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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디자인 오피스] 얼라이브어스 얼라이브어스, 어셈블!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지향 얼라이브어스(ALIVEUS)라는 사무실명은 구성원 그 누구의 이름도 지칭하지 않는다. 회사라는 것이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닐 것, 같은 이름 아래의 디자인 작업이 다음 세대까지 연속될 것, 내부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바라는 의도다. 설계 지향점과 취향을 공유한 집단으로서의 의미가 지속되길 바라며, 동시에 개개인의 삶을 마모시키지 않으면서 성취감과 만족도, 성장력을 높이려 한다. 완성도 있는 옴니버스가 탄탄한 개별 플롯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처럼, 결국 좋은 집단은 좋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성원 몇몇이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으로 글을 채워보려 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공간 강한솔(이하 강)서플러스글로벌 용인클러스터는 사옥과 공장이 결합된 단지다. 직선적 조형을 통해 단지의 입체적 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클라이언트의 지지를 등에 업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요소를 적극 시도했다. 플랜터와 다단형 구조물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면 시공사와의 관계에서는 난점을 경험했다. 공간 배치와 자재 선정, 지정 소재의 반입 여부 등 여러 지점에서 감리권이 부재한 상황이 어려움을 만들었다. 많은 조경가가 디자인 빌드를 지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나 보다. 알투마마 스타디움(Al Thumama Stadium)이 드디어 완공됐다. 3년여의 시간, 다양한 주체 사이에서의 균형 유지 등 난이도가 상당했던 프로젝트지만 월드컵이라는 전 세계적 이벤트에 설계가로 참여한 묘한 감정이 배어 있다. 의미 있는 여행 목적지가 하나 추가됐다. 권예린(이하 권) 카페 겸 레스토랑 모쿠슈라(MOCHUISLE) 2호점 시공을 준비하는 중이다. 파주에 위치한 4층 규모의 대형 카페로, 외부 공간을 설계하면서 공간 경험의 시퀀스와 건축의 조화를 오래 고민했다. 주로 차량으로 방문하는 위치임을 고려해 도로와 맞닿은 전면부는 화려한 식재가 반기도록 구성했고, 테라스와 실내에서는 식재 영역이 배경이 되어 아늑하고 풍성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다. 실제 공간으로 잘 구현되도록 세세한 부분들을 다듬어가는 중이고, 건축 및 인테리어와 소통하며 더 많은 고민을 녹여내고 있다. 머릿속의 설계가 실재하는 공간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순간 느끼고, 완성될 공간에 대한 더 큰 책임감과 기대를 갖게 된다. 김연정(이하 연) 입사한 지 반년 남짓 시간을 보낸 신입이 바라본 얼라이브어스가 만들어 온, 만들어 갈 공간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각 공간이 가진 이슈에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할까, 클라이언트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까, 어떤 시점에서 바라볼까 등 수없이 고민하고 질문한다. 결정된 디자인에 공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의 답들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뿌듯함을 느낀다. 김태경(이하 태) 제주 롯데호텔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기회만 주어진다면 꼭 해보리라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많은 디자인을 풀어낸 뜻깊은 프로젝트였다. 제주도 곶자왈에서 느껴지는 야생성, 깊이, 밀도, 색채, 경험의 흐름 등 추상적 공간감을 재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다량의 곡간형 대교목 나뭇가지들이 겹쳐져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 내고, 관목과 지피의 수종 변화로 점점 깊어지는 숲을 표현했으며, 공간을 거닐다 보면 작은 정자들을 만나도록 구성했다. 부산 롯데호텔 수영장은 조경가로서 매우 도전적인 콘셉트로 출발했다. 호텔의 야외 수영장을 산책하는 정원 공간으로 해석했다. 수영장 자체는 물 속 산책로가 되었고, 수영장 주변 공간은 정원 산책로로 연출했다. 생소하고 시도해보지 않은 콘셉트의 수영장이었지만, 발주처와 운영사, 시공사 모두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두 프로젝트 모두 올해 완공과 개장을 앞두고 있어 기대감과 두려움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중이다. 이향지(이하 향)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에 N기업의 신사옥 설계를 진행 중이다. 사옥 디자인은 기업이 지향하는 철학과 가치를 드러내는 매개체이며, 기업과 지역 사회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기업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현재 진행형의 변모를 드러내야 하고 기업의 미래를 나타내는 요소로 무장해야 한다. 애플, 구글, 아마존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스타 디자이너들을 앞세워 그 지역의 랜드마크 건축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이번 프로젝트도 판교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기대하며 국내외 대형 설계 사무소들과 함께 협업하는 중이다. 실험적이나 기능적이고, 아름답지만 친환경적이며, 추상적이면서도 견고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 있다. 장기간 긴 호흡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끝낼 시점에는 수없이 던진 심도 있는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진 조경가가 되어있길.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강 내가 가진 모든 관계 중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즐겁다. 얼라이브어스가 내게 주는 매우 큰 행운이다. 업무 관계에서의 전문성은 당연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호감과 신뢰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그어놓은 암묵적인 선을 민감하게 파악해야 하며, 놓인 그 선의 위치가 인원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인원수가 늘어감에 따라 전원이 만족하는 상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조심한다. 모든 것이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모든 개인이 중요하다. 현재를 대처하고 미리 걱정은 말자. 권 파티션 없는 공간에서 매일 책상을 넘어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실없는 농담으로 그칠 때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가벼움이 디자인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이자 설계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디자인 미팅에 모두가 참여하고 편안하게 짧은 아이디어와 단편적인 생각을 던지는 과정에서 설계의 중요한 지점을 찾아 나간다. 혼자 고심하는 것만이 집요한 디자인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옆 사람이 툭툭 내뱉는 한마디로 다른 차원의 고민을 하게 되고 가려진 것들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방식을 믿게 되었다. 독립적이고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얼라이브어스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일과 생활 전반에 걸친 ‘어스(us)’의 힘을 배워가고 있다. 연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변 공간부터 잘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인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환경에 가치를 잘 부여하는 일들을 포함한다. 서울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우리가 생활하는 이 공간은 좋은 시너지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곳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나비효과를 일으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한다. 태 재미가 없었으면 디자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재미가 없었으면 창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재미가 없었으면 지금의 사람들과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회사 생활에 재미가 없어진다면 언제든 조경 디자인 분야를 떠나 제2의 꿈을 찾아 떠날 생각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동네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보다도, 그 어떠한 취미 활동보다도 디자인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다. 회사 사람들과 농담하고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기 회사에 있다. 나의 재미를 위해 고단한 사회생활을 해주는 모든 이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난 너무 재미있는 걸. 아, 이 막연한 글 다 썼으니 이제 놀아보자. 향 좋아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하고 싶다는 것, 그 바람은 그저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허상일까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소년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가 “너, 내 동료가 돼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그 이상이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살아있다(alive)’고 느낀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면서도, 균형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공동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배운다. 이는 구성원 모두가 소통과 관계를 우선시하고 성취와 상실, 성공과 실패, 이기주의와 희생, 질투와 존중, 다름과 인정과 같은 끊임없는 경험의 축적 속에서, 거듭되는 좌절이 있겠지만 겸손함과 우정을 쌓으며 우리가 함께하는 이 공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그룹의 이름처럼. 건강한 ‘그룹’으로의 지향 글을 쓰는 것은 소중한 기회다.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일상에 무뎌져 흘려보내는 생각과 감정을 잡아두고 살펴볼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글은 개별 인원들의 사고들로 엮은 그룹으로서의 판단을 공유할 수 있었기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 모두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과정에서 나눴던 대화들 역시 같은 비중으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결국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글을 통해 조금은 더 명료하게 보게 된 각 입장 사이의 균형감이 관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늘어날 수 있는 내부적 시선과 새로운 외부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더욱 더 그럴 수도 있다. 그룹으로서의 고유한 분위기와 디자이너로서의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할것이다. 여러모로 총괄적 시나리오와 각 장면의 미학적 미장센 모두 필수적이다[email protected] 얼라이브어스(ALIVEUS)는 현대 도시를 만들어가는 건축, 조경, 도시재생, 문화 기획에 기반을 둔 디자이너 그룹이다. 평등한 커뮤니케이션과 유연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학제간 디자인을 추구하며, 이러한 방식이 도시의 다양한 문맥에 더 좋은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 [모던스케이프] 방사형 가로, 근대 도시의 아이콘
    19세기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 1809~1891)의 파리 대개조 사업이 지금까지 거론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구 폭증으로 생긴 여러 사회 문제를 도시 설계로 풀고자 했다는 점에 있다. 당시 파리에는 전염병의 위협, 불량한 주거 환경, 도시 폭동 등 각종 도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오스만은 상하수도망 설치와 녹지 공간 계획, 공공 건물 건설과 확충 등 도시 기반 시설을 체계화해 문제를 극복하려 했다. 그가 시도한 가장 인상적인 방법은 도시 인프라로서 가로망 구축이다. 대로를 신설해 구도심과 파리의 인접 도시를 연결했고, 센 강을 따라 동서와 남북에 축을 만들어 주요 교차점마다 방사형 가로를 연결했다. 확산과 집중, 연결이 반복되는 파리의 도시 가로 체계는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계승한 것으로, 베르사유 궁에서 태양의 빛처럼 무한히 뻗어나가는 알레(allée)를 연상시킨다. 파리 대개조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논의된 미국 워싱턴 D.C. 도시계획에서도 방사형 가로가 도시 경관의 중요한 요소였다. 워싱턴 도시계획을 주도한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 Charles L'Enfant, 1754~1825)은 프랑스 바로크 양식에 영향을 받아 가로망을 설계했다. 그러나 워싱턴이 파리와 다른 점은 북미의 위대한 국가 수도 이미지를 표현하고 대통령의 권위와 위상을 드러내기 위해 가로망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방사형 도로의 15개 교차점은 미국 15개 연방주를 상징하며 국회의사당의 정서쪽에 내셔널몰을 두고 북서쪽 사선으로 뻗은 펜실베이니아 대로 끝에 백악관을 위치시켜 강렬한 시각 축을 만들어냈다. 당시 워싱턴은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수도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파리와 워싱턴이 방사형 가로를 취했다고 해서 근대 도시의 필수 요건에 방사형 가로가 포함되는 건 아니겠지만, 근대 초기에 논의된 서울 도시계획안들을 들여다보면 방사형 가로가 확실히 근대 도시의 표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서울에 방사형 가로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몇 가지 다른 의견이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장소는 지금의 서울광장 일대로, 경운궁과 환구단 사이의 태평로와 서소문로, 을지로, 정동길과 소공로 등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역사학자 이태진을 비롯해 한국 근대 도시사를 전공한 몇몇 학자는 서울광장 일대의 공간 가로 형태가 워싱턴 D.C.의 도시 형태를 모방한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아관파천 전후로 활약한 내부대신 박정양과 한성부 판윤 이채연은 한성부 도로의 확장과 신설 등 정비 사업을 주도했다. 이들은 모두 워싱턴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친미파로 워싱턴의 방사형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 개수 사업을 하면서 자연히 방사형 도로 구조를 의식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도시, 건축, 조경 분야 연구자들은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 일대 도로 체계가 T자형의 전통적 가로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음은 확실하지만 방사형이라고 하기에는 그 형태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로가 교차하는 결절점의 처리도 어색할 뿐 아니라 환구단과 경운궁 등 주요 국가 시설이 있지만 가로 체계와 맞물려 있는 것도 아니다. 스케일 면에서도 도로와 교차점의 균형이 맞지 않아 도시의 핵으로 간주하기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이 일대를 다니면서 방사형 도로 구조를 인식하는 게 쉽지 않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참고문헌 徐東帝 외, “京城都市構想図」に関する研究”,『 日本建築學會設計系論文集』 687, 2013, pp.1179~1186. 민유기, “파리, 혁명과 예술의 도시”, 『도시는 역사다』, 서해문집, 2011, pp.170~196. 유치선·이수기, “대한제국 한성 도시개조사업의 재평가: 근대도시계획의 보편적 특성을 중심으로”, 『국토계획』 50(3), 2015, pp.5~22. 이예림, “워싱턴 D.C. 도시계획과 시각 이미지 연구”, 『한국예술연구』 28, 2020, pp.93~112. 박희성은 대구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중 문인정원과 자연미의 관계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에서 건축과 도시, 역사 연구자들과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면서 근현대 조경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대표 저서로 『원림, 경계없는 자연』이 있으며, 최근에는 도시 공원과 근대 정원 아카이빙, 세계유산 제도와 운영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
  • 탄천 공공정원 천변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다
    천변의 사계절은 보통 연녹색과 짙은 초록을 띠다 갈색 빛으로 저문다. 잘 정비된 산책로가 있다 하더라도 무릎 높이까지 자란 수변 식생과 큰 나무 정도가 서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성남시 탄천 변에서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다. 지난 6월 탄천 공공정원이 개장했다. 성남시는 탄천 금곡교와 신기교 사이 고수부지의 1만2천m2 규모의 땅에 지지력이 있는 그라스와 사초를 기본 틀로 삼아 매년 꽃을 피우는 숙근초화로 조성한 정원형 공간을 만들었다. 오래 머물고 싶은 천변 금곡교와 신기교 사이의 고수부지는 정자역과 가까워 진입이 편하고, 업무 단지와 주택 단지, 5개의 초등·중학교에 둘러싸인 인구 밀도가 높은 분당의 중심지로 잠재적 활용도가 높은 곳이다. 탄천 공공정원이 조성되기 전에도 많은 사람이 걷기 좋은 산책로와 잘 다듬어진 자전거길을 찾아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식생이 단조롭고 노후화된 보도블록과 잡초가 우점한 잔디밭과 쉴 자리 한 곳 없는 천변은 시민들에게 위안이 되어 주지 못했다. 스치듯 식물과 강변 풍경을 바라보며 길을 지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하천과 울창하게 자라 주변 풍경을 가리는 나무가 가득한 고수부지는 도시의 바쁜 삶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도심 휴게 공간의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시는 코로나로 인해 내 집 앞도 편히 산책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정원형 공간을 선사하고자 했다. 씨앗을 품은 식물을 형상화한 정원 일렁이는 하천의 물결과 닮은 부드러운 산책로와 그 옆을 따라 흐르는 정원은 긴 선형 공원을 이룬다. 공공정원 설계 및 계획에 자문으로 참여한 김승민(더봄 대표)은 탄천의 물줄기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형의 정원과 산책로를 디자인했다. 곳곳에 놓인 둥근 화단은 풀잎에 맺힌 물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유속이 빠른 탄천의 범람을 고려해 언덕을 만들고 흙을 잡아줄 그라스와 사초 사이사이에 다년생 초화를 식재했다. 특히 중부 지역에서 잘 생육하며 향과 밀원이 풍부해 곤충을 유인할 수 있는 초화를 선정했다. 먹이를 찾아 날아든 나비와 벌은 정원에 생동감을 더하고 아이들이 자연 생태에 흥미를 갖게 한다. 정원에 대한 고정관념 중 하나는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은 매우 짧으며 꽃이 지면 단조로운 풍경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천 공공정원에는 초장(지표에서 잎의 선단까지의 길이)이 길고, 각기 다른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적절히 섞여 자란다. 꽃이 다 진 겨울에도 다채로운 질감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따스한 모습을 연출한다. 부드러운 곡선형 동선은 자연스러운 보행감을 느낄 수 있으며 침수에도 대비할 수 있는 견고한 황토콘크리트로 포장했다. 데크에는 벤치를 비롯해 주변 유치원생이 산책하고 자연을 공부하다 쉬어갈 수 있도록 파라솔을 설치할 예정이다.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대형목은 하천 범람 시 위험할 수 있어 식재하지 않았다. 금곡교 부근에 다다르면 크고 붉은 잎이 가득한 색다른 정원이 나타난다. 본래 빈 공간이었으나 김승민 대표가 대도심 아열대 기후에 적용 가능한 여름철 식재 모델을 제안하며, 묘종 종자칸나 15종 1,000본을 기증 받아 시민들과 식재해 만든 정원이다. 시원시원하게 하늘로 높이 뻗은 줄기와 커다란 잎사귀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 뿐 아니라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내 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잊게 한다. 칸나 정원 주변에 만든 조형 언덕은 성남시의 지방정원 조성에 대한 염원을 담은 ‘볼수록 탄천’ 로고를 꽃봉오리로 형상화한 곳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홀로 산책을 즐기기 좋은 길이 언덕 사이로 이어지며, 동선과 잔디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원이 끝나고 울퉁불퉁 잡초가 무성해 걷기 불편한 불정교로 이어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 전시의 여운을 누리는 쉼의 장소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 시간의 정원
    갑갑한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다. 1986년 완공된 과천관은 너른 대지 위에 펼쳐진 산세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다. 과천관을 설계한 김태수(TSKP 스튜디오 파트너)는 능선 위에 단과 3개의 둥근 기하학적 요소를 놓아 산과 조화를 추구한 건축물의 구조뿐 아니라 미술관 진입로에서 건물 입구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자연과 마주하는 경험을 중시했다. 이러한 경험은 미술관의 최고층인 옥상에서 절정에 이른다. 과천관 옥상은 미술관 내외부 공간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장소다. 중심부에서 2층의 원형정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탁 트인 외곽부로 과천의 수려한 자연 풍광이 펼쳐진다. MMCA 과천프로젝트는 자연 속에 자리한 과천관의 특수성을 살리고 야외 공간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공간 재생 프로젝트다. 2021년 과천관 세 곳의 순환 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에 이은 두 번째 프로젝트인 ‘MMCA 과천프로젝트 2022: 옥상정원’은 미술관의 옥상정원을 새로운 경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옥상 공간을 예술·생태적으로 재생해 주변 자연을 즐기고, 미술관에서의 미적 경험을 야외 공간의 자연 속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예술적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시간의 정원 국내 디자인 및 건축, 미술 관련 학계 등을 통해 18팀의 작가를 추천받아 1차 심사를 거쳐 정해진 다섯 팀 중 이정훈(조호건축)의 ‘시간의 정원(Garden in Time)’이 옥상정원 프로젝트 설치작으로 선정됐다. 시간의 정원은 직경이 39m에 이르는 열린 캐노피 구조의 대형 설치 작품이다. 지붕과 옆면의 경계에 위치한 4개의 원형링이 서로 다른 각도로 교차하며,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자연 풍광이 오롯이 드러난다. 일정 간격으로 늘어선 수많은 파이프의 배열은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며, 점점 높아지는 구조물이 만든 공간감을 따라 관람객을 가장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곳으로 유도한다. 이 곳까지 걸어가는 과정에서 관람객은 다양한 조각적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정원은 과천관을 둘러싼 드넓은 자연을 더욱 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람객의 시야를 조율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정원에 투영되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자연의 순환’, ‘순간의 연속성’, ‘시간의 흐름’ 등을 시각화하며 자연의 감각과 예술이 공명하는 시공간을 펼쳐낸다. 작가는 최소한의 물리적 구조물로써 비물질적인 자연의 감각을 현현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새롭게 빚어냈다. 자연을 눈으로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빛, 바람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정원은 빛, 그림자, 바람 등 공감각적 요소의 변화가 관람객과 조우하여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리듬을 담은 공간화된 시간이자 시간을 품은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공간을 걸어 다니는 관람객 행위의 시간도 더해진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옥상정원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경험의 장소로 변모한다. 미술관 초입부에서 입구까지 이르는 길의 감각, 작품 감상 후의 여운, 좁은 나선형의 램프 길을 돌아 마주하는 탁 트인 전경의 느낌 등이 옥상정원을 거니는 동안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미술관에 머물었던 시간의 층위가 쌓이고, 장소의 경험이 겹쳐진다. *환경과조경412호(2022년 8월호)수록본 일부
  • [기웃거리는 편집자]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향하여
    인터뷰란 장르를 좋아한다. 상대를 칼 없이 칼자루만으로 손쉽게 제압하는 무사처럼 내공을 갖춘 인터뷰어의 질문과 눈을 감은 채로 상대를 감지하고 급소를 찌르듯 깊은 철학과 사유가 돋보이는 인터뷰이의 대답이 오가는 인터뷰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다. 사무라이 영화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 미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느린 화면처럼 마음이 동해 잠시 읽는 것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은 일종의 화룡점정에 가깝다. 독자로서의 즐거움도 있지만 때때로 활자(?) 노동자로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을 찜해두는데, 최근 발견한 인물은(가상 인물이라서 불가능하겠지만) 바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이름이 같은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로서 서울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으며, 현재는 대형 로펌 한바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중이다. 읽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정도로 영민하고, 하루 종일 고래에 관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고래를 좋아한다. 쌩쌩 돌아가는 회전문을 통과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혼자서 생수병의 병뚜껑 따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소 엉뚱하고 조금 부족한 면도 있지만 변호사로서의 태도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돈보다는 법 앞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하고 의뢰인의 심정과 상황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변호사다. 이런 인물이 실존한다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서사보다 그가 직업인으로서 가진 귀한 마음가짐에 주목하는 인터뷰를 하고 싶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채널 ‘미션잇(Missionit)’을 알게 됐다. 이 채널의 미션잇 인사이트 인터뷰 시리즈는 휠체어 댄서, 역사 교사, 발레리나, 유튜버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장애인을 인터뷰한다. 영상을 통해 그들의 직업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비롯해 장애에 관한 통찰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짧은 인터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터뷰이들은 공통적으로 장애라는 특성에 주목하는 대신 자신에 가진 강점에 집중하고, 업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있었다. 인터뷰이 중 한 명인 유튜브 채널 ‘함박TV’ 운영자 함정균은 휠체어 이용자로서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환승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줌으로써,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환승역 엘리베이터 위치 등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시각 장애인 역사 교사 류창동의 장애에 대한 명쾌한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장애인을 낯선 사람,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생각, 다른 이상을 사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장애로 인해 방법이 다를 뿐 결국 방향은 똑같은 사람이다.” 이번 호에 소개한 모두의 놀이터 원고를 읽으며 저 문장을 떠올렸다. 결국 통합놀이터의 본질은 다른 방법을 가진 이들을 같은 방향으로 모으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한계도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 모든 장애 유형의 어린이가 놀기에 부족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김연금 소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 환경을 도시적으로 구축하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놀이터가 조성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놀이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놀이터의 본질을 바라보는 다양한 언어가 생겨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런 세상이 온다면 굳이 통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게 낯선 게 아니라 일상적인 일이 될 것이다. 비 온 후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한 가지 색깔만이 빛날 때가 아니라 일곱 가지 색깔 모두가 함께 빛날 때다. 무지개 끝에 도달하면 보물이 있다는 전설처럼 부디 미래에는 어린이들이 차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같은 놀이터에서 재미라는 보물을 찾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 [email protected]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L과 함께한 3일 중 반나절을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데 썼다. 사실 거짓말이다. 실제로 문답을 나눈 건 세 시간이 채 못 된다. 적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글이 아닌 경우, 이런 식으로 약간의 부풀림과 허영을 섞어 쓰곤 한다. 더 극적이고 흥미롭게 읽히니 말이다. 늘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라고, 풍미를 더하는 조미료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날의 대화도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실패를 이겨낸 경험이 있나요. L의 답변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히 오갔다. 면접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일련의 물음에 답할 때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두 번째 질문을 예시로 들면, 장점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하지만 단점은 신중히 골라야 하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설명하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어떻게 극복하려고 애쓰는지가 핵심이다. 일을 마감까지 미루다 한꺼번에 해치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계획표를 짜고 그 과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같은 식으로. 실패를 이겨낸 경험담은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넓지 않은 세월의 밭에서 적당한 소재를 골라 도마 위에 올려놓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미없어 보이는 부분을 자르고 양념해 조리하다 보면, 조별 과제 분투기가 건국 신화처럼 거창해지기 일쑤다. 공장처럼 자기소개서를 찍어내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열 편 정도는 회사 특성에 맞춰 공을 들여 썼지만, 낙방이 거듭되니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간 정신이 고장나겠구나 싶었다. 취업 시장에서 높게 평가하는 틀에 맞추어 내 이야기를 다듬고 깎아내다 보면 어느새 나와 닮았지만 똑같진 않은 제2의 인물이 글 속에서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 속 인물처럼 직업의식이 투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발가벗겨진 채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에 빠지게 했다.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국 만능 ‘자소설’(자기소개서와 소설의 합성어)을 하나 만들고, 때에 따라 조금씩 바꿔 썼다.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음은 덜고됐고, 90퍼센트의 진실에 10퍼센트의 거짓을 더한 글은 나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자소설은 이제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뜻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익숙한 단어가 된 지 오래다. A4 한 장 반도 채 안 되는 이 지면을 채우려고 추악한 옛 자기소개서를 꺼내 봤다. 얼굴이 홧홧해지겠지 싶어 열을 식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와 심호흡을 두어 번 한 후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거기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더 나은 나, 언젠가 꼭 닿고 싶은 이상적인 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거짓의 농도를 조절하려 애쓴 흔적을 발견하면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웃음이 났다. 영화 ‘만추’의 대사 “왜 남의 포크를 써요?”를 인용하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외침을 터트리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구절에서는 이때가 좀 그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에 다다르자 조금 씁쓸했다. 자소설 속 나의 모습은 아무 의미 없는 가짜일 뿐인가. 며칠 뒤 TV에서 흘러나온 대사 때문에 휴대폰 액정에 머무르던 시선을 브라운관에 빼앗겼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드라마 ‘안나’) 마음속에 적어둔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아니지만, 이 문장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자전적 소설을 써온 필립 로스의 책을 다수 번역한 정영목은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소설을 쓴다. 뒤집어 말하면, 소설로 쓰지 못한 일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1이라고 말한다. 자소설 쓰는 일 역시 자기 성찰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늘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서사를 부여하는 일은 내가 추구하고 싶었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잊고 있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휘청거리는 나를 바로 세워준다. 또 가끔 허상에 기대는 일은 지친 몸을 일으키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골똘히 들여다본 내 안의 이야기와 이를 정리한 글이 서류 탈락의 고배에도 나를 성장시키는 작은 발판이 되었다고 믿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이 글에도 90퍼센트의 진실과 10퍼센트의 거짓이 섞여 있다[email protected] 각주 1. 정영목,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문학동네, 2018, p.25.
  • [COMPANY] 다원녹화건설 조경의 경계를 넘어 끝없는 진화를 꿈꾸는 기업
    다원녹화건설은 1992년 설립되어 비탈면 녹화 공사, 보강토 옹벽 공사 등 생태 환경 복원을 통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특히 2007년 개발한 ‘코매트(Co-mat)’는 성토와 절토로 인해 생긴 비탈면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녹화하는 법을 제시했다. 자연 분해성 섬유를 이용해 기반재의 응집력과 근계 발달을 유도하는 이 공법은 건설신기술 제461호, 환경신기술 제158호에 등록되어 다원녹화건설의 기술력과 가치를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수익성이 높아 회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녹화 사업은 조경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 않은 편이다. 김용각 회장(다원녹화건설)은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경영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대중 대표를 불러들였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략기획실을 꾸려 현재를 점검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일이었다. 다원녹화건설의 역량과 강점, 시장 환경 등을 분석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객관적인 눈으로 회사를 바라보게 했다. 6개월에 걸친 수차례의 검토 끝에 내놓은 답은 신사업으로의 확장이었다. 김대중 대표는 “기존의 환경 복원 사업이 조경과 맥이 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 확장을 결심했다. 더불어 기존 시공 중심의 사업 영역에서 밸류체인(value chain)을 어떻게 넓힐지 고민했다. 방법은 크게 조경 시공의 전 단계로의 확장과 후 단계로의 확장으로 나뉜다. 특히 전 단계로의 확장은 원자재 생산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경은 살아 있는 식물을 다루는 분야다. 식물이 정해진 규격에 맞춰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보니 농작물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이 심하다. 넓은 수목 농장과 수목을 관리하는 시스템, 노하우를 보유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목을 직접 생산하기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추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매출 규모 자체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구매 협상권을 갖추는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이후 다원녹화건설은 매출과 규모 면에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이에 주변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수목 하자에 대한 염려가 많았다. 김대중 대표는 “보통 완공 뒤 2~3년 지난 시점까지 하자에 대한 의무가 주어진다. 2018년에 본격적으로 주택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2020년부터 하자가 발생한 현장이 누적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장 수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유지·관리에 미리 신경을 써둔 덕분에 그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원녹화건설에는 나무의사와 경력이 많은 소장급의 직원 8명으로 구성된 CS팀이 있다. 이들은 건설사, 관리사무소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 아니라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힘쓴다. 현장을 직접 오가며 하자율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이를 매뉴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지만, 하자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사업을 확장하고 급격하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이유는 낮은 하자율 덕분이다.” 김대중 대표는 다원녹화건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사람’을 뽑는다. 그는 “최근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조경 일을 하지 않으려하고, 조경으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도 시공 회사를 제일 후순위에 두곤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원녹화건설을 택한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고, 열심히 훈련시켜 우리만의 색을 입히고자 노력한다.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 성장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직원 개개인의 특성을 깊이 파악하고, 어떤 면이 장점이고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정확히 지시해주려고 노력한다. 더불어 고정된 팀을 운영하는 대신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할 수 있는 직원들로 구성된 팀을 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한다. “책이나 매뉴얼로는 공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능력, 현장에서의 지휘력, 건설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체득할 수 있도록 팀구성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다원녹화건설은 창립 30주년을 맞이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열어 다원녹화건설을 함께 만들어 온 임직원과 그 걸음에 함께해준 협력 업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성공을 거둔 만큼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김대중 대표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세상에 나를 맞추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쾌감을 느낀다. 그만큼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개발 사업을 차츰 진행하고 있다. 늘 건설업에서 맨 마지막 단계에 진행되는 조경 시공을 하며 겪은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이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발주처가 무시할 수 없는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현재 신사업을 기획 중인데, 조경뿐 아니라 더 넓은 범위에서 그 대상을 찾고 있다. 업의 영역과 틀을 깨는 회사가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글 김모아 사진 다원녹화건설 TEL. 02-539-8344 WEB. dawonland.co.kr
  • [PRODUCT]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쓰는 야외 운동 기구
    비장애인에 초점을 맞춘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디자인파크의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공원 BF인증 기준에 부합해 야외 운동 기구에 소외됐던 장애인에게 운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비장애인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장애인용 운동 기구와 함께 일반형 운동 기구를 조합해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장애 통합형 야외 운동 기구는 휠체어 규격에 맞춘 설계로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재활자 등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주요 색인 파란색은 물체를 가볍게 인식하게 만들어 운동의 부담을 덜어주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운동 기구와 연결된 포스트 양쪽에는 안내판이 부착되며, 포스트 측면의 PC패널에 다양한 문양, 로고 등의 이미지를 삽입할 수 있다. 안내판의 경우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위치와 문구를 설정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주변이 어두워지면 포스트 상부의 LED가 점등되도록 했다. TEL. 1577-0343 WEB. www.designpark.or.kr
  • [에디토리얼] 82년생 환경과조경, 마흔 살이 되다
    『환경과조경』이 만 나이 마흔 살을 맞았다. 1982년 7월, 국내 최초의 조경 전문지 계간 『조경』이 창간되었다. 1985년 6월(통권 9호), 『환경 그리고 조경』으로 제호를 잠시 바꿨고, 10호부터는 『환경&조경』이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1992년 1월(통권 45호)부터 월간지 『환경과조경』으로 전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 번의 결호도 없이 40년간 간행된 『환경과조경』은 한국 현대 조경사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한국 조경의 성장 신화를 기록해왔을 뿐 아니라 조경의 새로운 영역을 발견하며 그 경계를 확장해왔다. 2013년 10월호(통권 306호)부터 박명권 발행인 체제로 옷을 갈아입은 『환경과조경』은,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는 풍요로워졌는데도 정작 제도권 조경은 위기에 빠진 역설적 환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조경 저널리즘의 지향과 좌표를 재설정했다. ‘조경 문화 발전소’를 꿈꾸는 『환경과조경』은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글로벌 정신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 이 세 가지 좌표를 매달 지면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원칙으로 삼았다. 2021년 8월, 400호를 펴내며 쓴 에디토리얼에 500호 시대를 향하는 『환경과조경』이 묻고 답해야 할 과제를 이렇게 적었다. 첫째, 한국 조경의 전문성과 수월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둘째, 조경 저널리즘의 역할을 기록과 비평을 넘어 이슈 생산과 소통으로 확장한다. 셋째, 다음 세대 조경가와 미래 세대 비평가를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한국 조경의 2030년대를 기획한다. 『환경과조경』의 지난 40년 여정에 변함없이 동승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이 세 가지 과제를 풀어갈 도전적 노정에도 늘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한층 더 풍성한 지면으로 꾸릴 40주년 기념호는 오는 12월로 잠시 미루지만, 우선 이번 호에는 한국 조경의 기반을 질문하는 기획 특집 “조경, 그 이름을 묻다”를 올린다. 1970년대 초, 한국 조경의 태동과 함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landscape architecture)의 번역어로 선택된 조경(造景)이라는 이름이 조경(학)의 목적과 대상, 그 영역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며 조경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조경이라는 이름이 조경의 범주를 제한하는 장애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것은 번역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트)에 적확한 번역어로 조경(가)이 아닌 다른 말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 조경(학)의 실천 영역과 학문 범주를 포괄할 수 있는 개명이 필요한가? 올해 2월 22일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한 웨비나 “조경, 왓츠 유어 네임?”의 발표 원고들을 다듬어 수록하는 이번 특집이 조경 전문 직능과 학문 분과의 명칭을 둘러싼 신중한 토론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 달에는 40주년 특집의 두 번째 순서로 가칭 ‘조경사’ 자격제 신설의 배경과 필요성을 논의하는 특집이 예정되어 있다. 창간 40년 기념 ‘2022 조경비평상’에는 예년보다 글쓰기의 수준과 글의 완성도가 높은 네 편의 평문이 제출되었으며, 정평진의 응모작 “거리에 대한 권리: 철거된 ‘르네상스 호텔’과 공개공지, 그리고 이우환의 ‘관계항’”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글은 도시 공공성의 매개 수단인 공개공지의 한국적 현실과 과제를 선명한 문제의식과 단단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추적하고 발견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수상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한국 조경의 최전선을 이끄는 비평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이번 달에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파리공원 리노베이션’이다. 1987년에 문을 연 파리공원은 한국 조경 설계를 변화시킨 기점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교목과 넓은 잔디밭, 판에 박힌 정자와 퍼걸러, 몇 가지 운동 시설과 놀이 시설을 적절히 섞으면 곧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대중과 전문가들에게 파리공원은 공원도 ‘디자인’해야 하는 대상임을 일깨워 주었다. 틀에 박힌 공원 패러다임을 ‘설계’라는 도구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 파리공원의 실험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최근 들어 20세기 후반에 만든 도시공원을 고쳐 쓰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파리공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복원과 변경, 보존과 재생, 기념과 이용의 충돌이라는 난제를 풀어낸 방식에 대해 다양한 토론과 비평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email protected]
  • [풍경 감각] 너의 목소리가 들려
    길을 걷다 보면 낯선 목소리가 말을 건넨다. 내달리는 차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건만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세요”라고. 그저 지나는 길인데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며 기계들이, 나를 나무란다. 평소엔 신경조차 쓰이지 않던 기계의 목소리를 피곤하고 지친 날에 들으면 괜히 짜증이 나곤 한다. 한 독립서점이 일상에서 쓰일 만한 따뜻한 문장 몇 개를 스티커로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고마워, 사랑해, 응원해, 괜찮아, 힘내 같은 너무 뻔한 말들이라 제작하면서도 재고로 쌓이겠다고 생각했다는데, 예상과 달리 금방 동났다고 한다. 때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마디가 사람들에게 필요했던 것 아닐까.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줘야 할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뻔하고 보잘것없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말 아닐까? 물론 길가에 고마워, 사랑해, 힘내 같은 말을 읊조리는 기계가 있다고 상상하면 굉장히 이상한 그림이 그려지긴 하지만……. 대신 이 글을 보는 이들에게 얕은 말을 전해볼까 한다. 괜찮아요. 모두 다 잘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