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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세상을 번역하다
페이퍼 워크, 프랙티스, 보이드, 매스, 마운딩, 라이프스타일……. 매달 나를 괴롭히는 단어의 목록이 길어진다. 『환경과조경』의 편집 지향점 중 하나는 외래어를 한국어로 순화하는 것인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신기하게도 조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나열한 단어들을 한국어와 짝지어 보자면 페이퍼 워크-서류 작업, 프랙티스-실행/실천, 보이드-커다란 빈 공간, 매스-덩어리, 에지-가장자리, 마운딩-언덕 만들기, 라이프스타일-생활 양식 정도다.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뜻이 빗나가거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외래어+한국어 형태의 합성어가 등장하는 경우 더욱 곤란하다. 건물이나 공간의 규모에서 비롯한 감각을 흔히 ‘매스감’(매스+감각)이라 표현하곤 한다. 커다란 건물이 주는 느낌, 거대한 건물의 크기가 자아내는 분위기, 큰 건물이 주는 감각, 머릿속으로 몇몇 문장을 나열하다 죄 없는 교정지를 노려 보며 빨간 펜을 내려놓는다. 그대로 두자, 결정하고 다음 문장에 집중하려 노력하지만 자음과 모음이 마음 어딘가를 쿡쿡 찔러대는 건지 속이 껄끄럽다.
영어의 동사를 명사처럼 쓰면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마운딩’이 딱 적절한 예인데, ‘마운딩을 만들었다’와 같은 오류는 ‘언덕을 만들었다’로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다면 ‘조형 마운딩을 제안했다’는 어떨까. 물론 ‘조형적 언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로 고쳐 쓸 수 있지만, 필자 고유의 문체와 본래 문장 길이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을 살리며 글을 다듬기 쉽지 않다. 결국 빈도수를 해결책으로 삼는다. 언덕 만들기보다 마운딩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 뜻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마운딩을 조경 동네에서 통용되는 보통명사로 삼기로 마음먹는 식이다.
‘세상을 번역하다’는 번역가 황석희가 명함 뒷면에 새긴 글이다. 이 감성적인 문장은 번역의 본질
을 꿰뚫는다. 과장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치환하는 걸 넘어 어떤 세계를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고 이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일에 가깝다. 대상에 대한 탐구 없이 진행한 번역은 세상을 왜곡한다. 영화 ‘데드풀’의 자막 작업을 하며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황석희에게 “엑스맨이라는 작품은 1960년대 인종차별을 메타포로 만들어졌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 영화니 돌연변이 사이에선 괴물이란 말 사용하면 안 된다”는 메일이 도착한 것처럼.1
한창 이번호 특집을 점검하던 중, 오픈스페이스의 순화어 발표 소식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선정한 단어는 ‘열린 쉼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오픈스페이스는 “건물·구조물 등이 많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비건 폐지로 유지되는 토지를 총칭해서 말하며, 공원‧ 녹지를 포함한 녹지공간의 개념”이며 “공원‧녹지‧운동장‧유원지‧공동묘지 등 공지가 많은 시설과 농지‧산림‧하천‧호소 등 건축물로 건폐되어 있지 않은 비건폐지를 의미하는 광의의 녹지”이니 말이다.(토지이음 용어사전)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국민 2천여 명을 대상의 설문에서 93.1%의 응답자가 열린 쉼터가 적절한 순화어라는 데 동의한 점이었다.
오픈스페이스는 조경뿐 아니라 도시, 건축 분야에서도 널리 쓰는 말이다. 대중이 의미가 대폭 축소된 열린 쉼터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우리가 만든 오픈스페이스가 그들의 마음에 가닿지 못했다는 뜻일 테다. 우리의 바람과 달리 광장, 공원, 산림, 녹지축은 서로 상관없는 각개의 공간으로 읽힐 뿐이다. 사방으로 트여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오픈스페이스의 카테고리는 슬프게도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단어의 의미는 소급적으로 발생하고, 사후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48쪽). 그러므로 조경의 의미는 조경이 행한 일, 즉 조경이 만든 공간과 시스템에서 비롯할 것이다. 결국조경의 의미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조경의 이름으로 좋은 것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궁금하게만드는 수밖에 없다. 교과서적 해답이지만 모범적 해결책은 가장 명쾌하고 기초적이며 해냈을 때 큰 효과를 낸다. 움베르트 에코는 ‘번역이란 실패의 예술(translate is art of fail)’이라 말했다. 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 완벽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예술로 만들어나가는 건 단어 주인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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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송길영, “[에스.티. 듀퐁클래식에 새긴 그의 스토리]번역가 황석희”, 포브스 코리아, 2018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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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숲길에서 만나는 휴식, 조선왕릉 퍼걸러
고즈넉한 정취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
조선왕릉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고, 2020년부터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에 위치한 40기의 조선왕릉을 잇는 600km 순례길이 개방됐다.
태릉에 설치된 예건(YEKUN)의 퍼걸러는 이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조선왕릉의 숲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퍼걸러는 키 큰 소나무를 비롯해 왕릉을 둘러싼 풍성한 숲에 스며든 듯 놓여 있다. 장소의 특수성과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한 조형을 지양하고, 전통적 요소를 살릴 수 있는 비례와 형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퍼걸러의 절제된 형상은 왕릉으로 이어지는 숲길을 가득 메운 나무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디테일을 통해 왕릉이 가진 특유의 정취와 장소성을 돋보이게 했다. 개방감이 느껴지는 퍼걸러에 책장을 더해, 숲길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고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했다. 크기에 따라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되는데, 장소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제품을 선택해 활용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느낌을 그대로 살린 창호를 퍼걸러 내부에 설치해 장소성을 극대화했다.
TEL. 031-943-6114 WEB. www.yek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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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공원의 보존과 재생, 로렌스 핼프린을 추억하며
도시공원의 보존과 재생 이슈를 다룬 이번 특집 원고의 교정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마음 한구석에 묻어둔 추억의 모더니스트 조경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길지혜의 글 “도시공원의 보존, 변화와 연속성 사이”와 심지수의 글 “공원을 공원답게”에 등장하는 시애틀 ‘프리웨이 공원’의 설계자 핼프린을 처음 만난 건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무심코 뽑아 든 그의 작품집 속 흑백 사진 한 장에 가슴이 뛰었다. 포틀랜드 도심 ‘러브조이 플라자(Lovejoy Plaza)’ 개장일(1970년 6월 23일)의 한 장면. 시에라 산맥의 풍경을 거친 콘크리트 물성으로 재해석해 빚어낸 폭포와 계단 그리고 얕은 연못, 그곳을 가득 메운 청년 세대의 힘찬 기운과 활력.
러브조이 플라자는 1960년대의 저항 문화와 신사회 운동을 도시 한복판으로 불러낸 공감각의 무대였다. 노트 한구석에 이렇게 적었다. “로렌스 핼프린, 공감각적 공간 안무가.” 핼프린에 깊이 빠진 나는 그의 작품들을 여러 편의 글에 인용했다. 어느 논문을 다시 들춰보니, 무려, 이런 말까지 쏟아냈다. “환경과 신체의 대화를 시도한 핼프린의 실험은 자연의 역동적 경험과 도시의 일상 문화를 결합시킨 러브조이 플라자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멀리서 눈으로 관조하는 장식적 폭포가 아니다. 사람들은 폭포에 기어오르거나 폭포 아래 연못에 들어가 자연과 삶의 생동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한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경관의 구경꾼에서 환경의 참여자로 되돌려 놓는다.”
문제는 나의 신체로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다는 점. 책으로 연애를 배우면 늘 자신 없는 법이다. 핼프린의 작업에 뭔가 빚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몇 해 전 연구년을 보낼 도시로 시애틀을 택한 데에는 핼프린에 대한 부채 의식을 떨치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도심 고속도로 상부에 공원을 덮어 단절의 문제를 해소한 시애틀의 프리웨이 공원, 그리고 그 형태 디자인의 원형을 실험하며 도시재생의 해법을 제시한 포틀랜드의 러브조이 플라자를 눈과 귀, 손과 발로 체험하며 핼프린이 꾀한 공감각적 장소감의 현재성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핼프린은 러브조이 플라자, 켈러 공원(Keller Fountain Park), 페티그로브 공원(Pettygrove Park) 등으로 구성된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1963년부터 1971년에 걸쳐 설계했다. 도심 쇠퇴와 경제 불황을 겪던 포틀랜드의 도시 문제를 선형 공간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구도심 한가운데 여덟 블록을 보행로, 공원, 광장, 숲으로 신경망처럼 잇고 엮은 선형 오픈스페이스는 도시 공공 공간의 미학적 혁신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도시재생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평가는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재해석한 책 『혁명이 시작된 곳(Where the Revolution Began)』(2009)의 제목에 단적으로 담겨 있다. 건축 비평가 아다 루이스 허스터블은 켈러 공원을 “르네상스 이후 가장 중요한 도시 공간 중 하나”라고 평했다.
미국 북서부 특유의 겨울비가 내리던 날,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를 걸었다. 음습한 날씨와 원형 복원 공사 탓에 인적이 드물었지만, 시에라 산맥의 절벽과 계곡 풍경을 입체 그리드로 추상화한 콘크리트 조형 경관의 힘은 오래전 기억 속 사진 그대로였다. 산의 형세와 산맥의 형태, 물의 흐름과 퇴적을 재해석한 러브조이 플라자와 켈러 공원의 경관 위로 흑백 사진 속 청년들의 역동적 몸짓이 자연스레 겹쳐졌다.
2001년, 핼프린이 남긴 공원 유산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로렌스 핼프린 경관 컨서번시’가 구성됐다. 이 단체의 노력으로 포틀랜드 오픈스페이스 시퀀스는 2013년 3월, 도시공원으로서는 드물게 ‘국가사적지’에 등재됐다. 50년 넘는 풍화의 상흔을 치유하고 원형대로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돼 2019년에 마무리됐다. 복원과 보존을 위한 이러한 노력은 이번 호에 소개하는 시애틀 프리웨이 공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속도로 덮개 공원의 새 장을 연 프리웨이 공원은 도시의 변화와 함께 위험의 상징으로 퇴락해갔다. 콘크리트 폭포와 분수 일부를 철거하는 리모델링 계획이 세워졌으나 핼프린 컨서번시와 문화경관재단이 맞서 원형 유지와 개선 사이의 접점을 찾았다.
프리웨이 공원도 2019년 말, 국가사적지로 등록되기에 이른다. 최근 국내에서도 파리공원을 비롯한 20세기 후반의 도시공원들을 고쳐 쓰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의 충돌이라는 난제를 마주한 지금, 로렌스 핼프린의 유산을 둘러싼 그간의 쟁점을 꼼꼼히 살펴볼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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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손들어 볼까요?
“예쁘지만 환경 파괴적인 디자인과 박색이지만 친환경적인 물건.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손들어 볼까요?” 오래전 수업에서 교수가 던졌던 질문이다. 우리는 조금 웅성거리다가 절반쯤은 예쁜 것, 나머지는 친환경적인 것에 표를 던졌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언가를 파괴하며 만든 것이라면 좋아할 자신이 없는데……. 그렇다고 못생긴 물건을 내 방에 두어야 한다면 쓸쓸한 걸……. 둘 사이에서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다가 나는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동안 욕심껏 모았던 관엽 식물들을 정리한 건 그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이 식물들은 무척 아름답지만 요구하는 게 많았다. 추위에 약하니 보일러를 틀어야 했다. 공기가 건조하면 잎이 노랗게 마르니 가습기를, 과습 피해와 곰팡이를 막으려면 서큘레이터를 돌려야 했다. 웃자라는 식물에는 생장용 전등도 달았다. 도시가스를 때고 화석 연료로 생산한 에너지를 아낌없이 쓸수록 아름답게 자라나는 식물들. 어느새 이 풍경을 좋아할 자신이 없어졌다.
이제 내 방 안에 온실(2021년 9월호)은 없다. 남은 식물은 별다른 요구 없이도 잘 자라는 10종 남짓이다. 앞으로 식물방에 따로 보일러를 틀지 않을 생각이다. 식물 전구는 중고 마켓에 팔고, 서큘레이터와 가습기는 작업실에서 쓰기로 했다. 50개쯤 되던 화분이 쓸쓸히 사라진 자리를 보니, 즐기는 것이 미덕인 취미에 또 쓸데없이 오래 고민하고 있는건가 싶다.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친환경적이기는 어려운 일. 여전히 어느 쪽으로도 손을 들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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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
Hyundai Motor Group Global Partnership Center and University Gyeongju Campus
되돌이
지난 4년간 가르친 수업 중 하나가 ‘코어1’이라 불리는, 건축 등의 설계 교육을 받은 적 없는 학생이 입학 첫 학기에 듣는 필수 설계 과목이다. 15주 동안 학생들은 주 3회, 매 4시간씩 강의를 듣고 총 3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60페이지에 달하는 강의계획서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강도 높은 수업을 통해 개념 잡기, 대상지 답사, 각종 표현 방식, 여러 스케일을 넘나드는 접근 방식 등을 배운다. 수업의 별칭이 말해주듯 그야말로 조경 설계의 ‘코어’를 가르친다.
이 수업에서 가르치는 설계 과정은 상식적이고 단순하다. (1) 설계 문제의 이해, (2) 대상지 답사 및 분석, (3) 평면과 단면을 통해 개념 잡기, (4) 다양한 스케일과 종류의 드로잉을 통해 개념 발전시키기, (5) 여러 리뷰를 통해 피드백 받기 (6) 최종 결과물을 주어진 시간 내에 만들고 발표하기. 그런데 학생들이 그 수업을 거치며 배우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설계 과정이 절대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수차례 앞의 단계로 되돌아가고, 때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개념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물론 주어진 시간의 한계는 명확하지만) 과정이 주는 스트레스에 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설계로 만드는 기회로 삼는 학생이 좋은 성과를 내고 두 번째 학기로 넘어가게 된다.
오피스박김의 지난 18년의 설계 과정 또한 다를 바 없다. 클라이언트와 첫 대화를 하고, 대상지를 답사하고, 개념을 만들고, 여러 미팅과 보고를 거친 뒤 납품을 하고, 시공 현장에 나가 감리를 하는데,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난 뒤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저 단순해 보이는 과정에 한 방향의 화살표보다 훨씬 많은 수의 루프들이 있다. 다시 개념으로 돌아가고 다시 현장을 나간다. 시공 현장에서 선형을 바꾸고 재료를 바꾼다. 공사비 절감을 위한 취사선택의 과정에 이르러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개념을 설명해야 하고 꼭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설득한다.
아마도 이것이 코어1 강의계획서 두 번째 페이지에 언급된 ‘설계의 방식(methodology)’ 중 첫 항목인 ‘되돌이(iteration)’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피스박김이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성격과 강도의 되돌이 과정을 거쳤는데, 어느 단계에서 어느 앞 단계로 돌아갔고 어느 단계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고, 그 후 어떤 모양새로 앞으로 나아갔는지가 해당 프로젝트의 공간과 완성도를 설명한다. 2015년에 시작되어 2019년에 완공된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 설계 또한 수많은 되돌이를 거쳤는데, 이 지면을 통해 프로젝트의 되돌이 과정 중 중요했던 순간들을 반추해볼 수 있었다.
‘현대적’ 쉼
필자가 유학생이던 시절, 아시아의 또 다른 경제 강소국 출신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었다. “한국은 정말 대단해. 제철, 자동차, 조선 등 중공업의 강자잖아. 우리나라는 열심히 하지만 전부 경공업이라…….” 이 친구의 진심 담긴 부러움을 받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점이었다.
한국의 이 근대적 자부심의 중심에 기업 ‘현대’가 있다. 대상지는 본래 운동장의 비중이 매우 큰 현대자동차 연수 시설이 있던 곳이다. 아마도 울산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연수 기간에 머물며 축구나 집단 운동으로 단합하는 근대적 형태의 쉼과 배움을 즐겼을 것이다(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근대를 높이 평가한다. 근대적이라는 표현을 전혀 부정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현대적(기업 현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쉼을 가능케 하는 외부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설계와 시공 과정 중 되돌이가 일어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던진 여러 질문 중 하나였고,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이 쌓여 설계가 공간이 되었다. 첫 단서는 대상지 답사 중 찾았다. 2015년 11월에 직원들과 함께 방문한 대상지에는 그야말로 야생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연수 시설은 모두 철거된 상태였고, 당시 유행하던 재선충으로 인해 잘린 소나무들이 외부 반출을 위해 톱밥으로 갈리고 있었다. 해발 30m 높이 해변에 위치한 대상지에서 동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대상지와 바다 사이의 두툼한 갈대숲이 따뜻하면서도 찬 가을 햇볕을 받아 금빛으로 넘실거리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때 든 확신은, 시선을 바다로 유도하고 대상지와 바다를 구분 짓는 어떤 인위적 장치도 배제함으로써 연수원 이용자와 자연 간의 직접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대적 연수 프로그램이 단합과 운동에 초점을 두었다면, 현대의 현대(contemporary Hyundai) 구성원의 연수는 개인의 쉼과 그합, 그 둘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건축 설계의 주안점과도 일맥상통했다. 그 당시 목격한 야생의 아름다움이 폐허와 방치로부터 온 것이었다면, 설계를 통해 탄생하는 외부 공간에서는 세심하게 안무된 물성의 배치를 통해 야생미를 만들어야 했다.
이 프로젝트의 조경 설계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건물과 대상지 경계 사이의 공간과 건물 내부의 중정들이다. 건물과 대상지 경계 사이의 외부 공간은 건물에서 바다로 향하는 큰 방향 안에서 거대한 주름이 공간을 만드는 지형으로 설계했다. 오피스박김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이렇게 큰 제스처의 지형이 전반적 공간의 틀을 잡는 경우가 많다. CJ 블로썸 파크(2016년 9월호)나 현대캐피탈 배구단 복합훈련캠프(2014년 1월호)의 외부 공간이 그 예다. 사실 조경 설계 과정에서 되돌이 루프를 일으키는 요인 중 절대적으로 빈번한 것이 바로 공사비 삭감인데, 지형으로 큰 면을 채우며 스케일감을 만드는 방식은 시설물이나 비싼 나무를 빽빽히 넣는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경제적이다. 더구나 이 프로젝트에서처럼 절성토 균형을 너무 잘 맞춰버렸을 때는 탄소발자국의 최소화 효과까지 있다. 시공 중 현장 감리를 통해 기반 공사 중 발생된 흙을 이동시켜 쌓으며 지형의 요철을 만들었다. 벤치 등 휴게 시설물을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가구를 들고 나와 일시적인 휴게 등의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역할이 바로 지형의 설계였다. 건물과의 관계를 살피며 3차원 설계 프로그램에서 지형의 고저 방향, 서로의 관계를 수없이 테스트하며 등고선을 변경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형은 한편 육중한 매스를 갖는 강한 형태의 건물에 스케일 감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건축의 입면은 외부 공간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차로 진입하는 모든 방문객은 이 외부 공간 너머로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지형의 주름들 이 건축의 육중한 스케일을 완화한다.
건물 내부의 중정들은 필연적으로 내부 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선이 재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물성을 통해 각 공간의 성격을 정의하되 최대한 비우고, 평탄한 기반 위에 배치함으로써 재료 자체가 뿜어내는 거침의 아름다움을 존중했다. 즉 나무를 심을 때는 그리드를 따라 한 가지 수종을 식재해 단순하면서도 밀도 있는 숲을 연출했고, 진입 공간에는 너른 수면이 만드는 반사의 경관이 방문객을 맞이하도록 했다. 매우 단순한 건물의 입면이 수면에 비추어지며 극화되는 순간이다.
중정 설계에 사용된 거친 돌, 마사토, 판석, 잔디, 물 등은 조경 설계에서 흔히 쓰는 재료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배치와 담는 공간의 모양에 따라 그 공간감과 경험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점이다. 글과 함께 실리는 사진들이 실제 모습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연수원 완공 직후, 인류사에 유례없는 전 지구적 전염병이 돌았다. 현대는 갓 구워진 빵과 같은 이곳을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시설로 공유했다. 진정한 ‘혼자만의 쉼’이 필요한 사람들의 장소로 쓰인 것이다. 오피스박김이 설계한 ‘현대적’ 쉼이 동시대 쉼 문화에 일조하기를 기대해본다.
담담한 마음
박윤진 인터뷰
거대한 건물을 둘러싼 녹색 구릉이 인상적이다. CJ 블로썸 파크, 양화한강공원을 비롯해 그간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형을 다듬는 ‘지형술’을 이용해왔는데, 현대자동차 영남권 연수원(이하 현대차 연수원)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나.
지형술은 대상지의 기능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혹은 가장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설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양화한강공원에서는 뻘을 잘 안착시키기 위해 호안 지형을 만들었고, CJ 블로썸 파크의 경우 훼손된 사면을 복원하기 위한 입체적 블레이드 지형을 제안했으며, 서울공예박물관의 지형은 나무를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계단의 역할을 한다.
현대차 연수원에서는 현장 흙의 외부 이동 없이 절성토 토공량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근간으로, 건물의 스케일을 완화 혹은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지형을 구현하고자 했다. 부드러운 형태로 과장된 스케일을 구현하려 했으니, 오피스박김의 또 다른 ‘지형술’로 구분해도 괜찮을 것 같다.
구릉의 높이가 상당히 높다.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할텐데, 특별한 노하우나 공법이 있나.
안식각을 지키고, 절토량과 성토량의 비율을 맞추는 데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구릉의 높이가 높지만, 진입 시 건물의 수평적인 매스가 배경이 되어 장쾌한 경관을 연출한다. 물론 기능적으로 배수와 사면 안정화 유지·관리를 위한 굴곡의 형태이기도 하다.
급경사를 만들거나 다른 기능이 필요한 경우, 지형틀(서울공예박물관의 완만한 언덕에 설치된 선형의 콘크리트로 지형에 미세한 차이를 드러낸다. 2021년 10월호 참고) 등 몇 가지 기법을 통해 조작을 한다. 지형틀의 경우 현장의 문제와 여건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찾게 된 공법이다. 현장 조건에 맞는 테스트와 감리를 통해 기술적 성취를 한 셈이다. 퇴계로, 만리재로 보행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는 새로운 포장을 찾기 위한 배합과 비율, 깊이를 목업 작업을 통해 탐구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재료와 공법을 발견하는 일은 늘 흥미롭고 즐겁다. 서울공예박물관에 사용한 지형틀은 현재 한국물가정보에 등록되어 있다.
이 넓은 구릉에 숲처럼 가득 심은 나무나 벤치, 테이블, 퍼걸러 같은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이 외부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감각하기를 바랐나. 이로써 건물과 지형은 어떠한 관계를 맺게 되는가.
큰 열린 경관, 그 자체로 무엇이 되기보다 사람들 혹은 여러 현상들을 초대할 수 있는 경관을 만들고자 했다. 공간을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보다, 자유롭게 열어주고 빈 곳을 만들어줌으로써 사람들이 어디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점유하기를 바랐다. 연수원은 교육하고 학습하는 공간인 동시에 해방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장소다. 실내에서 느끼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몸과 정신을 이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쉼이라는 개인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기 위해서는 잘 조직된 의도된 비움이 필요하고, 이러한 공간은 최근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지형과 건물의 관계는 상당히 전략적이다. 거대한 건물의 부피감을 큰 압도감을 느낄 수 있는 스케일의 지형이 부드럽게 완화하고, 이 대비를 통해 현대차 연수원의 정체성이 완성된다. 크게 열려 있되 재료의 대비를 이용해 영역을 구분하고, 시원한 쾌를 줄 수 있는 경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경관을 만들었다. 현대의 기원,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을 빌리자면, 담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경관이라고나 할까(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 친필 글씨 중).
특정 기업의 연수원인 만큼, 기업의 철학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 요구되지는 않았나.
특별한 요청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리서치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기업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고자했다. 제조업인 만큼 공장 같은 큰 스케일의 공간, 기능적인 공간이 어울린다고 판단했고 해안 경관이 펼쳐져 있는 대상지와도 잘 부합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울산에 공장을 두고 있을 시절, 직원과 함께 휴식하던 곳이 지금 현대차 연수원 터다. 그렇다면 현대에 맞는 새로운 여가의 경관은 무엇일까? 현대는 한국 제조업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기업이고, 제조업은 한국 근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종묘의 평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현대차 연수원의 평면과 많이 닮아 있었다. 정방형의 정전들이 미세하게 높이가 다른 지형에 둘러싸여 있고, 지형과 건물이 만나 생기는 빈 공간도 상당히 유사했다. 근대적 여가의 기원은 이러한 빈 공간에서 동시대와 조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차 연수원의 비움은 레저와 휴식 기능도 제공하지만, 한국의 전통 공간 구조와도 닮아 있다. 단 이때의 비움은 막연한 빈 공간이 아닌,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물, 돌과 같은 재료에 의해 현상학적으로 바뀔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또한 장쾌하게 빈 공간은 다양한 물성을 드러내는 데 유리하다.
전통, 근대, 그리고 동시대는 시계열로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경험과 외부 공간을 다루는 조경 행위를 통해 확인 가능하며, 조경의 본질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비워져 있는 공간 중 유일하게 채워져 있다고 생각한 곳이 중정 속 나무 숲이다.
경관의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머무르기 적합한 곳이 바로 나무 숲 중정이다. 부드럽고 투과성을 갖는 요소인 나무를 심어 하나의 레이어를 더 만듦으로써 중정의 오목함과 아늑함을 강조하려 했다. 중정에 숲이라는 필터를 하나 두어 거대한 건물이 주는 부담감을 덜고, 그 밑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쉬거나 만나게 한 것이다. 숲 아래는 흙으로 포장했는데 언제든 의자를 가져와 쉴 수 있고 토론회도 열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이다.
홈페이지를 보니, 현대차 연수원에 전통적인 소재를 사용하려 했다는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지역성이 드러나는 소재를 찾는 건 늘 오피스박김이 해온 일이다. 또한 실용적 이슈를 무시할 수 없다. 공법, 공사비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가 현장에서 사용한 발파석은 화강암 포장의 1/5 가격에 불과하지만, 현장 설계 혹은 감리만 잘한다면 크기와 거친 정도 그리고 놓은 방식 등에 따른 다양한 방식을 구현할 수 있다. 더 거칠게 깬 돌을 놓기도 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비우고, 언덕 대신 납작한 잔디밭을 두기도 하고, 중정 사이에 나무 숲을 만들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전통 공간과 다를 바 없는 고전적 언어를 사용했지만, 물성을 대상지에 맞춰 극화하고 더 합리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크지 않은 직사각형 틀에 잔디와 깬 돌을 채워 넣었는데, 어떤 기능을 하는 공간인가.
주변 석산에서 나온 돌을 사용한 것으로, 거친 돌은 배수를 원활하게 하고 단단하고 매끈한 바닥과 대비되어 미묘한 질감이 느껴지게 한다. 현대차 연수원에서는 거대한 건축물을 둘러싼 유리 매스와는 대비되는 방식으로 거친 질감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운 잔디와 매끄러운 돌, 거친 돌의 물성을 이용해 공간의 영역을 만들어보려 한 것이다.
낮은 옥상에 설치한 직사각형 틀은 바다를 향한 일종의 제스처다. 이 공간을 쉼터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건물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주변 건물이 매끈하기 때문에 그와 다른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작지만 개방감을 안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 안팎이 하나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단절된 안과 밖이 서로 교호하면 묘한 긴장감이 만들어지고, 작은 공간이라도 건물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질감이 바깥으로 이어지면 공간의 깊이감이 더해진다. 현대차 연수원을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에서 주로 고인 물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기능적 이유가 큰데, 한국의 경우 겨울이 길어서 물을 사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래서 얕은 물을 주로 사용한다. 평소에는 포장 공간이지만 언제든 수경 요소로 활용할 수 있다든지, 물이 사라져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한다. 또 최대한 과장된 효과를 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한다. 현대차 연수원의 경우 건물 앞 가장자리에 길게 반사못을 놓았는데, 광장인 동시에 물이 담기는 공간이다. 수면에 비친 건물을 보면 그 규모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건물 진입구 쪽에도 해가 뜨는 모습과 바다의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수공간을 두었다. 고정되어 있기보다 계속해서 변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공간을 만드는 게 오피스박김의 일관된 태도다. 이는 한정된 한국의 땅과 도시의 밀도를 의식한 것으로, 만약 대상지가 캘리포니아였다면 전혀 다른 설계를 했을 것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와 설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어떤 이슈에 주목하고 있나.
사실 나의 가족은 지금 보스턴에 있으므로, 나는 서울을 방문하고 있는 이방인인 셈이다. 서울과 보스턴을 오가며 감각하는 시차는, 평범한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흥미로운 기제가 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조경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선하고, 환경적으로 매우 이타적인 분야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선을 만들며 이를 공간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또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보다는 새로운 생활 방식, 사회 구성원 개별 모두가 존중받고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현상과 문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호, “이론과 실천과 교육을 가로지르다, 오피스박김의 2030”에서 오피스박김의 새로운 비전과 연구 과제로 ‘새로운 황야’를 이야기한 바 있다. 비록 2년이라는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새로운 황야를 탐구한 성과가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은 미국에 있어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한 김정윤 소장이 이메일을 통해 보내주었다).
2020년 5월호가 발간된 직후, 하버드 GSD 학장에게 제출한 연구 제안서가 채택되어 ‘열한 개 중위도권 도시들의 잃어버린 자연(Lost Nature of Eleven Mid-Latitude Cities)’이라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서울, 보스턴, 마드리드, 파리, 뉴욕, 상하이, 비엔나, 베를린, 런던, 도쿄, 헬싱키가 각각 도시화를 겪으며 잃어버린 자연의 요소는 무엇인지, 도시화 이전의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교차 맵핑하는 방식으로 알아보았다. 올 가을 새로 시작하는 세미나 수업에서는 학생들과 함께 이미 만들어진 평면 맵과 짝 지을 수 있는 단면 맵핑을 진행해 궁극적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지상, 지하의 자연적·인공적 자원의 재배치 공간 전략을 만들 계획이다. 우리의 서울, 강남에 대한 탐구를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오피스박김의 설계 아젠다인 ‘산수전략’과 ‘대체자연’이 프리즘 역할을 했다.
1960년대까지 논밭이었던 강남이 현재 90%에 달하는 불투수성 표면을 가진 도시가 되면서 매년 도시 홍수와 열섬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이는 비단 서울만 겪는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전제하에 다른 도시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대학교 류영렬 교수, 배지환 박사팀의 연구를 접해 강남 지표면 2~3m 아래에 유기 탄소 비율이 높은 흙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고, 이는 이 지역의 과거 토지 이용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도시에서도 그 지역의 과거와 현재 목격되고 있는 문제들의 연관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이러한 연구가 궁극적으로 ‘조경적 방법’을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설계 전략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 스케일과 지상, 지하를 넘나드는 시스템의 설계가 바로 잃어버린 황야의 기능을 부활시키는 새로운 황야(대체자연에서 발전된)가 아닌가 한다. 언제나 설계를 통해 ‘실질적 해결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실행자이기에, 학교에서의 나의 연구가 오피스박김이 구현하는 공간의 전략으로 쓰여 인류가 당면한 기후위기 해결에 작은 부분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전문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설계 총괄 및 감리 오피스박김(박윤진, 김정윤)
설계 담당 오피스박김(박협, 구재영, 장민지)
시공 현대엔지니어링
건축 건축사사무소 mpart
발주 현대자동차그룹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화서리 738-1
면적 124,957m2
완공 2020. 2.
사진 김종오
오피스박김(PARKKIM)은 박윤진과 김정윤이 2004년 네덜란드에서 설립했다. 2006년 서울로 이전해 한국의 지역적 가능성에 근거한 다양한 스케일의 프로젝트들을 선보이는 한편, 활발한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2019년 김정윤 대표의 하버드 GSD 임용을 계기로 보스턴에도 사무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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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도시공원의 보존, 변화와 연속성 사이길지혜
공원을 공원답게, 프리웨이 공원 고쳐 쓰기심지수
공원의 리노베이션, 목동 중심축 5대 공원의 경우온수진
일상적 기억의 장소, 양천공원 산책기손은신
양천공원, 시간과 일상의 배려황용득(동인조경마당)
파리공원, 기억과 시간을 품은 공원김영민(VIRON+김영민)
오목공원, 고쳐 쓰기 혹은 업그레이드하기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목마공원, 모두를 위한 공원이상수(VIRON+스튜디오201)
신트리공원, 다음 세대의 공동체 정원이남진(VIRON+스튜디오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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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낡듯 공간도 낡기 마련이다. 오래되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건물을 부수어서 다시 짓고, 주거 환경이 심각하게 낙후된 지역은 재개발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반면 공원은 고요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시 한복판에 처음 모습 그대로 놓인 도시공원의 모습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도심 속 공원은 복잡하고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삶과 도시에 숨통을 틔어주는 여백이다.
언뜻 주변 도시와 단절된 녹색 섬처럼 보이지만, 지역과 지역을 잇는 연결로이자 주변 지역에 필요한 콘텐츠를 담는 빈 터이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구심점이기도 하다. 주변 도시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공원은 점점 기능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공원도 수선이 필요하다. 그런데 공원은 어떻게 고쳐 써야 할까. 단순히 노후 시설을 교체하고 생육이 불량한 수목을 다시 심는 것을 공원 리모델링이라 부를 수 있을까.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듯 공원의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녹지를 얹는 것이 바람직할까.
공원을 고쳐 쓰는 일을 다양한 시각으로 탐색해보고자 한다. 도시공원의 가치, 오래된 공원의 역사 자원을 보호하며 리모델링한 프리웨이 공원 사례,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 설계공모의 기획 의도와 당선팀의 설계 노트, 리모델링 공원 산책기를 살펴보며 도시공원 고쳐 쓰기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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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도시공원의 보존
변화와 연속성 사이
도시공원을 보존 대상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를 꽤 오랜 기간 머릿속에서 되물어왔던 것 같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원은 동시대의 필요를 수용하는 공공 공간으로서 가치가 크기에, 시대에 맞추어 변화하고 진화하는 공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파리공원과 아시아공원 등 최근의 공원 리모델링1 사업들은 공원을 보존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설계안에 반영되어 있어 반갑다.
도시공원을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주목하게 된 것은 국제적으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뉴욕 센트럴파크는 일찍이 1963년 ‘국가 역사적 랜드마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고 201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도 등록됐지만, 일반적인 도시공원 보존에 대한 논의는 20세기 말이 돼서야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도시공원의 장소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와 도시공원을 마치 디자인되지 않은 유보지로 다루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도시공원에 적합한 보존과 관리 원칙이 필요하다는 여러 논의가 이어졌다. 문화유산 분야에서는 2017년 ‘역사적 도시공원에 대한 ICOMOS-IFLA 문서’2를 공원 보존 가이드라인으로 채택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도시공원에는 지역 사회에서의 사회적·무형적 가치, 공원 디자인의 심미적 가치, 원예와 생태적 가치, 시민 사회의 가치가 오랜 기간 누적되어왔기 때문에 공원의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장소 의미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
이렇듯 많은 국가에서 문화유산으로서 오래된 공원 보존에 대한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됐고, 실제 공원 리모델링 계획에서도 변화와 연속성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해외 도시공원 사례를 통해 우리가 하는 비슷한 고민에 어떻게 대응했고 어떤 결과를 도출했는지 살펴본다.
오랜 기간 계속되는 공원 리뉴얼 갈등
헬싱키 카이사니에미 공원
카이사니에미 공원(Kaisaniemi Park)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공원으로 200년 역사를 자랑한다. 1827년 독일 건축가 카를 루트피히 엥겔(Carl Ludvi Engel)이 처음에는 궁정 양식의 정원과 구릉지와 해안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원으로 계획했으나, 이 부지로 대학 식물원을 옮기게 되면서 계획안이 대폭 수정됐다. 이후 카이사니에미 공원은 식물원과 함께 연못, 개울, 고목이 잘 어우러진 지역 주민의 산책 명소로 많은 사람이 추억하는 공간이 됐다.
1910년 공원 리뉴얼 필요성이 불거졌다. 그 과정에서 핀란드 도시 정원사 스반테 올손(Svante Olsson)과 핀란드 건축가 베르텔 융(Bertel Jung)이 작성한 두 가지 계획안이 나왔는데, 공원 보존에 대한 해석 차이가 커 ‘카이사니에미 전투’라 불릴 정도로 논쟁이 활발했다. 결과적으로 오래된 공원 옛길을 바꾸는 것이 공원 보존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융의 계획안이 현대 도시에 더 적합하다고 여겨져 당선안으로 결정됐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계획안만 헬싱키시 아카이브에 전해진다. 카이사니에미 공원 개선 논의는 1990년대 후반 다시 시작됐다. 헬싱키 시는 1999년부터 ‘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중시하는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주제로 국제 지명 설계공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2001년 공모전 우승작이 나왔지만, 공원의 주요 축을 변경하고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수공간과 자작나무길을 없애고 공원에서 활용도가 높았던 스포츠 경기장을 잔디밭으로 교체하는 등 공원 역사성과 현재 활용되는 공원의 기능을 모두 간과했다는 측면에서 조경 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논쟁은 앞으로의 공원의 지향점을 설정하는 데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헬싱키 시는 공원의 조성 방향 설정을 위해 여러 차례 포럼을 개최했고, 그 과정에서 공감대가 조금씩 만들어졌다. 이후 헬싱키 시는 공원 계획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세웠다. 공원의 역사적 가치 보존과 함께, 도심 속 매력적인 공원, 보행자를 위한 공원, 레저 공원, 지역 스포츠 공원과 같은 일상적 공원의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오랜 논의 뒤 치러진 2007년 설계공모전에서는 공원 보존과 리뉴얼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었다고 평가된 핀란드 조경가 그레텔 헴고르드(Gretel Hemgård)의 설계안이 채택됐다. 헴고르드는 기존 수공간을 지속하되 형태를 새롭게 바꾸고, 카페 신축, 새로운 진입로 개방, 스포츠 시설 개선안을 제시했다. 리뉴얼 요소들이 도입됐지만, 오랜 기간 공원이 지역 사회에서 담아온 역사적 층위를 보존하고 그동안 도시에서 수행해온 기능을 지속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아직 공원 리뉴얼은 실현되지 못하고 표류 중이다. 이번에는 공원 리뉴얼에 앞서 지역 차원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예를 들어 공원 북쪽 도로의 확장 계획으로 공원의 가치를 약화할 수 있다는 점과 인접한 철로의 방음벽 설치 계획이 공원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다른 사업과의 관계에서 공원 리뉴얼은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카이사니에미 공원 보존과 리뉴얼에 대한 논의는 보존에 대한 해석을 서로 맞추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아울러 어느 방향이 더 적합한지 판단하는 근거는 공원 역사에 관한 연구와 여러 이해 당사자 간 논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공원 내부 공간뿐 아니라 인접한 주변 환경과의 관계 정립도 함께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갈등을 겪는 공원
뉴욕 배터리 파크 시티
미국 뉴욕 배터리 파크 시티(Battery Park City)에는 수많은 주거, 상업, 업무 건물 사이에 약 145,686m2에 이르는 면적의 공원과 오픈 스페이스가 세심한 계획에 따라 통합되어 있다. 그중 1996년 문을 연 와그너 공원(Robert F. Wagner, Jr. Park)은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중요한 결과물로 평가되며, 배터리 파크 시티의 관문이자 마지막 종착지로 상징성이 강하다.
처음 개장했을 때 건축평론가 폴 골드버거(Paul Goldberger)는 「뉴욕타임스」에 “뉴욕이 적어도 한 세대 동안 본 최고의 공공장소 중 하나”라고 평하며 “복잡함 속의 고요함(lush void)”을 지닌 14,160m2 규모의 공원이지만 4백만m2의 땅처럼 풍요롭고 감성적이며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와그너 공원과 배터리 파크 시티는 조성한 지 5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하려는 노력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보존의 주요 가치로 ‘경관 조화(landscape ensemble)’를 손꼽으며, 당시 공원 실무자들이 남아있지 않고 설계 회사도 존재하지 않으며 담당한 여러 전문가도 이제는 활동하지 않기에 빨리 보존노력이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배터리 파크 시티 관리단(Battery Park City Authority)이 진행하는 와그너 공원 대상 리질리언스(resilience)계획으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 문화경관재단(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은 랜드슬라이드(Landslide) 프로그램3을 통해 본 사업이 공원 보존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해당 계획은 공원 중앙을 차지하는 벽돌 파빌리온을 철거하고 더 큰 구조물로 대체하고, 상승하는 물을 막기 위해 벽을 지지할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경관재단은 배터리 파크에 가해지는 기후변화 위협은 경계해야 하지만, 와그너 공원은 저지대 지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와그너 공원의 건물은 허리케인 샌디에도 침수되지 않았고, 공원 자체가 100년 홍수 예상 범위보다 더 높은 지대에 조성됐기에 해안가 통합 홍수 방지 솔루션에 와그너 공원을 포함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스트 사이드 리질리언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미국 조경가 로라 스타(Laura Starr)는 “디자인도 리질리언스 계획의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강조하며 모든 사람이 공학적 정보를 쉽게 이해하고 의견을 낼 수 있게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장벽을 세우는 것이 기후변화 대응에 최상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기후변화 적응과 완화를 고려한 공원 리노베이션 계획은 그 시급성 때문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공원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놓치지 않고 의미 있는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설계 원칙 도출을 위한 협의
셰브데 보울롱네르스코겐 도시공원
스웨덴 셰브데(Skövde)의 보울롱네르스코겐 도시공원(Boulognerskogen Urban Park)은 약 140,000㎡ 면적의 공원으로, 19세기 중반 전국에서 이곳에 와 온천수를 마시고 입욕으로 치유하는 유명한 휴양지였다. 공원에는 독특한 지형 내 연못과 함께 다양한 식물 자생지, 레스토랑과 호텔 등 상류층을 위한 시설이 있었다. 1930년대에는 노동자들을 고려한 시민공원으로 변모하면서 다양한 시설이 도입되었다. 1933년에는 인공 연못이 조성되어 여름에는 수영장,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공원은 1960~1970년대 많은 부분 쇠퇴했고 연못 수질도 좋지 않아 입수가 금지되었다. 황폐해진 공원은 방문하기에 안전한 장소로 인식되지 못했다. 셰브데 시는 공원을 복원하고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기 위해 2012~2014년 설계공모를 진행했고 2015년 공사를 마쳤다. 복원 사업에서 중시했던 점은 디자인에 시민들이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지역 정치인들도 적극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련의 협의 과정을 통해 다음의 설계 원칙을 도출했다. (1) 공원 경계를 수목 울타리로 둘러싸도록 구분, (2) 공원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해 7개의 새로운 진입로 건설, (3) 근처 노인층을 위한 전망대 제공, (4) 연못의 복원, (5) 물 순환을 통해 신선함을 유지하는 분수와 굽이진 산책로가 있는 모래사장 조성, (6) 해안가를 따라 반 차광된 보행자 산책로 조성, (7) 일광욕을 할 수 있는 길게 뻗은 테라스 공간 조성, (8) 가지가 풍성한 산벚나무 열식.
셰브데 시는 넓은 평야 지대로 하천이나 바다로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다. 따라서 보울롱네르스코겐 공원 연못의 복원은 50년간 잃어버렸던 공원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해준 변화 사례로 높이 평가된다. 해당 지역 커뮤니티의 요청 사항을 충분히 수렴해 공원 공간이 구 성되었다는 점, 그리고 원래의 공원 기능이 현재도 유효해 복원이 중시되었다는 점에서 공원의 역사성과 현재의 요구가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커뮤니티가 설계에 참여하는 방식
시애틀 프리웨이 공원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프리웨이 공원(Freeway Park)은 약 5.2에이커(약 21,000㎡)의 면적으로, 1976년 조경가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과 앤절라 다나지에바(Angela Danadjieva)가 설계한 공원이다. 문화경관재단은 10여년 전 프리웨이 공원에서 분수 두 개와 옹벽 일부를 철거해 공원의 시각 및 공간 구성을 변경하려는 계획에 맞서 사업을 무산시킨 바 있다.
이후 시애틀 시는 공원 관련 비영리기관인 프리웨이공원협회(Freeway Park Association)와 협력하여 공원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프리웨이 공원을 조성한 지 45년이 지나면서 수목도 많이 자랐고 주변에 컨벤션센터와 새로운 빌딩들, 공공 공간, 진입로들이 조성되면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프로젝트는 역사적 요소의 보존뿐 아니라 노후화된 인프라 개선, 21세기 요구를 반영한 새로운 편의 시설 추가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45년 된 고가 도로 위에 위치한 공원인 만큼 인프라 유지·관리에 대해 먼저 고려했고 이후 여러 이해 관계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자 했다.
공원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설계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공공의 참여였다. 공원 주변의, 그리고 공원을 이용하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를 공원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본격적으로 설계에 들어가기 전 2017년 프리웨이공원협회는 조경가와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현장 워크숍을 진행했다. 공원의 가치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가치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세 차례의 회의와 디자인 부스(Seattle Design Fest Booth)설치 기회를 마련했다.
2019~2022년 동안의 기본계획과 설계 단계에서는 세 차례의 오픈 하우스, 패널 회의, 설문 조사 방식으로 대중의 참여 기회를 마련했다. 여러 의견을 모은 뒤 예산에 맞춰 우선순위를 정하는 단계가 되었을 때 다시 오픈 하우스와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우선순위는 대중, 자문위원회, 디자인위원회, 공원협회, 경찰국 등 이해 당사자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였는데, 이를 취합해 먼저 진행할 1차 사업을 추출하였다. 우선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야간 조명 설치와 안내 체계 개선이었고, 그 외도 조경, 관개, 배수 체계 개선, 상부 잔디 보강, 화장실 개조, 세네카 광장의 확장, 포장, 좌석 배치, 식재, 유지·관리 시설, 분수로의 접근성 향상 등이 있었다. 기본계획과 설계 과정에서 진행한 여러 회의 내용은 시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어 당시 발표 파일, 설문 조사 결과, 홍보 포스터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공원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시애틀 시의 노력 덕분에 2019년 말 프리웨이 공원은 ‘국가사적지’ 목록에 등재됐다.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공원 보존과 개선 방향을 함께 고민하면서 양쪽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모든 공원이 보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중요성이 높고 대상지에 적합한 설계안을 보여주며 여러 사람의 기억과 추억이 가득한 공원은 보존에 있어 많은 동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공원의 변화와 연속성, 즉 공원 보존과 활용에 대해서도 이전의 다른 문화유산의 사례에서 본 것처럼 많은 갈등과 논의가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공원의 역사와 중요성을 면밀히 파악하고, 지역 주민과 전문가가 서로의 의견과 계획을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 질 필요가 있다. 여러 해외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점이었다. 공원이라는 특성상 여러 이해 당사자의소통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화유산 관점에서 본다면, 건조물과 다르게 공원의 보존은 그 변화 과정을 해석하여 미래의 변화를 주도하는 특성이 있다. 공원의 복원은 물리적 형태 복원의 의미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의 회복이라는 의미로 더 크게 다가온다. 보존과 복원이 실제 삶에서 맞물려 해석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변화와 연속 사이의 어딘가를 계속 선택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일련의 공원 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우리 시대에 만들고 이용해온 공원들이 앞으로도 그 소중한 가치를 잃지 않고 미래 세대에 잘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1.공원 리모델링은 리노베이션(renovation), 리뉴얼(renewal), 개선(improvement) 등 다양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본고 에서는 공원별로 사용하는 용어를 기준으로 기술한다.
2.ICOMOS-IFLA Document on Historic Urban Public Parks, 2017
3.문화경관재단은 1998년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유산으로서 경관의 가치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재단은 2003년부터 랜드슬라이드(Landslid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공원, 정원, 경관 등 여러 요인으로 위협을 받는 대상에 주목함으로써 해당 유산 보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프로그램이다. 위협을 가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로 공원 리노베이션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 자료
• The Nordic Association of Architectural Research, Built Environment and Architecture as a Resource Proceeding Series 2020-1 , 2020, pp.153~180.
• www.icomos.org
• www.landezine-award.com/boulognerskogenrestoration-of-an-historic-park
• www.archpaper.com/2017/05/wagner-parkremodel/
• www.freewayparkassociation.org/improvementproject/
• www.seattle.gov/parks/about-us/projects/freewaypark-improvements
• www.tclf.org/
길지혜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성부연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근대기 서울 주택정원 연구’를 수행했으며, 도시공원 기록물 아카이빙에 관심을 두고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문화유산 보존, 세계유산도시의 거주적합성 향상, 문화재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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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공원을 공원답게
프리웨이 공원 고쳐 쓰기
모든 공간은 낡는다. 공원도 마찬가지다. 최초로 고속도로 상부를 덮어 만든 공원1이자 고속도로가 남긴 도시의 상흔을 치유한 공간2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국 시애틀의 프리웨이 공원도 공간의 의미가 퇴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3 많은 이의 노력으로 공원을 조성한 지 47년이 지난 지금, 공원을 공원답게 만들기 위해 다시 많은 이가 모였다. 그간의 경과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2019년 프리웨이 공원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같은 해 프리웨이 공원을 개선하는 사업의 디자이너가 선정됐다. 곧 개선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고 세부 설계가 진행 중이다. 내년 착공 예정인 새 프리웨이 공원은 2024년 완공될 예정이다. 혁신의 공간에서 어두운 공간으로 변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이 공원을 왜 고쳐야 하는지 이야기하려면 공원의 시작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리웨이 공원의 시작은 고속도로였다. 1956년 연방고속도로법(Federal Highway Act)이 제정되면서 고속도로가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도시를 빠르게 잠식한 이 거대한 회색 기반 시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즉 고속도로를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생산했다. 당시 로렌스 핼프린(Lawrence Halprin)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해 ‘운동의 시대’로 명명하며 거대하고 복잡한 고속도로가 도시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부주의한 개발에 굴복하는 대신 도로를 도시 경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고속도로가 주는 고유한 특성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4 시애틀의 주간 고속도로인 I-5의 존재에 대해서 시애틀 건축가 폴 티리(Paul Thiry)는 고속도로의 건설부터 반대했다. 폴 티리의 반대는 사회적으로 큰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 고속도로가 건설된 이후, 고속도로가 지역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부를 덮자는 의견은 프리웨이 공원이 조성되는 데 일부 기여했다.5 이후 변호사 제임스 엘리스(James R. Ellis)는 포워드 트러스트(The Forward Trust)를 설립하고 시애틀의 도시 환경 개선을 위한 목록을 만들면서 I-5가 지나는 지역 일부에 작은 광장인 세네카 광장(Seneca Plaza)을 조성하게 된다. 엘리스는 세네카 광장을 보며 이 공간을 고속도로를 가로 지르는 공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장이었던 플로이드 밀러(Floyd Miller)는 엘리스의 제안에 즉각 지원을 약속했고 시 의회는 고속도로 상부를 공원으로 만드는 개념을 승인했다. 주 고속도로를 담당했던 조지 앤드루스(George Andrews)는 이 개념을 구체화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공원 조성을 위한 자금 299만 달러를 확보했는데, 그중 90%는 연방 정부가 나머지 10%는 주 정부가 부담했다. 계박람회의 시애틀관 조성에 참여했기 때문에 1970년 8월 핼프린의 회사는 공원 디자인을 위한 후보군에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시는 핼프린의 회사와 계약했고, 핼프린은 수석 디자이너로 앤절라 다나지에바(Angela Danadjieva)를 임명했다. 1970년 10월 13일 과업 지시서에는 1단계로 대기 오염, 소음, 풍향, 날씨, 그림자에 대한 환경 연구가 포함됐다. 또한 식재 패턴과 식재 수종에 대한 사항들과 현장의 전망에 대한 분석, 지형, 접근성, 차량 이동 및 보행 패턴에 대한 평가도 넣었다. 마지막으로 주변 지역의 이용자 행태에 대한 설문 조사가 진행됐다.6
콘크리트 공원의 변신
이 공원의 주된 요소는 콘크리트다. 총 12,000큐빅야드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정돈된 목재 질감으로 공원의 전체 뼈대를 만든다. 콘크리트를 주된 재료로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앤절라 다나지에바는 시애틀의 도시 경관이 만드는 질감은 콘크리트이며 고속도로 자체도 도시를 따라 흐르는 콘크리트와 같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원 전체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경로를따라 구성됐다. 다나지에바는 공원의 디자인에 대해 전체 공원의 요소는 기하학적 구조물과 부드럽고 무성한 식물 재료 간의 대조에 있다고 봤다. 식재는 공간의 가장자리를 채우며 공원의 위요감을 만들고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도시의 피난처로서 공원의 역할을 강화했다.
공원이 처음 소개된 뒤, 많은 이의 이목이 프리웨이 공원에 몰렸다. 고속도로를 덮고 만든 공원, 콘크리트 구조물이 만드는 연속된 공간은 프리웨이 공원을 혁신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공원은 빠른 속도로 변화를 겪었다. 어린이와 부모로 가득했던 분수는 가동을 멈췄고7, 공간의 위요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목이 성장하면서 공원 내 시야를 차단하고 수목의 그림자는 공간을 더욱 어둡게 했다. 거리의 노숙자들이 가장 먼저 이 변화를 알아차렸다. 프리웨이 공원은 곧 약을 거래하고 약에 취하는 공간이자 노숙자의 휴식처로 자리 잡았다. 시민들의 발길이 끊긴 것도 이즈음이었다.
프리웨이 공원이 가진 장소의 의미를 처음 논의한 문서는 PPS의 2005년 보고서다.8 이 보고서는 프리웨이 공원의 핵심 요소인 폭포와 분수 시설의 노후화, 수목의 성장으로 인한 공원 전체의 어두운 환경과 시야 확보의 어려움, 좁고 복잡한 출입구로 인한 접근성 미비 등을 공원이 가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공원을 다시 공원답게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는 공원의 유지·관리를 위한 예산의 확보, 기존 디자인 요소를 고려한 공원 개선, 공원 내 활동성 개선, 접근성 개선, 지역과 관계 개선 등을 제안했다.9 2017년 문화경관재단(The Cultural Landscape Foundation)은 프리웨이 공원을 위협받는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랜드슬라이드(Landslide) 목록에 포함시켰고, 같은 해 워싱턴 주 컨벤션 센터는 공공 기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프리웨이 공원 개선 사업에 총 1,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10 2019년 프리웨이 공원은 미국 문화유산에 등재됐고, 같은 해 프리웨이 공원의 개선을 위한 계획이 시작됐다.
프리웨이 공원 개선 사업을 이끄는 워커 메이시(Walker Macy)는 조명과 표지판 교체, 공원 내 시설 개선, 수목의 캐노피 관리, 출입구 및 접근성 개선을 중심으로 전체 공간을 개선하고, 분수 등 관개 시스템 보완, 화장실 및 카페 설치 등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있다.11 조명은 조명의 역할에 따라 높은 곳에서 비추는 간접 조명, 보행자를 위한 조명, 수목을 위한 포인트 조명으로 레이어를 구분하고 각각의 전략을 제시했다.
공원의 시설과 관련해 가장 중점적인 부분은 의자다. 새 의자는 공원 내 콘크리트와 목재로 만든 기존 의자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사용하고 약간의 변주를 더해 공간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도록 디자인됐다.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바로 수목이다. 총 536주의 수목 중 106주를 과감하게 제거해 기존의 공원 내 조망점을 되살리고 시야를 확보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공원을 좀 더 쉽게 찾기 위해 출입구를 넓히고 개방감을확보했다. 간단하고 분명하다. 워커 메이시는 계속해서 지적되어 온 문제점이자 사용자가 경험하는 불편을 최소한의 개입으로 개선하면서 프리웨이 공원 고유의 디자인 요소는 그대로 남겼다.
공원을 공원답게 고쳐 쓰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프리웨이 공원은 미국의 200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개장한 공원이자 최초로 고속도로 상부를 덮은 공원으로, 공간이 갖는 의미가 분명한 곳이다. 시간의 흐름은 프리웨이 공원의 의미를 변하게 했지만, 프리웨이 공원 개선 사업은 프리웨이 공원을 다시 공원으로 복권하고자 한다. 프리웨이 공원은 고속도로의 등장과 이로 인한 도시 공간의 변화에 콘크리트 공원으로 답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공원을 고쳐 쓰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를 바라볼 때다. 우리가 고치는 공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각주
1. 시애틀의 프리웨이 공원은 세계 최초로 고속도로 상부를 덮어 만든 덮개공원(lid park)이다.
2. 프리웨이 공원을 조성할 때 도심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상처로 보고 이를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상처의 치유(heal the scar)’를 공간의 조성 이념으로 봤다. 일반적으로 고속도로 주변 지역은 소음 공해, 단절, 대기오염 등의 피해를 받기 때문에 고속도로 공원화 사업을 피해의 보상으로 보기도 한다.
3. 프리웨이 공원은 시애틀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5번 주간 고속도로(Interstate 5, 이하 I-5) 상부에 조성된 공원이다. 1966년 개통한 I-5는 분산된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지만 시애틀 도심을 동서로 단절시켰다. I-5의 6번가와 7번가 상부에 조성된 프리웨이 공원은 미국 2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1976년 7월 개장했다. 프리웨이 공원은 혁신의 공간에서 어둠의 공간으로 빠르게 퇴색했다.
4. Lawrence Halprin, Freeways , New York: Reinhold, 1966, pp.5~12.
5. Alison B. Hirsch, “The Fate of Lawrence Halprin's Public Scape: Three Case Studies”, Thesis of Master of Science in Historic Preservation , University of Pennsylvania, 2005.
6. 앞의 논문.
7. 공원 내 분수에 물을 공급하는 3개의 펌프가 있었지만(한 번에 2개 사용, 세 번째 순환), 지금은 2개의 펌프만 남아 있으며 한 번에 하나의 펌프만 물을 공급한다. 펌프 하나의 용량은 원래 설계의 분당 28,000갤런에서 시간이 흘러 분당 9,500갤런에 가까운 상대적 세류로 감소했다. 그러나 안전 기준이 강화되고 공원 유지·관리 예산이 감소하면서 현재는 작동을 멈췄다. www.tclf.org/landscapes/freeway-park
8. PPS(Project for Public Space)는 1975년 설립된 미국 비영리기관으로, 살기 좋은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9. Project for Public Space, “A New Vision for Freeway Park”, 2005.
10. www.fhwa.dot.gov/ipd/projec t _ prof iles/wa _freeway_park_improvements_project.aspx
11.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 및 시애틀 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 총 220명이 응답한 1차 온라인 설문 조사와 530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를 통해 마스터플랜과 세부 디자인 전략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Walker Macy, Freeway Park Design Improvement
Presentation, 2021.
심지수는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경을 공부했고, 버지니아 공과대학 건축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에서 조경과 도시설계, 경관 계획을 가로지르는연구를 하고 있다. 『경관이 만드는 도시』(한숲, 2018)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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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공원의 리노베이션
목동 중심축 5대 공원의 사례
원고 청탁서에 고쳐 쓰기, 수선, 리모델링이란 단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리모델링보다 리노베이션이라는 단어가 끌린다. 변화에 대응하는 공원의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상상하기에 더 적합해 보인다. 같은 범주로 행정에서 쓰는 용어는 ‘정비’와 ‘재조성’이다. 둘 다 기존 공원을 상정한다. 공원 재조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는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1990)이다. ‘어린이대공원 환경공원 계획’(1996)이나 ‘보라매공원 재정비 사업’(2002)도 있지만, 인상적 사례가 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정비 대상으로 거론된다. 여건이 상이하지만 낡은 놀이공원이었던 드림랜드가 북서울꿈의숲으로 변신(2009)한 것이 제법 선명한 사례에 속할 수도.
공원은 오래될수록 좋다. 처음 심은 작은 나무가 자라 거목이 되고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루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나무는 크지만 시설은 쇠한다. 주기적으로 포장을 교체하고, 벤치도 수리를 거듭하다 바꾸고, 설비도 개조한다. 하지만 공원의 변신이 필요한 이유는 ‘시설’이 낙후해서가 아니라 ‘이용’이 낡아서다. 고착된 시설로 인해 몸과 생각이 고정되어 새로운 이용을 상상하기 어려워 이용도 낡아간다. 목동 중심축 5대 공원이 준공된 지 35년이 지났다. 도시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소득 수준, 주민 구성, 건축물과 상업 시설 증가, 지역의 기능 변화 등 공원 주변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도시가 달라진 만큼 도시가 공원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의 시작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을 촉발한 계기는 ‘양천공원 베이비존’(2017)과 ‘통합놀이터 조성 사업’(2018)이었다. 나무는 훌쩍 컸지만 시설과 이용이 뜸했던 양천 공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녹지대에 400m2 잔디밭과 영유아 시설을 설치한 베이비존을 조성했다. 베이비존은 예산 1억 원에 준공까지 40일을 들인 작은 변화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가서도 잠시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소개되어 ‘아빠 공원’이란 닉네임이 붙었다. 베이비존에 탄력 받아 곧바로 기획한 통합놀이터 조성 사업은 노후한 놀이터를 연접한 야외무대까지 확대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자연형 놀이터로 재조성하는 것이었다.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2018년 5월 개장해 주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각종 수상과 보도도 이어졌다.
이러한 공원의 작은 변화가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인식이 2018년 6월에 진행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의 공약으로 구체화되고, 같은 해 11월 5개 공원에 대한 기본계획이 총 83억 원의 예산으로 수립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온수진은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원예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1999년 서울시청에 임용되어 푸른도시국에서 월드컵공원, 선유도, 남산, 관악산, 노들섬, 서울로 7017 등에 참여하면서 도시의 모든 문제에 공원과 녹지를 대입하는 공원주의자가 되었다. 2020년에 『2050년 공원을 상상하다』(한숲)를 출판했고, 현재 양천구청에서 공원녹지과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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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고쳐 쓰기] 일상적 기억의 장소
양천공원 산책기
좋은 공원의 조건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공원의 이미지는 녹색 나무가 우거진 도심 속의 휴식처,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를 즐기는 공공 공간일 것이다. 구글에 공원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지난 4월의 날씨 좋은 어느 토요일, 산책기를 쓰기 위해 찾은 양천공원의 첫인상이 그러했다. 공원 한가운데 광장과 놀이터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뛰어놀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와 평상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휴식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놀이터 옆에 위치한 공공 도서관은 쾌적했고, 곳곳에 앉아 책을 즐기는 아이와 어른들로 조용하게 북적였다. 여느 조경설계 패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아한 건 양천공원이 리모델링을 통해 최근 재개장한 공원이라는 점이었다. 리모델링한 공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막연히 공원의 정경을 상상했을 때, 노후 건축물의 리모델링 사례처럼 낡은 외관이나 재료를 살리는 작업을 통해 남은 오래된 흔적을 공원 어딘가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공원을 돌아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오래된 공원의 리모델링은 오래된 건축물의 리모델링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었다.
오래된 공원에 가면 키가 크고 수관 폭이 넓어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나무는 공원의 연식과 함께 나이를 먹는데, 이 살아있는 식물은 자라고 울창해지면서 공원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양천공원 산책은 공원과 함께 성장한 나무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근린공원 외곽은 야트막한 둔덕을 쌓고 그 위에 심은 수목에 둘러싸여 있어, 어느 곳으로 진입하든 나무와 나무 그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낮은 언덕 위 숲 사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공원 중심부로 다시 내려갈 수 있는 언덕을 만나게 된다. 언덕 위 나무 그늘에 평상과 벤치,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날씨 좋은 4월의 봄날이어서인지 자리마다 어김없이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공원 중앙의 광장에는 원형의 잔디가 깔려 있는데 자전거 타는 아이들, 캐치볼하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양천공원에 아이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잔디광장 바로 옆쪽에 ‘쿵쾅쿵쾅 꿈마루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아치형 구조물 아래에는 미끄럼틀, 정글짐 등 놀이 시설이 결합된 배 모양 구조물이 있고 그 주변을 모래 놀이터가 다시 둘러싸고 있다. 지하에는 아이들의 아지트를 의미하는 ‘키지트’라는 이름의 실내 놀이터가 운영된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요즈음,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주말에 밖에 나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 많은 부모가 모래 놀이터 바깥 퍼걸러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편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꿈마루 놀이터가 개장한 것은 2018년으로, 양천구 목동 중심축 5대 공원 리모델링 사업 이전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기존에 있던 노후 야외무대와 놀이터를 연계해서 설계한 도시재생형 통합놀이터로, 성별이나 연령, 국적,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설계됐다고 한다.
*환경과조경410호(2022년 6월호)수록본 일부
손은신은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했고, 현재 건축공간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도시의 물리적 경관에 표현된 추상적 기억을 담은 ‘기억 경관’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소의 기억이 남겨진 도시 경관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