐츠, 표지 및 내지 디자인이 확 바뀌었다. 특히 표지에 박힌 ‘laK’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이 강렬한 제호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환경과조경’보다 ‘엘에이케이’라고 불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락’이라고 부르는 애도 있었다). 이따금 잡지를 펼쳐보며 생각했다. 이런 멋진 잡지를 열심히 보다 보면 나도 근사한 설계를 할 수 있겠지? 슬프게도 헛된 기대였지만.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 [『환경과조경』 400호 돌아보기] 조경의 매운맛
    『환경과조경』은 나에게 특별한 잡지다. 성경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손에 쥔 책일 것이고, 심지어 나이도 같다. 요즘엔 조경을 스마트폰으로도 배울 수 있지만, 조경을 책으로만 배울 수 있었던 시기를 (아마도) 마지막으로 겪은 세대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입대 후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나온 일병 휴가 때,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처음으로 찾은 잡지가 『GQ』나 『맥심』이 아닌 『환경과조경』과 『토포스(Topos)』였다. 20년 묵은 불평이지만, 조경학개론 수업조차 조경이 무엇인지 절대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었다. 조경이 무엇인지 가시적인 감을 잡아준 첫 길잡이는 『환경과조경』이었다. 그 후에도 매달 수록된 이미지와 텍스트가 전해주던 뉘앙스가 내가 느끼는 한국 조경의 온도와 색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 10년간 머무르면서도 『환경과조경』을 한국 예능이나 드라마만큼 자주 돌려봤다. 한국 조경에 대한 향수와 관심, 때로는 동경과 선망이자 비판과 아쉬움을 모두 원격으로 바라보게 해준 채널이었다. 해외리포터로 시작해 이제 편집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종종 두렵디두려운 원고 요청이 오면 졸고를 올리긴 했으나, 지난달 최혜영 편집위원의 고백처럼 나 또한 그리 성실한 애독자가 되지는 못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변을 한마디 붙이자면 종이 잡지는 3분도 안 걸려 눈으로 스캔하듯 훑어본 적이 있어도, 적어도 환경과조경 홈페이지(lak.co.kr)는 다른 포털 사이트 방문 빈도 못지않게 하루 세 번 이상은 접속한 지 오래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그냥 넘긴 적도 없다. 사실 이것은 변명 삼을 일도 아닌, 동시대 종이 잡지의 현주소이자 어쩌면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임을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400호 돌아보기’라는 이번 기획도 아마 『환경과조경』이 조경 분야에서 보여준 고유한 매력과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예전과 다른 위치일 수밖에 없는 『환경과조경』의 미래를 그려볼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400권을 50권씩 끊어놓은 분절 주기에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돌아보기의 첫 호인 351권이 발간된 2017년 7월경을 돌이켜본다. 고 박원순 시장의 긴 임기 중 7년 만에,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뜻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기 시작된 때다. 351호는 서울로 7017에 대한 꽤나 묵직한 문제제기로 시작한다. 서울로의 정치적 수단화와 절차적 문제는 잠시 덮고 당시 원고를 되짚어본다. 비난 일색의 상황에서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약 2년 안에 광속으로 설계와 시공을 진행했던 설계 팀과 진행 부서의 내막과 고충을 듣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다 이유가 있고, 다 계획이 있는 법. 흥미로웠고 지금도 이따금 생각하는 논점은 서울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서울로는 정작 무엇인가?’ 연결 통로? 목적지? 육교? 식물원? 도시숲? 높이도 여건도 맥락도 판이하게 다른 뉴욕 하이라인의 벤치마킹을 강요한 결과로 서울로 7017는 유별난 점박장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다. 서울로 7017는 구도심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전에 없던 경험을 주는 공중 보행로이자 오랜 시간 안정화된 도시 조직의 상부 층위에서 새로운 개발 계획을 따라 진화해가는 서울만의 길, 서울만의 보행 네트워크다. 이 시기에는 서울로 7017을 비롯하여 광화문광장, 용산공원 등 랜드마크의 위상을 갖는 오픈스페이스의 조성 및 재조성에 대한 논의를 이끄는 시도가 있었다. 367호의 “광화문광장 설계공모에 참가하는 조경가들에게”(배정한, 에디토리얼, 2018년 11월호)와 “새 광화문광장에 관한 풍문들”(최정민, 2019년 3월호), “광화문광장에 대한 논의, 이제 시작이다”(박상현, 2019년 3월호) 등의 다양한 비평과 설계공모 당선작 및 참여작을 실은 371호의 목차만 훑어보아도 뜨거운 비평 의식과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당시의 또 다른 특징은 환경과조경이 ‘2016 서울정원박람회’의 주관사로 선정되었고, 각종 정 원박람회가 조경계의 중추적인 행사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원 연출이 가장 화려한 시점이 봄의 끝자락이나 가을의 시작점이다 보니, 정원박람회의 시기가 고정되어 매해 11월은 코로나 이전까지 서울정원박람회를 꾸준히 담는 데 할애했다. 355호의 칼럼에 쇼가든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우려와 의견이 담겨있는데, 꾸준히 긍정적인 진화를 해오고 있다고 본다. ‘2017 서울정원박람회’가 여의도공원으로 그 무대를 옮기고 쇼가든의 존치가 일반화되면서 작가정원과 근린공원의 공생이 본격화됐다. 2018년에는 ‘피크닉’이란 주제로 공원과의 더 적극적인 동거를 달성하며 여의도공원을 방문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2019 서울정원박람회’는 도시의 한복판으로 침투하여 도시재생의 도구로서 정원 조성과 주민 참여를 실험하고 황화코스모스의 오렌지색을 각인시켰다. 최근 코로나 상황에서도 적잖은 호응을 이끌어낸 394호의 서울국제정원박람회SIGS에 이르기까지, 『환경과조경』이 정원에 대한 콘텐츠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지면에 소개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후략) *환경과조경399호(2021년 7월호)수록본 일부 최영준은 『환경과조경』과 나이가 같은 조경가다. 『환경과조경』 통해 조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랜 팬이다. 지금은 종이 잡지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조경을 섭취하기도 한다. 서울 근교에서 랩디에이치(Lab D+H) 서울 사무실을 운영하며, 한국과 중국의 다채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성과물을 통해 조경설계를 매번 다르게 보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