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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기슭의 옛 정취 물씬 _ 남산골 한옥마을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4월 18일 개관, 모습을 드러낸 남산골 한옥마을은 남산의 북쪽기슭인 필동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남산자락의 명소. 청학(靑鶴)이 사는 선향(仙鄕)이라 하여 청학동이라고 불렀던 이 곳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만큼 경관이 빼어나 한양에서도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서울시는 이 곳에 옛 정취를 되살리고자 물을 흐르게 한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등 한국고유의 수종을 심어 2만여평의 전통정원을 조성했다. 옛 수방사터를 매입해 조성한 이 남산골 전통정원은 그간 훼손되었던 지형을 거의 원형대로 복원, 남산의 자연식생인 전통수종으로 식재했는데 특히 정원 서측으로는 자연스런 계곡의 연출과 함께 주변에 고풍스런 정자를 지어 선인들이 유유자적했던 남산기슭의 옛 정취를 느끼도록 했다. 정원의 북동측 2천4백여평 대지위에는 시내에 산재해 있던 민속자료 즉, 박영효 가옥, 김춘영 가옥 등 서울의 8대가(八大家)로 불리던 사대부집에서부터 일반서민의 집에 이르는 전통한옥 다섯채를 이전 복원하여 선인들의 삶을 재조명해주고 있다. ※ 키워드 : 한옥마을, 근작, 한옥, 고택 ※ 페이지 : 36-37
  •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재조명 _ 조류상과 서식지 관리방안
    최근 한강은 하천의 직강화 및 하안의 콘크리트블럭으로 인해 물새류의 월동에 유리한 은신처(shelter)와 먹이자원으로 작용한 하변식생이 본류의 하천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부 지천과 상류, 하류에 하변 식생이 잔존하고 있어 월동하는 물새류가 거의 대부분 한강 상류나 하류에 집중 분포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의도샛강은 밤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역으로 하변 식생이 잘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이 곳은 한강의 배후 습지로서 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일뿐 아니라 수면성오리류의 중요한 월동지로 작용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 지역으로 판단된다. 물새류의 이동경로 측면에서 살펴볼 때 샛강 지역은 한강 하구와 가까이 위치하므로 섭금류를 비롯한 기러기류, 백로류를 유치할 수 있는 지역으로 생각되므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 키워드: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계획, 조류상, 서식지, 서식지관리 ※ 페이지 : 108-110
  • 기술문명주의에서 생태문명주의로 패러다임 전환해야 _ 특별인터뷰 : 최재욱 환경부 장관
    본지는 7월 1일 창간 16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환경보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경제와 환경을 함께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입안을 추진하고 있는 최재욱(崔在旭) 환경부장관을 만나보았다. 본지는 조경분야는 궁극적으로 환경분야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함께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대명제를 전제로 최근 관심사안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았다. 인터뷰는 6월 15일 오후 4시 과천 정부종합청사 환경부장관실에서 있었다. 환경부에서는 그린네트워크 관련기술 즉 생물서식공간 조성기술 개발사업, 자연형 하천공법 개발과 같은 연구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옥상녹화, 생태연못 등 분야별로 생태계 복원을 위한 지침서를 발간하여 지방자치단체에 시달하고 있으며, 지자체 추진사업 중 시범적으로 지원할만한 사업은 지방재정자립도를 고려하여 50%내에서 국고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 키워드 : 환경부, 생태주의, 생태문명, 환경철학, 환경문제 ※ 페이지 : 128-131
  •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재조명 _ 식물상의 식생학적 고찰
    자연생태계에서 식물은 홀로 존재하는 법이 없다. 서로 다른 식물종의 개체들이 함께 모여살거나 또는 같은 종의 개체라 할지라도 어린 개체와 성숙한 또는 노쇠한 개체들이 일정 공간에서 공존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식물사회가 기반하는 다양한 물리적 환경의 영향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놀랍게도 식물사회의 구조가 이질적이고 복잡할수록 물질의 생산성이 높고, 역동적으로 변화되며, 급격한 외부환경의 영향에 대한 안정성도 높아져 궁극적으로는 부양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도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식물상(Flora)이라 함은 일정한 공간적 장소에 분포하는 식물의 전체적인 종명세(Species List)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일정한 지역의 식물분포를 알고자 할 때 조사된 식물상 자료를 통해 어떠한 식물종이 존재하는가를 한눈에 알수 있을뿐 아니라 인접한 지역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쉽게 비교할 수도 있다. 또한 이러한 식물상 자료를 통하여 자원적 가치가 있는 종은 무엇이고, 멸종위기 등 보존가치가 있는 종이 존재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학술적으로는 표본의 채집을 통하여 유사한 식물종 그룹의 분류학적 위치를 구명하고, 종속지나 식물도감을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 키워드 :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계획, 식물, 식생학 ※ 페이지 : 96-101
  • 남겨져야 할 안동(安東), 국제화로 탈바꿈한 구미(龜尾)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남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상류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통이 발달할 수 없었고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치 못하자 자연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또한 낙동강 7백리의 수자원을 보호하느라 공업화를 이루지 못한 농업 위주의 산업기반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곤란을 겪게 되었으며 전통 유교문화에 가치관을 둔 이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 마저 흔들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족사를 주도하며 국난극복에 앞장서온 충절의 고장이고,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의 보유고는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보다도 높다. 아울러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중심도시로서 일반적 정서는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예와 의를 중시하고 있다. 이렇게 명산들의 산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백두대간을 밟다지치면 내려와 쉬는 곳이 이곳이고 경치가 좋은 물가에 볼거리가 남아있으니 전통 문화를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이곳 안동지방을 찾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안동의 문화적 토대와 전통속에 민속문화의 전형으로 소문이 난 하회마을이 있다. 절묘한 지리적 형상과 아름다움마저 간직하고 있어 여행길에 가장 먼저 거치거나 마지막에라도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굳어지게 되어버렸다. ※ 키워드: 안동, 구미, 공원탐방, 경상북도 ※ 페이지 : 72-75
  • 가야 할 길과 가보지 못한 길
    지난 호에서 나는 우리 조경분야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시기의 단편들 중 극히 일부분과 내가 그 길을 찾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별로 내세울 이야기도 아닐 진데 말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조경이란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 인용한 시처럼 한 시인이 문득 아름다운 두 갈래 길에서 그 어느 길을 택할까 망설이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리로 갈까 저 길을 택할까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을 것이다. 평범하고 쉬운, 그러면서도 가슴을 절절히 울리는 이 한편의 [가보지 못한 길]처럼 여전히 가보고 싶은 길이 있다. 그렇지만 또 프로스트가 눈 내리는 숲에서 그 숲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을 노래했듯이(註; 로버트프로스트, [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 나의 길을 확신에 차서 걸어야 했고, 걸어야만 한다. 나는 원래 시를 쓰고 싶었다. 순수 예술에 몸담기를 갈망했었고 아버님의 지기(知己)이신 고 박목월 선생께서도 내가 그 길에 전념할 수 있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런데 내가 엉뚱한 농과대학으로의 진학을 택했을 때, 모든 사람의 반대속에서 오히려 목월 선생께서 아버님을 설득하여 승낙을 받아주셨다. 그리고 잡지사 기자가 되고자 했을때는 또 가장 심하게 반대하셨다. 순진한 대구, 수원 촌놈이 갑자기 변하면 그 때까지 일관되게 쓰던 글들이 이상해진다(?)고 하시면서 때묻지 않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나는 선생께 흔히 말하는 그런 기자는 되지 않겠다, 순수함을 잃지 않겠다를 몇 번이고 약속드려야 했다. 그러나 대학에 갈 때부터 이미 글쓰기 보다는 조경분야에 마음이 있었고, 그렇다고 커리큘럼도 없는 곳에서 대학 4년을 보내는 동안 나의 방황과 갈등은 그야말로 끝이 없는 듯 했다. ※ 키워드 : 조경가, 조경설계, 서안, 설계작품, 설계철학 ※ 페이지 : 30-35
  • 환경친화형 초고강도 점토바닥벽돌 개발 _ 무공해 천연점토로 만든 바닥벽돌
    최근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이때 환경친화적인 보도용 초고강도 점토바닥벽돌의 개발은 수입 대체효과는 물론 수출활로 개척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IMF위기로 고통받는 우리 경제에 작은 희망이 되고 있다. 점토바닥벽돌은 무공해 천연점토와 고령토, 백토, 장석 등을 혼합하여 성형하고 건조를 한 후 1200~1300℃의 터널식 로(TUNNEL TYPE KILN)에서 소성했기 때문에 제품의 강도가 높고 흡수율이 낮아 품질이 우수하다. (주)공간세라믹이 개발, 시판중인 점토바닥벽돌은 심포니(감홍색), 왈츠(베이지), 코러스(그레이) 등의 아이템으로 다양한 색상과 우수한 질감을 나타내고 있어 수입제품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적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도시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환경도 이용자 중심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일례로 시멘트블럭이 도시를 뒤덮고 있는 회색빛 도시거리를 환경친화적인 점토바닥벽돌로 교체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인 서구유럽에서는 보도와 공원광장 등이 점토바닥벽돌(Clay Pavers)로 시공, 도시의 보행공간과 휴식공간을 생동감있는 쾌적한 문화의 거리로 조성함으로써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 키워드: 점토벽돌, 점토블럭 ※ 페이지 : 56-57
  • 뜰을 가꾸며
    허리를 졸라매고 열심히 노력하여 조그만 앞뜰이 있는 집을 장만하게 되었고, 그 후 여러 번 후원을 만들기 위하여 조금씩 조금씩 터를 사서 지금은 분에 넘치게 2백여평이 넘는 터를 지니게 되었다. 도시의 골목을 지나다가 집이 훌륭한 것은 부럽지 않았는데 정원이 잘 가꾸어진 집은 참으로 멋이 있어 보였다. 염체불구하고 담 너머로 멍하니 서서 보거나 대문앞을 얼씬거리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으니 누가 보았더라면 영락없이 낮털이 도둑으로 의심받을 만도 하였다. 앞뒤 뜰에 잔디도 심고 맷돌을 구하여 징검다리 길도 내었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길을 내는데 유년시절 고향 숲길처럼 곡선이 있는 에스자 형식을 취하였다. 대청댐을 막을 때 남한강에서 채취한 한 트럭 분의 정원석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였고 연자방아·문관석·동자석·석등·물확도 구해서 구색을 갖추었다. 통일신라 시대의 5층석탑이며 쌍사자 석등까지 진열하기에 이르렀다. 정원문화는 일본이 세계에서 으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주 작은 공간에 자연을 아기자기하게 잘 배치하고 꾸미는데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정원문화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서 전파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양은 인간중심에서 자연이 객관적 입장을 보여주지만 동양은 자연중심적 성격에서 인간이 주관적 입장을 보여준다. 서양은 자연이 정복의 대상이지만 동양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는 일체감을 보여준다. 서구인들이 자연을 분석, 해부하려 하였고 동양인들은 자연과 인간이 혼연일체가 되어 자신의 내부에서 창조된 새로운 자연, 즉 초자연의 세계, 절대정신의 세계에 도달하려고 했다. ※ 키워드: 경관, 정원, 뜰, 정원문화 ※ 페이지 : 76-77
  • 백제 문화유적 형태
    개방화, 세계화 조류를 타고 과거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분열 대립했던 냉전시대도 종식되어지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20세기 말, 세계사와 우리 나라 역사의 재해석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미력하나마 지금까지 세계사 속에서 빠진 고리(missing link)라고 보았던 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와 히브리 역사에 대해 이미 발표한 바 있지만, 본고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간과되었거나, 빠진 고리라고 본 백제인들의 사적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백제 기원 항주대학 한국학연구소가 1995년 간행한「한반도와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관계 비교」에서 원리(苑利)선생은“한민족(韓民族)은 구이(九夷) 중 백이족(白夷族)이고 그 일족은 중국 동남 연해안인 강소, 절강, 안휘 일대에 살던 예맥(濊貊)이 3천여년 전에 옮겨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 남쪽 5개성을 중심으로 2백 70만명이 살고 있다한다. BC221~206년 전후 중국대륙에서 진(秦)나라가 망하면서 그 유민들인 남맥(南貊)들이 한반도에 건너가 마한의 보호 아래 신라 등 삼국을 열었다. 남맥은 뒷날 오월족(吳越族)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일파가 운귀(雲貴) 고원으로 옮겨가 백족(白族)이 되었다. 이 민족은 중국에서 백월민(白越民) 또는 월족(越族)이라 부르는 민족이다. 한반도에서 수도작이 시작된 것은 3천5백여년 전으로 중국 중남부 예맥의 이동 시기와 거의 같으며 지석묘 반월형 돌낫, 돌도끼 등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논’도 백월 문화권에서 나라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발효음식, 보신탕 풍습, 순대풍습, 사랑방 풍습, 다락방 풍습, 쓰개 풍습, 문신, 성석 신앙, 알바위 신앙, 웅장 풍습 등이 모두 백월 문화의 영향이다. ※ 키워드: 역사, 백제문화, 조경사, 백제유적 ※ 페이지 : 48-53
  •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의 재조명 _ 이용행태 및 관리운영 방안
    1997년 9월 25일은 우리나라 공원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여의도샛강에 국내 최초로 생태공원(Ecological Park) 이란 이름표를 단 공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공원법상의 공원은 아니지만 그동안 방치되어오던 하천부지에 동·식물상을 보존하고 최소한의 관찰시설을 설치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자연학습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5만5천여평에 친환경적인 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부지의 특이성으로 인해 공사전부터 생태공원 조성에 대한 찬·반론이 대두되어 의견이 분분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우리나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어렵게 탄생된 이후 9개월이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그동안 생태공원을 현장에서 관리하면서 관찰된 이용자의 행태를 알아보고 향후 바람직한 관리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여의도샛강 생태공원은 부지의 특성이 이용자의 행태를 크게 좌우하고 있다. 생태공원으로서의 성공 여부는 2∼3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국내 최초로 생태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시도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선보인 생태공원인지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견학을 오고 있고 전국 각지에 생태공원 조성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키워드 :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샛강, 생태공원계획, 이용행태, 관리운영 ※ 페이지 : 11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