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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가 만난 문장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
    눈물 나게 하는 것보다는 웃게 만드는 게 더 힘들더라. 그래서 영화도 드라마도 좋지만 시트콤 작가가 신기하고 위대해보였다. 첫 문장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게 글의 마무리였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제일 쉬운 건 당연한 말로 끝맺는 것이었다. 교훈적이고 감동적인 내용들 말이다. 답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의문문으로 끝내는 방법도 유용했다. 그런데 수십 차례 같은 전략으로 지면을 채우다보니 지겨웠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닌지, 친구가 “너 그만 반성해도 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 그래서 늘 재치 있는 문장들이 탐났다. 쉽게 공감하고 피식피식 웃으며 볼 수 있지만, 이런 걸 왜 여기다 쓰지 일기장이 없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 문장들. 하지만 글은 쓰는 이를 닮기 마련이다. 그다지 유쾌한 편은 아닌 내가 쓰는 글은 늘 고만고만한 결을 유지했고, 가끔 벗어나보려고 바둥대봤지만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해야 할 일들. 무엇이 적혀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비슷한 제목을 발견하면 매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우선 많이 읽기, 솔직하게 쓰기, 쓸데없는 수사를 빼기 등 익숙한 전략을 훑어보고 있으면 꼭 그 가운데에서 ‘필사하기’가 등장했다. 베껴 쓴다는 의미의 필사(筆寫)는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유명한 훈련 방법 중 하나다. 정호승 시인은 서정주와 김현승의 시를 필사했고, 신경숙은 “눈으로 읽을 때와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 적어볼 때와 그 소설들의 느낌은 달랐다. 소설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양감을 훨씬 세밀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 부조리들, 그 절망감들, 그 미학들. 필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고 말했다. 난 오래전 이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인생 첫 만년필을 마련하고 그에 어울리는 노트를 샀다. 필사는 책을 손으로 읽는 작업이다. 이 훈련법의 핵심은 글을 단어 단위가 아닌, 문장 단위로 옮기는 데 있다. 눈을 바삐 왼쪽 오른쪽으로 굴리며 글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잠깐이라도 외워 머릿속에 박아 넣는 것이다. 글자들이 휘발되기 전에 종이에 적는 일은 문장의 구조와 말맛, 문체를 만드는 법, 더 풍부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만든다. 쉼표의 적절한 위치를 고민하게 되고, 접속사의 의미를 더욱 크게 느끼고, 문장을 매듭짓는 수많은 방법을 깨닫는다. 잘못 쓴 글자는 화이트로 지우는 대신 가운데 줄을 긋고 고쳐 쓰면 안 좋은 습관도 발견할 수 있다. 문장을 배우는 데만 깊이 몰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깃털 같은 집중력은 그리 오랜 시간 발휘되지 못한다. 쓰다보면 삐죽빼죽 삐침이 못나게 빠져나오고 어딘가 못생긴 글자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글씨의 형태에 공을 들이다보면 문장은 휘발되고 손 마디마디에 아픔만 고인다. 어딘가 비효율적인 필사 작업이지만, 그래도 완성된 글씨체가 마음에 든다. 길쭉길쭉한 모음(성공한 사람의 필적을 분석한 결과 가로획이 길다는 말을 듣고 더욱 길게 쓰려 노력하고 있다)과 조금은 작은 ㅁ과 ㅇ, 세로로 가늘어 조금 해체된 듯 보이는 ㅅ과 ㅈ. 디지털 기기의 자판에 더 익숙한 시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적은 글씨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매년 이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는 대회가 있다. 올해 8회를 맞은 ‘교보문고 손글씨대회’는 심사위원 평가와 대중 투표를 통해 매년 아름다운 필체를 선정한다. 겉옷의 두께를 고민하게 되는 계절이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수상작들을 볼 수 있다. 개성이 묻어나는 글씨체는 아는 글을 새롭게 읽히게 만들기도 한다. 올해는 으뜸상 수상자의 글씨를 오래 들여다봤다. 역대 최고령 수상자 82세 김혜남은 필체와 잘 어울린다며 며느리가 추천해준 나카가와 히데코의 『음식과 문장』의 한 구절을 적었다. “곡선에 싱싱한 탄력이 있고, 간결하게 새침”(유지원 심사위원)한 글자 모양 덕분일까, 글에서 새콤한 복숭아와 달큰한 밤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 사람의 마음이 거기 담기는 것 같아요.”2 김혜남의 소감을 읽으며, 묘한 떨림을 가진 그의 글씨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가늠했다. 글도 사람을 닮고, 글씨체도 사람을 닮으니, 공간 역시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을 닮을까. 역으로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하다 보면 사람이 글을 닮아가기도 할까. 오늘도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 의문문으로 글을 맺는다. [email protected] 각주 1. 신경숙, 『아름다운 그늘』, 문학동네, 2004, pp.155~156. 각주 2. 윤상진, “‘손글씨엔 마음이 담겨 있어요’… 82세 할머니의 글씨, 폰트로 제작된다”, 조선일보 2022년 9월 20일.
  • [PRODUCT] 다양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디딤판 ‘필’ 직선과 곡선이 조화된 디자인 디딤판
    디딤석이 기능성뿐만 아니라 감성적 디자인을 갖춘다면 어떨까. 스튜디오미콘의 ‘필(Pill)’은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로 제작한 알약 모양의 디딤판으로, 직선과 곡선이 부드럽게 조화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석재를 자연스러운 형태로 잘라서 제작하는 일반 디딤석과는 달리 조형성을 강조해 제작했다. 성형성이 좋은 콘크리트로 만들기 때문에 다양한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 세 가지 규격을 제공하며, 각기 다른 규격의 디딤판을 조합해 세련된 분위기의 공간을 연출할 수도 있다. 내구성도 튼튼하다. 디딤판은 밟았을 때 쉽게 미끄러지면 안 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소재가 한정적이다. 특히 일반 콘크리트는 사람이 밟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들어 디딤판의 소재로 한계가 있다. 필의 소재인 초고성능 콘크리트는 일반 콘크리트보다 약 6배 이상 큰 압축강도를 가진다. 덕분에 쉽게 파손되지 않으며 자외선, 동해, 염해 등에도 강하다. 정동근 스튜디오미콘 대표는 “기존의 디딤석은 자연스러우며 안정적인 매력이 있었지만 디자이너의 영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제품은 아니었다. 성형성이 좋은 콘크리트는 디자이너의 생각과 현장의 콘셉트를 반영하여 디딤석을 제작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라고 말했다. 미콘은 직접 디자인한 디딤판뿐 아니라, 공간에 어울리는 디딤판 맞춤 제작 서비스도 제공한다. 또한 스퀘어, 써클, 페블 등 다양한 모양의 디자인 디딤판도 선보이고 있다. TEL. 031-831-3620WEB.www.miicon.com
  • [에디토리얼]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IFLA 2022가 남긴 것
    이번 달 특집 지면에서는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예술과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열린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IFLA 2022)를 기록한다. 40개국 1,500여 명의 조경가가 참여한 IFLA 2022는 기후변화와 도시 위기에 대응하는 조경가의 비전과 전략을 깊이 있게 논의하고 지혜를 모으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대회는 2019년 9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 개최에 발맞춰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발표한 ‘기후행동공약’의 실천적 토론장이기도 했다. IFLA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달성을 위해 전 세계 조경가의 전환적 협력과 행동을 촉구하며 “1.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의 실천, 2. 204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3. 살기 좋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수용력과 회복력 강화, 4. 기후 정의와 사회 복지 지원, 5. 문화 지식 체계의 학습, 6. 기후 리더십 발휘” 등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광주 세계조경가대회는 한국 조경계에도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경학계와 업계가 협력해 성공적으로 치러낸 이번 대회는 한국 조경계의 난맥을 교정하고 조경 직능과 학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조 강연, 논문 발표회, 라운드 테이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펼쳐진 여성 조경가와 미래 세대의 활약은 한국 조경의 다음 50년을 기대하게 했다. 이번 IFLA 2022의 무엇보다 큰 성과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라는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한국은 물론 세계 조경계에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리:퍼블릭’은 서로 연관된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리:퍼블릭의 ‘리’를 ‘어떤 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이라는 뜻의 접두사 리(re)로 생각한다면, 리:퍼블릭은 ‘공공(성)에 다시 주목하는’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시 공공성의 경관과 조경을 지향하는’ 의제라 볼 수 있다. 둘째, 리:퍼블릭의 ‘리’를 ‘~에 대한, ~를 주제로’라는 의미의 전치사 리(re)로 여긴다면,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공공적 조경 행위라는 주제’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리퍼블릭(republic)은 군주제 반대편의 정치 체제인 공화제에 해당한다. 본래의 경관(landscape) 개념에 배태된 수평성을 떠올린다면, 군주제의 수직적 위계와 권위에 대항하는 공화제가 경관 개념과 조응하는 체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리퍼블릭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는 ‘일, 사건, 상황, 문제’를 뜻하는 명사 ‘레스’에 ‘공적인’이라는 뜻을 지닌 여성형 형용사 ‘푸블리카’가 결합된 말로, 공적인 일(또는 문제)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곧 ‘공적인, 공공의 경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회의 주제문을 다시 옮긴다. “전 세계는 팬데믹 확산, 기술 혁명, 정치적 갈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건강, 행복, 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조경 전문가에게 주어졌다. 국지적 지역부터 전 지구적 스케일까지 포괄하는 조경의 다양한 이슈를 논의하기 위해 조경가들이 모인다. 조경의 공공 리더십을 강조하는 2022년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다음과 같은 세부 주제를 포괄한다. 조경의 전문적 성취와 학문적 성과를 되짚어보고(re:visit),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통해 지구 경관의 재구성을 실험하고(re:shape), 일상의 생활과 환경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되살리며(re:vive),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한다(re:connect).”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봉건 시대의 장식적 조원 전통과 결별하고 근대 도시의 공공 환경을 구축하는 전문 직능으로 탄생했던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이념을 다시 소환하고 회복한다.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는 인류세의 지구가 마주한 기후위기, 도시의 파국, 도시 정의와 형평성, 라이프스타일과 미감의 변동 등 복합적 난제를 풀어갈 조경의 좌표다. IFLA 2022를 통해 제시된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천할 과제가 한국 조경에 주어졌다. [email protected]
  • [풍경감각]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냥 풀을 그린 그림,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죠? 북 페어에서 받은 질문이다. 식물 세밀화는 풀을 그린 그림이 맞고, 그림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며, 각자의 감상법이 있기 마련이므로 “보이는 그대로니 천천히 감상해보시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다른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풀, 그 잎사귀 한 장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작은 잎사귀는 너른 평원이 되고, 그 사이를 물길 같은 잎맥이 가로지른다. 울퉁불퉁한 산맥 사이로 하얀 협곡이 구불거리거나, 평행한 녹색 이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식물 세밀화는 이런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식물을 매개체로 어떤 의미나 심상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그림을 그린다. 작은 식물의 세계가 작아만 보이지 않도록 캔버스의 크기를 키우고 확대 비율을 높인다. 털, 턱잎, 수술과 암술, 꽃받침, 줄기의 단면처럼 전체 모습에서 보여주기 어려운 작은 디테일도 따로 담는다. 이 작은 풍경들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붙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 KT 디지코 가든 KT Digico Garden
    신뢰의 바탕 모든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발주처와의 신뢰 관계다. 신뢰는 문서화된 화려한 이력에서 시작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드러나는 깊이 있는 실무 능력과 진정성 있는 자세가 그 근간을 만든다. KT 디지코 가든(KT Digico Garden) 프로젝트에는 색다른 소통 체계가 있었다. 발주처는 KT 내 브랜드 마케팅 부서였고, KT 광고를 대행하는 대홍기획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관리했다. 시작은 KT 브랜드 강화를 위해 건축물 벽면을 이용하는 뮤럴(mural, 벽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콘셉트 디자인이 진행되면서 조경을 중심으로 한 외부 공간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바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KT 이스트East 빌딩 부지뿐만 아니라 건물 주변을 둘러싼 종로구청 소유의 가로와 남측 공공 보행 통로까지 대상지로 편입됐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가 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히게 됐다. KT와 종로구청의 공통분모가 필요했다. 우리는 광화문광장 숲과 연계한 도시숲 개념을 제안했다. 커다란 공통분모가 생기자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됐다. 발주처가 이런 프로젝트에 생소했기 때문에 진행 과정에서 설계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공공 프로젝트 경험이 많고 당시 종로구청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미리 예측하며 구청 담당자들과 소통해 중요한 이슈를 빠르게 해결해 나갔다. 문제는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홍기획을 통해서만 계획안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설계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따라서 전문적인 도면과 용어보다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이미지 위주로 보고 자료를 준비했다. 담당자의 조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사례를 바탕으로 한 설명회를 자주 가졌고, 농장 답사에 동행해 공간 콘셉트에 맞는 수목과 우리가 원하는 수형의 특징을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욱 견고해졌고, 결과적으로 설계 의도를 프로젝트에 명확히 반영할 수 있었다. 설계 바깥의 세 가지 조건 원하는 수준의 시공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조경가는 설계 이외의 다른 것들도 알아야 한다. 좋은 콘셉트와 디자인, 충실한 설계 도서만으로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기 쉽지 않다.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와 진행한 첫 프로젝트의 실패가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당시 최저가 입찰로 선정된 시공사는 여러 이유를 들어 디테일들을 바꾸었고, 현장 감리는 설계자의 의도보다는 공기 단축과 익숙한 방식의 시공을 선호했다. 결국 껍데기만 남고 설계자의 의도가 사라진 조잡한 공간이 완성됐다. 이 실패를 경험으로 삼아, KT 디지코 가든 프로젝트에서 좋은 시공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을 담당자에게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설득했다. 첫째, 설계자의 의도를 명확히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 감리. 둘째, 저가 입찰 방식이 아닌 시공 능력 평가를 통한 시공사 선정. 셋째, 예비비를 포함한 충분한 예산 확보. 광화문광장 사례를 들어 디자인 의도 구현을 위한 비용을 산정하고 진행 방식을 적용했다. 시공사 선정은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서울형 공공조경가와 KT 내부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 기본설계 도서를 바탕으로 예산 책정을 위한 공사비를 산정했다. 이러한 전략을 설계와 함께 입체적으로 진행하고, 설계사가 주도적으로 이 방식을 제안하고 이끌었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 그리고 조경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콘셉트 스케치를 보면 지상층과 옥상층이 매우 흥미롭다. 지상 레벨에는 필로티로 띄운 건물 사이에 작은 언덕과 수목이 채워져 있으며, 이동을 위한 최소한의 계단실, 엘리베이터 코어, 에스컬레이터만 배치됐다. 건축물의 방이 시작되는 로비는 필로티로 띄워져 3층 높이에 위치한다. 옥상에는 지상층의 언덕 형태가 180도로 뒤집혀져, 수목을 심기 위한 식재 토심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변으로 열린 평탄한 경관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지상층을 오로지 공공을 위한 공간으로 쓰며 자연 요소로 채운 계획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로비는 지상층에 시공됐고, 포장으로 둘러싸여 분리된 두 개의 언덕은 법적 기준을 준수할 정도의 녹지로 구현됐다. 전정한 회양목, 현무암으로 포장한 산책로, 듬성듬성 놓은 경관석, 휑한 언덕 위에 설치한 등의자, 특색 없는 교목 등 전형적인 오피스 빌딩의 풍경이 연출됐다. 지나는 몇몇 사람이 간헐적으로 잠시 쉬어갈 뿐 이 장소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렌조 피아노가 제시한 초기 아이디어를 현실 여건에 맞춰 새롭게 각색하고자 했다. 날아갈 듯 가벼운 느낌의 KT 이스트 빌딩이 숲 속 녹지 위에 떠 있는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 콘크리트 가장자리에 갇힌 지형을 흐르게 하고 화강석 포장면 대신 두꺼운 녹지를 덧대 너른 자연의 카펫을 만들었다. 자연으로 채워진 공공의 공간, 이것이 설계안의 기초가 됐다. 도심 속 등산 코스 인왕산과 삼각산이 도시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풍경에 감동받은 렌조 피아노는 서울은 ‘자연의 도시’라고 말했다. KT 디지코 가든은 10분 동안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작은 산이다. 암석 사이로 축축한 이끼와 고사리가 자라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짙은 숲 사이로 산책하고, 언덕을 올라 전망 데크에서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다. KT 디지코 가든에는 두 개의 정원과 세 개의 숲길이 있다. 그늘이 많은 북측 언덕은 음지성 식물을 중심으로 깊은 숲 속 자연을 재현해 바람정원으로 명명했다. 지하주차장 출입구가 있는 남측 정원은 구조적 문제로 토심이 부족하고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데크 산책로를 주차장 상부까지 연결해 전망대를 설치하고 초지 언덕을 만들어 하늘정원으로 명명했다. 건물 주변을 따라 남측 공공 보행 통로에는 배롱나무 숲길을, 서측 중학천변으로는 버드나무 숲길을 조성하고 길 끝에 정자목이 될 팽나무를 심었다. 동측과 북측에는 이팝나무 숲길을 만들고, 두 길이 만나는 지점에 소사나무를 식재했다. 건물 주변의 녹음이 부족한 가로에는 UHPC(Ultra High Performance Concrete)로 제작한 플랜터를 교호로 배치하고, 줄기가 많은 산딸나무를 식재해 보완했다. 숲을 조성하며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곳이 바람정원이다. KT는 가로에서 필로티 내부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와 식물을 빽빽이 심기를 원했다. 그런데 정원 산책로에서 가로변 소셜 에지(social edge)까지의 녹지 폭원이 6~7.5m 정도에 불과해 큰 수목만으로는 의도한 풍경을 연출하기 어려웠다.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서로 다른 높이의 꽃산딸나무, 팥배나무, 산딸나무, 산단풍을 3m 간격으로 식재했다. 교목 사이에는 생강나무, 함박꽃나무, 덜꿩나무, 좀작살나무, 낙상홍 등을 배치했다. 또한 가로변 소셜 에지를 따라 중간 키 정도의 귀룽나무, 마가목, 자작나무, 낙상홍 등을 바깥으로 기울여 심었다. 이처럼 지형에 맞춘 세 개의 층위로 나눠 식재해 깊이가 느껴지는 숲을 만들고자 했다. 또 하나의 식재 전략으로, 식물의 가지나 잎사귀가 신체에 최대한 접촉할 수 있게 수목을 산책로 가까이에 배치했다. 도심 속 휴게 공간에서 잎사귀에 뺨을 맞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어른 키 높이의 가지가 산책로를 덮을 수 있도록 배식했다. 예를 들어 정문 북측 언덕을 오르려면 신나무의 가지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한다. 0.6m 폭원의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산딸나무와 마가목 가지를 눈높이에서 만날 수 있다. 작은 관목과 지피초화류를 산책로 포장면을 덮도록 식재했다. 이런 의도들은 설계 도서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럽다. 그래서 방성식 시공 현장 소장과 원하는 수형의 수목을 찾으러 여러 농장을 다녔고, 그 과정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 원하는 느낌의 수목을 농장의 나무들과 비교하며 반복적으로 방 소장에게 설명했다. 덕분에 원하는 수형의 나무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식재 공사 때마다 현장에 방문해 일일이 수목의 위치와 방향을 결정했다. 다른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상황에서 고된 일이었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숲 아래 풍경들 하부 식재 연출에 대한 고민이 깊었는데, 이 부분은 전적으로 김수린 팀장에게 맡겼다. 좁은 면적이지만 공간이 깊어 보일 수 있는 속임수가 필요했고, 회화 기법에서 해답을 찾았다. 사용한 식재 기법은 크게 두 가지다. 근경과 원경을 강하게 대비시키는 방법과 그 사이에 중경을 추가하는 방법이다. 근경에는 잎의 채도가 낮고 질감이 거친 식물 관중과 모로위사초 ‘아이스댄스’를 심어 상이 오래 맺히도록 만들었다. 원경에는 잎의 채도가 높고 질감이 부드러운 긴산꼬리풀과 감동사초를 심어 대비시켰다. 그 사이에 경계를 뿌옇게 만들어주는 솔정향풀로 중경을 만들어 공간감이 한층 더 깊어지도록 했다. 남쪽의 하늘정원에는 단조롭지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경관을 연출했다. 필로티 하부 공간에는 내음성이 강하고 생육성이 강한 수국을 군식했다. 주차장 상부 전망데크 주변에는 브라키트리차 새풀을 대량으로 식재해 넓은 들판에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하게 했다. 바람정원 숲 하부에는 암석원이 있는데, 시공 경험이 많은 안기수 소장(공간시공 에이원)에게 맡겼다. 돌을 놓고 그 사에 식물을 심는 일에는 도면보다 현장의 감각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심 속 골바람으로 만든 풍경 바람정원 안에는 폭원 6m의 환기구 시설 2개소가 있다. 경관 가치가 높은 장소 앞뒤에 있어 해결책이 필요했다. 특히 최상단의 환기구는 휴게 공간과 인접하게 놓여 있어 수목으로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디어 커튼을 제안했는데, 예산 문제로 수경 요소를 접목한 이슬 스크린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마저 유지·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최종적으로 윈드 웨이브를 계획하게 됐다. KT 이스트 빌딩 일대에는 고층 빌딩이 많아 골바람이 자주 부는데, 윈드 웨이브를 이룬 3,054개의 패널들이 이 바람에 따라 움직이며 아름다운 물결을 만든다. 가로 7cm, 세로 12cm 크기의 알루미늄 패널 표면은 아노다이징(anodizing) 기법으로 마감했는데, 작은 바람에도 움직일 정도로 충분히 가볍다. 바람에 움직이는 패널이 듣기 좋은 청량한 소리를 만들어 청각적 즐거움을 더한다. 일부 패널에는 정원에 심은 식물에 관한 정보를 레이저 가공으로 기록했다. 지금 KT 디지코 가든을 방문하면 개장 이벤트로 윈드 웨이브에 새긴 고래를 만날 수 있다. 최근 흥행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KT 스튜디오 지니가 지분을 투자해 만든 콘텐츠다. 이와 연계한 윈드 웨이브 활용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 결과 숲 속에 사는 고래를 주제로 한 일시적 이벤트 경관을 연출할 수 있었다. 빛이 그린 수묵화 정원에 빛을 이용해 다양한 풍경을 만들었다. 공간마다 특징이 다른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남측 하늘정원이다. 전망데크 주변 초지에 40여 개의 갈대 조명을 균등하게 배치하고 프로그래밍을 통해 빛의 흐름을 연출했다. 북측의 소셜 에지와 팽나무 플랜터, 플랫폼에 놓인 돌벤치 하부에는 선형 조명을 설치해 바닥 공간을 밝혔다. 자연스럽게 어두운 숲과 대비되어 공간의 깊이감이 생겨난다. 가장 특별한 야경은 의외의 공간에서 볼 수 있다. KT 이스트 빌딩 필로티의 거대한 천장과 벽면은 숲의 배경이다. 옆면이 뚫린 직육면체 구조 때문에 낮 동안은 그늘이 져 어둡지만 밤에는 빛이 반사되어 도화지처럼 하얀 면이 된다. 이런 특징을 활용해 바람정원 벽면에 그림자 정원을 만들었다. 잎 모양이 다양한 음지형 지피초화류를 심고 조명을 배치했다. 조명의 각도로 인해 커진 잎 모양의 그림자들이 겹쳐져 일러스트 같은 그림자 숲을 만든다. 필로티 천장에는 수목 가지와 투사등의 거리에 따라 그림자의 농담이 달라져 수묵화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1차 시공을 마치고 조명 연출을 확인하다 발견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광화문광장 일대 변화의 프로토타입을 꿈꾸다 조용준 인터뷰 광화문광장의 숲과 KT 디지코 가든이 멀지 않은 곳에있다. 두 장소는 어떤 관계인가. 광화문광장에서 건널목 하나를 건너면 KT 웨스트 빌딩이 나타나고 이어 대상지인 이스트 빌딩이 나온다. 광화문광장의 의의는 광장 주변을 함께 바라볼 때 발견된다. 광장이 변하면 그 일대도 함께 변한다. 클라이언트인 KT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당시 개발 중이던 이스트 빌딩을 광화문광장 개장에 맞추어 함께 열고 싶어 했다. 마침 광화문광장을 만들며 주변 일대의 기본 구상도 진행한 상태라, KT 디지코 가든이 광장 일대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프로토타입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KT 디지코 가든은 본래 KT 브랜드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발주처도 ‘공공의 숲’이라는 개념이 홍보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동의했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을 KT 디지코 가든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나. 시작은 잭과 콩나무를 콘셉트로 한 뮤럴(mural, 벽화) 프로젝트였는데, 벽화 주변의 조경에 대해 논의하며 점차 조경 중심의 프로젝트로 바뀌게 되었다고 들었다. 단순히 보게 하는 공간보다 체험하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을 비롯해 오픈스페이스를 통해 브랜드를 강화한 프로젝트 사례를 많이 보여주었다. 또 광화문광장을 방문한 사람이 결국 식당을 찾아 빌딩가를 찾을 것이고, 숲이 매력적인 빌딩에 더 오래 시선을 둘 것이고, 밥을 먹은 사람이 숲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KT에 대해 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콘텐츠 요소도 넣었다. 대상지 모퉁이에 커다란 팽나무가 있는데, KT가 지분을 투자한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의 한 장면에서 따와 심은 것이다. 정자목을 넘어 팽나무가 KT의 콘텐츠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대상지 내 윈드 웨이브에도 우영우를 상징하는 또 다른 요소인 고래 이미지를 삽입해 홍보 효과를 꾀했다.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매력적인 숲이 필요했다. 우선 나무를 밀식해 도심에서 만나기 어려운 빽빽한 숲의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나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주변을 걸을 때 어디에서나 녹지를 발견할 수 있게 했다. 대상지 북쪽에 지하철역 입구가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을 빠져나올 때부터 숲으로 들어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양 옆에 넉넉한 녹지를 조성했다. KT 이스트 빌딩 입구의 양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이곳에 근무하는 이들은 숲으로 출근해 숲에서 퇴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렌조 피아노가 그린 녹지의 선형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기존 설계안에서 수용한 부분과 수용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과거 대상지는 언덕이 없는 평평한 관아 터였으므로, 과거의 지형에서 비롯된 선형은 아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렌조 피아노의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내사산으로 둘러싸여 그 지형에 의해 만들어진 서울이라는 도시에 큰 감명을 받았다더라. 그 결과 KT 이스트 빌딩 하부의 거대한 언덕을 계획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언덕이라는 콘셉트가 굉장히 좋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으나 필로티 하부에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아마 계획 초기에 개입할 수 있었더라면 건물 바깥으로 언덕을 둘러 숲으로 만들고, 필로티 하부를 숲에 둘러싸인 오픈스페이스로 조성해 식물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했을 것이다. 우선 법적 기준에 맞춰 콘셉트 위주의 도면을 다듬었다. 렌조 피아노의 안에 따르면 지상층 전체가 숲과 같은 언덕으로 덮여 있고 가장자리가 자연스러운 녹지로 마무리되지만, 실제 부지는 콘크리트 포장 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최대한 원 계획과 가까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일부 가장자리를 허물어뜨리고 언덕이 이를 넘어오게 해 더 많은 자연을 만들고자 했다. 이미 완성된 외부 녹지 공간을 부수고 다시 대규모 언덕을 조성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정해진 공사비 안에서 공간을 바꿔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구조를 바꿀 경우, 언덕 조성과 수목에 예산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구조는 최대한 그대로 유지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언덕이 지하 공간 위에 만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지하 공간 위의 녹지에 나무를 더 심을 경우 하중이 늘어나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토양을 적당히 걷어낸 뒤 식재를 진행했다. 정원 대신 숲, 산책 대신 등산이라는 단어와 콘셉트를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렌조 피아노의 아이디어를 단순히 형태적으로 차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사산에 둘러싸인 풍경에 감동받아 언덕을 계획했으니, 이곳에서 작은 산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평지를 걷다가 오르막을 오르기도 하고 높은 곳에 다다르면 전망을 즐길 수도 있는 등산 코스를 떠올렸다. 대상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점심을 먹고 난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건너편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게 휴식 활동의 전부였다. 단순히 쉬어가는 정원보다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공간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언덕, 식물,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용해 높이를 만들었다. 어떤 원칙을 기준으로 삼았나. 대상지가 북측에 있는 데다 필로티 하부라 어두워 식물 생육이 어려운 조건이었다. 게다가 차량이 진입하는 곳의 경우 구조가 약해 상부에 나무를 많이 심어 숲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곳에 빽빽한 숲을 만드는 대신 올라서면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를 만들어 임팩트를 주고자 했다. 폭원이 7m밖에 되지 않는 녹지에는 나무가 최대한 길과 밀착되도록 심고, 사이사이에 관목을 배치했다. 더욱 두꺼운 숲을 만들기 위해 키 큰 수목과 작은 수목을 다채롭게 심고, 되도록 줄기가 많은 수목을 사용했다. 이곳을 거닐다보면 잎사귀나 나뭇가지에 뺨을 맞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만큼 길 가까이에 나무를 심었다. 도시민들은 의도적으로 나무에 몸을 부딪치지 않는 이상 잎사귀와 나무를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없다. 하지만 KT 디지코 가든에서는 길을 오르려면 나뭇가지를 피해 고개를 숙여야 하고 수시로 온몸에 잎사귀가 닿는다. 대상지 가까이에 흐르는 중학천은 큰 기회 요소가 되었다. 이 작은 천이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실개천의 역할을 해준다. 천변을 따라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상위 계획에 따라 중학천이 복원되면 이 녹지가 도시 차원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소재로 콘크리트와 돌을 사용한 이유는? 렌조 피아노는 가볍고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투명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난간 등 여러 시설물을 얇게 만들고 멀리서 보면 가는 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콘크리트는 렌조 피아노가 선호하는 소재고, 건물과 잘 어울려 많이 사용했다. 콘크리트로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돌을 사용했다. 지면과 돌이 만나는 부분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 그늘에 숨긴 뒤 선형 조명을 설치했는데, 이렇게 하면 돌로 만든 시설물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돌의 무거운 느낌을 덜어낼 수 있다. 간혹 긴 선형의 홈이 파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더글라스 정원에도 사용했던 나만의 디자인 시그니처로 수평성과 깊이를 강조하는 디테일이다. 소셜 에지는 본래 콘크리트 앉음벽만 있던 공간인데, 바로 뒤에 경사가 진 화단이 있어 비가 내리면 흙과 자갈이 계속 흘러내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 불편을 덜어내기 위해 화강석을 둥근 형태로 덧대 화단과 앉는 공간 사이에 자연스러운 턱이 생기게 했다. 본래는 하나의 조각을 길게 만들어 최대한 이음매를 적게 만들 계획이었으나, 도면과 실제 현장의 여건이 달라 시공을 진행하며 미리 제작한 조각을 잘라가며 이어 붙여야 했던 점이 조금 아쉽다. 주변 길과의 관계를 고려해 설계한 부분이 있다면? 도면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실제 대상지인데, 선 안쪽만 설계할 경우 숲과 같은 공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KT와 종로구청의 협의를 통해 종로구 부지 일부도 함께 손을 볼 수 있었다. 일종의 기부채납을 한 셈이다. 부지를 두른 네 개의 길을 각기 다른 테마의 산책로로 만들었다. 전문가의 관점에서는 작은 부지에 너무 많은 요소가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실제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작은 공간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한다. 중학천변에는 천변 식물을 모티브로 삼아 숲을 만들고, 광화문광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삼봉로 모퉁이에는 커다란 팽나무를 심었다. 북쪽 길에는 이팝나무 플랜터를 놓아 숲길을 만들었다. 남쪽의 경우, KT가 독특한 수목을 심기를 원했던 길이다. 본래 요구했던 수목은 동백나무였으나 서울에서 생육이 어렵기 때문에 동백 못지않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내년 여름이면 이 부근이 분홍빛으로 물들 것으로 기대된다. 보고 자료에서 ‘조경과 기술을 결합한 문화 공간’, ‘인식의 변화 X세대, 인식의 확산 MZ세대’ 등 고객 경험개선 전략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현재 조경과 기술의 접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MZ세대가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이 조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견이 궁금하다.1 조경과 기술의 결합은 아직 풀기 어려운 문제다. 디지코(Digico)는 디지털과 텔레콤의 합성어로 KT가 통신 회사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단어다. KT 디지코 가든에도 그 의미를 담고자 기술을 접목한 공간을 조성하려 노력했다. 천으로 된 미디어 스크린을 계획하기도 했다. 스크린이 자유롭게 여닫히고 안쪽에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두어 가상과 진짜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기술력의 문제로 실현할 수 없었다.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식물 유지·관리 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KT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MZ세대는 핫플레이스를 많이 찾아다니는 세대다. SNS에 그들이 올리는 콘텐츠 자체가 홍보 효과를 내기 때문에 외부 공간이 어떤 색다른 경험을 주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KT를 비롯해 많은 클라이언트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김수린 작업 초기 워크숍 회의 중, KT의 통신 기술을 조경 공간에 도입하면 어떨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외국 사례도 찾고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검토도 해봤지만 실현하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기술력이 부족하다. 둘째, 조경과 기술을 결합했을 때 효과가 부족하다. 결국 조경은 식물과 더불어 휴식하는 공간을 만드는 행위다. 휴식 공간에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필요하긴 한 걸까? 우리는 수많은 기술과 정보로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 출근할 때도, 일할 때도, 쉴 때도, 잠들기 직전까지도 너무 많은 정보를 읽고 흡수한다. 우리 세대는 어쩌면 너무 많은 정보에 질려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조경 공간에도 기술이 도입된다면, ‘알아서 잘’ 해주는 기술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어떤 기술이 쓰였는지 알고 싶지 않다. 기술이 정보를 알아서 잘 해석하고 반영해 우리 세대를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이지현 IoT를 공간 구성 요소로 더하면 사용자에게 감각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 이런 기술을 사용하려 한다면, 자신의 의도를 담은 공간이 시설물과 기술의 접목에 국한되어 보이지 않게 하는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 더불어 적절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을 알아야 하고, 기술 제공자에게 기획 의도를 설명해 실현까지 이어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설계자는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현상과 이치를 끊임없이 배워가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오혜지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하느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 거라면 스마트 패널 정도에서 멈추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불편함과 식물의 유지·관리 부분을 다루고 싶다면 기술력 향상이 필요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며 활동의 제한이 풀린 최근, 시각적이고 동적인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강한 MZ세대의 경험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숲이 인공지반 위에 만들어진 데다 필로티 하부에 놓여 식물이 생육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유지·관리 계획을 어떻게 세웠나. 결국 환경에 맞는 식생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식물이 죽는다. 최대한 식물 생육이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관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유지·관리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물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인력과 시스템이 있다면 처음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식물 유지·관리에 대한 KT의 의지가 강해서 다양한 수목을 밀식할 수 있었다. 디지코 가든뿐만 아니라 기부채납한 부지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각주 1.KT 디지코 가든 프로젝트를 함께한 김수린, 이지현, 오혜지에게공통 질문을 던져 이메일로 답을 받았다. 글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설계 총괄 및 감리 CA조경기술사사무소(조용준) 설계 CA조경기술사사무소(김수린, 이지현, 오혜지) 시공 조경디자인 이레, 공간시공 에이원 발주 KT, 대홍기획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3길 33 면적 5,620㎡ 완공 2022. 8. 사진 안상순 2004년 설립된 CA조경기술사사무소는 작은 공간의 설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www.cadesign.co.kr 조용준은 작은 공간부터 도시 스케일의 계획에 이르는 국내외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창의적인 생각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공공을 위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www.cadesign.co.kr 김수린, 이지현, 오혜지는 CA조경기술사사무소의 일원이다. 김수린 팀장을 주축으로 이지현 대리와 오혜지 사원은 KT 디지코 가든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 조용준
  •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IFLA World Congress Gwangju 2022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이하 IFLA 2022)가 개최됐다. 1992년 서울, 무주, 경주에서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가 열린 지 30년 만에 전 세계의 조경가가 다시 한국에 모였다. 예상치 못하게 우리를 덮친 팬데믹은 일상을 바꾸어놓았고,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이외에도 인구 감소, 도시 쇠퇴와 재생, 도시 정의와 형평성 같은 복잡한 난제는 산업화로 훼손된 도시를 복구하고 시민 위생을 향상시켰던 조경 본래의 역할을 떠올리게 했다. IFLA 2022는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라는 주제로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소환했다. 기조 강연, 스페셜 세션, 논문과 포스터 발표,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세계 조경의 흐름과 글로벌 의제를 공유했다. IFLA 학생설계공모전과 학생샤레트는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음 세대 조경의 가능성을 여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조경협회가 주관한 ‘K-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엑스포(K-Landscape Architecture EXPO)’는 한국 조경 업계의 성과를 알렸다. 제59차 세계조경가대회는 2023년 9월 28일부터 이틀간 케냐의 나이로비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긴급한 상호작용(Emergent Interaction)’을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호에는 IFLA 2022를 되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사흘간 진행된 다층적 이벤트를 정리한 지면이 값진 자료로 남기를 바란다. 진행 배정한, 김모아, 금민수, 이수민 디자인 팽선민
  • [IFLA 2022] 행사 개요와 BI 로고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주최: 세계조경가협회, 광주광역시 주관: IFLA 2022 조직위원회,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환경조경발전재단 기간: 2022년 8월 31일(수)~9월 2일(금) 장소: 광주광역시 김대중컨벤션센터 규모: 40여 개국 약 1,500명 BI 로고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인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의 콜론(:)에서 확장된 점들이 개최 장소를 상징하는 색과 만나 서로 연결되고 다양한 의미로 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각 점들을 연결해 대회의 주제를 비롯해, 목표인 리:비지트, 리:셰이프, 리:바이브, 리:커넥트를 나타낼 수 있다. 상징색은 총 다섯 가지다. 하늘색은 청명한 공기, 녹색은 여름의 비자나무, 노란색은 남도의 흙, 붉은 색은 겨울의 동백, 청색은 흐르는 물을 뜻한다.
  • [IFLA 2022] IFLA 2022를 만든 사람들
    조직위원장 조경진 한국조경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교수 이홍길 한국조경협회 회장, 길디앤씨 대표 심왕섭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 사무총장 안세헌 가원조경설계사무소 대표 노영일 예건 대표 기획위원회 김아연 위원장,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스튜디오 테라 대표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학술위원회 배정한 위원장, 서울대학교 교수 신명진 유엘씨프레스 에디터 심지수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 홍보위원회 서영애 위원장, 기술사사무소 이수 대표 최영준 서울대학교 교수, 랩디에이치 대표 최혜영 성균관대학교 교수 산업·재정위원회 오화식 위원장, 사람과나무 대표 이형철 디자인파크개발 부사장 이주은 팀펄리 L&G 대표 남은희 한울림조경 대표 이호영 HLD 대표 김시인 시플랜 대표 학생위원회 김영민 위원장,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권윤구 전남대학교 교수 김순기 순천대학교 교수 김창국 호남대학교 교수 전진현 부산대학교 교수 지역위원회 김농오 위원장,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김도균 순천대학교 교수 임희진 광주지역부위원장 설구호 장안 대표 김형석 남해종합건설 대표 사무국장 남기준 환경과조경 편집장 특별자문위원회 황희 위원장, 국회의원 강태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고영창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 회장 김규열 한국조경수협회 회장 김농오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김도균 한국조경학회 호남지회 회장 김동형 전라남도 종가회 운영위원 김요섭 한국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 전 회장 김종국 한국엔지니어링조경협의회 회장 박명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박원제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조경기술인회 회장 박재영 광주전남연구원 원장 박태근 한국조경협회 부산시회 회장 안동만 전 IFLA 한국대표 양재혁 소쇄원 원장 오동호 한국섬진흥원 원장 오순환 조경지원센터 센터장 옥승엽 조경시설물공사업협의회 회장 이문석 한국조경협회 대구경북시도회 회장 이웅규 한국도서(섬)학회 회장 이재흥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식재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협의회 회장 이정현 대한전문건설협회 조경위원회 위원장 이한호 쥬스컴퍼니 대표 임희진 전 광주시 건설본부 본부장 정길균 한국놀이시설·조경자재협회 회장 정태열 한국조경학회 영남지회 회장 조동범 전남대학교 교수 주신하 한국경관학회 회장 최종희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한일근 한국조경협회 울산시회 회장 홍광표 한국정원디자인학회 회장 황지해 디자인 뮴 대표
  • [IFLA 2022] 광주에서 만난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2022년은 한국 조경 역사에 뜻깊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 조경이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세계조경가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 해다. 세계조경가대회는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주최하는 대표적인 국제 행사로, 1992년 경주에 이어 30년 만에 세계 조경가들이 광주에 모였다.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는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흘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와 그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 경주, 무주에서 열렸던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는 ‘전통과 창조’로 전통 유산이 가진 가치의 계승에 주목했다면, 이번 대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공공적 가치의 회복에 주목했다. 대회 주제인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Re:public Landscape)’는 조경의 공공 리더십 회복을 의미한다. 팬데믹, 기술 혁명 등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시대에서 조경이 지닌 공적 가치와 조경가의 역할에 주목했다. 사흘간 40여 개국 약 1,500명의 조경가들이 모여 동시대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변화, 환경 위기, 팬데믹, 도시 쇠퇴 등의 난제를 풀어갈 해법을 논의했다. 기조 강연, 스페셜 세션, 논문 발표 등 학술 행사부터 한국 조경 산업의 트렌드 살필 수 있는 K-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엑스포 등 다양한 전시, 한국의 자연과 역사를 체험하는 투어까지 이번 대회에서 선보인 주요 프로그램을 살펴본다. 개막식 개막식은 8월 31일 오전 10시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제임스 헤이터(James Hayter, IFLA 회장), 조경진(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기조 강연자 정근식(서울대학교 교수), 크레이그 포콕(Craig Pocock, 베카 디자인 스튜디오 대표), 앙리 바바(Henri Bava, 아장스 테르 대표) 등을 포함해 약 1,500명의 조경인이 함께했다. 제임스 헤이터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조경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경진 조직위원장은 한국 조경 50주년을 맞이해 열린 이번 대회의 의미를 되새기며 행사를 지원한 광주시, 국내외 기조 강연자, 스폰서, 파트너 등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울러 미래 세대의 인사말도 이어졌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 재학 중인 조담빈은 세계조경가대회를 통해 조경의 가치에 대해 배우게 된 소감을 말했다. 시상식과 공연도 펼쳐졌다. IFLA 회장상(IFLA President Award 2022), 제프리 젤리코 상(IFLA Sir Geoffrey Jellicoe Award 2022), IFLA 학생샤레트(IFLA Student Charrette Award 2022) 등 다양한 시상식이 열렸다. IFLA 회장상은 글로리아 아폰테(Gloria Aponte)가 수상했으며, 제프리 젤리코 상은 아드리안 회저(Adriaan Geuze, West 8 대표)가 수상했다. 학생샤레트 1등은 ‘오픈 월(Open Wall)’ 팀이 차지했다. 국악 그룹 해음과 달음이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를 통한 퓨전 국악을 축하 공연으로 선보였다. 첫날 저녁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프닝 리셉션이 펼쳐졌다. 오프닝 리셉션에서는 축하공연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안은미컴퍼니가 ‘조화타령’을 선보였고, 위드와 온도는 각각 아카펠라와 퓨전 국악을 들려줬다. 전시와 시상식 대회 첫날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전시홀에서는 2022 제12회 대한민국 조경대상과 제19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시상식이 열렸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조경학회가 주최하는 조경대상의 시상식에는 조경진(한국조경학회 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박연진(국토교통부 과장)의 축사가 있었다. 대통령상은 평택고덕 공공정원 ‘같이’의 가치가 수상했으며, 국무총리상은 국립세종수목원이 수상했다. 제19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은 늘푸른재단이 후원하고 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협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제19회 대전의 주제는 이번 제58차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와 동일하게 ‘리:퍼블릭 랜드스케이프’였다. 대상은 ‘공존–양보의 미학(Coexistence-Aesthetics of Concession)’의 김솔지, 최지윤(경희대학교 환경조경디자인학과) 팀이 수상했다. 대회 내내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로비에는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황지해의 작품 ‘태양의 뜨개: 골바람이 낳은 딸’이 전시됐다. 1층 전시홀에서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 대한민국 조경대상, IFLA 학생설계공모전 수상작 전시회,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작품 전시 등 다양한 전시를 선보였다. K-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 엑스포는 대한민국 조경 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자재 업체 중심의 전시에서 벗어나 건설사, 공공기관, 엔지니어링 및 설계사무소까지 다양한 분야가 참여해 국제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을 보탰다. 또한 제품과 브랜드 전시 외에도 취업박람회, 토크콘서트, 나는 조경가다! 확장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 일반 시민들이 쉽고 유용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기조 강연 정근식의 기조 강연을 필두로 사흘간 9개의 기조 강연이 이어졌다. 정근식은 냉전이 세계 곳곳에 남긴 군사 경관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되짚었다. 이어서 앙리 바바와 크레이그 포콕은 도시의 변화를 주도한 조경의 역할과 저탄소 디자인의 필요성에 대한 강연을 선보였다. 둘째 날은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캐서린 나이젤(Catherine Nigel, 시티 파크 얼라이언스 전무이사), 아드리안 회저의 강연이 이어졌다. 김아연은 조경이 지닌 메타 언어의 가능성을 진단했고, 캐서린 나이젤은 미래 도시공원의 역할과 가치를 강조했다. 아드리안 회저는 단순한 실현 이상으로 상상을 구현하는 시적 경관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마지막 날에는 김정윤(하버드 GSD 교수), 질리언 월리스(Jillian Walliss, 멜버른 대학교 교수)와 하이케 라만(Heike Rahman, RMIT 교수), 이만의(한국온실가스감축재활용협회 회장)가 무대에 올랐다. 김정윤은 기후변화 시대의 조경가 역할을 강조했고, 질리언 윌리스와 하이케 라만은 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만의는 담양의 사례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스페셜 세션 건축공간연구원과 문화재청은 각각 스폐셜 세션을 주관했다. 첫날 오후 2시에는 건축공간연구원 스페셜 세션이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주제는 ‘기후변화와 팬데믹 이후의 도시공원과 공공 공간’으로 국내외 전문가의 발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제프 호(Jeff Hou, 워싱턴 대학교 교수), 박소현(코네티컷 대학교 교수), 이은석(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발제에 이어 제임스 헤이터, 캐서린 나이젤, 정욱주(서울대학교 교수), 고정희(써드스페이스베를린 대표)의 토론이 진행됐다. 둘째 날 오후 2시에는 문화재청 스페셜 세션이 열렸다. 주제는 ‘전통 정원의 보존 관리’로 엘리자베스 브라벡(Elizabeth Brabec, 매사추세츠 대학교 교수), 토모키 카토Tomoki Kato(교토 예술대학교 교수), 매리언 허니(Marion Harney, 배스 대학교 교수), 신현실(우석대학교 교수)이 발제를 맡았다. 김영모(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이상석(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손용훈(서울대학교 교수), 진혜영(국립수목원 과장)이 토론의 패널로 참가했으며, 기후변화와 개발의 위기 속에서 역사 정원의 보존과 활용의 균형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라운드 테이블 둘째 날 오후에는 학생, 교육자, 밀레니얼 연구자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학생 라운드 테이블은 전국 조경학과 학생 대표단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국내외 조경학과 학생들이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의 꿈과 현재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자 라운드 테이블은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의 교육자들과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로 진행됐다. 김태경(강릉원주대학교 교수)의 환영사로 시작해, 이재호(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유진(강릉원주대학교 교수), 하이리예 에슈바흐 툰차이Hayriye Eşbah Tunçay(이스탄불 공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토론의 주제는 설계 스튜디오에서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지역적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연구와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튜디오 방식,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 세대들의 설계 특성 관찰 등 다양한 교육자들의 경험이 공유됐다. 유엘씨프레스(ULC Press) 주최로 진행된 밀레니얼 연구자 라운드 테이블은 앞으로 도시의 조경을 만드는 데 있어서 주목해야 할 요소가 무엇일지 살펴보고 나라별 특징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독일, 에스토니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폴란드, 한국의 연구자와 실무자가 모여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조경가와 정치가 사이의 관계 설정, 그린 인프라 구축, 공간의 재생, 팬데믹 시대에서 조경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다. 학술논문발표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 할 수 있는 학술논문발표회에는 22개국의 조경학자와 조경가 120여 팀이 참여해 최신의 정보와 연구를 공유했다. 기후변화 대응 조경 계획과 설계, 회복탄력적 환경 설계, 도시 쇠퇴 등 최근의 세계적 이슈뿐만 아니라 용산공원, 한국적 도시재생 등 다양한 주제의 학술 논문이 발표되어 토론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논문 초록을 묶은 책은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땅에 쓰는 시’와 투어 잠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도 제공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경가 정영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김대중컨벤션센터 다목적홀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상영된 영상은 이번 대회를 위해 제작된 30분 분량의 특별판이다. 다큐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한민국 1호 여성 조경가의 발자취와 한국 조경에 큰 획을 그은 그의 작품을 조명한다. 둘째날에는 정영선 조경가와 정다운 감독, 조경진 교수가 함께한 시네 토크가 진행됐다. 영상 시청 후 진행된 시네 토크에서는 정영선의 조경관, 감독의 제작 의도와 소감 등 다양한 이야기를 청중과 나눴다. 포스트 투어를 포함한 세 가지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첫날과 둘째 날은 전문해설사와 함께 하는 1시간 정도의 워크 앤 토크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양림동, ACC, 푸른길 공원 등 세 개 코스를 통해 참가자들이 광주의 도시 서사를 체험했다. 마지막날에는 무등산, 죽녹원, 광주생태호수공원 등 세 개 코스의 테크니컬 비지트를 반나절 동안 진행했다. 투어 참가자들은 광주 주변 지역의 생태, 문화, 역사 체험을 통해 한국의 자연과 남도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폐막식 다음날 진행된 포스트 투어는 순천, 목포, 보성 일대를 둘러보는 세 개 코스로 진행됐다. 한국의 전통 유산부터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인 정원 문화와 새로운 도시 아젠다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폐막식 폐막식에는 국내외 조경가, 지역 주요 인사, 광주광역시장이 참석했다. 안세헌(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은 힘든 시기에 개최된 세계조경가대회가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참가자와 서포터즈에게 감사 인사를 보내며 조경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빛고을 광주에서 열린 세계조경가대회의 성공을 축하하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조경가에 존경을 표하며 다시 광주에 찾아줄 것을 청했다. IFLA 학생설계공모전 시상식도 진행됐다. 시상식에서 제임스 헤이터 회장은 공모전 후원자인 박명권 대표(그룹한 어소시에이트)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룹한은 지난 15년간 매년 이 공모전을 후원해왔다. 박명권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어려운 시기임에도 학생들의 많은 참여로 이루어진 공모 과정을 치하하고, 미래 세대가 조경에 관심을 가지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차기 세계조경가대회 조직위원회에 대회기를 이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3년 9월 28일에서 29일까지 나이로비와 스톡홀름 두 도시에서 동시 개최될 차기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는 ‘긴급한 상호작용(Emergent Interaction)’이다. 차기 대회는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공정, 생물종 다양성을 위한 조경가의 활동을 잇는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동시에, 새로운 형식의 집단지성 기반의 문제 해결, 국경을 넘어서는 전략, 아이디어와 디자인 협력 등을 탐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임스 헤이터 회장의 폐회사로 행사가 마무리됐다. 그는 세심한 프로그램으로 행사를 기획한 한국조직위원회에 감사 인사를 하며 여정을 함께한 참가자들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 금민수
  • [IFLA 2022] 세계조경가협회 이사회 회의
    대회 개최 이틀 전, 세계조경가협회 이사회 회의(IFLA World Council Meeting)가 열렸다. 8월 29일부터 8월 30일까지 양일간 진행된 회의에 조경진 회장(한국조경학회)이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회의 1일차 오전, 세계조경가협회 회장단과 각국 대표, 옵서버 40여 명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제임스 헤이터(James Hayter) 회장(IFLA)은 최근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기후변화, 식량 안보, 건강과 웰빙, 토착 문화 보존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조경가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7가지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1가 조경과 깊게 관련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책자를 세계조경가대회 행사장 곳곳에서 배포하기도 했다. 이어 다양한 조경 이슈를 공유하는 토론이 진행됐다. 차기 IFLA 회장에는 뉴질랜드 웰링턴 빅토리아 대학교 교수 브루노 마르케스(Bruno Marques)가 선출됐다. 오후에는 미국조경가협회(ASLA, American Society of Landscape Architects)가 진행하고 있는 ‘직무/태스크 분석(Job Task Analysis, JTA)’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JTA는 ASLA가 운영하는 조경가등록시험(Landscape Architect Registration Examination, LARE)의 기초를 이루는 조경 실무 연구다. 미국의 경우, 조경등록위원회(Council of Landscape Architectural Registration Boards, CLARB)가 연구를 맡아 조경가의 업무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정리해 보고서를 펴내고 있으며, 홈페이지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2 이후 홍보 및 대외 업무분과, 전문실무 및 정책분과별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 2일차에는 IFLA 업무 매뉴얼 소개와 회계 보고가 진행됐다. 워킹 그룹은 조경 수준 향상을 위한 교육 인증제를 논의했고, 오후에는 5개 지부(유럽,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별 토론을 진행했다. 정리: 조경진, 김모아 *환경과조경414호(2022년 10월호)수록본 일부 각주 1.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다음의 17가지다. 1. 빈곤 퇴치 2. 기아 해소와 지속가능한 농업 3. 건강과 웰빙 4. 양질의 교육 5. 성 평등 6. 깨끗한 물과 위생 7. 저렴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8.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 성장 9. 산업 혁신과 인프라 구축 10. 불평등 완화 11. 지속가능한 도시 12.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13. 기후변화 대응 14. 해양 생태계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 15. 육 상 생태계 보존과 지속가능한 이용 16. 평화로운 사회를 위한 제도 구축 17.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파트너십 강화 각주 2. www.clarb.org/task-analysis
    • 김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