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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 스튜디오] 매직 국제 유치원
Magic International Kindergarten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
중국 상하이 바오산(Baoshan)에 위치한 매직 국제 유치원(Magic International Kindergarten)은 주택 단지 내 분양 센터를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다. 2008년, 3,100㎡의 부지를 다양한 활동을 위한 야외 놀이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센터를 이전하고 유치원에 필요한 야외 공간 계획을 시작했다.
부지는 상업 도로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높은 밀도로 식재된 관목은 벌레와 모기가 밀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아이들에게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
‘특별한 아이, 특별한 교육’이라는 유치원 철학에 부합하도록 맞춤 제작된 인터랙티브(Interactive) 시설을 조성하고 기존 수목을 보존하면서 숨겨진 오픈스페이스를 최대한 발굴해 활용했다. 유치원이 아이들의 첫 번째 교육의 장인 점을 고려해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는 열린 공간을 제공했다.
세부 전략
먼저 환기와 안정성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고자 관목을 적절히 정리했다. 기존 수목을 최대한 보존하되 몇몇 지점의 높이에 변화를 주었다.
입구에 있던 수경 시설은 아이들을 환영하는 통로로 바꾸었다. 삼각형의 파란 천을 엮어 투과성을 갖는 천막을 만들었다. 천막을 통과한 햇빛은 돌로 포장된 바닥을 푸른빛으로 물들이고 그림자와 함께 예술적 풍경을 만든다.
소방안전차로의 일부는 매직 국제 유치원의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얼룩말 무늬를 활용해 만든 야외 카펫은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인 동시에 소방 안전기능을 담당한다.
중심에는 경사진 잔디 언덕을 조성하고, 시멘트 사면에 둘러싸인 원형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야외에서 학습하고 역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이 되었다. 방문객 주차장은 30m 달리기 트랙으로 바꾸었다. 이 트랙을 통해 다른 활동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토대를 살리고 대상지 경계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수동 관수 시스템을 갖춘 다섯 개의 플랜터를 포함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일련의 인터랙터브 시설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동안 자연과 친해지도록 구성했다. 모듈형 정글짐은 기어오르고, 매달려 오르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시설이다. 원형 램프와 선(Sun) 잔디밭은 녹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이 안고 뛰어 놀 수 있고 소규모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불필요한 공사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하 인프라 도면을 구해 설계에 참고했다.
여덟 가지 전략을 통해 개방적이면서 안전하고 즐거운 환경 속에서 유년기 아이들의 가치관, 건강, 사회 및 운동 기능 발달을 꾀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탄생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글 Z+T
Landscape Architect Z+T Studio, Landscape Architecture
Lead Designer Zhang Dong, Tang Ziying
Designer Team Fan Yanjie, Liu Hongchao, Zheng Jialin, Sun Chuan, Wang Hu, Zhang Zhexin
Installation Design Z+T Art Studio
Location Shanghai, China
Area 3,100m2
Completion 2019. 9.
Photograph Li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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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T 스튜디오] 인터뷰: 참여와 실험이 그리는 경관
2014년 설립된 랩디에이치는 다국적 문화를 바탕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2018년 최영준은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오피스를 이끌고 있지만, 지금도 종종 중국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동시대 중국 조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 랩디에이치의 다른 사무실과 독립적인 사무실을 운영하며 젊은 건축가와의 협업을 즐기는 최영준에게 스튜디오 내에 디자인 아틀리에와 세 개의 랩을 두고 독특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Z+T의 두 소장은 흥미로운 인터뷰가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지만 이메일을 통해 오간 즐거운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최영준은 2014년 랩디에이치 로스앤젤레스 오피스에서의 만남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서울 오피스의 조재연(Zhao Zaiyan) 디자이너가 대화에 동승했다. 인터뷰를 끝마치며 최영준은 간단한 소망을 덧붙였다. “이번 여름 광주에서 열리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마스크 없이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_ 편집자 주
5년 전, Z+T 아트 스튜디오의 워크숍을 방문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바이오필릭 랩(Biophilic lab)의 출발을 알리는 글을 위챗(WeChat)에서 봤고요. 오랜만에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랩이 하나 더 늘었더라고요. 기술적·전문적 성숙과 축적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각 랩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각 랩이 주체가 되어 별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아니면 Z+T의 프로젝트를 주제와 기술의 관점에서 가로지르려는 노력인지도 궁금합니다.
새로 문을 연 T-랩은 재료와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합니다. 정교한 설계와 제작에 대한 창의적 아이디어 제공을 목표로 한 탐색적 성격의 스튜디오죠. 최근 아트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실현 가능성의 문제에 부딪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T-랩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어 디자인 사고의 폭을 넓히고 디자인적 가능성만을 고민하기 위해 만든 연구소입니다. T-랩은 아트 스튜디오 공장 옆 컨테이너에 있어요. 작년에 스튜디오로 개조했죠. 현재 T-랩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주로 목업(mock-up) 작업이나 새로운 재료 사용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바쁘지 않을 때 디자이너와 함께 재료 회사의 작업실로 워크숍을 가 재료와 구조를 탐구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Z+T의 랩에는 아트 스튜디오, 바이오필릭 랩, T-랩, 세 개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아트 스튜디오만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고, 나머지 두 스튜디오는 프로젝트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는 연구 성향이 더 강해요. 이런 연구는 조경 산업에 더 폭넓게 관심을 갖게 하고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적절한 기회가 생기면 연구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프로젝트에 적용해보고 싶어요.
조경 주도적 또는 조경 독립적 프로젝트를 많이 수행하는데, 건축, 토목 등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아마 대부분의 조경가가 그렇겠지만, 조경이 비교적 독립성을 가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합니다. 건강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건축 회사와 함께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서로가 추구하는 완성도와 아름다움에 대한 의견이 비슷하고 상호 존중이 전제되어야 하죠. 여러 방면에서 뜻이 맞지 않는 팀과는 협업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현실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일정 부분 양보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Z+T의 원칙을 져버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프로젝트를 포기할 겁니다. 협업에 있어서는 불교도가 흔히 말하는 숙명적인 ‘운명’을 기대하는 편입니다.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에서 Z+T의 작업을 축약하는 키워드로 참여(participatory)를 꼽았고, 2018년에는 『참여의 경관(Participatory Landscape)』을 출간한 바 있죠. 공공 대상의 참여 프로젝트는 의도한 대로 되지 않아 실패하기 쉽고, 보상 개념의 인센티브가 분명하지 않으면 참여 유도가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참여를 끌어내는 노하우가 있나요?
참여는 ‘그림 같은 경관으로서 조경’과 대조를 이루기 위해 사용한 단어예요. 경관은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즉 인간은 경관과 대립적 요소가 아니라 경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경관이 제공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자연환경에 들어감으로써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Z+T가 추구하는 불변의 디자인 철학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문적인 설계 방법론으로 사용자 참여 디자인을 적용한 프로젝트를 해본 적은 없어요. 현재 상하이에서 주민 참여를 독려하는 커뮤니티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해볼 때, 중국에서는 조경가가 사회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존경을 받는 편입니다. 최대한 많은 이를 만족시키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조경 프로젝트가 늘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절충된 합의안보다는디자인에 신념을 갖고 주도적으로 완성도 높은 설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사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 거예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자외선, 비바람과 싸워야 하는 조경의 특성상 재료에 제한이 많은 편인데, 안전 관련 규정 등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더 좁아지고 있어요. Z+T는 늘 프로젝트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려 하죠. 내구성, 관리 문제와 반비례하는 예술적 물성의 구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나요.
재료 선택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과정 중 하나죠. 조경의 특성과 안전 관련 규정 외에도 가격, 클라이언트 수용력이 재료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컬러 필름이 부착된 아크릴은 실외에서 2~5년 정도 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사용 면적이 넓지 않고 클라이언트가 이를 교체하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면 아크릴을 추천하는 편입니다. 재료의 내구성과 효과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료 사용에서 한계를 돌파하려면 디자이너가 능동적이어야 합니다. 시장의 동태를 파악하고 재료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만 재료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사전에 테스트를 해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대나무, 밧줄, 그물, 유리 같은 재료는 예술적 측면에서는 아주 좋지만 내구성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대나무의 방부 처리 등 기술적 측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어떨까요. 재료 관련 기술을 개발할 때 조경 자재 시장은 큰 돌파구를 찾게 될겁니다.
두 아들의 아빠로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놀이 조경 프로젝트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자연과 떨어진 도시 놀이터에 참여적 생태 개념을 어떤 방식으로 녹이는지 궁금합니다. 그 영감은 자녀에게서 받는지, 어릴적 기억에서 소환하는지도 알고 싶고요.
두 자녀와 함께 놀이를 할 때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비롯된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됩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Last Child in the Woods)』은 현 시대 아이들은 야외에서 노는 것보다 실내에 머물러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묘사했는데, 우리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책의 표현처럼 “아이들을 야외에서 뛰놀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순수한 자연환경을 찾기 어렵기도 하지만, 놀이터 등 외부 공간이 어린이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기꺼이 전자 기기를 내려놓고 야외로 뛰어나갈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놀이를 즐기는 동시에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놀이터를 디자인해 더욱 매력적인 장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참여의 경관』에서 중국의 조경 교육은 건축, 식재, 예술 기반의 세 갈래로 나뉘고, 이로 인한 장단점이 있다고 설명했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조경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를 위해 직원에게 강조하는 교육적 측면이 있나요.
미국에서 일할 때 동료들이 조경 업계는 “과잉 교육을 받는다”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조경 실무를 하는 데는 학부 졸업만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라면 어떤 방면으로 나아갈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학교마다 조경 교육의 방향과 목표가 다른데,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경 산업은 범위가 매우 넓어서 몇 년 만에 모든 것을 다 익히고 다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공이 무엇이든 열정과 열린 마음,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의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든 직원이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독서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전공 서적뿐 아니라 역사,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통해 자신의 지식 창고를 업데이트 하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U-센터 광장(U-center Plaza)의 회전하는 분수를 수업에서 보여줬을 때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나요. 철도가 있던 대상지의 기억을 상징화한 아주 흥미로운 디자인이죠. 유지·관리 등의 문제로 클라이언트가 반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클라이언트에게 콘셉트를 제안할 때 콘셉트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시공 방법, 공사비, 유지‧관리비도 함께 보여주어 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합니다. U-센터 광장의 콘셉트 디자인 보고서에는 회전 장치 제조 회사와 유지‧보수비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함께 담았죠. 클라이언트가 광장 옆 복합 상업 시설의 건물주이기 때문에 개장 후에도 광장을 매력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봤어요. 비용의 크기는 광장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새로운 수익을 얼마나 가져다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 낮은 유지·관리 비용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클라우드 파라다이스(Cloud Paradise, 2017)의 취시류환(曲溪流欢) 디자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릴 적 비 온 뒤 놀던 모래사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런던의 다이애나 메모리얼 이후 가장 인상적인 수경 시설이에요.
대상지에 6%의 경사가 있는 소방도로를 반드시 포장면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그 위에 소방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디자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취시류환은 장둥이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수경 시설이에요. 비가 와 질척거리는 산길, 빗물로 인해 생긴 작은 물줄기가 만들어낸 형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콘크리트로 조각한 이 물줄기는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에서 아이들이 놀기 바라는 젊은 부모는 거의 없을 거예요. 대부분 그것을 더럽다고 느끼니까요. 하지만 콘크리트로 만든 물줄기에서 놀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이들은 진흙투성이 개울과 물웅덩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요.
종종 상업적 성격의 중국 프로젝트를 할 때 너무 과한 요소를 사용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때가 있어요. Z+T의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Qujiang Creative Circle)은 놀이 시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는 시설을 강조하고 조형성을 강하게 드러내죠. 주주리 정원(Jiu Zhu Li Garden), 우전 아리라 호텔(Wuzhen Alila Hotel)의 경우 미니멀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취장 크리에이티브 서클과 대비를 이루고요. 디자인의 강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중국 철학에서 종종 ‘도度’를 강조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우리가 이해하는 도는 적절함(대부분의 사람을 이를 보통의 정도(中庸)라고 이해합니다)과 더불어 자신의 특정한 태도(態度)에 국한하지 않고 프로젝트의 특성과 요구되는 바에 따라 잔잔함(静谧)이나 활발함(歡悦)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활발함을 혼란스러움으로, 잔잔함을 무미건조함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비즈니스를 위해 과함이 필요할 때가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 ‘조금 더 많은 것(再多一点)’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디자인 요소가 활발한 공간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복잡한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기 힘들죠. 클라이언트가 너무 많은 요소를 넣기를 원할 때, 규모에 따라 요소 간의 균형을 맞추어 최대한 혼란을 야기하지 않는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잔잔함은 활발함보다 더 표현하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미니멀리즘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을 뜻합니다. 불필요한 것을 쳐내고 남은 디자인 요소는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강력해야 합니다. 강력한 디자인 요소를 선택하거나 특정 요소를 선택해 이를 강력하게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좋은 조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변화의 속도가 빠른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답일 수 있지만,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프로젝트가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고 싶어요. 40~50년 뒤 두 분이 현역에 있지 않을 때 Z+T는 어떤 모습일까요? 회사 내부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을 키우고 있는지, 어떤 구조의 설계 스튜디오를 지향하는지와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은퇴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날이 오겠죠. 따라서 이 질문은 유효합니다. 각자의 장점을 존중하고 함께 일하는 회사 내 협력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 간의 긴밀한 협력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중국인들은 아직 협력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교육 방식과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일 거예요. 일을 잘해내려면, 특히 조경 같은 복잡한 산업의 경우, 천재보다는 근면성실하고 겸손하며 인내심이 있고 협력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분야와의 협업뿐 아니라 조경 내부의 협업에서도 마찬가지죠
최영준은 서울대학교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피스박김, PWP, SWA 그룹 로스앤젤레스 오피스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2014년 디자인을 통한 희망적 가치와 사회적 책무 구현을 목표로 랩디에이치(Lab D+H) 조경설계사무소를 중국인 파트너와 공동 설립했으며, 2018년 서울 오피스를 열고 국내외 다양한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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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스케이프] 어린이의 탄생
민족, 사회, 시민, 문명, 자유, 가족 등 지금은 마땅하다고 알고 있는 개념 중에는 근대기에 처음 등장한 것이 생각보다 많다. 대체로 서구의 전근대 체제가 붕괴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면서 만들어진 개념들인데, ‘어린이’도 그중 하나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의 서구 사회에서 어린이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류층 가정에서조차 어린이는 최소한의 관심만 받았고(당시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점이 이유였다고 한다) 서민 가정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도제 수업에 뛰어들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는 장인이 되거나 계산에 밝은 숙련된 상인으로 컸다. 또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려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아동의 노동은 성인보다 손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가난한 하층민 아이들의 노동이 착취되거나 그들에게 학대가 자행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즉 근대 초기만 하더라도 어린이를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 속에 두기보다는 철저하게 소외하거나 노동의 수단으로 여기는 상황이 보편적이었다.
근대 계몽주의자들이 강조했던 ‘교육’은 이러한 어린이의 이미지에 반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의 대표 주자인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자연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동의 천성을 강조하면서 이에 맞는 교육관을 주장했다. 루소에게 어린이는 어른과 명확하게 다른 존재였다. 그는 냉혹한 현실에 내던져진 어린이의 고달픈 삶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변화는 상류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백지장처럼 무해한 어린이가 본성이 건강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학습의 경험이 필요하며 따뜻한 가정 환경과 책임감 있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활황이었던 소비 문화가 아동을 주제로 한 문학과 회화를 유행시켰고 서커스, 인형 쇼, 동물원 등 어린이에게 매력적일 만한 아이템들을 만들어냈다.
문학은 아동을 작고 귀엽고 지극히 사랑스러운 낭만의 이미지로 묘사하고 어린이들의 세계를 공상과 동경의 장소로 예찬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는 회화에도 등장했는데, 이 또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전에는 그림의 주인공이 어린이라면 가문의 후계자거나 예견된 지위와 부를 드러낼 목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근엄한 표정과 움직임이 없는 경직된 자세를 취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나비, 꽃, 애완동물 등 여러 소재를 끌어들여 아이의 순수하고 순진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쪽으로 변했다.
참고문헌
김정은, “일제강점기 창경원의 이미지와 유원지 문화”, 『한국조경학회지』 43(6), 2015, pp.1~15.
박훈, “근대일본의 ‘어린이’관의 형성”, 『동아연구』 49, 2005, pp.35~162.
이영석, “근대 영국사회와 아동 노동”, 『영국 연구』 43, 2020, pp.1~20.
이인영, 『한국 근대 아동잡지의 ‘어린이’ 이미지 연구 – 『어린이』와 『소년』을 중심으로』, 2014,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編,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京城: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
그림 출처
그림 1. 조선박람회경성협찬회, 『(朝鮮博覽會)京城協贊會報報告書)』, 1930
그림 2와 3. 조선총독부,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1930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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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 칼란데
우승민,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 수상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
지난 4월 1일, 2022 영국왕립원예협회 사진 공모전(RHS Photographic Competition, 이하 RHS 사진 공모전)의 수상작이 발표됐다. 1804년 창립된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정원·원예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영국왕립원예협회가 주관하는 RHS 사진 공모전은 정원 가꾸기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작품 접수 비용을 받지 않고 사진 촬영 기종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참여 부문은 매년 조금씩 변한다. 올해에는 정원, 야생 식물, 식물, 매크로, 창의성, 실내 가드닝, 소셜 미디어, 11~17세, 11세 미만, 포트폴리오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캄 칼란데
실내 가드닝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한 우승민의 ‘캄 칼란데(Calm Calanthe)’는 국립세종수목원 난과식물전시온실에서 촬영한 새우난초 사진이다. 우승민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 마음에 희망의 빛이 스몄다. 도심 속 일상에 자리한 수목원, 그곳에 꽃이 있고 행복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우승민은 RHS 사진 공모전의 3년 연속 수상자가 됐다. 그는 2020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거울연못을 촬영한 ‘드리미 모닝Dreamy Morning’으로 기념 정원 부문 2위, 2021년 양평 산나무 테마공원 두메향기에서 산부추를 촬영한 ‘트윙클링 앨리엄Twinkling Allium’으로 식물 부문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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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함께 항해할 선원을 찾습니다!
『환경과조경』의 새로운 엔진, 뉴스레터와 유튜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에 나온 명대사다. 다소 거친 표현이지만 저 한마디는 베테랑 형사인 서도철이 형사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극중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서 형사처럼 환경과조경도 나름 조경계에서 베테랑(?)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긴 세월을 버텨왔다. 『환경과조경』은 50년에 달하는 한국 조경의 역사를 곁에서 지켜보며 동고동락했다.
올해 『환경과조경』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한다. 동시대의 잡지들이 줄줄이 창간과 폐간을 반복할 때도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어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앞으로 밝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감히 단언할 수도 없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물성을 가진 책이란 장르가 공급자들에게만 매력적인 장르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돈 주고 잡지를 사서 읽는 일은 독자들에게 매우 낯설다. ‘요새 무슨 책 읽어?ʼ가 아닌 ‘요새 넷플릭스에서 뭐봐?ʼ가 스몰토크의 주제로 오르내린다. 코로나19를 지나는 동안 넷플릭스는 상한가를 친 반면에 국내의 한 대형 서점은 문을 닫았다.
사실 우리는 망망대해에 선 돛단배와 같다. 언제 반파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파도가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파도를 읽지 못하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많이 넘어져 봐야 비로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터, 뉴스레터와 유튜브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기 위한 모터를 야심차게 만들고 있다. 하나는 뉴스레터, 다른 하나는 유튜브다. 지난 3월 31일 1호 발송을 시작으로 나무요일 뉴스레터는 한 달에 두 번 구독자의 메일함을 두드린다. 잡지에 소개된 최신 프로젝트와 과월호 연재의 전문을 뉴스레터로 볼 수 있다.
올해 열리는 IFLA 관련 Q&A와 최신 소식, 장면으로 보는 한국 조경의 역사, 설계 도면에서 읽을 수 없는 조경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 어디서 볼 수 없는 콘텐츠도 뉴스레터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개봉을 앞둔 콘텐츠가 편집부의 컴퓨터 속 폴더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받은 메일함에 뉴스레터가 없다면 링크(page.stibee.com/subscriptions/173067)에 접속해서 구독하기를 누르면 된다. 다음 호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이들을 위해서 지난 뉴스레터 보기(page.stibee.com/archives/173067)도 제공하고 있다.
영화를 통해서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자고 말했던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처럼 활자의 벽을 뛰어넘고자 유튜브(www.youtube.com/c/환경과조경) 영상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환경과조경ʼ을 통해서 잡지나 책에서 활자로 만나던 인터뷰이와 저자를 소개하거나, 최신호 잡지를 미리 만날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IFLA 대학생 서포터즈인 리플러들이 MBTI 여행, 브이로그 답사기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ʼ를 소개하고 있다.
*환경과조경409호(2022년 5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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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식물도
나무에 하나둘 색이 입혀지고 있다. 출퇴근길 15분 남짓의 버스 안에서 형형색색 풍경을 보면 절로 마음이 들뜬다. 코로나19로 지난 봄들을 집에서만 보냈던 나의 야심찬 첫 번째 계획은 봄나들이였다. 밖에서 놀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노들섬으로 향했다.
파워 J인 성향인 나(ESFJ)는 어디든 가기 전 미리 그곳이 어디이고 어떻게 가야하며 무엇을 꼭 봐야 하는지 메모해놓는다. 이번에도 사전 조사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은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이다. 노들섬 공식 홈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리다가 ‘식물도’에서 멈췄다. 이 지면의 소재를 고민하던 중 구세주 같이 등장했다.
‘도시 속 나를 위한 작은 식물섬’이라는 뜻의 식물도는 초록 크리에이터와 함께 만들어가는 체험형 식물 문화 공간이다. 식물 컬래버레이션 전시와 식물 상담, 가드닝 수업, 정원 가꾸기, 식물 크리에이터 강연 등 식물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식물도는 식물을 모티브로 향기 작업과 퍼퓸 오브제를 선보이는 작가 공간인 아뜰리에 생강, 식물이 필요한 공간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앤드어플랜트, 누구나 쉽게 식물과 친해질 수 있는 가드닝 편의점 형태의 서울 가드닝 클럽, 꽃과 식물을 이용해 원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애그린, 네 개 공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 식물도에 가보기 위해 약속보다 두 시간 빨리 노들섬에 도착할 계획을 세웠다. 노들역에 내려 한강대교를 따라 걸었다. 아직은 찬 강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기를 반복하다 그 틈 사이에서 안녕로를 가로지르는 노들섬이 나타났다. 노들섬은 보통의 공원과 달리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기지다. 다양한 복합문화공간 속 식물도에는 초록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길치인 사람도 한눈에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초록색이 가득하다. 도시 속 나를 위한 작은 식물섬이란 콘셉트에 진심인 듯 보였다. 온통 식물로 꾸며져 있어 어디에 눈을 두어도 식물과의 눈 맞춤을 피할 수 없었다.
베테랑 식집사(식물과 집사의 합성어로 반려 식물을 키우며 기쁨을 찾는 사람을 뜻한다)인 부모님을 따라 종종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식물을 키워 보았지만 나는 식물 키우기에 영 소질이 없다. 어깨너머 부모님을 따라하기도 하고 블로그나 유튜브로 공부도 해봤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죽기 일쑤였다. 식물도에 있는 많은 식물을 보니 잠자고 있던 식물 심기 욕망이 깨어났다. 식물 씨앗을 하나 살까 고민하던 중 ‘식물 복덕방’(식물 씨의 좋은 집 구하기)이 눈에 띄었다. 이왕 온 김에 씨앗 하나를 사서 집에 있는 빈 화분에 이사시켜주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한 손에는 바질 씨앗이 든 봉지, 다른 한 손에는 식물 이사 준비물이 든 봉투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가는 전철 속에서 바질 키우는 법을 검색하다 다 키운 바질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방법까지 섭렵했다. 아직 화분에 흙을 담지도 않았는데 벌써 바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행복해졌다.
식물원을 연상케 하는 카페는 많이 가봤지만 식물을 콘텐츠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식물도는 그 어느 곳보다 신선했다. 집으로 데리고 온 바질 키우기에 한창 재미를 붙였다. 쉬는 날이면 밖에 나가 돌아다녀야 하는 E 성향이 강한 내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생긴 셈이다.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는 I에게도 꽤나 잘 맞는 취미 활동이지 않을까. 참, 집에 심어둔 바질은 이제 검은 흙을 비집고 싹을 틔우려 한다. 5월호가 나올 시점에는 녹색 줄기가 다 돋아 있기를, 이번에는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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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
L을 만나러 일 년에 너덧 번 정도 부산에 간다.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부산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아침 해에 빛나는 해운대와 광안리의 바다를 눈앞에 두면 여전히 가슴 속에서 뱃고동이 울리지만, “부산에 왔으면 바다는 꼭 보고 가야지” 생각하는 관광객의 마음가짐에서는 벗어났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산에 갈 때마다 일정 짜는 게 만만치 않은데,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는 쉽게 정해졌다. 공사를 막 끝낸 부산 롯데월드가 개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인파가 어마어마하다는 경고를 각종 SNS에서 읽은 터라, 이른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놀이공원으로 직행했다. 일반적인 놀이공원과 달리 테마파크에는 콘셉트가 있기 마련이다. 놀이 기구도 중요하지만, 방문자들을 일상과 동떨어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세계에 얼마나 깊게 몰입시키는 지가 테마파크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요정의 나라, 마법의 세계 같은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사람들을 푹 빠트리려면 여러 장치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길고 긴 진입로다. 파스텔톤 페인트로 치장한 실제로 오를 수 없는 성의 입구를 통과한다고 다른 세계가 펼쳐질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를 위한 점진적 환각제다. LA 디즈니랜드는 다리가 아플 정도로 긴 진입로에 20세기 초 미국 교외를 떠올리게 하는 빅토리아풍 건물을 잔뜩 세워 거대한 쇼핑 타운을 조성해 놓았다. 가짜라 생각하기엔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리조트 내 호텔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바쁘게 끄는 캐리어 바퀴 소리도 디즈니랜드를 하나의 나라로 느끼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서울 롯데월드는 섬이 가진 독특한 특징을 이용한다. 사방을 둘러싼 호수, 오로지 다리를 건너야만 들어설 수 있다는 점이 놀이공원을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장소로 만든다.
부산 롯데월드에서는 특이하게도 공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놀이 공원은 울산 태화강과 부산 부전을 잇는 동해선의 오시리아역에 있다. 지상철이라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센텀시티와 벡스코를 지나치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점점 커지고, 낮고 넓은 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도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이 짧은 여정과 놀이공원이 들어선 기장은 부산에서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라는 L의 설명이 설렘을 더했다. 한창 벚꽃이 만개했을 때라 꽃들이 남긴 분홍 궤적이 창문 아래쪽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한껏 달아오르던 마음이 식기 시작한 건 오시리아역에 내려서는 순간부터였다. 먼저 거대한 아울렛이 시선을 빼앗았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모티브로 삼은 건지 모서리마다 푸른색 선을 두른 흰색 등대 형태의 둔탁한 건물이 이제 막 연녹색 잎을 틔우기 시작한 산 앞에 좀 머쓱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오르막이 많은 부산의 특성상 놀이공원의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4차선 도로를 건너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정신 없이 길을 오르다 보면 널찍한 주차장과 외로운 섬처럼 놓인 테마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공원 주변이 봄기운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이유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한 오시리아 관광단지가 아직 전부 완성되지 않은 탓이었다. 남은 1년 동안 테마파크 일대는 아쿠아 월드, 호텔, 복합 쇼핑몰, 골프 리조트를 갖춘 관광단지로 바뀔 예정이란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조감도 속 도로에 둘러싸인 테마파크의 진입로를 보면 볼수록 입안이 텁텁해졌다.
마법의 숲(부산 롯데월드의 주요 테마)과 현실을 잇는 옹색한 다리와 좁디좁은 성의 앞마당. 환상과 현실의 급격한 전환은 다시 이곳에 오고 싶다는 아쉬움보다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눅진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쓸쓸한 숲의 풍경을 뒤에 두고 내려오는 내내 즐겨 듣는 노랫말이 가슴 속에서 뱃고동 대신 둥둥 울렸다. “사랑은 구름 넘어 환상은 아니지만 멍청한 믿음은 좀 필요로 해”(‘용맹한 발걸음이여’, 잔나비) 적당한 강도의 환상에 푹 젖는 경험은 일상을 좀 더 힘차게 견디게 하는 동력이 되곤 한다. 그것이 비록 멍청한 믿음에 기반할지라도 말이다. 이번 달 나의 환상은 환경과조경의 뉴스레터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것, 또 유튜브의 구독자와 좋아요 수가 폭발하는 것이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당장 세 쪽 앞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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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자연을 닮은 모험 놀이터 허니콤과 어드벤처 코스
다양한 조합으로 즐기는 친환경 놀이 시설
자연은 오감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놀이터다. 자연을 닮은 놀이터가 있다면 어떨까? 아이붐(I-BOOM)은 예건(YEKUN)의 복합 놀이 시설 브랜드로 아이들을 위한 친환경 놀이터를 제작하고 있다. 여러 놀이 유닛을 다양하게 조합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흥미로운 모험을 즐기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각 유닛에 적용된 1~2등급 목재 고유의 따뜻한 색감과 촉감은 아이들의 오감 발달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허니콤은 육각형 유닛 구조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하여 만드는 놀이 시설이다. 벌집의 육각형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육각형 구조는 외부에서 가해진 힘을 분산시켜 안정적일 뿐 아니라 견고한 것이 장점이다. 단차가 있는 구조물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대소 근육을 쓰도록 만들고, 이런 활동은 아이들의 신체적 발달을 돕는다. 벌집 구조로 이어진 각 유닛 사이를 이동하는 동선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편안한 느낌의 목재와 무독성 소재를 사용해서 친환경적이다. 스테인리스 망을 통해 언제든지 부모가 아이를 확인할 수 있어 미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어드벤처 코스는 아이붐 비밀 아지트 시리즈 중 하나로, 10가지 이상의 유닛 구조물을 자유롭게 배열한 놀이터다. 천연 원목이 가진 특유의 곡선을 활용했으며, 아이들이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놀이터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이고 창의적인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숲 속에서 뛰어놀듯이 놀이대를 오르내리는 활동은 도심지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자연 경험을 채워주며 신체 능력과 창의력도 키워준다. 각 유닛은 개별적으로도 설치가 가능해 소규모 공원이나 개인 정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TEL. 02-324-0070 WEB. www.ib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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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1822년 4월 26일,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이자 현대 조경의 창립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서 태어났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와 강연회가 줄을 잇고 있으며, 옴스테드의 도시 철학과 공원관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시대 도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공간적 불평등에 처방전을 구하는 학술대회들도 연이어 열리고 있다. 옴스테드의 생애와 업적을 갈무리한 다양한 아카이브도 구축되어 이제 클릭 몇 번이면 그가 남긴 글과 도면을 누구나 직접 만날 수 있다.
『환경과조경』은 이미 2년 전부터 2022년 4월호를 옴스테드 특집호로 엮는 구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속되는 코로나19의 여파로 한국조경학회와 연계한 옴스테드 세미나, 해외 기관과 공동 주관하는 전시회,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 옴스테드 세션 등 초기의 여러 계획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2022년 봄을 맞고 말았다.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시점에 이번 특집 ‘옴스테드 200’을 다시 기획할 수밖에 없었지만, 참여 필자들의 헌신적인 수고로 그나마 옴스테드의 삶과 업적, 공원관, 저작과 작품, 기록물을 폭넓게 아우르는 지면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옴스테드 관련 한국어 논문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을 급히 섭외했는데, 마감 시간이 촉박했음에도 모두 흔쾌히 집필을 수락해주었다. 오랜 기간 옴스테드 공원 철학의 형성 배경을 연구해온 조경진(서울대 교수)은 이번 원고를 통해 그의 책과 글에 담긴 공원관을 재해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되짚었다. 옴스테드의 공원 복지 개념을 주제로 논문을 출판한 바 있는 김민주(환경과조경 출판‧기획팀)는 이번 특집에서 옴스테드가 남긴 글과 공공 프로젝트, 그리고 그를 다룬 주요 저작을 꼼꼼히 목록화했다. 옴스테드의 파크웨이와 19세기 북미의 어바니즘을 다룬 여러 편의 글과 논문을 발표해온 신명진(서울대 박사과정)은 옴스테드가 계획한 일련의 선형 공원을 도시 그린 인프라의 선례로 재평가하고 현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조경사 연구자 두 명도 기꺼이 특집에 참여해주었다. 임한솔(ULC 에디터)은 옴스테드의 성장 과정, 두 번의 여행과 작가·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 센트럴파크 감독관 시절과 공모전 당선, 위생위원회 사무국장 경력, 전업 조경가로서의 다각적 실천 등 생애 전반과 업적을 살폈다. 김정화(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 4A_Lab 연구원)는 미국의회도서관의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페이퍼’와 ‘옴스테드 어소시에이츠 레코드’, 페어스테드의 ‘옴스테드 아카이브’ 등 관련 아카이브를 면밀하게 소개하면서 각 아카이브의 배경과 구조적 특징, 최근의 변화와 움직임까지 개괄했다.
편집부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기자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의 한계 속에서 옴스테드 재단,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등 관련 기관과 계속 접촉하며 다양한 문건을 협조받았고 특히 많은 시각 자료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월간지의 특성상 조금 더 충분한 준비 기간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어로 정리된 옴스테드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호 특집이 여러 독자들에게, 나아가 향후의 국내 옴스테드 연구자들에게 적어도 입문 가이드 역할은 할 수 있으리라 자평해 본다.
1903년 8월 28일,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매사추세츠 주 웨이벌리에서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특집을 꾸리며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주히 들추다 당시의 부고 기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사망 다음 날 「뉴욕 타임스」에 실린 장문의 부고를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센트럴파크와 프로스펙트 공원뿐 아니라 미국 여러 도시의 뛰어난 공간들을 디자인한 위대한 조경가”로 시작하는 부고 기사는, 그를 다룬 후대의 그 어떤 전기들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옴스테드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담고 있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광풍 속에서 도시 위생과 시민 건강을 위해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형 공원과 공원 녹지 시스템을 정착시킨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그는 도시 혁신의 비전을 지향하는 조경가(landscape architect) 직명을 창안하고 조경(landscape architecture) 직능을 창설한 선구자였을 뿐 아니라 도시 사상가이자 사회 개혁가였다. 옴스테드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22년, 기후변화와 팬데믹에 신음하는 지구촌 곳곳의 조경가들에게 도시와 공원, 사회와 공공 공간이 맺는 함수 관계를 다시 조회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옴스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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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행군과 식물
군인 시절 가장 힘든 훈련은 행군이었다. 20년간 끼니와 운동에 소홀히 했던 내 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걷는 일을 버티지 못했다. 훈련 중 다친 무릎이 때때로 아팠지만, 부대의 모든 병사는 행군을 해야만 했다.
같은 무게의 군장을 메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행렬. 짧은 휴식 시간을 기다리는 긴 발걸음. 그 곁에 있었던 식물을 기억한다. 농지 사이 연못에 핀 노랑어리연꽃, 개울 옆 풀밭에서 하늘거리던 금꿩의다리, 도로변에 줄지어 피었던 좁쌀풀과 개망초, 그리고 검은 숲속에서 하얗게 빛나던 은사시나무. 행군은 힘들었지만 식물은 아름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행복하겠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그때의 행군을 떠올린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해도 일은 일.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일도 공평하게 무겁고 기나긴 여정이다. 다만 나는 그 행렬 속에서 식물을 헤아리는 중이라고, 늘 하지 못했던 대답을 이 글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