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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시대 조경 이론과 설계의 지형(9) - 공감각의 조경미학
    예술의 굴레, 화장술 조경 엘리자베스 마이어가 명확히 지적하고 있듯이 "부지 분석과 디자인 표현 사이의 단절, 즉 환경적 가치와 형태 생성 사이의 단절" 은 동시대 조경의 가장 큰 환부 중 하나이며, 이는 곧 조경을 둘러싸고 있는 예술과 과학, 디자인과 생태학의 대립으로 치환될 수 있다. 최근의 이러한 대립 양상은 1960년대 말 이후 환경론의 대두와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동의 하나로 형성된 1980년대 이후의 조경예술(landscape architecture as art)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이 지점에 대한 정교한 분석은 이 지면의 영역을 벗어난다. 정작 이 글에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픽춰레스크의 진부한 낭만을 거부한, 광역 생태계획의 건조함에 도전한 조경예술운동의 성과가 아니라 그것이 노출해 온 난점들이다. 피터 워커와 마샤 슈왈츠로 대표될 수 있는 이러한 흐름의 한계는 지극히 형태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현대 미술의 언어를 적용하고 동시대의 문화적 감각을 조경에 결부시키고자 한 시도는 물론 긍정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시도가 겉모습의 복제에 그치고 있다는 점, 즉 종래의 디자인과 달라야만 한다는 강박증 내지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한다는 "형태적 튀기 전략"의 차원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자면 예술이라는 새옷에 감추어진 조경의 몸체는 결국 장식과 화장에 골몰했던 전통적인 조경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즉 동시대 조경 행위의 주류는 자연과 문화의 대화를 중개하는 "관계의 예술"이기보다는 예술이라는 허사로 포장된 미장원 내지 피부클리닉이라는 비판에 노출되어 있다. "예술로서의 조경은 곧 눈에 보기 좋은 조경"이라는 등식을 거짓 명제라고 부정해 버리기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 조경미학의 비판적 앵글이 요청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조경미학의 과제 중 하나는 가시적 형태 장식에만 치중해 온 화장술 조경을 극복할 수 있는 미학적 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으며,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것에 접근할 수 있다.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 할애할 것은 그 다양한 경로 중 "지각"의 측면이다. 예술의 굴레 속에서 형태 중심의 화장술로 부유하고 있는 조경의 이면에는 "시각 중심적 지각"이라는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는 강한 의심, 그리고 그러한 단편적 지각 모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의 탐색이 뒤를 이을 것이다. ▲ james Corner/Field Operations, Lifescape, Fresh Kills(그림제공 : Field Operations 정옥주) 공감각, 삶과 경험의 확장 시각만을 통해 어떤 환경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체가 환경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고 환경이 우리로부터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에서 우리는 표면의 형식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시각은 환경의 미적 경험에 필요한 하나의 감각에 불과하다. 문화적 자연으로서의 환경에 참여(engagement)하기 위해서는 그 내부의 모든 상황을 포괄하고 연결할 수 있는 다른 감각들의 역할이 시각 못지 않게 중요하다. 개념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의 환경 경험을 기억해 보자. 멀리서 어떤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 미적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신체는 그러한 환경에서 환경과 함께 움직이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반응하지 않는가? 우리는 눈을 통해 환경의 색과 질감과 형태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땅과 풀을 만지고 밟거나 바람과 물의 소리를 듣거나 고유한 어떤 냄새를 맡고도 환경을 파악하고 구별하지 않는가? 환경의 미적 경험을 설득력 있게 해명하기 위해서는 시각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해 온 청각, 후각, 촉각, 근운동감각 등 여타 감각들의 가능성을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환경의 소리는 생동감과 역동성을 가져다준다. 바람이나 파도 소리처럼 리듬이 있는 소리는 생명의 기본적 파동―심장의 박동과 호흡―과 비슷하다. 소리는 환경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성분이며, 따라서 귀를 통한 음의 지각은 환경의 미적 경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각 방식이다. 저급한 감각으로 여겨져 온 후각은 환경의 숨겨진 차원을 드러내 주며 우리의 감성에 영향을 준다. 사람마다 냄새가 다르듯이 환경의 냄새도 서로 다르다. 음식 맛도 냄새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듯이 환경의 냄새는 환경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촉각은 사물의 표면 결, 윤곽, 압력, 온도, 습도 등에 대한 지각을 담당하는 것으로, 환경의 특질을 파악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연을 만지며 즐거워하는 행위는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을 보장해 주지만, 우리는 주로 자연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자연을 향유했다고 만족한다. 그러나 촉각은 가장 속이기 어려운 감각이며 인간이 가장 신뢰하는 감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감각은 근육과 골격 및 신체의 운동과 관련되는 근운동감각(kinaesthesia)이다. 근운동감각을 통해 우리는 신체 운동의 속도, 회전 각도의 정도, 방향 변화의 정도 등을 지각할 수 있다. 근운동감각은 정태적 자연 경험을 대치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자연 경험의 전제 조건이다. 신체의 운동은 생명의 증거이다. 시각의 그림자에 묻혀왔던 청각, 후각, 촉각, 근운동감각 등 각각의 감각 영역에 주목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감각들이 환경의 경험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른바 공감각(synaesthesia)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색깔을 연역하는 상황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감각의 보편적 형식이다. 예컨대 음의 높이는 이미지의 밝기와 관련된다. 굵은 목소리, 드럼 소리, 천둥 소리 등과 같은 저음은 어두운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반면, 아기의 울음 소리, 바이올린 소리, 소프라노 음 등은 희거나 밝은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음의 높이는 또한 이미지의 크기 및 형태를 연상시키게 한다. 고음은 작고 날카로운 각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저음은 어둡고 둥근 양감을 준다. 이처럼 우리의 지각은 단일한 감각 경로에 의존하기보다는 여러 감각의 통합적 기작을 통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단일 감각에 의존해 왔다. 미술과 음악은 가장 전형적인 단일 감각형 예술이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만이 고유의 예술 형식과 표현 언어와 기교를 가지고 있는 세련된 감각으로 여겨져 왔는데, 그러한 전통의 배경에는 시각과 청각을 이성의 활동과 관련되는 감각이라고 간주해 온 전통이 내재해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예술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지각할 때는 다른 감각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각을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 콘서트홀에서 교향곡을 감상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장소의 시각적 분위기, 연주자의 모습, 홀 내부의 온도, 옆 사람들과의 접촉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경의 미적 경험과 지각은 예술의 경우보다 한층 더 총체적이며, 여러 감각들이 동시에 동원된다. 이런저런 이론과 개념을 떠나 실제의 경험을 생각해 보기만 하더라도, 환경에서는 하나의 감각―특히 시각―만이 상황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들이 동시에 개입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환경의 미적 지각은 "여러 감각 또는 모든 감각의 연합 작용에 의해 형성되며 모든 감각이 서로 관련된다." 보기, 만지기, 듣기, 냄새맡기, 맛보기, 근육의 움직임 등과 같은 복합적 지각 행위가 경험 과정에서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미학자 아놀드 벌리언트가 적절히 분석하고 있듯이, "환경의 경험은 단순히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 양태를 공감각적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동시에 작용하는 감각들을 분리하여 분석하는 일은 시각에 대한 강조가 갖는 문제 이상으로 허구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각은 한층 더 설득력을 지닌다. "환경 지각에서……공감각은 ……감각 양태의 혼합을 뜻한다.……환경 지각은 전체적이자 상호적인 인간의 감각 중추와 엉켜있다. 우리는 신체와 장소의 상호 침투를 통해 환경의 일부로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 개개인을 자연적·문화적 조건과 결합시키는 연속성을 지향해야 한다면 공감각에 대한 강조는 필연적이다. 공감각은 또한 "문화의 상상력"을 "지각하고 창조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마라 밀러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감각들을 배제한 시각 위주의 "이차원적" 환경 경험은 "환경에 대한 우리의 향유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감각의 전체 영역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곧 환경의 미적 경험은 물론 우리의 삶을 확장시키는 의의를 지닌다. 공감각에 대한 인식은 환경이라는 미적 장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삶에 다양한 미적 경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전환적 사고의 하나일 것이다. 배정한 Jeong-Hann Pae 조경비평가, 조경학 박사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뻬쩨르브르그- 에르미따쥐 박물관과 시민혁명으로 유명한 바로크식 도시
    이 도시는 바로크식 도시이다. 전제왕권 스타일의 바로크 건물로 지워진 도시이다. 바로크는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민주주의의 이념을 추구하는 바로크식 도시가 되었고, 파리, 런던도 마찬가지이다. 뻬쩨르브르그는 바로크를 파리, 런던 등 유럽 주요도시에서 가져왔다. 브라질의 행정수도 역시 원시림을 개발하여 만든 인스탄트 바로크 도시가 아닌가? 뻬쩨르브르그는 이 시기의 신도시이다. 모스크바로부터 무려 7백여 킬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신도시를 만든 것이다. "유럽으로 난 창문"으로 우리에게 레닌그라드로 알려졌던 도시. 이 도시가 1703년 5월에 세워지고 정식으로 러시아의 수도가 될 때까지 9년을 기다려야 했다. 왜냐하면 로마노프왕조가 대법원과 연방정부청사를 이 곳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뾰뜨르(1672-1725)는 선진문화와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유럽으로 떠난다. 쿠데타 소식을 접하고 겁이나 1년 6개월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끼가 가득 찬 습지와 진흙탕에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하나 하나 실천에 옮긴다. 발트해를 거머쥐고 유럽을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하는 그의 염원은 유럽에서 내로라 하는 큰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였다. 이 길만이 러시아가 서유럽에 대한 콤프렉스를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웨덴이 발트해를 떡 버티고 있는 바람에 유럽통로가 봉쇄되자 그는 스웨덴과 북방전쟁을 일으켜 승리하게 된다. 승전은 국민들을 도시건설에 동원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었다. 우선 뾰뜨르는 네바강 하구에 외침에 대한 든든한 방어의 수단으로 요새 구축을 서두른다. 요새를 필두로 하여 도시는 서서히 그 거대한 위용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뾰뜨르대제는 유럽 선진도시의 계획방식과 건축양식을 골고루 받아들여 도시를 계획하되, 건축물은 모두 돌로 만들라고 명령한다. 이 당시 뽀뜨르대제는 테크로크랏을 비롯한 수 만 명의 농민을 전국에서 차출하여 운하를 구축하고 다리를 놓고 건물을 짓는다. 마치 황량한 사막에 도시를 세우는 것처럼… 1703년에 단추를 낀 사업이 한 세기에 걸쳐 진행된 것이다. 18세기에 이렇게 거창하고 화려한 신도시가 만들어 진 것은 유럽의 도시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대역사인 것이다.▲ 저녁노을과 햇살이 깔리는 네바강의 풍경 진흙탕과 밀림이 전부였던 습지대가 도시적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동원된 국민들(주로 농민)은 중노동, 그리고 배고픔과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도시건설 현장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게 되었다. 마치 전장에서 죄 없는 병사들이 쓰러지듯이… 이 도시건설에 묻힌 많은 희생자들 때문에 이 도시의 별명 같은 이름 "사람의 뼈로 이루어진 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다.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은 짧은 기간에 이토록 유럽형의 아름다운 도시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경외의 찬사를 보내는 한편 적지 않은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도시가 형성되자 유럽에서는 뻬쩨르브르그를 유럽의 일원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도시 하나가 유럽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북방전쟁의 승리에다 유럽형 도시의 건설로서 유럽을 오가는 길목인 발트해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 셈이다. 백야를 지나 잠시 어두워 지더니만 이내 아침해가 둥그러니 솟아 오른다. 구두끈을 고쳐메고, 손가방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나직하고 완강한,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아침해를 두팔로 끌어 안으며 어제와는 다른 길을 간다. 또 다른 곳에 우리의 발자국을 찍으러... 네프스키 거리를 간다. 이 도로는 역시 뻬쩨르브르그의 상징가로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뻬쩨르브르그의 길은 모두 네프스키로 통한다. 이 도로는 역사성, 상징성, 그리고 중심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고, 상가, 은행, 공공건물, 그리고 도로 이면에는 주택등이 포진하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문호 도스도예프스키, 고골리, 푸시킨 등이 이 도로를 무대로 글을 쓰고, 이데아를 논하고, 시상을 떠올렸다. 이 길을 통해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이 길에서 시민들이 외치는 혁명적 요구가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유럽까지 퍼져 나갔다. 뻬쩨르브르그의 길을 모두가 넓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도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로들은 사람보다는 대제를 위하고, 권위를 자랑하기 위함이다. 대로 중심의 이 도시는 중세도시의 모습을 간직한 대부분의 유럽도시들과는 엄연한 차별성을 지닌다. 중세형 유럽도시에는 큰 길이 없다. 똑바른 길도 드물다. 기하학적 질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어느 중세형 도시의 도로는 도로 폭이 일정하지 않고, 방향성도 모호하다. 구불구불한 길은 도시 어느 곳에서라도 중심광장으로 사람들을 안내해 준다. 그러면 성당이나 시청사는 마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타나게 마련이다. 원 제 무 Won, Jaimu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 교수 (본 원고는 요약문 입니다)
  • 조경공간에서 만나는 점토벽돌(2) - 점토벽돌의 다양한 활용사례
    이번호에서는 점토벽돌을 녹지경계석, 배수로, 플랜터, 앉음벽, 계단 등에 활용한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고, 점토바닥재의 응용방안으로 켜쌓기 방법을 살펴본다. 더불어, 점토바닥재의 기본적인 포장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녹지경계석 경계석은 다양한 재료와 만나 녹지경계석, 포장분리경계석(재료분리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에는 녹지와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녹지경계석이 사용되었으나 최근들어서는 특별한 경계석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재 그대로 마감하는 현장도 눈에 띄고 있다. 그만큼 다채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와 방법으로 바닥재가 시공되고 있는 만큼 녹지의 경계와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났을 때의 경계부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녹지경계석의 경우 녹지와 만나는 포장재를 고려하여 꼭 기성제품의 콘크리트나 화강석 경계석을 사용해야 하는지, 미처 세밀하게 살펴볼 여유가 없어 녹지와 만나는 라인에는 무조건 경계석을 사용하여 과잉설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건축과 토목에 비하여 늘 부족한 공사비를 사용해야 하는 조경공사의 현실을 고려할 때, 경계석에 사용되는 만만치 않은 공사비를 다른 공정에 사용하여 전체적인 공간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현장에서 시공되는 경계석의 길이와 포장면을 생각한다면, 세심한 배려가 결과물에 있어 얼마나 다른 품질로 나타날지 생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점토바닥재가 최상의 방식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장 여건에 따라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에, 몇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하지만, 점토바닥재를 경계석으로 사용할 때에는 특히 콘크리트베이스 위에 점토바닥재를 붙여야 하므로 백화현상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레미탈(시멘트, 모래가 혼합되어 현장에서 물만 부어 사용할 수 있고 해사 사용으로 인한 하자를 막을 수 있다)로 시공하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 어떤 포장재를 어떤 느낌으로 표현할 것인지에 따라 적당한 경계석 시공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포장마감이 점토바닥재로 사용되었다면 점토바닥재를 이용한 경계석은 통일감을 줄 수 있으며 작은 단위로의 절단과 시공이 용이한 만큼 현장상황에 따른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이다. ▲ 그레이팅 테두리 배수로 배수로에 이용 될 수 있는 점토바닥재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표면배수가 되도록 하여 시공시 경사를 주어 배수의 방향을 잡아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배수용 점토제품인 찬넬(channel)을 이용해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 가능하다. 세 번째는 점토바닥재로 포장면 보다 단을 낮춰 배수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배수로를 만들때는 전체 포장면적과 강수량을 고려하여 폭과 깊이를 정해야 한다. 플랜터(Planter) 플랜터를 만들때는 조적하여 만드는 방법과 콘크리트 구체를 치고 외벽에 점토바닥재, 점토타일, 점토벽돌을 붙여주는 방법이 있다. 포장의 재질이 점토바닥재였을 경우는 공간의 통일감을 주기 위하여 플랜터에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앉음벽(Sitting Wall) 앉음벽은 시설물중에서 시각적으로 중요한 구조물인 동시에 기능성도 있는 구조물이다. 1B나 1.5B 쌓기 정도의 폭을 갖게되며 다양한 길이와 형태, 다른 재료(나무, 석재)와 혼용하여 여러 가지 표정을 연출하는 시설물로 만들 수 있다. 콘크리트 구체로 만들 경우에는 점토타일이나 점토바닥재로 붙여 시공한다. 마지막 끝부분 마무리에 있어서는 무공제품으로 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장 설치시에도 마무리는 무공제품을 사용하고 설계시 디테일에 나타내 주어야 할 부분이다. 계단 같은 점토제품을 사용해 계단을 만들더라도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 수 있는데 바닥포장을 마무리한 같은 점토바닥재로 계단을 마무리 할 수 있고, 밟는 면은 점토바닥재로 측면은 점토벽돌을 세워 시공할 수 있으며 계단마감재로 마감을 할 수도 있다. 이 방법들 모두 느낌이 다른 형태의 계단으로 시공되므로 현장의 분위기, 계단사용의 빈도, 계단 날개벽 마감 등을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계단의 높이가 현장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날 수 있지만 점토바닥재나 점토벽돌은 절단이 쉬우므로 변수가 많은 현장에서 탄력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점토바닥재의 응용 - 켜쌓기 점토바닥재를 반으로 컷팅하거나 포장공사시 절단하고 남은 점토바닥재의 절단면을 정으로 쪼아 적당히 다듬어진 요철을 주어 화강석의 켜쌓기와 같은 방법으로 줄눈 없이 몰탈로 붙여 시공할 수 있다. 시공시에는 벽돌을 쌓듯이 정형적인 방법으로 쌓는 것이 아니라 길이가 서로 다른 것들을 조합하여 자연스러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점토바닥재 색상중 투톤의 색상으로 되어있는 것은 절단된 면의 색상이 한층더 돋보이게 된다. 이러한 방법은 플랜터, 장식가벽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이 희 경 Lee, Hee Kyung·미드랜드코리아(주) 디자인팀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제1회 친환경적 실내공간 디자인 공모전
    (사)실내조경협회에서는 2001년 12월 5일 제1회 친환경적 실내공간 디자인 공모전에 대한 시상식을 진행했다. 대상은 김진주, 장승완(상명대학교), 최우수상은 이지선, 이정애, 정진주, 이지선(삼육대학교), 우수상은 이문희, 구지은 (상명대학교), 장려상은 구본욱 , 문경훈, 나일정, 박진수, 정범준(세명대학교), 정선영, 강혜숙, 문정수, 김동원(숭실대학교), 김태현(백제예술대학교)이 수상하였다. ▲ 대상 Cristal Line ▲ 최우수상 陰陽合一調和 ▲ 우수상 Dialogue with space
  • 턴키 프로젝트 -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선수촌
    ▲ 당선작 현대건설+D.S.T건축+동인조경마당(조감도) ▲ 출품작 포스코개발+건원건축+가원조경(마스터플랜) ▲ 출품작 두산건설+무영건축+신화컨설팅(조경계획도)
  • 장승과 이정표 및 가로수에 대한 고찰
    장승과 가로수 도로에 거리 표시로 처음에는 흙이나 돌을 무더기로 쌓아서 일정한 거리마다 설치 하다가 점차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그 돈대( )위에 나무를 깎아세워 안내기록을 새겨넣는 표목(標木)이 세워 지다가 장승과 함께 병행하는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수목을 심어서 거리의 위치표시로 삼다보니, 마침내는 그 이용효과는 거리표시는 물론 행인들의 쉬어가는 그늘로하여 쉼터로서의 다목적 효과를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로변의 장승이 가로수로 변하게 되었는지 그 시대적 과정을 보면, 도로변에 후( )라는 명칭으로 장승을 세우면서부터 나무를 심게 되었던 최초는 앞서 언급된 바 있는 고대 중국의 남북조 시대 위효관 이라는 지방 수령이 도로변에 거리 표시로 흙장승( )을 설치했던 것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그 돈대( )를 대신케하니 길가는 나그네들로 하여금 서늘한 그늘을 주는 덕을 베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임금(周文帝) 은 전국 각 주(州)에 명하여 이와같이 후( :장승)를 없애고 대신 나무를 심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심은 나무의 수종은 어떤 나무를 심었던가 하니, 북사(北史) 위효관전(韋孝寬傳)에 있기를 후( )대신 홰(槐)나무를 심었다.(當里處植槐以代理 也) 하였으니, 이 나무는 일명 회화나무로서 중국이 원산인 활엽교목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회화나무는 예부터 삼공지괴(三公之塊)라 하여, 공명심록(空名臣錄)에 자손이 삼공(三公)에 오르면 뜰 안에 이 나무를 심었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귀애함을 받았던 나무였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옛 한양의 도성 궁궐내 요소마다 홰나무가 지금도 거목으로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와 관련한 연유가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조선 초기에 와서의 실상을 보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나서는 건설사업에 주력하는 바 도성 및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동서남북 중앙의 5부로 나누어 도로건설을 시행하였는데, 도성내의 도로망은 물론 전국의 역원(驛院)제와 봉수제를 한성부 중심으로 개편하므로 하여 이 사업은 태종, 세종, 세조, 성종조를 거쳐 경국대전의 완성으로 전국적인 도로망의 정비를 보게되었다. 이 기간동안에 도로변에 심은 나무의 기록이 있는바 「도로변에 거주하는 자는 전부 도로변에 나무를 심고 하천변에 거주하는 자는 축방 양측 제방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路傍各戶皆命栽植川邊各戶各於兩岸築坊栽木)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남북조시대 위효관이 시행한 길가에 나무를 심어 행인들에게 덕한 길가에 나무를 심어 행인들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것과 무관치 않은 일이며, 우리나라 가로수 역사의 효시가 아닌가 싶다. 또한 조선왕조의 통치 법전인 경국대전에 장승에는 리(里)수와 지명을 새긴다라는 규정이 있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새로운 제도의 창립시행도 있고, 시류에 따른 변화도 있어서인지 거리표시 방법도 기존 장승에만 의존하지 않고 융퉁성 있게 시행하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태종때 까지는 후( )라 하여 토석의 단위에 거리표시를 해오다가 세종 20년(1438)때 와서는 장승의 위치에 이정표로 표목(標木)을 세우고는 나무를 심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세종 23년(1441) 8월에는 중국 사신이 들어오는 평안도 대로변에는 30리마다 로표(路標)를 하나씩 세우되 구간 내에는 단을 쌓아서 거리 표시를 하기도 하였다. 또 단종때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나무만 심게 하였으니, 단종원년(1452) 5월에 는 한성과 지방의 대로변 좌우에 나무를 심도록 하고 철저히 관리하게 하는 반면 그 심는 수종은 각 지방에 알맞은 나무로 하되 소나무, 잦나무, 밤나무, 홰나무, 버드나무 등을 심고 가꾸게 하였는데, 이는 앞서의 나무로 거리표시를 하던 방법과는 크게 변화된 시행이며, 특히 도로변 좌우에 심으라는 것으로 보아 가로수 개념에 가까운 시행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같은 일이 단종 이후로는 기록에 보이지 않다가 현종때에 와서의 일로 반계수록에 보이는데. 「회화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잦나무, 버드나무는 성(城) 내·외에서 관도의 양쪽에 느려심고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관리하도록 했다.(槐木, 銀杏, 松柏, 楊柳則又於城內外官道兩傍列植分付傍道居人看手如有伐者治罪郞令準植)」 는 기록이 있다. 이는 그동안 장승과 함께 구간마다 나무를 심어본 대체 효과가 아예 나무를 많이 심어 얻는 다목적 효과를 가져온 결과의 시도가 아니었나도 생각된다. 장승의 처음은 거리표시로 장승만이 주체이던 것이 나무를 시어 대치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처음 시작은 세종때부터 변화기라 하겠지만 후애로 오면서 일관성 있게 통일된 시행이 아니라 장승과 함께 나무를 식재로 병행설치 방법으로 후기에까지 이어온 것 같다. 정약용 선생도 이정표를 세우되 쉬어 갈 수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이 목민심서(1801∼1818)에, 나루터에 배 없는 일이 없드시 역정(驛)에 장승 없는 곳이 없음은 행인과 나그네들의 즐거워 하는 바 라고 하면서, 5리가서 표목 하나 세우고, 10리에 가서 장승을 세우되 거기에 중국의 위효관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흙돈대를 없애고 홰나무(槐)를 심게하면 길가는 나그네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어 덕을 베풀는 일이라 하고, 또 10리마다 작은 장승(小 )을 세우고, 30리마다 큰장승(大 )을 세운다면 거기에는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를 심어야 한다.(--每十里立小 三十里立大 樹之以楡柳) 고 하였다. 이는 관의 지침이나 직접적인 지시가 아닌 선비가 관을 향한 학자적인 설문이므로 그대로의 시행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앞의 왕조간의 시행사례 몇 가지의 예로보아 도로변에 이정표로 장승을 세우기도 하고, 거기에 나무만 심어 장승을 대신 하기도 하고 장승과 함께 나무를 심어 길가는 행인들에게 그늘을 주고 신선함을 제공하게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도로 문화에 변화의 과정이었으며, 이는 외부의 견문이 없이도, 우리만의 사고에 의해서 발전하는 고유의 우리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조의 재위기간(1776∼1800) 동안에 도로변에 심은 노송의 숲이 있으니, 수원시 북부 옛 지지대 고개 소나무 숲이 그것이다. 이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세자로 추존하고 능(陵)을 수원으로 천봉하면서 이 능을 지키는 용주사를 짓고는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부모은중경을 새겨 기복케 하는 지극한 효심으로, 한달이 멀다하고 능을 찾아 행차 하셨다 하는데, 지지대 고개는 국도의 대로이며 정조가 현륭원을 봉행할 때마다 지나는 능행어로(陵行御路)이기 때문에 장승도 격이 있는 큰 장승(大 )을 세웠던 위치일 뿐만 아니라 거기에 나무를 심은 것은 이미 세종때부터 큰 장승 주위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 관행이 아니었나 함이며, 궂이 소나무를 심었던 것은, 단종때도 그 지방에 알맞은 수종을 심도록 했던 선례도 있을 뿐만 아니라, 소나무는 옛부터 충절을 기리는 의미도 있었거니와 수장지목(樹長之木)이라 하여 나무중에 으뜸이요 조한 묘역이나 관문 입구에 심는다는(以松樹考門) 뜻을 높이 감안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다. 그러면 능원으로 가는 입구의 대로에는 장승이 어떻게 세워 있었는지 기록의 한 예를보면, 영조 46년(1770)에 관련한 도로고(道路考)의 능원묘어로 조(陵園墓御路條)에, 「厚陵在豊德長 隅自薺陵五里豊德府十里陵下五十里共二百二十里」라고 표기된 장승의 이정표다. 여기서 후능이란 정종의 능을 말함인데, 이 릉은 개성의 풍덕에 있는 능이다. 장승이 서있는데서 거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왕능 앞을 지나는 도로에는, 장승도 이정표도 격이 있고 품위가 있게 했으리라 여겨진다. 또 하나 임금이 다니는 온천길의 장승에는 어떤지 예를 보면, 같은 도로고(道路考)의 온천행궁로 조(溫泉行宮路條)에, 「---鳥山大川菁好驛前竝長 山見十里」 여기에서 보면 임금이 통행하는 어로나 관 대로에는 장승도 쌍장승으로 규모있게 세웠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보듯이 지지대 고개 또한 왕능이 있는 관대로 이므로 큰 장승이 품위있게 세워져 조선 말기까지 있었던가, 신채효 선생의 판소리중 변강쇠가의 가사 내용에도 지지대 유사님(有司) 지지대 공원(公員) 운운하는 대목이 있다. 장승을 가리켜 유사님 공원임 하는 말은 보부상의 직책으로 장승의 기능도 이에 유사함을 빗대어 음풍한 것일 것이다. 이렇듯 큰 장승이 서있는 지지대 고개에 소나무를 심어서, 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관원은 물론 일반 행인들까지 쉬어가는 곳이었을 것이니 생각해 보면 그늘이 있고 쉬어가는 곳이라면, 우마차와 행인들의 봇짊등을 길가에 길게 늘받쳐 놓고 쉬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러자면 나무도 길을 따라 가로수 열식으로 길게 심게 되었을 것으로 상상이 되는바, 초기에는 장승주위에 어찌 심었던지 간에, 정조임금의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질서있게 가로수처럼 길게 열식하여 심게된 것이 아닌가는 알 수 없으나, 오늘날까지 지지대 고개 노변을 울창하게 지켜 서있는 소나무 길은 사실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가로수가 의도적으로 심어지기는 개항기 이후인 고종 32년(1895) 3월 10일 내무아문(內務衙門)에서 각도와 각 읍에 시달하되, 「道路 左右에 樹木을 植養함을 勸하고 栽植할 事」하고, 가로수를 심도록 지시하므로 하여, 이로부터 전국에 설치되어 있는 역(驛)과 발참을 폐지하고 우체사를 신설하고 현대식 교통통신의 도입으로 하여 장승의 이정표 제도는 사라지게 되었고 관 주도로 획일적인 가로수를 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시책의 지침으로서 그 첫 시행의 시기와 장소는
  • 창인건설(주) - 인간중심경영으로 신뢰감 쌓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일본내 중견기업 MK택시 그룹의 성공비결은 익히 알고 있듯이 직원들에게서 우러나오는 차별화 된 서비스였으며, 그 배경에는 단기간의 이익보다는 고객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기업이 신뢰를 얻는다는 경영철학으로 주력한 직원들의 복지제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중요성을 실감한 탓인지 국내의 여러 중소기업들도 그를 표방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조경계에도 드러나지 않은 그러한 회사들이 제법 있을법 한데 지난 1997년 7월 설립된 창인건설(주)(대표 오영록)의 경우도 작은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인간중심의 경영마인드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킴은 물론, 공사 품질에 대한 신뢰를 받아 한창 분주하게 공사실적을 쌓아가고 있다. 직원의 주인의식 고취, 고품질로 연결 창인건설(주)는 동종업계 내에서 가족같은 분위기와 직원들 개개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복지제도로 조경인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는 직원들이 회사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함으로써 자신의 삶은 물론, 가족들의 생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종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오영록 대표의 경영방침의 결과로, 직원들의 정기적인 단합대회, 우수사원 선발 등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수시로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지시보다는 현장의 현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문제점과 애로사항 등을 듣고 독려하는 등,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미래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회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사내 분위기는 직원들의 주인의식으로, 또한 시공품질의 향상으로 연결되었고, 동종 업계에서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 결실의 하나가 바로 최근 준공되어 전세계인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했던 월드컵분수이다. 세계 최대 고사분수 국내 기술로 완성, 그 기술력으로 C.I-FOUNTAIN 설립 지난 11월 10일, 상암 월드컵주경기장 개장식에서 탄생을 알린 경기장만큼 돋보이며 행사내내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던 세계 최고의 높이인 월드컵 고사분수를 TV이나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었을텐데, 202m(2002년 월드컵을 상징)의 물줄기를 뿜어내며 주변으로는 21기의 보조분수(30m높이)가 104개의 조명에 의해 화려한 야경을 연출, 우리의 기술을 자랑했던 그 경관의 조성에 창인건설(주)이 한 몫 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고사분수는 현대산업개발(주), (주)동명기술공단 종합건축사사무소, 창인건설(주), (주)한국선박기술이 컨소시엄으로 완성한 작품인데, "현대산업개발(주) 조경부가 저희를 믿어주고 함께 한 덕택에 무척 어렵고 전무후무한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수행할 수 있었다"고 2000년 입찰에 참여했을 당시를 회상하는 오 대표의 말처럼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된 월드컵 고사분수의 조성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프로젝트의 규모도 너무나 방대했고 기존에 대부분 130∼140여m 정도의 고사분수가 설치되어 국내는 고사하고, 스위스 레만호, 미국 아리조나 파운틴 힐, 일본 사기에 댐 고사분수 등 해외에서도 월드컵 분수의 조성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서해와 멀지 않은 관계로 조수간만의 차가 커 하루에도 2∼10(홍수시에는)m까지도 차이가 날 뿐 아니라 흐르는 강물에 설치하다보니 온갖 부유물들이 쓸려내려 오는 등 연구과정부터 시공완료시까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순수 국내기술로 지금의 월드컵 고사분수가 조성되었고,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 또한 창인건설(주) 직원들만의 주인의식과 끈기가 큰 역할을 해냈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창인건설(주)를 모체로 고사분수 전문업체인 C.I-FOUNTAIN(주)를 설립, 월드컵 고사분수를 시공한 기술력과 노하우에다 작은 것에도 소홀하지 않는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더해 수경관 연출의 새로운 지표가 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사진 : 김태우 부장, C.I-FOUNTAIN(주)) 미니인터뷰 "월드컵 고사분수가 중간 조율사로서의 조경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면" - 오영록·창인건설(주), C.I-FOUNTAIN(주) 대표이사 - "근 2년간 정말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기회를 갖게 해준 현대산업개발(주)는 물론, 열심히 해 준 우리 직원들 덕분입니다" 그간 수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올림픽 고사분수가 가장 힘들었으며,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오영록 대표는 수훈을 가장 먼저 직원에게 돌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번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중간 조율사로서의 조경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그는, 자료의 유무나 기술적인 한계보다도 힘들었던 점은 수경시설과 관련된 사업을 기계나 전기에서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심리적인 압박이었으며, 결국 월드컵 고사분수도 당초 컨소시엄때와는 달리 고압을 다루는 업무와 대용량 펌프로 인해 기계, 전기 분야로 넘겨져 더욱 힘들게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수경시설이 기계나 설비와 관련된 시설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주위경관과 어울리는 디자인의 수경공간이 조성됩니다. 경관조성 관련공사는 조경분야의 몫 아닙니까? 그런 과업들을 우리 스스로 찾지 못하고 있다면 조경인들의 생각이 문제입니다. 반드시 개선해야할 문제겠죠" 이번 월드컵 고사분수가 조경인들에게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경관적 디자인 요소로서의 수경시설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는 무궁무진한 해외시장으로의 개척도 빠르게 수행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며,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기로 수경시설의 표준화 된 유지관리지침 매뉴얼이 작성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란다. 앞으로도 창인건설(주)나 C.I-FOUNTAIN이나 일관된 경영방침으로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램이라는 오영록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고생을 기초공사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대기업을 선호하기보다 중소기업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세상에 대해, 조경에 대해 배운다면 성과가 보이지도 않고 힘들겠지만 프로가 되기 위한 훌륭한 베이스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Changin Landscape Architecture CO,.LTD 백 정 희 Baek, Jeong Hee · 본지 기자
  • 공원이용프로그램 ; 공원이용프로그램의 필요성과 시민참여 방안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은 도시의 인구집중과 자연환경의 파괴와 환경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반면 생활의 여유와 여가시간의 증대를 가져와 새로운 활력소로 여가활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공원이 도시 생활에서 확대되고 생활과 얼마나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공원을 어떤 형태로 이용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원의 이용욕구가 어떻게 표출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이용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특히 도시지역에서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생활권공원의 면적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적은 면적의 공원마저도 적절한 이용에 대한 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해 긍정적 이용보다는 부정적 이용실태가 빈번하게 표출되고 있다.환경오염의 위험을 세계에 처음으로 경고한 「침묵의 봄」작가로 유명한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여사의 명문장인 SENSE OF WONDER(경이로움에 대한 감각)에 하고 있는 말은 강렬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책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나는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부모들에게도 "안다"고 하는 것은 "느낀다"라고 하는 것의 절반도 중요하지 않다고 확실히 믿고 있으며, 아이들이 접하는 하나 하나가 지식이나 지혜를 만들어 내는 종자라면 다양한 정서와 풍부한 감수성은 그 종자를 기르는 비옥한 토양이다. 아동기는 그 토양을 경작하는 시기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각,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에 접했을 때의 감격, 관심, 경탄과 애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감정이 일단 생기면 그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며, 그와 같이 형성된 지식은 확실하게 몸에 체득되는 것이다. 소화하는 능력이 아직 잘 갖추어지지 않은 아이에게 사실을 억지로 주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머리로는 환경문제를 알고 있어도 마음과 몸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먼저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중요시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의 세계는 신선하고 감동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감동이 꺼져버리지 않는 동안에 어른들도 아이들도 함께 그 감동을 서로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생활주변에서의 공원이용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에게 소중한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여진구생태보전 시민모임 사무국장 (본 원고는 요약문입니다)
  • 제3회 아트휀스 디자인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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