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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FLA 2022] 기조강연
    전환기 냉전 경관의 변화 _ 정근식(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냉전 시대에 만들어진 경관을 보존하고 해체하는 과정은 한국 경관에 대한 이해와 접근 그리고 미래 계획에 있어 중요한 자원이다. 경관은 정치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를 담고 있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국의 경우 냉전 경관이 휴전선 경계에서 땅, 바다, 강 곳곳에 상징으로 남아있다. 냉전 경관의 시작점은 한국 전쟁의 폐허다. 버려진 공간과 건물은 냉전 경관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1968년 강철 울타리와 철조망이 경계를 따라 놓이고, 1970년대 연평도에 용치가 설치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재건촌과 통일촌의 건설, 베트남전 이후 연달은 땅굴 발견에 따른 국가 안보 강화까지, 냉전 경관은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지하의 보이지 않는 것, 심리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즉, 냉전 경관은 통합적 개념이다. 한편 최근 냉전 경관에 대한 관광이 늘어나며 상징적 경관으로 변모하고 있고, 냉전 경관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평화 관광의 확대이며, 북한과 소통이 계속되면서 유해 발굴이 시작되기도 했다. 오늘날 냉전 경관은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최근 개관한 DMZ 박물관은 냉전 경관의 변화라는 의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예술에서 DMZ에 관심을 보이며 보안과 제한이라는 개념이 미적으로 재현되고 있기도하다. 이에 더해 국제적 상징성을 지닌 판문점과 2018년 문화재로 등록된 GP 포스트 등이 바뀌는 시선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전환기 냉전 경관의 인식 변화는 휴전, 베트남전 이후, 남북 대화라는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앞으로 냉전 경관의 인식 변화를 계속 살펴보면서 이 공간이 우리 국토의 전체 경관에 미칠 영향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정리 신명진 조경이 이끄는 도시계획 _ 앙리 바바(Henri Bava, 아장스 테르 대표) 기후변화는 이론이나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경가가 총괄자로서 도시계획 전반을 이끌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이론이 있지만, 그 이론이 제시하는 것 이상으로 조경가의 작업은 도시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즉 조경이 이끄는 도시계획이다. 베르사유의 경우 정원과 도시가 함께 고안된 사례다. 앙드레르 노트르(André Le Nôtre)는 이를 위해 다학제 팀을 구성해 새로운성과 궁원을 조성하고, 건축과 수공간을 조직하는 틀로 경관을 차용했다. 1859년, 나폴레옹 3세는 파리 재건축을 시작했다. 루이–쉴피스 바레(Louis-Sulpice Vare)는 볼로뉴 숲을 공공을 위한 정원으로 탈바꿈시켰고, 아돌프 알팡(Adolphe Alphand)은 파리 도시 조직을 바꾸기 위해 도시 내 프롬나드를 통해 대형 녹지를 연결했다. 이후 건축 중심의 모더니즘 도시계획이 성행했지만, 그럼에도 소셋 공원(Sausset Park)과 보르도 부두(Dock of Bordeaux) 프로젝트를 이끈 미셸 코라주(Michel Corajoud) 같은 조경가가 도시계획에 참여해 일상을 녹여냈다. 그의 업적은 오늘날 코라주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그의 제자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낭트 섬(Ile de Nantes) 프로젝트 총괄 리더인 알렉산드르 체메토프(Alexandre Chemetoff), 사클레 대학 부지(Parc Campus of Saclay) 총괄 리더 미셸 드비인(Michel Desvigne), 에코–쿼티어 플로버(Eco-quartier Flaubert) 총괄 리더 재클린 오스티(Jackquelien Osty), 나와 함께 아장스 테르(Agence Ter)를 설립한 미셸 오슬레(Michel Hössler)와 올리비에 필립(Olivier Philippe) 모두 코라주의 아이들로 도시계획을 이끌고 있다. 조경가는 ‘조경이 이끄는 도시계획(landscape-led urbanism)’을 통해 우리의 행성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결국 조경가가 실천해야 할 것은 경관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볼테르가 말했 듯, “우리는 정원을 가꿔야 한다.” 정리 신명진 탄소 배출량을 고려하는 조경설계 _ 크레이그 포콕(Craig Pocock, 베카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나라마다 경관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 세계 여행을 시작했다. 물이 부족한 사막이 대부분인 요르단에서 일하며 조경에 대한 인식이 나라마다 천차만별임을 알게 됐다. 더불어 조경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이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인지했고, 때로는 경관과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뉴욕에서 일하며 탄소 배출 이야기를 접했다. 조경가 한 명이 작업할 때 배출하는 평균 탄소량은 연간 1,100톤에 달한다. 이는 조경가가 하는 작업이 가진 생태적 가치에 대한 재논의가 절실함을 의미한다. 조경가가 사용하는 소재와 그 사용 방법 등에서 많은 탄소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설계 방식 자체에 탄소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경관을 설계하고 조성하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도시를 새롭게 바꿀때마다 수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해 공간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변화가 과연 필요한지 확인함으로써 개입을 최소화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설계 방식에 따라 경관을 관리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녹지를 사랑하지만, 녹지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샌 안토니오의 하드버거 공원(Hardberger Park)을 보면, 잔디밭이 없다고 해서 공원의 활용도가 낮아진다고 보기 어렵다. 캠핑장, 놀이터, 커뮤니티 공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경에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우리에게 탄소 발생과 관련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2. 학계와 업계가 함께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3. 탄소 저감을 국제적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시킨다. 4. 설계 언어에 ‘탄소의 켜’를 추가한다. 5. 도시 재조성 속도를 낮추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경관을 만든다. 6. 경관 관리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 7. 시장 경쟁을 통해 조경 분야의 탄소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8. 탄소 배출 문제를 최우선 해결 사항으로 삼는다. 9. 자유 시장 가치를 이용해 조경 분야가 배출하는 탄소발자국을 줄인다. 10. 설계 분야에 기후변화를 다루는 어워드와 상을 제정한다.정리 신명진, 김모아 조경으로 말하기: 공통 언어로서 조경을 위한 중간 영역의 실천 _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 개발 지향적 도시 건설 과정에서 타자인 자연을 대변해온 조경은 고유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가. 최근 자연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건축과 도시 전문 분야뿐 아니라 예술과 대중 문화도 유행처럼 자연과 식물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경이 다루는 풍경이 현대 디자인과 문화를 아우르는 공통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도시 복합 생태계의 작동 기작과 조경에 내재된 어휘와 문법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녹색을 향한 대중적 욕망은 한 장의 이미지로 소비될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약자는 강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강자의 질서와 문화에 동화되는 가운데, 약자는 그들 고유의 언어를 잊기 쉽다. 우리는 세계가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일 때까지 조경 언어 고유의 의미와 문화를 (재)생산하고 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중간 영역에만 존재하는 매체다. 풍경은 우리 삶을 관통하며 사유를 규정하는 모국어이자 미래 도시 분야의 공통 언어로, 새로운 세계와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공통의 가치를 지향하는 새로운 메타 언어가 될 수 있다. 나는 조경 작업에 내재한 가치와 비전을 대중적 언어로 전달하는 설치 작업와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조경의 핵심 가치를 시간의 기록(archiving time), 땅의 존중(respecting ground), 일상의 축복(celebrating everyday), 유산의 창조(creating heritage) 라는 네 가지 개념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개발 지향적인 도시에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견인할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은 결국 대중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을 움직여야 만들 수 있고,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대중의 인식이다. 대중의 자연과 도시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 조경가가 하는 일들의 가치를 보다 쉬운 대중적 언어로 번역해 소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조경의 이름으로, 조경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작은 실천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더 큰 변화를 견인하는 동력을 만들 수 있다. 조경을 언어로 실천하는 일, 궁극적으로 대중의 마음과 태도를 변화시키는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글 김아연 도시공원의 가치와 미래 역할 _ 캐서린 나이젤(Catherine Nagel,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 전무이사)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City Parks Alliance)는 1990년대 쇠퇴하던 미국 도시공원을 활성화하고 재정을 정비해 공간의 활용성을 확장하고자 만든 국가 단위의 조직이다. 도시공원의 재활성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원을 보존 및 발전시키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올해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의 탄생 200주년이다. 옴스테드가 활동한 19세기 미국 동부는 이민자 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사람들의 물리적, 정신적 건강을 뒷받침해줄 공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다. 옴스테드는 이 공공 공간을 유연하게 설계해 다양한 활용 방법을 꾀했다. 그는 ‘에메랄드 네클러스(Emerald Necklace)’라 불리는 공원 시스템을 통해 도시 인프라 차원의 녹지 체계를 구축하고, 대규모 녹지와 녹지를 잇는 녹지대 ‘파크웨이’를 만들어 미국 도시를 발전시켰다. 최근 팬데믹으로 도시공원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고, 조경가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공원은 아주 오래전부터 도시민의 정신 건강을 책임져왔다. 도시위기 시대의 공원은 사람들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쓰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던 때에도 자연을 즐기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적극 활용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도시공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원 예산 지원이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원은 도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팬데믹은 우리가 도시를 설계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공원 옹호론자가 되어야 하며, 조경가의 역할이 커지는 데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정리 신명진, 김모아 시와 같은 경관, 조경가의 역할 _ 아드리안 회저(Adrian Geuze, 2022 제프리 젤리코 상수상자, West 8 대표) 처음 조경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새로운 것을 실험하고, 상상하며 시를 쓰듯 경관을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실현가능성을 생각하기보다 상상 속 경관과 환상을 모델로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미국 찰스타운의 이끼 작업, 골프장을 식물원으로 탈바꿈시킨 휴스턴 식물원, 프랭크 게리와 함께 작업한 마이애미 해변가의 음악 학교와 주차장, 박물관 그 자체가 경관을 이루는 그랜드 이집트, 캐나다의 토착 식물의 목재로 만든 토론토 워터프런트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토론토 워터프런트는 대상지의 여건과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적극 활용한 프로젝트다. 경관의 시스템과 엔지니어링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장식적 요소와 문화적 켜를 더해 시적 경관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디자인은 기후변화, 토양, 수질, 생태계 자생 능력 등을 고려한 엔지니어로서의 소양을 바탕으로 시작해, 자연과 문화의 융합 그리고 유머를 통해 완성된다. 또한 조경가는 공간을 꽉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독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유를 남겨두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리 신명진, 김모아 ‘조경가처럼 생각하기’는 어떻게 지구를 구원하는 데기여할 수 있는가 _ 김정윤(오피스박김 대표, 하버드 GSD 교수) 매해, 매 계절마다 우리가 직접 몸으로 겪고 있는 기후의 변화는 이제 동의를 이뤄내려는 노력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정도로 명확해졌다. 쓰레기 매립을 줄이기 위해 열심히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고,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조경가라 부르기 위해 면허가 필요한 전문가로서 우리는, 전인류 공통의 위기인 기후변화의 심화 속도를 늦추고 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만의 방법론과 지식으로 기여해야 한다. 조경가는 인접한 다른 전문 분야와 스스로를 차별화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뒤 실제 그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를 통해 훈련하며 전문성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미국의 지질학자이자 교육자인 피터 그로프만(Peter Groffman)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조경가는 내가 연구하는 주제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언제나 조경가와 대화하고 일하는 것은 즐겁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경가는 사회로부터 실행하기를 기대받는 전문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조경가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사람들인가. 먼저, 조경가는 작은 정원에서부터 대륙의 스케일까지 다룰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내가 오피스박김의 프로젝트와 하버드 GSD의 설계 스튜디오를 통해 10평짜리 정원부터 시베리아 대륙의 미래까지 다루듯,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부터 한 지역과 국가, 대륙의 단·장기 공간적 미래를 계획하는 일 모두 조경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실행될 수 있고 실행되어야 한다. 둘째, 조경가는 공간을 수평적으로 다루며 동시에 수직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보통 실무에서는 1~2m 깊이의 단면만을 다루지만,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지하 100m, 지상 1,000m까지 우리의 수직적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경설계가 지하수, 흙, 탄소의 흐름, 공기의 질을 비롯해 바로 지금 우리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후 요소에까지 닿을 수 있다. 오피스박김의 양화한강공원 프로젝트가 여름철 범람 후 펄의 이동을 조절해 유지·관리의 수고를 덜고 호안에 새로운 생태계 형성을 유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치밀한 단면 설계 덕분이었다. 셋째, 위의 두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조경가는 과학자, 기술자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도록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 하버드 GSD 설계 스튜디오에서 보스턴의 버려진 지하철 기반 시설을 기후변화 시대의 새로운 유형의 공공 장소로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은 수리엔지니어, 지질학자, 도시역사학자, 생태학자와의 연구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조경적 방법과 지식을 매일의 프랙티스와 연구를 통해 사회에 보여주고 공간으로 실현시킨다면, 조경가는 지구를 기후변화로부터 구원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정윤 리:바이탈라이징Re:vitalising 디자인 프랙티스 _ 질리언 월리스(Jillian Walliss, 멜버른 대학교 교수) _ 하이켄 라만(Heike Rahmann, 로열 멜버른 공과대학교 교수) 조경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문화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디자인이 균질화되고 정체성이 상실되는 과정을 목격했다. 『월드 랜드스케이프 프론티어World Landscape Frontier』의 에디터 데미안 홈즈Damian Holmes는 올해 초 조경이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아졌지만 디자인 접근 방식을 하나로만 수렴시켰다는 후미아키 타카노(타카노 랜드스케이프 플래닝 대표)의 견해를 공유했다. 조경 디자인 방식은 이제 맥락과 문화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툴킷이 되었다. 어쩌면 조경가 스스로 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똑같은 교육과 정책에 따라 문화적 차이, 특히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반성이 없는 상황에서 조경설계가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서양 양식 위주의 획일적 조경설계가 나타나고 있다. 표준화된 해결책과 툴의 적용을 장려하는 작업 방식, 특정 개념화 방법을 강조하는 현재의 방식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러한 프레임은 작업에서 출연한 지식을 이해하는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제한하는 프로페셔널 어워드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어워드의 규정은 설계자가 특정 문화적 영향을 감소시킨 일반화된 유형 또는 규모 범주로 설계 접근 방식을 설명하도록 권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대회의 학생설계공모전 심사를 진행하면서도 논리적인 분석 방법으로 만든 작업들이 매우 유사한 결과물을 보이고, 문화, 창의성, 개성이 결여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머스 올스(Thomas Oles)와 피비 릭워(Phoebe Lickwar)는 “조경가, 왜 그렇게 심각한가요(Why So Serious, Landscape Architect)”라는 글에서 “조경가가 버즈킬(buzz-kill) 직업이 되어 가고 있다”며 “수리하고, 다시 연결하고, 되찾고, 복원하고, 재생하고,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탄식했다. 실제로 우리는 수업에서 학생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 하지 않고 창의성과 호기심 없이 조경설계를 정해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다시 조경 디자인 프랙티스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다양성을 받아들인다. 특히 조경 직능이 덜 발달된 국가와 지역에서 중요하다. ‘국제’ 전문가를 경계하고 낯선 곳의 새로운 가치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직업과 교육에 관한 세계적 권한을 갖는 게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둘째, 학자들이 연구 기관을 벗어나 조경 작업을 이해하고 문서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작업에 참여하게 한다. 현재 실무와 학계는 평행선처럼 놓여 있다. 학계가 디자인 관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실무자와 협력해 복잡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잘 실천한다면 문화적 작업으로 이해되던 조경의 가치와 역할을 되찾고, 미래 세대의 조경가는 수동적 문제해결에 대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다양한 방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정리 김모아 생태도시 담양 _ 이만의(한국온실가스감축재활용협회 회장) 교외의 작은 도시인 담양군은 UN의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따라 계획된 생태도시다. 현재 담양은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로드맵’에 따라 담양 탄소중립 선언문과 조례 제정, 점심시간 전기 소등, 컴퓨터 절전 모드 생활화 등 생활 속 작은 실천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담양의 사례는 기후변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도시 정책에 교훈을 준다. 생태도시 담양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모델로서 몇 가지 성공 요인과 한계점을 시사하는데, 이를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역 혁신과 시스템 전환을 촉구하는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 농촌 제도의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책만큼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식도 중요하다. 단체장의 철학과 정책 비전,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기회로 삼는 능동적인 자세에서 지역 혁신과 시스템 전환의 계기가 비롯된다. 둘째, 농촌 시스템 혁신의 핵심 요건은 사람이다. 생태도시로의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주도력 있는 공무원, 정치인, 지역 지도자, 전문가와 이들 간의 거버넌스 구축이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다. 셋째, 지역 혁신의 장애가 되는 요소를 도출해야 한다. 비합리적인 정치적 영향력과 이해 충돌은 지방자치제의 역기능으로 손꼽힌다. 이와 더불어 중앙정부의 획일적 계획에 의한 하향식 사업 추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하고, 축적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상향식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정책을 연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끌어나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조직, 시스템, 재정은 혁신에 필요한 주요 요소다. 장기적 측면에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정리 김모아
    • 김모아
  • [IFLA 2022] IFLA 2022 학생샤레트·학생설계공모전, 제19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IFLA 2022 학생샤레트 주최 IFLA 2022 조직위원회 진행 기간 2022. 8. 28. ~ 8. 30. 시상 내역 1등 상금 1,500 USD 2등 상금 1,000 USD 3등 상금 500 USD 후원 나바 폴만–게르손 재단(Nava Polman-Gerson Foundation)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첫 행사로 학생샤레트(Student Charrette)가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개최됐다. 독일, 브라질,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스, 인도네시아, 케냐, 대한민국 등 8개국 26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학생샤레트의 주제는 광주비엔날레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광주 시내에 설치된 ‘광주폴리(Gwangju FoLLy)’다. 광주폴리는 공공 시설물을 도시 곳곳에 설치하여 건축과 예술을통해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로 네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다. 참여 학생들은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조경이라는 매체와 방법을 통해 광주폴리를 새롭게 해석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학생샤레트는 세 개 스튜디오로 나눠 진행됐다. 나성진(서브디비전 대표)과 전진현(부산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MRDO 대표)이 튜터를 맡은 스튜디오 1은 대한민국 광주의 맥락 속에 자리 잡은 광주폴리를 다른 맥락의 대상지에 옮겨 새롭게 상상했다. ‘광주폴리가 독일 베를린 시내에, 케나의 대초원에, 브라질의 원시림에 놓인다면 어떤 의미를 갖고 어떻게 작동할까’라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스튜디오 2의 튜터는 백종현(HEA 대표)과 최영준(서울대학교 교수, 랩디에이치 대표)이 맡았으며, 광주 구도심에 위치한 광주폴리를 광주의 신시가지인 첨단지구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새로운 공간과 도심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 첨단지구에 구도심을 재생하기 위한 폴리가 만들어진다면 그 역할과 형태가 달라질 수 있는지 모색했다. 김창국(호남대학교 교수)과 이진욱(한경대학교 교수)이 튜터를 담당한 스튜디오 3은 지금의 광주폴리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해서 다른 폴리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원래의 폴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폴리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다. ...(중략)... IFLA 2022 학생설계공모전 주최 IFLA 2022 조직위원회 공모 기간 2022. 4. 18. ~ 4. 29. 시상 내역 분석계획 부문(3점) GROUP HAN Prize for Analysis and Planning 상금 1,500 USD GROUP HAN Commendation Award for Analysis and Planning 상금 1,000 USD IFLA 2022 Organizing Committee Special Award for Analysis and Planning 조경설계 부문(3점) GROUP HAN Prize for Landscape Design 상금 1,500 USD GROUP HAN Commendation Award for Landscape Design 상금 1,000 USD IFLA 2022 Organizing Committee Special Award for Landscape Design 응용연구 부문(1점) GROUP HAN Prize for Applied Research 상금 1,500 USD 후원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IFLA 2022 학생설계공모전(이하 학생공모전)은 1987년 처음 개최된 이후 지금까지 매년 열린 행사로, 조경계의 권위 있는 국제 학생 공모전 중 하나다. 공모전의 주제는 생태적 위기, 문화 유산의 파괴, 사회적 불평등, 전반적인 인간과 환경의 문제 등을 다루며, 대부분은 해당 주최국이 제시한 대회의 주제를 따른다. 이번 학생공모전 주제는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주제인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와 동일하다. 2022년부터 분석계획(analysis and planning), 조경설계(landscape design), 응용연구(applied research) 세 부문으로 세분됐다. 기존 공모전에 해당하는 조경설계 부문에 분석계획, 응용연구가 추가된 것이다. 조경가의 역할과 의미가 설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범위의 계획과 연구까지 확장되고 있고, 이러한 다양한 접근을 학생들에게 권장하려는 취지다. 총 138개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분석계획 부문 3점, 조경설계 부문 3점, 응용연구 부문 1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각 부문의 1등작을 소개한다. ...(중략)... 제19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주최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공모 기간 2022. 7. 5. ~ 7. 7. 시상 내역 대상(1점) 국토교통부장관 상장, 상금 5백만원 금상(1점) 늘푸른재단 이사장 상장, 상금 3백만원 은상(2점) 한국조경학회장·한국조경협회장 상장, 상금 각 2백만원 동상(3점)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장·영남지회장·호남지회장 상장, 상금 각 1백만원 장려상(5점) 환경과조경 발행인 상장, 부상(환경과조경 1년 정기구독권) 입선(10점) 한국조경학회장 상장, 부상(도서출판 한숲 단행본) 후원 늘푸른 제19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이 2022년 8월 31일,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전시홀에서 열렸다. 이번 공모전 주제는 세계조경가대회 주제와 동일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였다. 근대 조경은 산업 도시의 도시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원을 조성하면서 공공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터전은 19세기와 다르게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 팬데믹, 양극화, 건강 등의 여러 문제를 조경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가 당면 과제다. 조경이 복잡다기한 이슈에 실천적 해법을 제시할 때 전문 분야로서 대사회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 총 126개 출품작 중 본상 7점(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2점, 동상 3점), 입상작 15점(장려상 5점, 입선 10점)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다음에는 대상작을 소개한다. ...(중략)...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이수민
  • [IFLA 2022] IFLA 기념정원과 설치 작품
    IFLA 기념정원,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 2021년 8월 30일, 산림청은 ‘IFLA 기념정원 조성 설계공모’를 개최했다. 대상지는 국립세종수목원 사계절 온실 앞 전시원 일대다. 공모에 초청된 고정희(에지고크리거 대표)·송민원(엠디엘 소장), 김봉찬(더가든 대표), 박승진(디자인 스튜디오 loci 대표), 유승종(라이브스케이프 대표), 송지은·로리 듀수아르(케네디 송 듀수아르 대표)는 ‘정원 유산’이라는 주제에 맞춰 계획안을 제출했으며, 유승종의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사람의 정원, 자연의 정원’은 생명들의 세계를 가까이에서 개입하며 관찰할 수 있는 정원이다. 자연의 정원은 사람이 개입하지 않은, 오래된 깊은 자연을 지향한다. 무분별한 침범으로 작은 생물의 세계가 파괴되지 않도록 세심한 지형 설계와 식재 계획을 세웠다. 물이 서서히 빠지는 작은 습지, 물이 오랫동안 고여 있는 작은 연못, 안개구유, 스트리밍 폴(streaming pole) 등을 통해 다채로운 풍경이 형성됐다. 안개구유는 100마이크로미터의 작은 물 입자로 습도를 관리할 뿐 아니라 서식지 미기후를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중략)... IFLA 기념 설치 작품, ‘태양의 뜨개: 골바람이 낳은 딸’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전시홀과 다목적홀 사이 로비에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황지해(광주환경미술가그룹 뮴 대표)의 ‘태양의 뜨개: 골바람이 낳은 딸’이 전시됐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개최를 기념해 조성된 이 설치 작품은 재활용 탄화목, 전라도 흙, 일엽초, 바람꽃 구절초, 연잎꿩의다리, 길마가지로 식물의 지역성을 향한 존중과 자연과의 공생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중략)...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이수민
  • [IFLA 2022] 문화를 담은 조경 아드리안 회저 인터뷰
    2022년 광주에서 개최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에서 West 8의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가 제프리 젤리코 상(Sir Geoffrey Jellicoe Award)을 받았다. 제프리 젤리코 상은 IFLA가 우리 사회와 환경의 복지에 기여하고 조경학과 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대회 첫째 날인 8월 31일에는 시상식이, 9월 1일에는 아드리안 회저의 기조 강연이 진행됐다. 그는 그동안 West 8이 수행해온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발표가 끝난 뒤, 좀 더 심층적으로 그의 설계 철학과 조경에 대한 태도를 듣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조성되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 당신이 꼽는 가장 의미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가족 중에 누가 가장 좋은가’라는 물음과 비슷하다(웃음). 최고의 프로젝트를 하나만 꼽기는 어렵지만, 마음이 더 가는 프로젝트는 있다. 용산공원도 그중 하나다. 오늘 강연에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20년 넘게 진행해온 에인트호번 필립스 캠퍼스(Strijp S in Eindhoven), 주빌리 공원(Jubilee Gardens)도 매우 아끼는 프로젝트다. 오래 지속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과정이 순탄치 못한 경우가 많아 설계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간다고 표현한 건 아닌가.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내가 낳은 아이와 같다. 부모로서 아이를 보호하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나를 기른다. 아이는 독립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공원 프로젝트에도 자신만의 대사 과정(metabolism)이 있다. 프로젝트는 설계가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지만, 부모의 교육을 넘어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듯 프로젝트도 진화해 새로운 상황과 환경으로 나아간다. 조경가는 이 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제어할 수는 없다.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 자꾸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나의 성장을 돕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프로젝트가 나의 마음과 감정에 강한 흔적을 남겼다. 용산공원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0년 넘게 설계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 실현되지 못했고, 그동안 한국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용산의 미래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 각하나. 정치적 지형 변화가 공원 조성 과정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지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공원은 아름다운 세라믹 화병이 아니다. 공원은 바뀌어 나가는 사회와 논쟁의 산물이다. 정치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비전, 생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이 잘 작동한다면 용산공원은 한국의 문화와 경관이 집약된 장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남산과 한강을 연결하는 능선의 회복과 이를 가능케 하는 호수, 지역 커뮤니티와 방문객을 위한 연중 이벤트, 여러 문화적 시설의 도입과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용산공원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최근 시민 참여가 설계 과정에서 필수적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태도는 필요하지만, 때로는 설계가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기도 한다. 시민 참여를 꼭 필요한 과정이라 여기는지 궁금하다. 21세기에는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주민과 밀접한 환경에 놓인 프로젝트의 경우 더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시민 참여에 집중하다가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진 경우도 많다. 따라서 현명한 방식으로 시민 참여 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용산공원을 예로 들면, 이용자 그룹을 다양하게 고안한 뒤 이들의 참여를 이끄는 방식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음식, 어린이 교육, 참전용사를 위한 메모리얼 공간, 문화/예술 이벤트 등 여러 주제를 도출하고, 각 주제에 맞는 이용자 그룹을 모아 그들의 의견과 기술, 노하우를 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참여의 성과물을 공원 설계에 반영하기 용이할 것이다. 시민 참여 이야기를 하니, 막시마 공원(Maxima Park)의 일본식 목재 다리가 떠오른다. 네덜란드식 공원 한가운데 일본식 교량을 지은 이유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막시마 공원도 긴 시간 진행한 프로젝트 중 하나다. 대부분의 공공 프로젝트가 그렇듯 예산 부족으로 설계안대로 공원을 만들지 못했다. 공원 내에 수로가 있는데, 그 위를 오갈 수 있게 하는 다리가 필요했다. 이미 주민 단체에서 다리 설치를 요구한 상황이었지만 정치인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결국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지역 장애인 공방을 발견했다. 공방의 디렉터와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간단한 구조의 목재 다리라면 이들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일본식 목재 다리다. 장애인 공방이 공원의 다리를 만든다고 하니 정치인도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 다리의 수가 12개로 늘어났다. 매우 성공적인 시민 참여의 사례다. 용산공원 프로젝트를 하며 한국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문화를 담는 것에 반감이 크더라. 네덜란드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지만, 우리는 실용적인 측면을 조금 더 염두에 둔다. 다리 조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재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을 택해야 가장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했다. 그 뒤 네덜란드식 공원에 일본식 다리를 도입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았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면 반 고흐가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이 있다. 그중 이 목재 다리를 그린 그림을 찾았다. 반 고흐의 그림에 담겨 있으니 일본식이지만 이 또한 네덜란드의 문화이자 자산일 수 있다고 시민들을 설득했다. 전 세계의 조경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디자인, 포용적 디자인의 중요성 등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러 가치 중 당신은 무엇을 가장 우선시하나. 나는 엔지니어로서 교육 받았고, 내 안에는 바다를 막아 땅을 개간한 네덜란드인의 DNA가 있다. 모든 프로젝트는 이러한 나의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흙과 물을 다루고 생태계의 성장과 진화를 만드는 일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 측면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조경가가 만든 자연에는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한다. 강연에서 보여준 프로젝트들은 웃음, 따뜻한 마음, 의미,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공원에는 사람들의 인식, 욕망, 유머, 쇼 등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원에서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조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조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바쁜 도시 생활을 하면서 도시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도시는 매우 설명적이다. 교통, 유틸리티, 심지어 공공 공간까지도 그렇다. 각각의 용도가 있고 그에 맞는 기능을 요구하며 적합한 활동을 하도록 설명이 곁들어져 있다. 조경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공간에 반하는 것, 즉 해독제가 되어야 한다. 조경가는 자유를 주는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공간, 사람들이 직접 활용법을 만들어내는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스스로의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고, 먹고 마시는 원초적 행위를 영위하며, 포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간의 진정성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 더 나은 조경은 정해진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탐구하고 활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 최혜영
  • [IFLA 2022] 라운드 테이블
    밀레니얼 연구자 라운드 테이블 유엘씨프레스(ULC Press)는 9월 1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김대중컨벤션센터 컨퍼런스룸 206호에서 밀레니얼 연구자 라운드 테이블을 열었다. 행사의 공식 명칭은 ‘글로벌 도시 공감: 밀레니얼 연구자 네트워킹(Global Urban Thinker: Roundtable Discussion and Networking for Millennial Researchers)’이다. 6월 말부터 구글 폼으로 참가자를 모집했고 세계조경가대회 및 유엘씨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했다. 배정받은 컨퍼런스룸은 50명 이상을 수용할 만큼 넉넉했다. 밝고 훤한 느낌의 복도에서 문으로 들어오면, 조도를 낮춘 사이 공간을 지나 은은하게 밝힌 ‘ㅁ’ 형태의 테이블을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했다. 해외 참가자는 그웬돌린 쿠스터즈(Gwendolyn Kusters, 독일), 틸 니골라(Teele Nigola, 에스토니아), 미칼 자르제키(Michal Zarzeki, 폴란드/영국), 앙헬로 파올로 모굴(Angelo Paulo Mogul, 필리핀), 메이–이 테어(Mei-Yee Teoh, 말레이시아)였다. 모두 실무 경험이 상당한 설계·연구 경력자였다. 한국에서는 손은신(건축공간연구원), 서정완(본시구도), 제갈갑성(IFLA 2022 학생 서포터즈)과 박영석·신명진·임한솔(유엘씨프레스)이 참석했다. 이 밖에도 열 명 내외의 사람들이 뒤편에 마련된 일반 관객석을 오가며 라운드 테이블을 자유롭게 감상했다. 신명진이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의 동시통역을 맡았다. ...(중략)... 글: 박영석, 신명진, 임한솔(ULC Press) 교육자 라운드 테이블 교육자 라운드 테이블은 조경 교육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로 다양한 국가의 교육자와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재호(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유진(강릉원주대학교 교수), 하이리예 에슈바흐 툰차이(이스탄불 공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았으며 여러 교육자들의 경험이 공유됐다. 특히 팬데믹 시대의 교육 방식으로 자리 잡은 비대면 수업의 장단점, 조경의 영역 및 확장성과 관련해 스페셜리스트 혹은 제너럴리스트로서 조경가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루어졌다. 김태경(강릉원주대학교 교수)은 환영사에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큰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지난 50여 년간 시행 속에서 겪은 착오를 통해 교육 과정의 수정과 보완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은 학생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보다는 교육 과정의 개선점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며, 학생들은 특히 평가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평가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략)... 글: 김유진 학생 라운드 테이블 전 세계 조경학과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꿈과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학생 라운드 테이블은 한국 16개 대학교 조경학과 학생회장들이 모여 만든 한국조경학생연합(Korea Landscape Architecture Students Association)이 주최했다. 한국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필리핀, 터키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 30명이 참여했다. 참여의 벽 프로그램을 통해 자유롭게 조경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몸으로 말해요 등 다양한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서로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서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지속적인 네트워킹을 기대하면서 행사를 마무리했다. ...(중략)...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금민수
  • [IFLA 2022] 스페셜 세션
    건축공간연구원 스페셜 세션 첫날 오후 2시 이영범 원장(건축공간연구원)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전문가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세션 주제는 ‘기후변화와 팬데믹 이후의 도시공원과 공공 공간’이었다. 전 지구적 위기라고 할 만큼 기후변화가 극심해진 가운데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대대적인 사회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 약 70%의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는 가운데, 코로나 이후 도시에서 공원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도시의 새로운 핵심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도시공원 및 공공 공간에 대한 사례와 미래의 도시공원을 위한 발전 방향과 전략을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공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강연자 제프 호(워싱턴 대학교 교수)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도시공원 아젠다’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건강, 커뮤니티, 정책 등 도시공원을 둘러싼 여러 가지 주제와 뉴욕의 도미노 공원 등 관련 사례를 소개하며 팬데믹 이후 도시공원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두 번째 강연자 박소현(코네티컷 대학교 교수)은 ‘미래 도시공원을 위한 혁신적 사고’를 주제로 발표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도시공원의 필요성과 더불어 조경과 조경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세 번째 강연자 이은석(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후위기 시대 도시의 회복 탄력성 제고를 위한 그린 인프라 활용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GIS 로직을 이용한 그린 인프라 설계 기법을 소개하며, 도시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그린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은석은 “그린 인프라는 기술적 영역과 개념적 영역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고 있어, 정책부터 기술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후변화 적응에 활용이 용이한 해법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브루노 마르케스(웰링턴 빅토리아 대학교 교수)가 토론의 좌장을 맡았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주제에 대한 팬데믹이 조경에 미친 영향과, 앞으로 조경가의 역할, 현시대의 도시공원 환경 등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중략)... 자료제공: 건축공간연구원, 이은석 문화재청 스페셜 세션 둘째 날 오후에는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스페셜 세션이 열렸다. 최근 문화재 보전에 대한 이슈가 다원화되고 특히 조경 분야와 관련성이 높은 정원 유산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세션에서는 국제적인 보전 동향과 영국, 일본 등의 현장에서 보전 관리에 대한 실천 사례가 공유됐다. 행사는 최원일(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 국장)의 개회사로 시작했으며, 사회는 박정섭(문화재청 운영지원과 과장)이 맡았다. 이상협(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과장)은 “이번 국제학술대회 개최를 통해 문화재청이 주도적으로 전통 조경 관련 국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 전통 조경의 독창성과 우수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또한 후대에 물려줄 국가유산으로서 전통 조경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보존 관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역사적 정원과 문화 경관 _ 엘리자베스 브라벡(매사추세츠 대학교 교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ICOMOS)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정원 및 문화 경관에 대한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하며 역사적 정원과 문화 경관에 대한 보전의 동향을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인 ‘우리의 과거를 위한 미래’(ICOMOS CCWG 2019)의 내용을 소개하며 문화 경관이 가지는 보편적 가치와 더불어 오랫동안 존재하고 번성한 문화 경관에 담긴 자연에 대한 적응 기술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략)... 글: 손용훈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금민수
  • [IFLA 2022]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돌아보기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성과와 유산 _ 서영애(IFLA 2022 조직위원회 홍보위원장, 기술사사무소 이수 소장) 2020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릴 계획이었던 제57차 세계조경가대회는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으로 연기되어 전면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폐막식에서 광주에서 열릴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대회기가 이양됐다. 2021년 초, IFLA 2022 조직위원회와 사무국이 구성되어 주제 선정, 로고 제작, 홈페이지 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022년 여름, 홍수와 태풍을 피해 무사히 개최되기까지 수많은 도움과 노력이 있었다. 몇 가지 키워드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를 돌아본다. 팬데믹과 불확실성 가장 큰 난제는 불확실성이었다. 준비 기간 내내 코로나19 거리두기 방침이 시시각각 변하고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참가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과 일본의 폐쇄적인 여행 방침으로 참가자 규모와 예산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걸림돌이었다. 대회 개최를 앞둔 여름, 한국은 엄청난 폭우 피해를 입었으며, 유럽도 홍수와 폭염 등의 기후 재난을 겪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일상 회복의 희망이 보이던 시점에 다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하면서 대회가 열릴 8월 말에 정점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투어 코스를 축소하는 등 프로그램 조정이 불가피했으며, 중국 조경가의 기조 강연이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국내 학계와 업계의 노력과 참여로 등록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40개국에서 약 1,500여 명의 조경가가 참석해 무사히 대회를 개회할 수 있었다. 글로벌 아젠다와 조경가의 역할 세계조경가협회 이사회 회의에서 제임스 헤이터 회장(IFLA)은 기후변화, 식량 안보, 건강과 웰빙, 토착 문화 보존을 강조하며 조경이 실질적인 처방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조 강연자 앙리바바(아장스 테르 대표)는 조경이 이끄는 도시계획의 사례를 설명했고, 크레이그 포콕(베카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과 김정윤(오피스박김 대표, 하버드 GSD 교수)은 조경 분야에서 탄소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설계 전략과 사례를 제시했다. 그 외 강연에서도 팬데믹 이후 도시공원의 역할, 평등한 접근을 통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제프리 젤리코 상을 수상한 아드리안 회저(West 8 대표)는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조경 설계를 통해 기후변화, 토양, 수질, 적용, 생태계 자생 능력과 같은 엔지니어로서의 소양을 바탕으로 자연과 문화를 융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측 불가능한 기후위기의 시대, 지구 환경을 존중하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조경가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미래 세대 조경가의 역할 _ 장수지(IFLA 2022 학생 서포터즈,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8월 29일, 세계조경가협회 이사회 회의의 회의록 작성을 위해 광주로 내려갔다. 회의 내용을 정리하며 설렘과 긴장감이 팽팽히 힘겨루기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틀간 진행된 회의의 첫날, 코로나19로 인해 그동안 화면으로만 만났던 각국 대표가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회장단 대표의 인사로 회의가 시작됐다. PPP(Professional Practice & Policy, 전문실무와 정책), CER(Communication External Relations, 대외업무)에 대한 보고와 5개 지부 대표가 바라본 현재 조경가의 입지와 조경 교육 시스템 발표가 진행됐다. 다음 세대 조경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 조경가가 가져야 할 태도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조경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숭고한 고민과 연구라고 느껴지게 만든 열정적인 회의였다. 회의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가 시작됐다. 조경학을 전공하는 30명의 학생 서포터즈가 행사장인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과 2층에 배치됐다. 대다수가 처음 만났지만, 모두 조경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어서인지 약간의 서먹함은 첫인사 후 말끔히 사라졌다. 행사 시작 30분 전, 각자의 자리에서 내방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수많은 외국인과 내국인이 낯선 행사장에 조심히 발을 내딛고 들어와 학생 서포터즈의 안내를 받았다. 두리 번거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잘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설렘이 느껴져 좀 더 정성을 다해 안내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모든 서포터즈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사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한국 경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짜인 프로그램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한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공연도 펼쳐졌다. 서정적 선율에 빠르게 몰입한 이들은 흥겨운 북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뻗어나가는 공연자의 손짓을 따라 하기도 했다. ...(중략)...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 서영애, 장수지
  • 타이난 스프링 Tainan Spring
    도심의 호수 타이난 스프링은 타이난 도심의 주요 상업 공간이었던 차이나타운 몰과 그 일대에 조성된 녹음이 짙은 공원과 호수다. 주변 공간을 둘러싼 어린 식물들이 가까운 미래에 울창한 정글이 되도록 조성했고, 궁극적으로 기존의 쇼핑몰을 자연과 수공간을 연결하는 도심의 호수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타이난 시정부의 요청으로 타이난 수로 동쪽의 T자형 축을 부활시켜 기존 차이나타운 몰 부지와 1km에 달하는 하이안로Haian Road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관 전략을 세웠다. 전략에 따라 자생 식물을 심었으며, 광장과 공공 물놀이장을 새로 조성했다. 또한 공공 보행로를 개선해 교통 체증을 완화했다. 차이나타운 몰 타이난의 수로는 17세기부터 해양업과 어업의 기반 시설이었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 도시는 이러한 역사적 도시 구성 방식과 궤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1983년 차이나타운 몰은 타이난 운하 옆 옛 항구 위에 세워졌다. 시간이 지나 대규모의 상업 공간이 더 이상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타이난 도심의 활력에 지장이 됐다. 타이난 스프링은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쇼핑이 대체하고 있는 현시대에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쇼핑몰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철거 자재를 세심하게 재활용한 덕분에 순환형 경제의 혁신적인 사례로 손꼽히기도 한다. 쇼핑몰의 지하 주차장은 도심 물놀이장과 우거진 자생종 식물이 어우러지고 그늘진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선큰 광장으로 탈바꿈됐다. 물놀이장은 사계절 내내 만남의 장소가 되도록 만들었다. 수면 높이는 우기와 건기에 맞춰 조절되며, 더운 날씨에는 안개를 분사하여 지역 온도를 낮추는 동시에 방문객을 환영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여름날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놀이터, 만남의 공간, 공연을 위한 무대 등이 복합적으로 모여 있으며 해체된 건물의 콘크리트 틀을 조형적으로 아름답게 보존해 이후 상점과 안내데스크 등 어메니티 공간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는 폴리(folly)들을 남겼다. 현대판 포로 로마노 지하 2층의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유리 바닥재를 깔아 사람들에게 장소가 지닌 역사와 기존 쇼핑몰이 타이난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게 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새로운 방식은 부지를 완전히 정리하고 재생시키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와 같은 접근 방법이 아니다. 쇼핑몰 건물을 지탱하던 기둥을 그대로 활용해 현대판 포로 로마노(Roman Forum)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이는 옛 항구를 폐쇄하고 쇼핑몰을 짓게된 역사를 보여주는 일종의 시각적 지표다. 도시의 녹지 설계의 중요한 열쇠는 도시에 녹지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공공 광장과 하이안로에 대규모 식재가 진행됐다. 교목, 관목과 그라스류 등 여러 켜의 초목이 펼쳐진 타이난 동쪽 자연 경관에서 영감을 받아 다양한 자생종을 복합적으로 활용했다. 식물 군집의 밀도는 도로 인근 매장의 주변 환경과 필요에 따라 시민들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더 만들거나 더 많은 식물을 심는 식으로 조절했다. 어린 식물들이 자라 우거진 정원을 형성하려면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들은 쇼핑몰의 흔적 위에 자란 식물들 사이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과거의 폐허 사이에서 수영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MVRDV의 비니 마스Winy Maas는 “도시의 역사와 함께 기존의 정글과 수공간이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타이난은 회색이 많은 도시다. 가능한 한 모든 장소에 정글을 다시 등장시킴으로써 도시는 주변 경관과 재통합된다. 이러한 녹지의 재도입은 마스터플랜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하이안로의 식재 설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이안로 리노베이션 이 프로젝트는 하이안로 리노베이션의 일환으로서 진행되어, 타이난의 가장 활력 넘치는 도로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교통 체증이 줄어들어 자동차는 이제 단지 양쪽으로 한 차선만을 사용하게 됐다. 지난 수년간 계획 없이 다양한 형태로 포장되어 누더기가 된 도로를 통일된 콘크리트 타일로 포장하고, 식재 전략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울창한 경관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지하에서 공공 공간으로 튀어나와 미관을 해치는 대형 환기구는 사회 기반 시설이라 제거는 불가능했다. 대신 시각적 존재감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주변과 어우러지는 색으로 통일했다. 이후 타이난 시에서 여러 지역 예술가를 초청해 이 구조물을 아름답게 꾸몄다. Architect MVRDV Principal in Charge Winy Maas Partner Wenchian Shi, Jeroen Zuidgeest Project Coordinator Hui-Hsin Liao Design Team Hui-Hsin Liao, Angel Sanchez Navarro, Stephan Boon, Xiaoting Chen, Andrea Anselmo, Yi Chien Liao, Zuliandi Azli, Olivier Sobels, Dong Min Lee, Chi Yi Liao Visualization Antonio Luca Coco, Costanza Cuccato, Davide Calabro, Paolo Mossa Idra Copyright Winy Maas, Jacob van Rijs, Nathalie de Vries Partners Local Architects: LLJ Architects Sustainability/Landscape and Urban Designers: The Urbanists Collaborative Structural Engineers Consultant: Evergreat Associates, S.E. Transport Planners: THI Consultants Lighting Designer: LHLD Lighting Design MEP Engineers: Frontier Tech Institute General Contractor: Yong-Ji Construction Client Tainan City Government Location Tainan, Taiwan Area 54,600m2 Completion 2020 Photograph Daria Scagliola MVRDV는 1993년 비니 마스(Winy Maas), 야코프 판레이스(Jacob van Rijs), 나탈리 더프리스(Nathalie de Vries)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설립한 회사다.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도시, 건축, 인테리어, 조경 관련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로테르담, 파리, 상하이에 지사를 두고 이해관계자,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2000년 하노버 엑스포의 네덜란드 기념관, 암스테르담의 플래그십 매장 크리스탈 하우스와 로이드 호텔, 상하이의 홍차오 오피스 캠퍼스, 로테르담의 디든 빌리지(Didden Village) 옥상 증축, 스페이 케니서(Spijkenisse)의 북마운틴 공공 도서관, 서울 강남구의 청하빌딩 등이 있다.
    • MVRDV
  • 페이즈 시프트 공원 Phase Shifts Park
    페이지 시프트 공원(Phase Shifts Park)은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킨다. 공원 시설은 주민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인지시키고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그 가치를 향유하게 한다. 이곳에 적용한 디자인 언어는 다양한 차원에서 일상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보편적 접근 방식을 만들어낸다. 공원에는 공항을 도시 경관으로 변화시킨 지리학적 차원, 거대한 공공 지형에 고유의 문화 시설을 통합시킨 도시적 차원,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공유함으로써 여러 도시 간의 투과성을 만든 도시 내부적 차원 등이 공존한다. 이 다양한 차원의 연계는 독특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 공원의 다양한 지형 공원을 통해 거대하고 굽이치는 땅을 가로지르는 물, 바람, 사람과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탈바꿈하고자 했다. 언덕은 드넓은 지평선의 시각적 틀을 구축하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진다. 그 앞에 서면 친밀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북쪽 라운지, 동쪽 나선형 도로, 중앙 잔디밭, 동쪽 스카이돔, 중앙 마당은 비바람을 피하고 문화 행사와 공연을 열기에 적당하다. 다양한 지형은 주민들이 일상에서 조금 멀어져 끊임없이 바뀌는 살아있는 환경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3km의 구불구불한 길은 차량과 보행자를 보호하고 사람과 동물이 오갈 수 있는 생태 통로 역할을 한다. 녹색 허파 지표면의 주름은 일상에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을 넘어 투과성의 변화에 따른 파라미터(parameter)를 드러내는 기술적 도구이기도 하다. 바닥의 투수성은 집수 능력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생태계를 진작시킨다. 바닥의 작은 구멍은 물을 흡수하고, 이 물은 산소와 함께 씨앗을 발아시키며, 발아된 식물은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지표수의 층위는 형성된 식물층과 연관되며 빗물 유출수와 공기질에 대한 장기적 지표를 제공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공원 곳곳에 배치된 간이 시설에서 분석되어 지역 활동에 따른 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공원을 수놓은 식재는 대만의 식물 군계가 지닌 다양성을 활용해 가장 덜 더운 지역부터 가장 덜 오염된 지역, 가장 습도가 낮은 지역을 보여준다. 식재 유형과 시설은 공원 내 정원을 구분한다. 공원은 도시에 거대한 ‘녹색 허파’를 제공해주고, 공원의 주요 흐름을 간간히 끊는 ‘만남의 구역’은 사람들이 길을 걷다 멈춰서 공공 공간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해변, 정원 등 여러 공간에는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감각 원리에 기초한 12가지(언어 감각, 미각, 청각, 평행 감각, 사고, 시각, 움직임, 자아, 촉각, 따뜻함, 후각, 삶) 요소를 놓아 감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Design Team mosbach paysagistes(team head), Philippe Rahm architectes, Ricky Liu & Associates Architects and Planners Commissions By New Construction Office, Taichung City Government Location Taichung, Taiwan Area 67.4ha Design 2011~2013 Construction 2014~2020 Photograph Catherine Mosbach, Victor Chohao Wu 캐서린 모스바흐(Catherine Mosbach)가 이끄는 모스바흐 페이자지스트(mosbach paysagistes)는 역사·환경적 가치가 높은 도시 경관 설계, 대규모 프로젝트 등 과학, 역사, 문명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대표작으로 보르도 식물원(Botanical Garden of Bordeaux), 솔뤼트르 고고학 공원(Solutre Archaeological Park), 루브르 렌즈 박물관 공원(Louvre Lens Museum Park)이 있다.
    • mosbach paysagistes
  • 여주역 금호어울림 베르티스 Yeoju Station Kumho Oullim Vertice
    여주역 금호어울림 베르티스는 여주역세권 도시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교동2지구에 조성된 7개동 605세대 규모의 단지다. 조경 면적이 전체 면적의 39%에 달하며, 아파트 내 테마 공간이 조성될 만한 곳에 선호도가 높은 조경 요소를 적용하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좋아하는 트렌드를 반영해 인근 아파트 단지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과도한 공간 이름을 짓기보다 물리적인 형태나 질감, 분위기로 공간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입주민들이 공간을 즐기면서 정서적인 위안과 교감을 얻도록 하는 데 설계 목표를 두었다. 주출입구 출입구 회전 교차로에는 수고가 높고 수형이 아름다운 대형 소나무를 심어 단지를 상징하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분홍 꽃을 피우고 매끄러운 수피를 가진 아름드리 배롱나무를 소나무 사이에 심어 거칠게 갈라진 소나무 수피와의 대비 효과를 꾀했다. 삼각형의 띠녹지에는 시선을 끌 수 있는 조형 소나무를 단독으로 식재했고, 시선의 차단이 필요한 곳에는 소나무를 군식해 입구 공간을 완성했다. 주출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둔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이 경관이 중앙광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기대감을 더한다. 정원을 품은 커뮤니티 공간 단지의 중심 공간에 단지를 상징하는 입주민 커뮤니티 장소를 계획했다. 개방적인 공간 구성, 요소 간의 연계와 균형감 있는 연출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적절한 여백을 두어 유연한 공간의 힘을 보여주고자 했다. 명쾌한 동선의 축을 중심으로 석가산과 생태연못, 팽나무 쉼터, 커뮤니티 하우스, 피크닉 테라스 등이 잔디마당 주변으로 펼쳐져 여유로움과 풍성함 사이에서 걷는 즐거움과 머무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시선이 가장 먼저 머무는 석가산은 보행 동선의 이동 방향을 고려해 배치되어 주변 요소들과 어우러져 청량한 풍경을 선사한다. 소나무가 석가산을 병풍처럼 감싸 안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보이도록 했다. 수형이 아름다운 소나무는 방향과 간격에 따라 홀로 돋보이기도,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여 아늑한 공간감을 구현해낸다.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글 조재운 와이에스개발 대표 사진 유청오, 조재운 조경 기본설계 스케이프뷰 조경 특화설계 와이에스개발 시행 하일건설 건설 금호건설 시공 와이에스개발 시설물 미담, 플레이잼, 아우라이앤에이, 토인디자인 위치 경기도 여주시 교동 114 대지 면적 38,631m2 조경 면적 15,229m2 완공 2022. 8.
    • 조재운(와이에스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