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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재조합한 귀틀집의 풍경
‘가장 조용한 집’ 전, DDP 배움터 3층
깊은 산골 속 작은 집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있다. 은근한 열기를 뿜는 아궁이, 밥때가 되면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 고구마가 익어가는 화로, 정겨운 할머니의 목소리. 이런 장면들을 막연히 낭만적이라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사실 나는 도시에서 벗어난 삶을 경험한 적이 없다. 때로는 이런 상상이 나와 동떨어진 삶을 대상화하는 방식 중 하나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지난 7월 11일부터 8월 1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열린 ‘가장 조용한 집’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전시다. 식물로 일상을 어루만지는 조경 작업을 하는 ‘수무’가 기획한 전시는 ‘힙’한 음악과 영상, 설치 작품으로 무주 귀틀집을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나의 일상과 가까운 지점에서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주 귀틀집
전시의 주인공인 무주 귀틀집은 70년 전 무주의 한 부부가 직접 지은 신혼집이다. 집터로 잡은 곳이 오지인 데다가 집을 지을 전문가도, 제대로 된 재료도 구할 수 없던 그들은 주변의 나무를 베어 우물 정丼 모양으로 배치해 틀을 만들고, 나무를 쌓아 올려 벽을 세우고, 틈 사이를 진흙으로 메꿔 집을 완성했다. 나무와 진흙처럼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로 지은 집은 여름에는 수분을 흡수해 팽창하고, 겨울에는 수분이 적어져 수축한다. 숨 쉬듯 부풀었다 오그라들기를 반복하며 집의 구조는 더욱 견고하게 연결되고, 재료는 좀 더 단단해진다. 스스로 튼튼해지는 집의 특성에서 수무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성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했다. 약 이틀간 귀틀집에서 머무른 수무는 숨 죽인 채로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소리를 채취하고, 영상으로 그 주위를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포착한 자연의 소리와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은 주체들의 모습을 새로운 콘텐츠로 빚어냈다.
무주의 시공간을 담은 캔버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모래에 반쯤 파묻힌 거대한 구조물, 그 위로 투사되는 영상과 음악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가장 조용한 집’이 나타난다. 반사 소재로 만든 우물 정 형태의 구조물은 귀틀집을 상징하는데, 빔 프로젝트에서 투사되는 영상을 담아내거나 반사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구조물을 반쯤 덮은 흰 모래는 귀틀집이 자연에 묻혀 지내온 시간이자 스며든 자연으로, 무주에서 담아온 실제 자연 영상을 고스란히 담는 캔버스가 되어준다. 모래가 쌓여 생긴 자연스러운 굴곡은 새벽녘 희미하게 밝아지는 하늘의 영상이 비칠 땐 가파른 산세 같고,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올 땐 계곡가의 바위처럼 느껴진다. 무주 귀틀집의 사계절, 24시간을 간결한 형태로 축소한 작품은 방문객을 자연의 내면으로 인도하며, 이전과 다른 감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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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사진가의 비밀
그라운드시소 성수, ‘비비안 마이어’ 전
미스터리한 천재 사진가, 롤라이 플렉스의 장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15만 장의 필름. 많은 수식어로불리는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우연히 그의작품이 경매장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지난 세기 동안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명의 사진가였다.
숨겨진 명작은 한 남자의 안목과 우연에 의한 발견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John Maloof)는 집필 중이던 시카고 역사책에 넣을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경매장에서 380달러에 낙찰받은 필름이 담긴 상자에 흥미를 느낀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였던 그는 이제껏 세상에 공개된 적 없었던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고자 마음먹는다. 플리커, 전시 등을 통해서 세상에 공개된 그의 사진에 대중은 열광했고, 이후 각종 서적과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가 남긴 사진을 한국에서도 볼 기회가 생겼다. 지난8월 4일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렸다.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270여 점의 사진과 그가 사용했던 카메라 및 소품, 영상, 오디오 자료 등을 선보였다. 특히 거울, 쇼윈도, 그림자 등을 통해 자신을 숨기듯 표현한 그의 감각적인 셀프 포트레이트는 요즘 SNS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셀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거리의 사진가
생전에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유지했던 비비안 마이어에 대해서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적다. 뉴욕에서 태어난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1950년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과 시카고를 오가며살았다. 어릴 때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부모가 이혼했고, 그들은 오랫동안 마이어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
유일한 혈육이었던 오빠는 마약 중독에 빠졌고, 감옥을 들락날락했다. 그는 가족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로오랫동안 일정한 거처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며 유모, 가정부, 간병인으로 살았다. 이모할머니로부터 받은 유산으로 샀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취미였다. 카메라는 2009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마이어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시카고와 뉴욕 일대를 누비며 거리의 사진을 찍었던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비견된다.로버트 프랭크처럼 일상 속 찰나의 미학을 포착할 줄알았으며, 사회의 소수자에 주목했던 다이안 아버스처럼 흑인, 어린이, 노숙인 등 인종과 연령, 남녀의 구별없이 거리의 모든 이를 사진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진 속의 거리는 마치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극장과도 같다. 사진에는 상냥함과 비극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리의 아이러니가 한 편의 드라마로 펼쳐진다.그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 놓고 이미지를 찾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어떤 것이 눈에들어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의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렀다. ‘센트럴파크 동물원’은 풍선이 절묘하게 한남성의 얼굴을 가린 순간을 기민하게 포착해 찍은 사진으로 일종의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뉴욕공공도서관’에서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우아한 한 여성의 옆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러 가지 구도를 이용하면서도 재치, 사랑, 빈곤, 우울 등 다채로운 감정의 이미지와 피사체의 다양한 표정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환경과조경413호(2022년 9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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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웃거리는 편집자] 반경 안의 아름다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마주한 서울의 아파트는 신기하면서도 조금 무서웠다.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열차의 도착’에 나오는 증기 기관차 영상을 보고진짜 기차가 오는 줄 알고 도망갔다는 관객들처럼,초록의 시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의 위세에 기가 눌렸던 것 같다. 그러나서울 생활 십 년 차에 접어든 내게 이제 아파트는이정표나 다름없다. 행선지를 묻는 택시 기사에게주소지를 읊는 대신 집 근처 아파트 이름을 말하고, 고향집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동서울버스터미널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를 보며 서울을 실감하는 동시에 이상하게 안도감이 든다. 고향보다 서울이 익숙해진 것이다.
어느 때는 아파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해보기도한다. 옛날에 살던 동네를 우연히 지나다 한창 공사 중이던 재건축 아파트가 완공된 모습을 보면서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헤아리기도 하고, 집 앞아파트 벽면을 날마다 영롱한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하루의 끝을 깨닫는다. 그 끝이아쉬워 연신 셔터를 눌렀는데 그럴 때마다 여의도진주아파트를 포함한 서울 아파트의 벽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겼던 스웨덴 사진가 지넷 하글룬드(Jeanette Hagglund)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오롯이 아파트를 관찰자 시점으로 보는 나와달리, 아파트 안의 주인공인 주민들의 삶에 주목한 영화와 잡지가 있다. 영화 ‘집의 시간들’은 입주민 시점으로 아파트의 삶을 다룬다.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주민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에게 아파트에서의 시간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비온 다음 날 안개가 낀 오솔길, 정전을 알리는 오래된 등,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베란다에 비치는 햇살, 날마다 들리는 새소리와 계절마다 달라지는 우거진 숲의 풍경.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장면과 추억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시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대답이었다. 도시에서 보기 드문 우거진 숲이 만드는 녹지 공간의 매력과 오랫동안 같은 터전에 자리 잡고교류했던 이들과 함께했던 순간은 그곳의 삶을 지탱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실제로 오래된 아파트 특성상 잦은 단수와 정전, 녹물 등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하나는 한 대형 건설사의 웹매거진 ‘비욘드아파트먼트’다. 학군, 역세권, 공세권, 수세권 등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막연한 용어 대신 담백하게 해당 아파트 입주민의 일상을 인터뷰로 보여준다. 조깅은 어디로 가고, 단지의 영화관은 어떤지, 창밖의 소나무 정원을 보는 낙에 산다는 등 돈으로 환산되는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보다 일상 속 아파트의 모습에서 생활의 가치가 읽힌다. 아울러 건축가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설계 철학이나 지향했던가치, 완성되기 전까지 했던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고 아파트 베이 변천사처럼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지식을 알려준다.
두 가지 콘텐츠에서 입주민이 공통적으로 꼽은좋은 순간은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물론 휴게공간, 주민 간의 유대, 편리한 공간 구조 등과 같은장점을 꼽는 이도 있었지만, 대개는 자연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만들어내는 장면을 최고의 순간으로꼽았다. 매일 조깅하는 산책로, 비 온 다음 날의 안개 낀 오솔길, 창밖의 소나무와 같이 일상에 깃든초록의 자연이 선사하는 장면이 그들의 삶에서 오래 기억되고 있었다.
최근 아파트 조경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실무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제주도에서 어렵게공수해 온 팽나무로 만든 숲에 애정이 깊다며, 지금보다 내일을 더 기다린다고 했다. 먼 훗날 지금보다 더 울창해진 팽나무 숲을 거닐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한 주 한 주 심었다는 그의 선한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경치를 만든다는 뜻을 가진 조경의 본질은 인간의 가장 가까운 반경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만드는일 아닐까. 그 역할을 제대로 된 아파트 조경이 해낸다면 어떨까. 부의 증식이라고 여겨지는 아파트가 미의 증식이 되는 것은 너무 헛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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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 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뒤이어 쏟아질잔소리를 예고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이만한 진리가 없다. 날 위한 조언을 귀찮은 간섭으로 받아들였다가 낭패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요새는 선크림을 꼭 챙겨 바르라는 엄마의 말을 대충 넘겨들었던 걸 실컷 후회하고 있다. 쉽게 푸석푸석해지는피부를 보며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성가시다고 눈길도 주지 않던양산 좌판 앞에서 서성거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열심히 온몸을 꽁꽁 감싸도 뙤약볕의 위력을 피할 수없는 곳이 있다. 열기를 흡수해 신발 밑창에 쩍쩍달라붙는 아스팔트, 녹음을 찾아볼 수 없는 회색공간, 햇빛을 그대로 반사하는 석재 포장,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도로의 열기를 밖으로 방출하지 못하는 도시의 섬. 이 모든 조건이 교차하는 지점에광화문광장이 있다.
그리스의 아고라, 로마의 포럼에서 출발한 광장은 고대 민주 사회의 기틀을 만든 공간이다. 중세에는 종교 행사를 열고 권력가의 힘을 내뿜는 공간으로 쓰였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상업 시설이들어서기 마련이고, 유럽의 도시는 자연스럽게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아직 유럽 땅 끄트머리도밟아보지 못한 내게 광장은 미디어가 만든 낭만적필터가 덧씌워진 곳이다. 분수대와 그 주변을 평화롭게 거니는 작은 새, 사이사이에서 제각각의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 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하나의결로 읽히는 차양을 단 카페와 레스토랑. 내부에는사람이 있고, 둘레에는 그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줄 콘텐츠들이 가득했다. 친구들의 SNS를 보면 유럽 여행은 광장을 가로질러 광장으로 향하는 일처럼 읽혔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비롯한 모든 핫플레이스로 이어지는 여정에 으레 광장이 있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좀 다르다. 크기나 형태에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광장이 놓인 도시의 맥락이상이하다는 말이다. 유럽의 광장이 높지 않은 건축물이 내려준 적절한 그늘에서 바투 붙은 각종 상점에 오가는 사람과 소통한다면, 광화문광장은 높은 빌딩을 성벽처럼 두른 거대한 도로 한복판에서사방을 달리는 차량이 뿜는 열기, 매연, 소음과 다투고 있다. 그 혼잡함을 뚫고 6차선 도로를 기꺼이 건너기에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동상, 작은 잔디밭이 충분히 매력적인지는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편의와 콘텐츠를 제공하지못하고, 정치 집회나 시위가 일어날 때만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광화문광장을 향한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달 새롭게 태어난 광화문광장은 장소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 방향으로 확장되어 조성됐다. 넉넉하게 마련된 녹지는 사람들을끌어들이겠다는 듯 맞닿은 건물과 골목으로부터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바닥분수에서 실컷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도시공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한결 활기차진 광장을 보니 즐거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이곳이 짊어진 부담감이느껴져 안타깝기도 했다. 넓게 비운 터는 무엇이든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곳이지만, 항상 모든것을 담고 있어야 하는 곳은 아니다. “광장의 공간감은 의외로 모든 활동들이 소거된 ‘빈 광장’일 때잘 드러난다. 나무의 아름다움도 모든 잎이 다 지고 난 겨울 나목裸木일 때 더욱 운치 있게 보이는 것처럼, 광장이라는 공간 또한 떠들썩한 행위들이 모조리 사라진 그때가 아름답다. …… 아무도 없는이른 새벽에 빈 광장을 홀로 걷는 일은 즐겁다.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에 더 많은광장이 필요한 이유다.”1
길과 마당의 문화를 곁에 두고 자란 우리는 아직광장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충분히 영글지 못한문화를 바탕으로 모두의 요구를 담은 완벽한 광장을 만들 수 있을까. 계속해서 옮겨지고 뜯겨진 광장이 이번에는 오래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의 다양성을 담는 실험 장소가 되고, 그 과정에서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새로운 광장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광화문광장도 이곳에서만 펼칠 수 있는행위에 충실할 수 있을 테니까. 광화문광장 산책을 계획하고 있다면 나서기 전 『환경과조경』 2017년 3월호 ‘광장의 재발견’ 특집을 훑어보기를 권한다. 광장 한복판에서 일독하고 싶다면 나무 그늘과조각보 문양의 바닥 패턴을 즐길 수 있는 열린마당을 추천한다.
각주 1.박승진, “아고라포비아”, 『환경과조경』 2017년 3월호,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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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야외용 필라테스 운동 기구 BA시리즈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야외용 운동 기구
필라테스가 유연성과 근력을 기를 수 있고, 몸의 교정과 재활에 효과가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큰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필라테스를 실내에서 하는 운동으로 생각하지만 적절한 기구만 있다면 야외에서도 즐길 수 있다.
디자인그룹 그린나래의 BA시리즈는 기존 야외용 운동 기구와 다른 특징을 갖는 야외용 필라테스 기구다. 기존 운동 기구는 기구에 의지하기보다는 본인의 근력과 몸의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할 때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 BA시리즈는 기구에 지지해 신체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몸의 균형을 잡아줄수 있게 돕는다.
또한 다양한 지형 위에 설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연령대의 폭이 넓다는 점이 장점이다. 레더 체결 구조를 통해 공간을 활용한 자유로운 배치가 가능하고, 모듈이 다양해 지형에 맞추어 20종 이상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 5~60kg 가량의 미세한 무게 조절로 실내용 헬스 기구처럼 체계적인 운동이 가능해 모든 나이대가 함께 즐길 수 있다.
BA-PL01 전신 이완 운동 기구는 필라테스 실내 기구 중 하나인 레더 바렐을 야외에서 즐길 수 있도록 제작됐다. 레더 바렐은 몸의 유연성을 늘려주는 기구로서 필라테스의 바렐 동작 시 이용한다.레더 바렐과 마찬가지로 이 제품은 둥근 부분을 이용해 척추에서 코어까지 바른 자세를 만들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중심으로 동작을 할 수 있어 부상 방지는 물론 재활 필라테스기구로 활용할 수 있다.
TEL. 031-721-5311 WEB. gna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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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자인
SNS를 통해 대중적 브랜드를 꿈꾸다
조경 시설물 업체 ‘자인(ZAIN)’이 최근 발표한 홍보 동영상에는 조경 시설물이 없다. 산과 들, 바다, 광활한 초원과 따스한 햇살 뒤에 로고 ‘ZAIN’이 등장하며 끝난다. 멋지긴 한데 조경 시설물 홍보 영상이 맞나 싶다.
자인의 자매 브랜드인 놀이 시설물 ‘키젯’의 홍보 영상에도 놀이 시설물은 없다. 귀여운 캐릭터 ‘키젯보이’가 하늘을 날고 곤충을 채집하고 고래와 함께 바닷속을 여행하더니 ‘플레이 위드 아트(PLAY with ART)’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끝을 맺는다.
조경 시설물 시장은 대부분 B2C 거래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 간에 거래되는 B2B 시장이다 보니 홍보 대상이 매우 명확하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지 않아서 보통 업체들은 홍보 영상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시설물 광고는 잡지 지면이나 인터넷상에 제품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치중해 왔는데, 시설물을 뺀 광고 영상이라니 과감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홍보 영상을 제작한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최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kizet_playground)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주현 대표(자인)를 만나 속내를 들어봤다.
트렌드를 담다
박 대표는 최신 트렌드를 홍보 영상에 담아봤다고 말한다. 그가 주목한 최신 트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감성이고 다른 하나는 SNS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SNS의 저변이 워낙 확장돼 있다 보니 이를 통해 감성적 교감이 이뤄진다. 카페에 가더라도 그냥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멋진 공간의 감성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제품’보다는 ‘공간’을 소비하는 SNS 트렌드에서 착안해 시설물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홍보 영상에서 ‘시설물’보다 ‘캐릭터’에 집중한 것이다. 조경 시설물 업체가 공유한캐릭터와 홍보 영상이 SNS에서 얼마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박 대표는 이번 시도로 SNS에서 적지 않은 반응을 확인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팔로우가 늘면서 캐릭터의 대중적인 확장성을 확인했고,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도 세우게 됐다. 새로운 홍보가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홍보 영상을 유튜브로 공개한 지 얼마 되지않아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이 접속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키젯을 통해 유치원이나 가게, 아니면 개인 집 마당에어린이와 부모를 위한 소품과 놀이터를 구상하고 있다.”
자인과 키젯, 숨겨두기 아까운 ‘콘셉트’와 ‘캐릭터’올해 자인의 디자인 콘셉트는 생명체(bio), 사랑(philia), 생각(idea)을 합성한 바이오필리디어(Bio-Philidea)로, 자연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자연과 인간을 위한 환경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제품 하나하나에 열을 다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키젯은 어린이 놀이 시설물 브랜드답게 탐험가를 꿈꾸는 키젯보이의 판타지 스토리를 콘셉트로 새로운 여행과 모험으로 즐거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모든 디자인은 예술적 영감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아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인과 키젯의 창의적인 콘셉트를 아는 고객은 많지 않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무한한 상상력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매년 꽤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지만, 조경 시설물 시장의 특성상 부각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제품보다 브랜드 이미지에 집중한 동영상을 선보인 것은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에 들인 정성이 그냥 사장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점도 한자리하고 있다. “특히 키젯은 자세히 보면 매우 재미있는 로고다. 어린이가 행성을 여행하는 콘셉트로 ‘키즈’와 ‘플라넷’을 합성해 이름을 지었는데, 주인공인 ‘키젯보이’가 기린과 부엉이 등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 스토리로 매년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놀이를 진행하면서 많은 컬렉션이 생기고 있다.”
조경 시설물 너머 대중적인 브랜드 가능성을 보다지금까지 자인과 키젯은 조경적인 측면에서 B2B 형태의 큰 구조의 놀이 시설물만 구상해왔는데, 조경만이 아닌 어린이 가구, 소품, 놀이, 교구 등 B2C 시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은 사업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러한 확장성을 고민할 수 있었던 데는 SNS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공간과 시간 제약 없이 매일 일기장 같이 쓸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소통과 홍보의 공간으로 펼쳐져 있다. 소통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박 대표는 “옛날처럼 각본을 읽는 드라마나 예능보다는 오히려 각본 없이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요즘 추세다.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고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하고, 굳이 감추지 않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비단 연예인만 실천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기업이 고객들과 소통하는 방식에도 녹아 있다”고 말했다.
사실 자인이라는 이름은 애초부터 인ㆍ아웃도어 분야를 아우르는 대중적 가치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현재는 생활환경 디자인 그룹으로 아웃도어 쪽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인도어 쪽으로도 사업을 확장해서 본래의 가치를 완성해 나갈 계획이었다. 이것이 현재 자인과 키젯의 확장성을 고민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다. SNS의 시대, 감성의 시대가 조경 시설물 캐릭터의 확장성과 자인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궁금해진다.
글 박광윤 자료제공 자인(www.dezain.co.kr), 키젯(www.thekiz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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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조경사 자격제 신설을 위한 첫걸음을 떼며
‘한국조경헌장’(한국조경학회 제정, 2013년)은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와 경관을 계획, 설계, 조성, 관리하는 문화적 행위”라고 조경을 정의한다. 하지만 전문 직능(profession)으로서 조경가의 직무와 역할을 적확하게 규정하는 법적 장치와 자격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조경의 태동기인 1970년대부터 이미 기술사법에 따른 조경‘기술사’와 조경‘기사’ 자격이 시행되어왔지만, 조경(가)을 기술(자)의 틀에 가두는 기술사-기사 자격제는 조경설계의 업역을 제한하고 조경가의 위상을 불안정하게 방치했다. 건축의 ‘건축사’에 해당하는 적절한 자격 (또는 면허) 제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어쩌면 한국 조경계는 지난 50년을 허비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전문 직능으로서의 조경과 학문 분과로서의 조경학이 이 땅에 도입된 지 50년, 비로소 조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중적 수요가 증가하고 일상의 조경 문화가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정작 조경계는 위기를 호소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다. 새로운 자격 제도를 통해 한국 조경의 난맥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줄여 말하자면, 건축의 건축사처럼 조경에도 조경사가 필요하다는 것. 물론 ‘조경사’가 자격과 면허를 갖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견해가 있겠지만, 그건 다른 논제다.
새로운 조경사 자격제는 조경의 전문성과 위상 재정립, 조경설계 업역의 보장과 확장, 합리적 설계 대가 실현, 조경설계 인력 양성, 대학 조경 교육의 정상화 등에 촉매로 작용하면서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에 자격제 관련 내용이 들어가 ‘조경사’ 신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계획의 추진 전략 중 하나인 ‘조경의 질 제고를 위한 조경 산업 기반 강화’ 항목에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가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자격 제도를 모색하는 토론의 첫걸음을 떼고자 이번 호 특집 “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을 꾸렸다. 이상수(스튜디오201 소장)는 조경설계 스타트업의 장벽, 엔지니어링사업자 면허의 현황과 실태, 조경기술사사무소 자격 취득의 난맥 등에 초점을 두고 현행 자격 제도의 한계와 문제를 짚는다. 안세헌(가원조경 대표)은 조경설계업 시장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과 추진 방향을 살핀다.
이윤주(엘피스케이프 소장)는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데, 특히 현지의 조경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조경사 취득 절차를 상세하게 다룬다. 이해인(HLD 소장)은 미국의 조경사 제도를 명칭, 자격, 평가, 권한, 관리 등 다각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제도를 비교함으로써 현행 한국 조경설계 자격 제도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점을 제시한다.
이남진(바이런 소장)은 조경사 자격 신설을 위한 관련 법규를 살피고 ‘건축사법’과 같은 위상을 갖는 별도의 법령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특히 건축사법의 구조를 참고하여 총칙, 조경사의 자격, 조경사 자격시험, 조경사의 업무, 조경사무소, 조경사협회로 구성된 (가칭)‘조경사법’의 체계와 내용을 제안한다. 본지 발행인 박명권이 사회를 맡고 김선미(건화엔지니어링 부사장), 김태경(강릉원주대 교수), 서영애(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이영주(국토교통부 사무관), 이정섭(국토교통부 주무관)이 참여한 좌담회에서는 조경사 제도의 필요성, 명칭과 위상, 조경설계사무소의 지속가능한 운영, 설계비와 계약서, 정책적 지원,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조경사 신설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펼쳐졌다.
새로운 자격 제도의 필요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곤 했지만 단발성 논의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경사 자격제에 대한 조경계 내부의 공감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환경이 형성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어영부영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조경계 내부의 공감과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제도의 체계와 내용을 뒷받침할 데이터 축적과 기초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조경협회와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는 물론 한국조경학회가 함께 참여하는 기획‧연구팀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이번 특집에 포함하지 못했지만, 조경사 자격제와 하나로 연동될 (가칭)‘조경교육인증제’에 대한 연구와 공론화도 필수적이다. 전문 교육은 전문 자격의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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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감각]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말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다. 말투가 ‘여자 같다’며 놀림받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씩씩하게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면 ‘여자 같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게 놀릴 만한 이유인지를 따졌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습게도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서, 발표를 최대한 피했고 꼭 해야 할 경우엔 훌륭하게 발표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않는 데 큰 노력을 들였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 내기를 꺼려 왔음에도 라디오 출연 섭외를 승낙한 건 오래 전 친구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와 택시를 탄 적이 있다. 내가 행선지를 이야기했더니 택시 기사가 대뜸 사내자식 목소리가 계집애 같다며 웃었다. 인사보다도 먼저 훅 들어온 말에 제대로 항변도 못했는데 친구가 두둔해주었다. 다정하고 친절한 거라고. 그래서 좋은 거라고. (이 글에 쓰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을 쏟아내자 택시 기사는 당황했고, 난 조금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격주 목요일 새벽마다 라디오 방송을 하러 간다. 스튜디오에 앉은 뒤 PD가 이제 시작한다는 사인을 보내면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평소처럼 DJ에게 인사를 건넨다. “2주 만에 뵈어요. 잘 지내셨죠?” 그 친구가 떠오르는 사연을 방송작가가 프롬프터에 띄워 줄 때도 있다. ‘조곤조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아요.’ 문득 거리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그 택시에도 이 목소리가 가닿고 있을지 궁금하다. 창밖 풍경이 환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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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 모두의 놀이터
Gwangnaru Everyone's Playground
지명을 ‘당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상설계에 참여하라는 지명을 당했다. 조경작업소 울이 인정받은 듯해 기뻤지만, 현상설계 공모와는 상관없이 살아왔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우선 개인적으로 현상설계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심사위원의 성향은 어떠하고 어떻게 평가할지, 다른 참여자들은 어떻게 접근할지 추측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상대와 체스를 두는 것과 같다.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과를 기다릴 때는 과도하게 예민해져서, 떨어지고 나서 갖는 자평은 내 탓이나 남 탓으로 흘러 생산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현상설계는 피하려한다.
게다가 상상어린이공원 현상설계 당선으로 조경작업소 울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단독으로 현상설계에 참여한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다. 패널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요즘의 그래픽 경향은 어떠한지 등 현상설계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당선은커녕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제출 전까지 영광스러움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동료들과 어깨동무하며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떤 흥이 없었다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명해준 사람과 함께 참여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로, 언제라도 엎을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도 열심히 임했다. 적극적으로 주변의 자문도 구했다. 특히 스튜디오101의 김현민 소장의 도움이 컸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패를 다 깠다
심사위원의 성향이나 다른 참가자들의 설계 특성 등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조경작업소 울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재미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장소성 반영에 있어서는 ‘한강’, ‘광나루’라는 단어를 만지작거리다, 대상지의 아주 기초적인 특성인 ‘넓게 트인 곳’에만 집중했다. 동네의 작은 놀이터에서 실컷 달리고, 오르고, 매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넓게 트인 장소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확신하지 않으면 시도하지 않는 성향이 있어서 혁신적 접근을 잘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실험하고 확인한 뒤, 확신이 생기면 설계 언어로 채택하고 조금씩 응용하면서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쌓인 설계 언어를, 우리가 가진 패를 이번 현상에서 다 깠다.
조경작업소 울이 시도하는 실험의 중심은 수평적으로는 길게 이어지고, 수직적으로는 높아서 경험이 끊이지 않고 중력의 저항이 주는 짜릿함이 있는 놀이터,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노는 통합놀이터 구현이다.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를 그려보라고 하면 태양보다 높은 구조물에서 시작하는 미끄럼틀을 그리고, 원하는 놀이터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모든 놀이 요소가 끝없이 이어진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이는 뚝뚝 끊기고 모험하고 싶은 마음은 거절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통합놀이터 조성을 주장해오고 여러 시민 활동을 해오고 있는 터라 우리가 디자인하는 놀이터에서는 조금이라도 통합놀이터가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잇고 모으기, 지형과 구조물의 결합, 모래놀이 공간
놀이터 디자인에서 동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어린이들의 놀이 관찰 결과를 근거로 어린이들이 놀이터 입구에서 제일 처음 어디로 달려갈 것인지, 어떻게 동선이 연결될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가능한 한 동선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도록 한다. 또 어린이들은 외진 곳이나 다른 어린이들을 등지는 곳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놀이 유발 요소를 배치한다. 어린이들은 그네를 좋아하지만 구석진 공간에 놓인 그네에서는 잘 놀지 않는다. 나도 다른 어린이들을 봐야 하고 다른 어린이들도 나를 봐야 한다. 또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눈에는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이렇게 놀다가 저렇게 놀기를 반복한다. 언덕에서 오르기를 하다 친구들이 모여 있는 미끄럼틀로 바로 옮긴다. 그래서 놀이 요소들은 가능한 모여 있고 서로 마주 봐야 한다. 대상지가 워낙 넓고 이용 밀도가 높을 거라 예상되어 이용을 분산시키되 외진 공간이 없고, 서로 등지지 않도록 큰 중심, 작은 중심을 두고 중심에서 놀이가 시작되어 퍼져나가도록 했다.
지형을 올려 언덕을 만들고 가장 높은 곳에서 놀이 구조물과 연결하는 설계 언어는 조경작업소 울의 시그니처다. 그간 통합놀이터를 디자인하면서 발전시켰다. 카브(Carve)가 디자인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멜리스 스토크 파크(Melis Stokepark) 놀이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놀이터는 링 형태의 콘크리트 언덕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경사로와 바닥을 다양한 각도의 경사면으로 연결했다.
휠체어를 타는 어린이들은 이 경사로를 한 바퀴 순환할 수 있고 다양한 각도의 경사면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오늘은 완만한 경사면에서 오르기를 했다면 한 달 후에는 보다 가파른 경사면에서 오르기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한국 놀이터는 면적이 작아 멜리스 스토크 파크의 놀이터처럼 언덕 구조물을 높게 만들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언덕을 높은 놀이 구조물과 결합하는 방식이다. 언덕으로는 휠체어 이용 어린이들의 접근성과 이동성을 높이고, 놀이 구조물에서는 높이 오르고자 하는 어린이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에서는 언덕의 경사로와 놀이 구조물을 놀이 네트로 연결했다. 놀이 구조물로 집중될 수 있는 이용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다른 하나는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마주 보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다. 휠체어를 탄 어린이에게는 모래테이블이 되고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모래밭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반원형의 구조물을 높여서 휠체어를 탄 어린이가 직선 구간에서는 모래놀이 공간을 모래테이블 삼아 놀 수 있고, 곡선을 따라서는 경사로를 두어 어린이들이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 모래 놀이 공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설계 언어는 대만과 스웨덴의 놀이터를 답사하며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통합놀이터를 고민하는 이들 사이에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는 설계 언어인 듯하다. 모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많고 꽤 넓은 면적이 필요해 시도하지 못하다가 현상설계 바로 전 한 초등학교 외부 공간에 조성할 수 있었다. 이때 얻은 디테일에 대한 노하우를 모두의 놀이터에 적용했다.
설계 변경
그네 공간의 탄성 고무칩 포장뿐만 아니라 현상설계 당선 후 협의 과정과 실시설계를 거치며 빠진 것들, 수정된 것들이 조금 있다. 현상설계를 기획하고 수행한 곳과 공사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곳이 달라 소통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공원관리청과 감정적으로 각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모두의 미끄럼틀이라는 이름으로 미끄럼틀 없이 어린이들이 여러 방향에서 자유자재로 미끄럼을 즐길 수 있는 언덕을 제안했다. 표면을 강화 콘크리트로 처리해 미끄럼을 탈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위험하다는 공원 관리청의 지적이 반복되다 결국은 시공 단계에서 잔디밭으로 변경됐다. 일본 놀이터를 답사하며 여러 곳에서 보았기에 확신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설계공모에서 제안했던 그네 공간을 야외 웨딩 공간으로 변경하자는 요구가 있어서 그네 공간을 옮기면서 그네의
수가 줄었다. 입구에 여름철 안개가 나오는 기둥을 여럿 세워 웰컴 놀이 공간을 만들었는데, 공사비 부족으로 빠졌다. 그 밖에 공사비 부족으로 휴식 공간도 변경이 있었다.
이용자의 반응과 놀이터 언어의 확장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는 1호 거점형 놀이터로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추어 개장했다. 서울시의 홍보도 한몫해 이용자가 많았다. 개장 후 열흘간 오천여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이용자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미끄럼틀이 높아서 좋다는 평, 그물이 새롭다는 평, 모래 공간이 넓고 모래 공간에 물이 있어서 좋다는 평, 마음껏 뛸 수 있어서 좋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고 가볼만 한 곳으로 추천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도 긍정적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물놀이대를 해먹 삼아 노는 어린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그물놀이대 기둥 끝에 서는 어린이, 처음 만났지만 협력해서 모래밭에 물길을 내는 어린이, 마냥 오르락내리락 뛰는 어린이 등 예기치 못한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반응이 좋아서인지 신문 기사가 많이 나왔다. 기사 내용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이’, ‘폭넓은 난이도’, ‘찾을 때마다 경험 쌓기’, ‘나이, 신체 발달 정도,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연령별 흥미 요소’, ‘행동 유도’ 같은 말이 담겨 있었다. 이용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인 것도 기쁨이지만 이런 언어가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것도 보람이 된다. ‘어린이가 디자인했다’,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다’, 반대로 ‘놀이 기구 없는 놀이터’, ‘위험한 놀이터’ 같은 단편적이고 선정적 언어가 아니라 놀이의 본질을 담으면서도 실천적인 언어가 더 많이 회자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놀이터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높아지고, 궁극적으로는 놀이터의 질적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놀이도시를
꿈꾸며
김연금·기아미 인터뷰
통합놀이터 분야에 발을 들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 관심을 가진 계기가 궁금하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연금(이하 연) 오래전부터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이하 도시연대)와 일을 많이 했었고, 도시연대는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이하 무장애연대)와 함께 장애 어린이의 놀이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2015년에 대웅제약과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을 받은 ‘무장애통합놀이터 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서울어린이대공원 내에 꿈틀꿈틀 놀이터를 조성하게 됐다. 배융호 전 사무총장(무장애연대)이 통합놀이터란 단어를 처음 쓰고 개념을 확립시켰지만 당시 연구 자료나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한 상태여서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실제 설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탐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장애 어린이의 놀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통합놀이터라는 단어도 일반 명사로 쓰이고 있다.
통합놀이터의 경우 장애 어린이 부모와 비장애 어린이 부모 사이에서 갈등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이들의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나?
연 갈등이 실질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장애인 시설이라는 점 때문에 통합놀이터 조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지자체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주민들이 무조건 통합놀이터라고 해서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장애 어린이 부모 사이에서 요구가 다른 경우는 있다. 휠체어를 타는 어린이, 몸을 가누기 힘든 어린이 등 접근성 중심으로 놀이터를 구성하다 보니 발달장애, 시각 장애나 청각 장애 어린이를 둔 부모의 경우, 본인의 자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장애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아직 통합놀이터가 모두를 아우르고 있지 못한다. 놀이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장애 유형에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현재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여러 유형의 장애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통합놀이터가 등장하면 좋겠다.
3년 전 조성한 홍박공원 통합놀이터(『환경과조경』 2021년 3월호)와 비교했을 때, 달라졌거나 발전된 설계 요소가 있나?
기아미(이하 기) 둘 다 기본적으로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했다. 지형을 올려 놀이 구조물과 연결하는 방식은 그때와 동일하다. 다만 홍박공원 통합놀이터는 공간이 작아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과 시설물 접근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했다. 지형과 놀이 구조물을 정교하게 결합해 해결하려 했다.
큰 면적의 놀이터는 모두의 놀이터가 세 번째다. 2018년 뚝섬 한강공원 강가햇살놀이터 프로젝트 당시 큰 면적의 놀이터는 처음이라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이 참 많았다. 다음에 진행한 성동구 어린이꿈공원도 역시 면적이 컸지만, 앞선 경험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진행했고 넓은 놀이터에 대한 감을 조금 익힐 수 있었다. 그때 깨달은 점을 광나루 모두의 놀이터(이하 모두의 놀이터)
에 반영하고자 했다. 면적이 넓은 만큼 난이도와 놀이 요소가 다양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연 사실 모두의 놀이터에서 대단한 설계 언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홍박공원 통합놀이터의 요소를 거의 다 적용했다. 다만 공간을 넓게 활용하며 뛸 수 있고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등 난이도의 스펙트럼이 촘촘하고 넓어졌다. 장소가 광나루인 만큼 한강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설계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어린이들에게는 한강의 역사를 아는 것보다 실컷 뛰어노는 게 최고다.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대신 드넓은 공간에서 맘껏 뛰어다니는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장소성이 아닐까.
놀이터 조성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이 있다면무엇인가? 반대로 가급적 쓰지 않는 요소가 있다면?
연 어린이의 이동과 놀이의 형태를 먼저 고려한다. 어린이들을 관찰할 때, 놀이터에 온 어린이들이 가장 처음 어디로 달려가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노는지, 다른 놀이로 어떻게 넘어가는지 살펴본다. 가급적 기능이 정해진 놀이 기구는 안 쓰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시소는 어린이들이 응용할 수 없다. 어린이가 기계랑 노는 것이다. 그네나 트램펄린과 같이 몇 명이 점유하면 다른 어린이들은 기다려야 하는 놀이 시설도 안 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공간에 익숙해지고 응용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네, 트램펄린과 같이 빠른 시간 내에 흥미를 유발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미끄럼틀, 시소, 그네는 놀이터의 필수 요건으로 이야기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몇 년전 놀이터에 대한 담론이 적극적으로 생겨날 때는 이런 놀이 기구가 뻔한 놀이터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던 탓에 놓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지만, 경험이 거듭되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조성 후 새롭게 발견한 어린이들의 활동이나 놀이가 있나?
기 모두의 놀이터가 조성된 뒤 딸과 함께 갔는데, 예상과 다르게 노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의 그물놀이에 그물을 이어주는 기둥이 있는데, 그 기둥을 목표 삼아서 올라가더라. 초반에는 올라갈까 말까 하다가, 소심하게 한 발짝 올라가고, 쭈그려 앉아보고, 괜찮으니 올라가 서 보고, 결국엔 기둥을 거점 삼아 오가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나갔다. 의도치 않은 발견이었다. 어린이들은 뛰는 걸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 접근성을 높이려고 만든 언덕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어린이들을 많이 봤다. 열심히 뛰어노는 딸에게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봤더니 뛰고 나서 심장이 쿵덕쿵덕하는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
연 고등학생인 조카에게 ‘어린이들이 무작정 뛰는 이유가 무엇일까’라고 물으니,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신기한 걸까’라고 답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맘껏 뛸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 모두의 놀이터에서는 맘껏 뛰어놀라는 마음으로 언덕길을 만들었는데 어린이들이 알아주었다. 모래놀이 공간에서 물을 쓸 수 있게 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어린이들끼리 서로 협력해 물길을 만들더라.
놀이터 설계 과정에서 어린이나 주민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워크숍이 비전문적 의견을 지나치게 많이 수집해 오히려 설계의 틀을 해치는 요소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기 조경작업소 울(이하 울)에서 주민 참여 워크숍을 처음 접했는데, 시간이 거듭될수록 설계 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흔히 예술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장르이고, 디자인은 대중의 생각을 반영하고 대중의 이용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르라고 한다. 조경가도 디자이너로서 대중의 얘기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논리 구조가 잡힌다. 이용자의 패턴을 파악하고, 공간을 어떤 요소로 활용하고, 누가 쓰는지에 대해 알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필수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워크숍의 내용이 합리적이고 정확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발주처의 의도도 고려해야 하지만, 설계하는 입장에서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의견을 다 수용하기는 힘들다. 적절한 논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하나의 방향 으로 모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연 워크숍 경험이 놀이터를 만들 때 큰 밑거름이 됐다. 물론 주민의 요구가 굉장히 다양해서 그 의견을 조율하고 새로운 시도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꺼리는 이들도 있지만 필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예전부터 주민 참여 커뮤니티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디자이너가 이용 단계가 아닌 만드는 단계에서 설계안을 공개하는 것이 작품을 훼손시키는 일일까. 궁극적으로 공개를 목표로 하는 공공 공간이라면 만드는 단계에서 설계안을 공개하는 게 왜 어려운 일일까. 사회 적 인식을 바꾸고 서로 합의점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설계를 남들이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주민들의 고정 관념이나 익숙한 경험 때문에 설계자의 의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주민들이 받아들여서 실현했지만 의도한 대로 주민들에게 수용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워크숍은 이러한 시행착오를 배우는 과정이다.
워크숍을 하다 보면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기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나게 뛸 수 있고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놀이터다. 공놀이를 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놀이터도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다. 이런 욕구를 반영하려고 한다. 하나의 요소로 어린이들의 재미를 충족시키기보다는 언제든 뛰어다닐 수 있고, 올라갈 수 있고, 끊기지 않고 놀이가 이어지게 하려고 노력한다.
연 어린이들은 무엇이든 수직적인 것에 기어오른다. 오르고 난 뒤에는 뛰어내리거나 시원하게 미끄럼을 타려한다. 또 모든 공중에 있는 것에는 매달려야 하고 모든 구멍은 통과해야 성이 찬다. 움직이는 것은 정지시키려하고 정지된 것은 움직이게 하려 한다. 이러한 기본적 요구를 놀이터에서 충족시켜줘야 한다. 또한 재미가 중요하다. 어린이들은 올라갈 때 화끈함을 느끼지 못하면 재미없어 한다. 미끄럼틀 타는 데 스릴이 없으면 안된다. 매일 왔을 때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요소도 있어야 한다. 오늘은 60cm 정도를 올라갔다면, 내일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난이도의 구조물을 체험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든다.
놀이터 설계 시 설문과 관찰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연령과 특성이 다른 어린이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요령이 있다면?
연 놀이터 워크숍을 많이 하는데 어린이들에게 원하는 놀이터 무엇이고 어떤 놀이터가 재밌는지 물어보면 ‘높은 미끄럼틀 넣어주세요’, ‘그네 탈 때 재밌어요’와 같이 대답한다. 어린이 각자가 가진 경험과 언어의 한계로 인해 시설물 중심의 답변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볼 때 시설물이 아닌 경험 중심으로 답할 수 있도록 질문을 다듬는다. ‘무엇이 좋았니?’ 대신 ‘어떻게 놀았어?’, ‘어떻게 놀 때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본다. 원하는 놀이터에 대한 이미지가 궁금할 때도 ‘어떻게 놀고 싶어?’라고 질문을 던진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감정과 감각을 끌어내기 위해 의성어나 의태어도 많이 쓴다. 어린이한테 ‘그물놀이 넣을까?’, ‘미끄럼틀 넣을까?’가 아니라 ‘원하는 감각이나 느낌이 뭐야?’라고 물으며 다양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제시하면, 점프점프, 아슬아슬 같이 역동적이고 위험을 동반하는 언어를 선택한다
좋은 놀이터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겼을 것 같다.
기 고민이 보이는 놀이터가 좋은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그저 단순히 시설물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설계자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어린이 눈높이에서 어린이의 놀이를 들여다보고, 어린이들을 놀이터에서 어떻게 뛰게 만들지, 어떻게 재미있게 놀게 만들지 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당장 이용자의 요구를 완벽하게 맞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여러 피드백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놀 권리의 차원에서, 도시적·사회적 차원에서 좋은 놀이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연 좋은 놀이터의 기준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뀔 것이다. 지금 좋은 놀이터와 10년 뒤에 좋은 놀이터는 또 다를 것이다. 앞으로는 환경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재료도 자연 친화적으로 바꾸고 자연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놀이터로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고무 포장을 대체할 재료가 나오고, 놀이 환경이 다양해지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어린이 놀이에 대한 이해와 어린이에 대한 관심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놀이터 전문가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기 놀이터라고 정확하게 구획된 공간도 중요하지만, 어린이들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흔히 우리가 앉을 때 사용하는 의자를 갖고도 어린이들은 놀 수 있다. 이처럼 어린이 친화 공간이라고 해서 놀이터만 만드는 게 아니라, 어린이의 놀이를 고민하고 어린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생겨야 한다.
더불어 울의 일원으로서 우리만의 결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우리가 설계한 여러 놀이터를 보고 같은 회사에서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남긴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놀이터 설계를 많이 하다 보니 우리만의 스타일이 생겼고, 그게 다른 이들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결을 언젠가 깨야 할 때도 오겠지만, 우리만의 정체성, 우리만의 결을 만들어가고 싶다.
연 놀이 공간을 도시 차원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출간한 책 『놀이, 놀이터, 놀이도시』(2022)에서도 다채로운 놀이도시 사례를 소개하며 놀이도시의 필요성에 관해 다뤘다.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도 중요하지만, 결국 맘껏 놀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단위에서 놀이환경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 각각의 단위에서 고유한 놀이 철학을 담아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놀이환경계획을 세워야 한다. 단편적으로 놀이터 조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설계 차원에서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좋은 놀이 환경을 만나게 해야 한다. 좋은 놀이터뿐만 아니라 좋은 놀이 환경 구축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
글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
사진 유청오
프로젝트 총괄 및 책임디자이너 김연금
조경 설계 조경작업소 울(김연금, 기아미, 신정우, 조성빈, 김다슬, 심규희)
조경 시공 티시스
모두의 그물놀이 스페이스톡
모두의 그네, 철봉, 미끄럼틀, 암벽오르기, 줄오르기 예건
발주 서울시
위치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351-1 일대
면적 5,777.23m2
완공 2022. 5.
조경작업소 울은 설계, 연구, 공유의 선순환 관계를 지향한다. 커뮤니티 디자인을 작업의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소외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 다양한 사람과의 네트워킹을 지향하며, 어린이 친화 도시, 걷고 싶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실험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김연금은 약수동에서 커뮤니티 디자인을 지향하는 조경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어린이공원에 관심을 가졌으나, 조금씩 놀이, 어린이, 장애인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어린이, 장애인 공간은 결국 인권의 문제임을 매일매일 깨닫고 있다.
기아미는 2013년부터 조경작업소 울에서 주민과 어린이를 만나며 조경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디자인과 주민 의견, 개인과 공공, 공간과 활동의 균형을 중요시한다. 안전과 모험의 사이에서 모든 어린이가 즐거운 놀이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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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설계 자격제의 문제와 대안
현행 조경설계 자격제의 한계와 문제_이상수
새로운 조경설계 자격제 도입의 필요성_안세헌
영국과 독일의 조경사 제도_이윤주
미국의 조경사 제도_이해인
조경사 자격 제도 제안_이남진
좌담: 미래 세대를 위한 조경사 제도를 전망하다_박명권‧김선미‧김태경‧서영애‧이영주‧이정섭
조경 분야는 조경기사와 조경기술사 중심의 자격 제도 속에서 난맥을 겪여왔다. 더불어 조경기본법 없이 건설기술진흥법과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에 의거해 수행되는 여러 사업에서 조경설계가는 여러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5월 13일 국토교통부는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조경설계 자격 및 면허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경사 제도(가칭) 추진을 위한 연구 및 조경사 제도의 효과적 운영 관리와 자문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고, 조경사 법령 제정에 따라 건설산업 및 설계업 등록 관련 제도에 대한 제도 개선 협의를 병행하며, 기존 조경기술사 개편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본지는 새로운 조경사 제도를 모색하는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한다.진행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